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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축출 방법
귀신은 주먹이나 몽둥이로 사람을 팬다고 해서 나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귀신이 더 나가지 않고 기뻐한다. 왜냐하면 귀신은 사람이 죽는 것이 소원이기 때문이다. 맞는 사람만 고통 받고 아픈 일이다. 귀신 축출 함에 있어서 예수님도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오직 말씀으로 귀신 축출하여야지, 그 이상의 것은 해서는 안된다.
제 1 장 그리스도 신유의 4 단계
첫째단계 : 믿음을 가져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행 2 : 21) 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셨으니 그 피가 나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천당은 믿음으로 가고 상급(賞給)은 행함으로 얻는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믿는 자들에게 복음이 되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 : 5)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사 피 흘리시고 죽으신 것은 죄악과 허물에서 건지시려 함이요(즉 영적 구원), 징계 받으신 것은 평화를 누리게 함이요(심적 구원), 채찍에 매를 맞으신 것은 순전히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시기 위함이다(육적 구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과 같이(영적) 네가 범사에 잘 되고(심적, 인격적) 강건하기를(육체적)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2).
따라서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속죄뿐 아니라 근심 걱정과 질병도 그가 담당하셨음을 믿는 것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시 103 : 3)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 지셨다는 것은 믿으면서 왜 그가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신 것은 안 믿는지 모르겠다. “우리 연악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마 8:17)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은 곧 신유가 오셨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하고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시켜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너희는 듣고 보는 것을 가서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신유의 대한 언급을 통하여 당신이 메시아임을 알리셨다. 믿음을 가지라!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영적 구주만이 아니라 육체적 질병의 구주라는 사실도 확신하라. 성령세례를 받은 자는 힘써 믿음을 고백하고 방언을 많이 말하면 매우 유익하다.
믿음이란 하나의 관념적(觀念的)인 철학이나 교리가 아니다. 확실한 믿음은 실제적 체험에서 온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라.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손으로 만진 바라” (요일 1 : 1). 함과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유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둘째 단계 : 회개하라
신유의 두 번째 단계는 만병의 의사가 되시는 예수를 만나기 위하여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죽더라도 천당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얻어 놓고 사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러나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지라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여전히 다시 죄를 짓는다. 그러나 이 죄 때문에 지옥 가는 것은 아니다(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지옥 가겠지만). 마치 아무리 깨끗한 새 옷이라도 자꾸 입으면 때가 타서 더러워지듯, 성도의 심령은 회개하고 거듭났어도 또 다시 죄악에 물들고 만다. 그러므로 더러워진 옷을 빨래하듯, 회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피로 심령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
율법은 무엇이 죄인가를 잘 보여준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악이다. 하나님 보다 세상과 문화, 물질과 명예를 더 사랑하니 그것들이 다른 하나님이 되고 우상이 되어 버린다. 나의 성품과 마음과 뜻,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악이다. 또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치 않는 것이 허물이다.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 곧 살인과 같다는 것이다.
세상의 법률은 행위를 심판하고, 종교나 도덕은 입으로 나온 말을 심판하나, 율법은 말이나 행동이 없었어도 마음 속의 생각을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의인이라고 나설 수 있겠는가? 그렇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이 율법의 정의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하는 것이 율법의 최종적인 요구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양심 앞에 겸손하게 무릎꿇고 회개하여야 한다.
회개하는 사람을 만나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다. “인자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 9 : 13). 그러므로 죄인이 회개하면 주께서는 사랑과 긍휼이 많으사 용서해 주신다. 용서 즉 속죄가 이루어지려면 피가 있어야 하는데 피는 곧 생명이다. 따라서 주의 피 곧 생명이 회개한 자 속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니 질병은 자연히 낫게 되는 것이다.
병 낫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회개하라.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왔는데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가 사함 받았느니라…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마 9 : 1-8)는 말씀은 신유가 눈에 보이는 속죄라는 사실이다.
죄 사함 받으니 그 증거로서 나음을 얻은 것이다. 시 103 : 3 에도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의 말씀에서 첫째는 속죄요 그 다음이 신유임을 말씀하고 있다. 영혼의 병(죄악)을 치료 받으니 육체의 병도 낫게 된다는 말씀이다.
병은 주님이 고치신다. 그러니 의사되시는 그 분을 영접하라! 영접하는 방법이 곧 회개다.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하시지만 회개 없으면 용서가 없고, 생명이 넘치시나 회개 없으면 신유가 없고, 사랑이 풍부하시나 회개 없으면 그 사랑 못 받는다. 회개한 사람에게 구원, 영생, 형통, 부유, 생명, 신유가 있는 것이다.
회계하자!
당신의 병은 회개없는 생활에서 연유한 것임을 잊지 말라 .
셋째 단계 : 병의 원인인 귀신을 저주하고 추방하라.
신유의 세 번째 단계는 질병의 원인이 귀신에게 있음을 알고, 예수의 이름으로 그 귀신을 내어쫓아야 한다는 것이다.
1. 귀신의 정체는 무엇인가?
성경은 사탄王國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사탄 왕국의 세 영적존재(靈的存在)들은 마귀와 악령들 그리고 귀신들이다.
마귀는 루시퍼(靈王) 또는 사탄이라고도 부르며 이 세상의 임금(요 12 : 31) 또는 이 세상 신(고후 4:4)이다. 마귀는 여럿이 있는게 아니라 한 놈이다. 악령(惡靈)들은 원래 천사들이었으나 마귀의 편이 되어 함께 타락한 존재들인데, 천사 중 ⅓이 마귀와 함께 타락하여 그의 사자가 되었다(계 12:4~9).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령(死後靈)이다. 불신자가 죽으면 그 영이 음부에 가는데, 음부는 곧 이 세상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귀신들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라.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령이라는 사실은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막 9 : 25 에 “예수께서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되고 귀먹은 귀신아…” 말씀하심으로 귀신이 벙어리요 귀머거리임을 밝히셨다. 마귀나 악령들은 원래 천사들이나 육체가 없는 영적(靈的)존재들이다. 그런고로 천사가 귀먹고 벙어리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귀먹고 벙어리 될 수 있는 존재는 인간 밖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그렇다! 이 아이에게는 귀먹고 벙어리였다가 죽은 귀신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귀신 된다는 것은 불신자들에게도 상식화 되어있다. 바울도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고전 10 : 20) 고 했다.
2. 귀신은 병의 원인이다.
그리스도로부터 고침을 받으려는 자의 큰 방해물은 하나님이 우리의 병을 통하여 어떤 목적이 있으시다는 그릇된 생각을 갖는 일이다. 즉 이 병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참아야 하며, 고침을 받고자 애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관념 때문에 여러 해 동안 필요없는 고통을 참아왔고 또 죽기까지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고침받기 원하시나 마귀는 당신을 괴롭히고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모든 병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이요 하나님께오서 오는 것이 아님을 밝히 알아야 한다.
구약 때에는 이스라엘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친히 치셔서 전염병이 돌기도 했고 천재지변이 일어나 죽기도 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 모든 질병을 짊어지시고 채찍에 맞으셨다. 그런데도 아직 하나님이 인간을 직접 치신다면 예수의 매 맞음은 아무 효력이 없게 되는 것이다.
병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그 속에 사망이 드리워져 있다. 작은 병이 확대되어 죽을 수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마귀의 권세가 병 속에 있는 것이다.
눅 4:40~41에 “해질적에 각색 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여러 사람들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이것과 동일한 장면을 마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마 8:16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들을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 두 말씀에서 귀신 쫓아 병 고쳤다는 말씀은 일치한다. 다만 누가는 병든 자들이 왔다 했고 마태는 귀신들린 자들이 왔다고 했다. 이 말씀은 병든 자 즉 귀신들린 자라는 사실을 간단한 공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막 9:25에도 아이를 귀먹고 벙어리 되게 한 것은 바로 귀먹고 벙어리 된 귀신이라고 예수님은 지적하셨다.
마 12:22~28에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오니 예수께서 귀신 쫓아 병 고치셨다 했고, 행 10:38에 “저가 두루 다니시며…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라 했다. 예수께서 고치신 모든 병든 자는 다 마귀에게 눌렸던 자들이었다. 즉 마귀는 누르고(억압) 귀신은 사람의 몸속에 들어와 병을 주고 마침내 목숨까지도 빼앗으려 한다.
질병의 원인은 바로 귀신이다.
벙어리 귀신 들어오니 벙어리 만들고, 교통사고로 죽은 귀신 들어오니 교통사고 일으켜 죽이려 하고, 위암으로 죽은 귀신 들어오니 위암 걸리게 하고, 자살한 귀신 들어오니 자살시켜 죽이려 하고, 무당 귀신이 들어오니 무당 만든다. 귀신은 죽기 전에 가졌던 육체의 속성을 그대로 재현시킨다.
의학적으로 볼 때 병의 원인은 병균에서 비롯한다. 귀신은 바로 이 병균을 파송하는 자다. 의술은 병균을 파괴시키려 하나 병균을 파송하는 귀신을 쫓을 수는 없다.
3. 당신은 꿈속에서 귀신을 볼 수 있다.
사람은 흔히 꿈속에서 자기 몸 안에 들어와 역사하고 있는 귀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귀신을 알아 차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꿈속에서 낮에 있었던 일들과 살아있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는데, 그것은 잠들기 전의 의식이 그대로 연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꿈속에서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을 볼 때가 있다. 그것은 내 몸 속에 그 귀신이 들어와 있다는 증거다.
또 생전에 예수를 잘 믿다가 죽은 사람을 꿈속에 보는 수도 있다. 그것은 그의 영이 내 속에 들어온게 아니라 그가 생전에 나를 위하여 많은 기도를 드렸다는 증거다. 따라서 그는 죽었지만 그의 천사가 지금도 그 기도를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꿈을 꾸면 마음에 퍽 위로가 된다.
4. 귀신을 미워하며 저주하고 추방하라.
귀신은 인격을 가지고 있기에 자기를 미워하고 저주하면 싫어한다. 그것은 마치 원치 않는 불청객이 방문했을 때 미워하고 욕하고 저주하고 나가라 소리치면 제 아무리 비위가 좋은 사람이라 해도 견디지 못하고 나가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예수께서도 귀신을 부를 때에는 반드시 “더러운 귀신아” 로 부르시고 큰 소리로 꾸짖으셨다.
귀신이 나가는 속도와 미워하고 저주하는 분량과는 정비례한다. 그 귀신이 아무리 부모나 친척이나 남편, 아내, 자식이라 해도 관계하지 말고 추방해야 한다. 인간의 관계는 목숨이 있을 때 뿐이지 죽고 나면 생전의 인간관계는 없어지고 만다. 부모는 나의 목숨을 낳아주셨으나 하늘나라에 가면 목숨으로 사는게 아니라 영혼의 생명으로 살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각각 다시 난 것이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늘나라에 간 우리 아버지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니 나는 하나님을 할아버지라 불러야 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도 나도 다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될 것인즉 그와 나 사이는 독립된 개체의 영혼으로 존재 할 뿐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막 16 : 17)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나가라고 명령하라! 당신의 머리에 손을 얹고 명령하라.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내 몸에서 나가라! 나가라!” 힘있게 외치라!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신다.
넷째 단계 : 감사하고 간증하라
신유의 네 번째 단계는 귀신이 떠나고 병고침 받은데 대하여 반드시 감사하고 간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한 문둥이를 고쳐주신 다음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간증)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감사)고 명하셨다. (마 8 : 1~4)
보혜사 성령이 오시기 전까지는 “삼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셨지만 성령이 오신 후부터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일생토록 자기의 간증을 늘 하곤 했다.
우리는 주께로부터 받은 바 그 크신 은혜를 배은망덕하지 말아야 한다. 귀신이 나가고 병고침을 받았다는 것은 간단한 일같이 보일 수 있으나 사실은 이를 위하여 하나님이 육신이 되셔서 이 땅에 오사 매를 맞지 않으면 안되는 엄청난 고난의 절차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귀신에게 나가라는 소리는 사실은 주님이 매를 맞으시는 소리와 같은 것이다. 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일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일평생 간증하며 사는 것이다.
감사는 생명의 속전이다. 감사와 간증은 주님의 명령이시다.
제 2 장
축사자를 위한 노 - 트
축사는 하나님과 축사자 그리고 환자의 삼박자가 맞아야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발전소에서 보내주는 전력(電力)이요 축사자는 전선(電線)과 같고 환자는 전구(電球)와 같은 것이다.
주님은 문둥병자에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막 1 : 41) 하심으로 병을 고치셨다. 그렇다! 병든 자가 깨끗함 받는 것은 우리 주님의 소원이시다. 따라서 발전소의 전력은 얼마든지 확보된 셈이다. 문제는 축사자와 환자가 얼마나 믿음을 나타낼 수 있는가에 달렸다.
1. 성령충만하라
축사자는 언제 어디에서라도 귀신을 추방할 수 있도록 성령충만한 상태를 유지하여야 한다. 축사는 요령에 달린게 아니라 축사자 자신이 얼마나 성령사역의 도구가 될 수 있느냐에 달린 것이다.
2. 환자의 믿음을 보라.
예수께서 신유를 행하실 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네 믿음대로 되라” 고 말씀하셨다. 바울도 앉은뱅이에게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있음을 보고 신유를 베풀었다(행 14 : 9).
믿음이 없는 자를 일방적으로 축사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말씀을 전한 후 축사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
예수께 신유를 구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믿음을 보였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고백함으로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칭찬과 함께 그의 딸의 병도 고침받았다.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자도 입으로는 귀신의 말을 대신하고 있었으나 몸은 예수께 달려와 절하고 있다. 믿음 없는 자를 주께서 고치신 일은 없다.
믿음이 있다고 생각되면 함께 기도하라. 만일 환자가 방언을 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함께 방언기도를 하라. 귀신은 방언을 매우 두려워 한다.
3. 환자와 귀신의 의식을 분리시켜라.
귀신도 인격적 존재이니 의식이 있다. 마음을 편안히 하여 환자의 의식을 아래로 가라앉히고 귀신의 의식은 위로 올리게 한다.
즉 A 처럼 귀신의 의식과 환자의 의식이 맞물려 있으면 절대안나간다
B 처럼 환자 자신의 의식을 밑으로 가라앉히면 귀신의 의식은 위로 떠오른다.
자기의 의식을 밑으로 가라앉히는 방법은 ① 환자로 하여금 귀신을 미워하게 함으로서 귀신의 의식을 위로 밀어올리고 ② 심호흡을 해서 무심한 상태로 들어가서 자신의 의식을 가라앉히고 긴장을 풀게한다. 또 ③ 환자로 하여금 축사자의 말에 신경쓰지 않게 하고 ④ 주위에 누가 있던지 도무지 의식하지 않게 한다.
환자가 귀신을 미워하는 정도에 따라 귀신이 나가는 시간이 단축된다. 만일 환자가 귀신의 정체(꿈의 해석 참조)를 알면 더 빨리 나간다.
가능하면 귀신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좋다. 예수께서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자에게서 축사하실 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막 5 : 9, 눅 8 : 30). 귀신의 이름과 환자와의 관계, 언제 들어왔으며 들어와서 무슨 짓을 했는지를 묻는 것은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귀신과의 너무 많은 대화는 삼가야 한다. 자칫 귀신에게 약점을 잡혀서 그것을 빌미로 하여 나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형사가 강도를 어느 외진 곳에서 맞닥뜨려 체포하는 것과 같다. 체포도 하기 전에 강도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 틈을 보다가 도망쳐 버리기 쉽다.
환자의 믿음이 많을수록, 귀신에 대한 지식이 많을수록, 귀신은 정체를 빨리 들이내고 나간다. 그러나 환자 자신이 귀신을 부인하거나 신앙이 약하면 귀신은 안나간다. 왜냐하면 귀신은 모든 부정적 생각 속에 安生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극적 내성적 부정적 성품을 가진 사람은 귀신에게 아지트를 제공해 주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을 때 적극적 진취적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끊임없이 예수를 말하게 되는 것도 모두 그런 관계가 있는 것이다.
4. 귀신을 꾸짖고 퇴거를 명령하라.
축사자는 환자의 눈을 보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꾸짖어라. 눈은 마음의 창이니 환자의 눈을 통하여 귀신과 축사자는 서로 대면하게 된다. 귀신의 의식이 눈을 통하여 나타나면 환자의 눈동자는 ① 고정되고 ② 깜빡거리지 않으며 ③ 동공(瞳孔)이 커진다. 이때 축사자는 귀신을 꾸짖고 정체를 밝힐 수 있다. 예수께서도 축사하실 때 ① 더러운 귀신을 꾸짖고 ② 잠잠하게 하신 후 ③ 나가라고 명하셨다.
축사자가 귀신을 꾸짖을 때 큰 소리든 작은 소리든 상관없다. 어떤 사람은 왜 큰 소리로 귀신을 욕하느냐고 힐난하는 이도 있으나,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으셨을 때 작은 목소리였는지 큰 목소리였는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마치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힐난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기도를 큰 소리로 하든 작은 목소리로 하든 상관없듯이, 귀신도 큰 소리로 쫓을 수도 있고 작은 목소리로도 쫓을 수 있다. 그것은 환자와 축사자의 심령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눈만 마주쳤는데 귀신이 떠났고, 귀에 속삭이듯 가만히 나가라 했는데 떠난 경우도 있으며, 어떤 때는 큰소리로 명령하여 축사한 경우도 있다. 예수님도 말씀으로 축사하신 일이 있는가 하면(막 9 : 25 ~27) 환자의 머리에 안수하여 귀신 쫓으신 일도 있다. (눅 4 : 40) 축사의 방법은 다양하다. 거기에는 王道가 없다.
귀신도 智情意의 인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를 미워하고 욕하면 몹시 싫어하고 분을 내며 괴로워한다. 환자로 하여금 강력하게 귀신을 미워하게 하고 저주하게 하라. 그만치 귀신은 속히 퇴거할 것이다.
5. 안수방법
귀신에게 『나가라!』고 퇴거명령을 내릴 때 안수하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안수에 대하여 잘못된 지식을 가진 사람이 많다. 안수란 문자 그대로 머리에 손을 얹는다는 뜻이다.
머리에 강하게 누르거나 때리거나 밀거나 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어떤 이는 안찰한다 하여 온몸을 때리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성경에 안수는 있어도 안찰은 없다. 눈이나 환부를 강하게 누르는 것도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축사가 아닌 안수기도는 환부에 손을 대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축사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환자의 눈을 보면서 『나가!』라 명령하며 머리를 가볍게 잡거나 얹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안수는 원칙적으로 한번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특수한 경우에 따라서는 두 번 이상 할 수도 있다. 예수께서도 소경에 안수하실 때 두 번 하신 일도 있다.(막 8 : 22 ~ 26).
서있는 환자가 안수받고 넘어지더라도 다치지 않도록 뒤에 의자를 놓거나, 딱딱한 바닥이면 무엇을 깔아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6. 축사 여부의 식별
환자에게서 귀신이 나갈 때 일반적 현상은 ①정신없이(아찔해져서) 뒤로 쓰러진다. ② 머리와 몸이 가벼워진다. ③ 감사 또는 회개의 기도를 봇물이 터지듯이 쏟아낸다.
그러나 아찔한 순간이 없거나, 넘어졌다 해도 눈을 멍청하게 뜨고 있다거나, 넘어지는 순간에 축사자의 몸을 붙들거나 무엇인가를 붙들거나, 머리가 계속 무겁거나, 넘어져서도 계속 떨거나, 축사 전이나 후가 꼭 같고 아무 변화를 환자 자신이 느끼지 못한다면, 귀신이 나가지 않은 증거다. 그럴 때에는 모든 과정을 다시 한번 반성해 보고 어디에 잘못이 있었는지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환자가 넘어져서 오래 동안 정신을 잃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스스로 정신 차리고 일어날 때까지 가만히 두어두라. 곧 일어나게 된다. 예수께서도 아이에게서 축사하시니 그 아이가 넘어져 죽은 것같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산일도 있었다.(막 9 : 26 ~ 27). 10 여분을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거든 환자에게 손대지 말고 귀에다 믿음의 말을 하라.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시켜보라. 즉시 눈물을 흘리며 큰 소리로 기도할 것이다.
7. 에필로그
『축사자를 위한 노-트』는 10여년에 걸친 필자의 많은 경험과 성경말씀을 토대로 쓴 것이다. 그러나 모든 축사가 위와 같은 경로를 거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많은 항목을 생략한 채 이루어지고, 또 어떤 때는 이것들 위에 덧붙어야 할 일도 있다. 위의 기록한 사항들은 일반적이요 표준적인 것들만을 추려서 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축사란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달려 있다. 나는 초기에 이러한 방법이나 절차를 모른채 수천건의 축사를 했었다. 그러나 점점 축사의 시간이 단축되고 쉽게 귀신들이 나가면서 수십만의 축사를 경험하게 되었다.
위에 열거한 절차는 꼭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참고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없어질 수 없는 철칙은 믿음이다. 믿음만 있고 병의 원인인 귀신을 꼭 쫓아내겠다는 의지만 확고하면 방법은 여하간에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다.
남이 나처럼 하지 않고 조금 다른 방법으로 한다하여 이상하게 생가지 말 것은 축사의 王道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이 믿음 안에서냐 아니면 믿음을 떠난 어떤 인간적 방법이냐를 구분하면 족할 것이다.
제 3 장
鬼神은 不信者의 死後靈이다
성경에는 『사탄』이라는 명칭이 48번, 『마귀』라는 명칭이 24번, 『귀신』은 89번이나 나온다. 대체 이 귀신의 정체는 무엇일까?
[ 종래의 設 評]
귀신에 관한 文獻은 매우 드물고, 혹 있다 해도 대부분이 흥미위주요, 이야기 거리로 서술한 것들이 많아서 진지한 神學的 토론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神學的 定說을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런대로 전통적으로 설득력 있게 꾸준히 내려온 設이 있다면 다음의 세가지로 대개 요약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1. 귀신 즉 마귀
2. 귀신 즉 타락한 천사들
3. 귀신 즉 노아 이전 사람들의 死後
그러나 위의 세 가지 設에는 많은 의문점이 있다.
1. 마귀는 ό διαβολος 라 하여 언제나 單數로 사용한다. 그러나 귀신은 單數 또는 複數로 불리운다. 마 12 : 43 ~ 45 에 귀신(單)이 사람에게서 나갔다가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왔다. 막 5 : 9 에 군대귀신(複). 마귀는 큰용, 옛뱀, 사탄의 별칭(別稱)으로서 同一한 存在요 單數로 사용되고 있다.(계 12 : 9, 20 : 2)
2. 마귀와 함께 타락하여 하늘에서 내쫓긴 천사들이 귀신이 되었다는 設 :
천사(天使)는 육체가 없는 영적존재(靈的存在)다(히 1 : 14). 그러나 예수께서 귀신을 쫓을 때 『벙어리되고 귀먹은 귀신아』(막 9 : 25)라고 하심으로 귀신이 벙어리요 귀머거리임을 밝히셨다. 그렇다면 천사가 귀먹고 벙어리 될 수 있을까?
3. 마귀나 그와 함께 타락한 천사들이 인간 속에 들어와 그 사람을 속여서 다른 죽은 사람의 이름을 사칭(詐稱)하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 그렇다면 예수 앞에서『군대귀신』『벙어리귀신』『귀먹은귀신』이라고 자신의 정체(正體)를 밝힌 말도 사칭(詐稱)이 될 것이고, 예수께서도 귀신들에게 속았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귀신이 예수에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막 1 : 24, 2 : 11, 눅 4 : 41)라는 말도 거짓으로 한 말이 될 것이다. 귀신이 예수앞에서 거짓을 말했다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동일한 논리로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거룩한 사역(使役)앞에 귀신이 거짓을 말할 수 없을 것은 자명하다.
4. 노아 이전의 사람들이 홍수(洪水)로 멸망당한 후 귀신이 되었다는 設도 수긍하기에는 몇가지 난점이 있다.
① 노아 이전 사람들의 죽은 영혼이 귀신 되었다면 그 이후 사람들의 죽은 영혼도 귀신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전 사람의 영혼이나 그 후 사람의 영혼이나 모두 아담의 후손들로써 同質的 영혼들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노아 이후에 인간의 영혼을 재창조하신 일이 없기 때문에 그 이전이나 이후의 영혼은 같다는 뜻이다.
② 귀신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정죄받고 자기 정체(正體)를 밝힐 때에는 구체적인 죽은 사람의 이름을 댄다. 이러한 일은 많은 실체적 축사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진술을 통하여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증언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도 모두 귀신이 자기의 정체를 사칭(詐稱)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기왕 귀신이 사칭할 바에야 예수나 사도들이나 성도들의 이름을 들 일이지 왜 하필이면 죽은 不信者의 이름을 들겠는가. 또 축사자는 귀신에게 속았다는 말이 될텐데 어찌 귀신이 나가며 깨끗함을 입었겠는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축사현상 자체를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不信者 死後設]
1. 음부는 이 세상이다.
불신자(不信者)가 죽으면 그 영혼이 귀신된다는 학설(學說)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세상이 곧 음부』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이 전제를 증명할 수 있는 성경말씀의 자료를 다음에 열거한다.
(사 14 : 15)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유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은 큰 나르이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벧후 2 : 4) 하나님의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였으며
마귀와 그의 일당(타락한 천사들)은 모두 잡혀서 음부(Hades)에 갇히게 되었다. 위에 세구절을 보면 마귀와 그의 일당이 갇힌 곳을『음부 = 어두운 구덩이 = 흑암 = 지옥』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벧후 2 : 4의 『지옥』은 ϓέεννα(게엔나)가 아니라 ταρταρωʹσαϛ(탈타로-사스)로서 신약의 다른 데는 없는 말이다. 박윤선(朴允善)목사도 ‘이말의 뜻은 아직 미상이다.’ 라 했지만, 이것은 지옥보다는 음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①그 아래의 설명이 『어두운 구덩이』지 『유황불못』(계 20 : 10 막 9 : 43) 이 아니며, ② 『심판 때까지 지키게』하는 중간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음부는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은 분명히 마귀와 그 일당들을 음부에 가두었다고 하셨는데 마귀는 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은 이 마귀를 가리켜 『이 세상의 신』『이 세상의 임금』『공중의 권세잡은 자』『온 천하를 꾀는자』라고 말한다. 음부는 곧 이세상이다.
2. 불신자는 死後에 음부로 간다.
음부는 불신자가 죽어서 가는 곳이다. 그런데 음부(Hades)가 이 세상이니,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不信者의 죽은 영혼들이 들끓고 있겠는가! 부자와 나사로의 예에서도 부자는 죽어 음부에 가서 고통 중에 물 한방울의 자비를 구했다. 예수는 귀신이 사람의 몸에서 나가매 물이 없고 쉬지 못하는 고통 때문에 다시 사람에게로 들어온다고 말씀하셨다. 음부가 어디에 있길래 귀신이 사람의 몸 속에 있다가 다시 들어왔다 하겠는가? 지옥과 음부는 다른 곳이다. 계 20 : 14에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라 했다. 불신자들은 그 영혼이 음부에 있다가 대심판 때에는 둘째 사망 곧 지옥으로 던지우게 될 것이다.
3. 귀신 - 不信者 의 死後
① 不信者가 죽으면 그 영혼은 마귀와 그의 사자들이 있는 음부에 가는데, 그 음부가 이 세상이니 이 세상에 머물러 있다. 이것을 귀신이라 한다.
② 고전 10 : 20에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니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모든 이방종교의식, 즉 불교의 濟, 유교의 제사, 무속(巫俗)의 굿은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여혼이 이 세상에 있다고 믿기에 제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제사의 대상을 귀신이라고 했으니, 불신자의 죽은 영혼이 곧 귀신이라는 것은 너무나 明白한 논리다.
시 106 : 28 에도 『저희가 죽은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케 했다.』고 함으로써 제사는 죽은 자, 즉 귀신에게 하는 것임을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다.
③ 행 16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사 8 : 19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이 말씀에서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란 점치는 귀신 들린 자를 가리킴이니, 점하는 귀신이란 곧 죽은 자를 가리킨다.
④ 막 9 : 25 에 예수께서 『벙어리되고 귀먹은 귀신』이라 말씀하심으로서 귀신은 전에 육신을 가졌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암시하셨다. 마귀나 악령들(타락한 천사들)은 靈이지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마귀나 악령들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될 수 없음은 재언할 필요조차 없다. 그렇다면 귀신은 前身이 사람이외에 또 어떤 存在가 있을까? 육신을 가진 生命體라면 人間과 動物뿐일 것이다. 그러나 動物은 靈이 없으니 그의 死後의 영혼을 말할 수는 없다. 信者의 死後 영혼이 귀신될리는 萬無하니 결론은 明白하다. 不信者의 死後가 귀신이다.
⑤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이 귀신을 쫓는다. 그것은 주 예수의 豫言대로 『믿는자들에게 따르는 표적』(막 16 : 17)이 실현된 것 뿐이다. 이 축사현상은 어느 특정한 개인에게만 국한된 비밀한 경험이 아니라 보편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즉 수많은 성도들의 신앙체험인 것이다. 이 사실자체를 否認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귀신들의 나가며 소리지르기를 자신의 정체(正體)가 죽은 아무개라 하여 피축사자(被逐邪者)와의 혈연적(血緣的)내지는 사회적 관계와 자기의 성명 직업 등을 모두 밝힌다. 이것을 모두 속이는 것이고 사칭하는 것으로 몰아붙이면 앞에서 이미 지적한 것과 같은 모순점을 드러내게 된다. 즉『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귀신의 고백도 거짓말이었다는 해괴한 결론이 될 것이다.
[結論]
信者는 죽으면 그 영혼이 낙원에 갔다가 대심판 후 영원한 하늘나라로 가고, 不信者의 死後는 음부에 가는데, 그 음부가 곧 마귀가 있는 곳이며 이 세상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 얼마나 不信者의 死後靈이 많겠는가! 이것을 귀신이라 한다.
귀신의 정체(正體)는 不信者의 死後靈이라는 이 結論은 하나의 學說이다. 神學에는 수많은 說이 혼재(混在)했고 비교, 검토, 수정되어 왔다. 영혼 창조설 ․ 영혼先在設 ․ 영혼유전설 ․ 전천년설 ․ 후천년설 ․ 무천년설. 창세전예정설(Supralapsarianism) ․ 타락후예정설(Infralapsarianism) 등, 이러한 제설(諸說)을 비교 분석함으로서 보다 나은 새로운 가설이 정립되곤 하여 神學은 발전되어온 것이다. 神學도 學問이다. 學問의 기초는 사실(Fact)에 있다. 그 사실 자체를 부인하거나 설명을 할 수 없다면 하나의 지식체계(知識體系)를 세울 수는 없다. 덮어놓고 아니라고 할게 아니라 위의 사실[귀신의 정체(正體) 밝히기]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理論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귀신의 정체(正體)를 밝히는 더 좋은 學說을 神學者들에게 기대한다.
제 4 장
病의 원인은 鬼神이다
1. 서론
병의 원인에 대한 神學的 해명(解明)은 아직 定說을 찾기가 어렵다. 기독교 역사상 신유나 축사(逐邪)의 능력을 가지고 병자를 치유한 예는 많이 있었으나, 그 능력을 체계화하거나 神格化시키지는 못한 채, 지나치게 카리스마적으로 신비화시키거나 또는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대로 전통적으로 설득력있게 꾸준히 내려온 通說이 있다면 대개 다음의 세가지가 아닌가 한다.
① 하나님이 치신 병
② 마귀에 의한 병
③ 자연적 현상으로 생긴 병
그러나 벧전 2 : 24에『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마 8 : 17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고 말씀하심으로 예수의 속죄(贖罪)와 속병(贖病)이 선언되었다.
기독교 역사상 신유에 관한 문헌들은 많이 있어 왔다. 최근에는 신유만을 전문으로 다룬 책들도 상당수 보인다. 그 책들의 저자들은 실제로 많은 신유의 경험을 가진 분들이다. 그들의 주장은 공통점은 ①육신의 병은 영혼에서 비롯되었고 ②영혼의 병은 죄악 때문에 생겼다. ③병의 원인은 病魔 ․ 마귀 ․ 사탄 ․ 귀신 ․악령 등에 기인하며 이것들이 죄악을 틈타서 사람에게 병과 저주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요컨대 通說의 ②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①과 ③을 神學的으로 受容한 이론은 아직 보지못했다. 하나님이 병을 주셨다는 設에 대해서도 『그렇다』는 의견 과 『그렇지 않다』는 의견 이 엇갈리고 있으나 양쪽 다 충분한 설명은 없다.
더욱이 자연적 현상으로 생긴 병과 醫師에 의한 치료를 神學的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주 어려운 難題다. 다만 의술도 하나님이 주신 은총 중 하나라는 정도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論理的으로 약하다. 왜냐하면 이 설명을 따르면 醫師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이요, 의사 중에서도 특별히 진료를 잘하는 의사는 그가 불신자일지라도 대단한 은총의 소유자라는 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본고(本稿)는 위에 세가지 通設과 예수의 속병(贖病)사이에서 어떻게 성경말씀(즉 예수의 신유)을 변호할 수 있는가를 시도한 것이다. 왜냐하면 상식수준의 通說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 우위에 있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이 치셨다』는 設에 대하여 구약에는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다가 하나님이 치셔서 병든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즉 이스라엘이 음행하다가 염병이 돈 이야기(민 25 : 1 ~ 9, 시 78 : 49 ~ 51),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리어 죽은 이야기(민 21 : 6), 다윗이 범죄하므로 3일간 온역이 돌아 7만명이 죽은 이야기(삼하 24 : 10 ~ 17), 이방신의 제사음식을 먹었다가 전염병이 돈 이야기(시 106 :28 ~ 29), 등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말씀을 불순종한 죄값으로 하나님이 치셔서 질병이 오게되었다.
그러나 신약에 이르러 예수는 하나님의 채찍에 맞아야 할 인간을 대신하여 맞으셨다. 그래서 인간들은 나음을 입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신 이상 무엇이 또 부족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치시겠는가? 그리스도의 속죄(贖罪)와 속병(贖病)은 완전한 것이다(사 53 : 5, 벧전 2 : 24, 마 8 : 17). 말씀이시며 영이신 주님이 육신으로 이땅에 오신 것은 피흘리고[속죄(贖罪)] 매맞기 위함이다[속병(贖病)]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징계한다는 『징계』란 παιδεια(히 12 : 5 ~ 8) 또는 παιδεύω(계 3 : 19)로서 『교육시키다』『훈련시키다』(discipline, instruct, train, teach) 이다. 또 약 1 : 2.12 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의 시험은 δοκμάξω로서 『증명하기 위한 시험』(test, examine, approve, prove) 의 뜻이다. 즉 하나님이 사랑하는 성도의 신앙을 더 높이기 위하여 환경적 외래적 고난을 통하여 훈련시키는 시험이나 징계를 말하는 것이요『병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며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 : 13 ~ 15) 여기의 『시험』은
δοκμάξω(peirazo)인데, 이것은 사망으로 이끌기 위한 『미혹』으로서 마귀의 시험을 말한다.(tempt). 즉 마귀가 하나님이나 성도를 시험할 때 δοκμάξω를 사용하고 있다.(마 4 : 13 행 5 : 9 ․ 15 : 10, 살전 3 : 5, 계 3 : 10).
결국 하나님이 성도를 징계 시험하신다는 것은 성도의 환경을 자극하여 外來的고난을 통하여 교육 훈련시킨다는 뜻인데, 여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생명을 더욱 풍성히 주시고자 하시는 목적이 수반된다. 그러나 마귀가 주는 시험은 사람을 미혹시키고 마침내 죽이려고 하는 惡性的 시험δοκμάξω으로서 하나님은 이런 것으로 사람을 시험하지는 않으신다는 뜻이다. 마귀의 시험에는 질병도 포함한다. 왜냐하면 병속에는 사망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병주고 藥주는 분으로 오해하지 말자. 성도의 최고인 理想은 하나님의 뜻이 나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이루어지기 위하여 기도하셨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 성도를 시험하시어 병을 주셨다면 우리가 병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이리라. 그렇다면 병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게 되는 것이니 그 얼마나 不忠한 기도가 될것인가! 아니면 『내가 병든 것은 아버지의 뜻대로 된 것이니 이대로 죽게 하옵서서』할 것인가? 그렇다면 주님은 왜 채찍에 맞으셨는가? 성도의 불순종에 대한 代價로서 하나님이 치셔서 병드는 것이라면, 건강한 사람들은 모두 말씀 순종 잘했기 때문에 그런것인가?
주님은 치료하시려 오신 분이지 병주려고 오신 분이 아님을 믿자.
3. 마귀에 의한 병
병의 원인은 병마 ․ 마귀 ․ 사탄 ․ 악령 ․ 귀신 등에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用語上의 定義를 가질 필요가 있다. 마귀와 사탄은 同一存在를 가르키며(계 12 : 9 ․ 20 : 2) 원래는 天使長이었는데(겔 28 : 15 ~ 17, 사 14 : 12 ~ 15). 마귀는 세상의 임금이요, 공중권세 잡은 자요, 사망권세 잡은 자요, 온천하를 꾀는 자요, 미혹하고 참소하는 자요, 하나님의 원수다. 병마란 상식적인 호칭이지 성경상의 용어는 아니다. 악령은 필자가 아는 한 엡 6 : 12 에 꼭 한번 나오는 단어로서(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마귀나 귀신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악의 영들』로서 단수가 아닌 복수이니 마귀와 다르고, 『하늘에 있는』으로서 땅에 있는 귀신과 다르기 때문이다. 악령들은 마귀의 사자들이요 타락한 천사들을 가리킨다.( 마 25 : 41, 벧후 2 : 4, 유 6, 계 12 : 7). 귀신은 不信者 死後靈이다.
이상을 요약하면 악의 세계는 세가지 종류의 존재 즉 마귀 ․ 악령들 ․ 귀신들이 있는데, 마귀는 악령과 귀신을 지배한다. 이 세 存在중 어느 것이 인간에게 병을 주는가?
막 9 : 25에 예수께서 벙어리되고 귀먹은 귀신을 아이에게서 쫓아내시니 그 아이가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즉 그 아이의 벙어리 귀머거리 증상은 그 아이 자신의 병이 아니라 귀신의 병이었음을 말해준다. 마 8 : 16에 귀신들인 자들은 예수께 데리고 오니 귀신쫓고 병고쳤다. 꼭같은 사건을 눅 4 : 40에는 각색 병든 자들이 왔는데 예수께서 귀신쫓고 병고쳤다고 기록했다. 이 두 말씀을 종합하면 귀신들린 자 즉 병든 자가 된다. 행 10 : 38에는 예수는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다고 했다. 이 말씀을 뒤집어 보면 예수께서 고치신 모든 병은 마귀에게 눌린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못고친 병이 없었다. 그러니 모든 병의 원인은 마귀에게 눌린 것이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마귀는 인간을 누르고 억압하며, 자기 지배하에 있는 귀신들을 파송하여 침투시켜서 저주와 질병을 준다.
성령은 성도의 영혼속에 들어오신다. 그러나 천사는 사람의 육체속에 절대로 들어올 수 없다. 즉 악령들이나 마귀는 육체 밖에서 역사하지, 안에 들어올 수는 없다. 오직 육체를 가졌었던 귀신만이 인간의 육체 속에 들어온다. (눅 11 : 24 ~ 26). 그러나 영 속에는 절대 들어올 수 없다. 따라서 아무리 성도라 해도 귀신은 그 육체 속에 질병으로 들어와 저주와 질병으로 역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서 능력있는 주의 종들이 축사(逐邪)하는 대상자는 거의 모두가 信者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불신자에게서 축사(逐邪)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유는 귀신쫓아 병고치는 것이었으며 (막 1 ~ 23 : 28, 3 : 11), 축사(逐邪)와 신유는 그의 공생에의 2/3 이상을 차지하지 않았나 추측된다(눅 13 : 12). 그는 제자들에게 (마 10 : 1) 그리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 (막 16 : 17) (마귀가 아닌) 귀신을 쫓아내라고 명하셨다.
결국 『마귀에 의한 병』設은 『귀신에 의한 병』으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마귀와 그의 使者들 즉 악령들은 배후에서 귀신을 지배 조정하여 인간에게 질병과 저주 불신앙을 주도록 지령하고 침투시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자연적 현상으로 생긴 병
인간의 生老病死는 자연의 理致이다. 혹자(或者)는 이것을 진리라 하나 그것은 진리가 아니요 이치다. 율법(律法)은 이러한 자연의 理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밝혀 주었다. 그것은 罪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긴간이 自然法則을 초월할 수 없는 罪 때문이다. 인간이 病드는 것, 병이 심해지면 죽게 마련인 것, 바람이 부는 것, 폭풍이 치는 것, 밥을 먹지 못하면 굶어 죽는 것, 늙으면 죽는 것…… 이 모두가 자연 법칙이다.
인간은 이 自然法則앞에서 속수무책이다. 따라서 生老病死의 자연법칙을 運命으로 받아드리고 체념한다. 그 어떤 영웅호걸도 이 운명을 이긴 자는 없다. 즉 율법(律法)의 저주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그런데 예수가 오셨다. 그는 죄(罪)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따라서 주님은 자연법칙을 초월하시는 여러 가지 이적을 많이 행하셨다. 그는 병든자를 고치고, 죽은자를 살리며, 폭풍을 잔잔케 하고, 떡 5개로 5천명을 먹이시며, 물위를 걸으시고, 자신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고 『내가 곧 眞理』라 하셨다. 그렇다! 이것이 眞理다. 예수가 眞理인 것이다. 自然法則, 즉 율법(律法)에서 놓여나오는 法, 그것을 眞理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 : 13) 自然的 眞理와 율법(律法)과 眞理, 이 三者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自然的 法則은 인간의 運命이며 마침내 인간을 사망으로 인도한다. 율법(律法)은 그 運命의 원인을 『罪값은 사망』이라 하여 罪때문임을 밝혔다. 그런데 眞理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超自然的 超合理的 超論理的인 사역을 행하시었다. 그리고 제자들과 모든 믿는 자들에게 運命의 원인이었던 죄를 사하시며 『너희는 나보다 더 큰 일도 하라』고 가르치셨다. 즉 眞理이신 예수의 이름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을 당부하셨다 할 수 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사람이 병드는 것은 자연적 현상이요, 이치며 운명이다. 그러나 율법은 그 병의 원인이 곧 죄라고 말한다. 죄값은 삼아이요, 마귀는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하고 있다.(롬 5 : 21) 아무리 사소한 병일지라도 우리는 그 병 때문에 죽을 수 있다. 즉 모든 병 속에는 사망의 권세가 깃들어 있으며, 그 사망권세를 마귀가 장악하고 있다.
病은 文化的으로 볼 때에는 자연적 현상이라 하나, 聖書的으로 볼 때에는 사망권세를 가진 마귀에게 그 원인이 있다. 욥記에 보면 도적떼들이 몰려온 것, 불이 난 것, 大風이 불어 집이 무너진 것들 때문에 재물을 빼앗기고 종들과 자녀들이 다 죽은 것은 外見上 자연현상인 것 같지만 성경은 사탄이 친 것이라고 했다.
자연과학은 병의 원인이 병균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확증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병균에게 파괴력과 번식력을 공급하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靈的存在인 鬼神을 우리는 모르고 있다.
5. 病의 原因은 鬼神이다.
은혜시대에 있어서 병의 원인은 하나님이 친신 것도 아니요, 자연현상으로 생긴 것도 아니요, 마귀에 의하여 생긴 것임을 고찰하였다. 그리고 이미 3項 마귀에 의한 병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마귀 자신이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鬼神들을 배후에서 지배 조종하여 인간에게 침투시켜서 질병과 저주 불신앙(不信仰)을 주도록 지령한다.
鬼神이 육체 속에 들어오면 자신이 귀신되기 전에 가졌었던 모든 속성(屬性)을 그대로 환자의 육체에 이식시키려 한다. 자신이 죽기 전에 앓았던 질병 ― 벙어리, 귀머거리, 폐병, 위암, 신경통……― 을 그대로 들어간 사람에게 移植시켜서 그 병을 앓게 한다. 우발적 사고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그 사고로 말미암아 해를 입었던 귀신이 그대로 되풀이하여 환자에게 해를 입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교통사고로 다리하나를 잃은 不信者가 죽어 귀신되어 어떤 사람에게 들어갔을 때, 어떻게 해서든 그 사람을 교통사고 나게하여 다리를 절단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따라서 예수께서도 벙어리되고 귀먹는 아이를 고치실 때 『벙어리 되고 귀머거리로 보였지만, 주님은 그 병이 귀신의 속성(屬性)임을 가르쳐 주셨다. 또 거라사 地方의 귀신들린 자는 힘이 세서 쇠사슬과 고랑을 깨뜨릴 정도였다. 왜냐하면 그에게 들어간 귀신은 군대였기 때문이다.
病의 原因은 鬼神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유는 귀신을 쫓는 것으로 시작하셨다. 주님은 제자들에게도 귀신을 좇아내며 병든 자를 고치라고 명하셨다.(마 10:1, 막 3:15, 6:7, 눅 6:13, 9:1~2) 그리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표적이 따르리니 곧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게 되리라」(막 16:17)고 예언 하셨다.
6. 축사와 신유
그러나 주님이 병든 자를 고치실 때 반드시 귀신을 쫓은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안수를 통해서, 또는 말씀만으로 고치시기도 하셨다. 이것은 신유의 능력이다. 축사와 신유는 병을 고친다는 목적에서는 같지만 은사 면(面)에서는 다르다. 즉 신유의 은사는 병고치는 은사요, 축사(逐邪)는 능력행하는 은사다. 막 16:17~18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능력) 「병든 사람에게 손을 엊은 즉 나으리라」(신유). 이렇게 은사면에서 축사와 신유를 구별하셨다.
축사는 병균을 파송하며 파괴력과 번식력을 공급하는 원인인 귀신(鬼神)을 쫓아냄으로, 더 이상의 병균이 침투하지 못하게 만들고, 기왕에 인체(人體)에 들어와 있는 병균의 파괴력과 번식력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다. 신유의 은사는 귀신이 침투시킨 병균을 다 죽여버리는 힘이 있다. 이 두가지 은사는 결과적으로 병을 고치는 힘이라는 점에서 같으나, 방법(方法)에 있어 축사는 귀신을 명하여 쫓아내는 것이요, 신유의 은사는 안수(按手)를 통하여 고친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많은 능력있는 성도들의 경우 이 두가지 은사를 겸하여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병든자를 고치며 죽은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마 10:8)고 신유와 축사를 당부하셨다. 꼭 같은 성령의 은사인데 신유는 인정하고 능력은 인정 못할 이유가 있을 수 없다.
7. 신유와 의사(醫師)의 치료(治療)
의사(醫師)에 의한 치료를 신학적(神學的)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의사는 과학의 힘을 빌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치료하지, 볼 수 없는 영(靈)을 치료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병균을 약화(弱化)시키고 귀신(鬼神)의 속성(屬性)이 들어난 부분(部分), 즉 환부(患部)를 제거시키거나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병균을 파송하고 있는 귀신을 쫓을 수는 없다. 따라서 귀신은 더 많은 병균을 단위를 논여서 파송하거나[이럴 경우 재발(再發)이라고 부른다], 다른 부위(部位)로 옮겨서 병균을 파송한다. 그러니 그 병은 나았는데 다른 부분이 또 아플 수 있다.
성도들 가운데 병을 기도로 고칠 것인가, 병원에 가야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귀신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그런 것 때문에 망설이지 않는다. 즉 귀신은 쫓고, 귀신이 구축해 놓은 아성(牙城)[즉 환부(患部)]은 의사의 도움으로 파괴시켜버리면 된다. 이럴때 그 치료는 매우 빠르게 효과가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병(病)은 주님이 치료하시고 병의 잔재(殘滓)는 의사로 하여금 치워버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병원에 가지 않는다 할지라도 병의 원인인 귀신만 나갔다면 그가 만들어 놓은 체내(體內)의 아성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것들이 무너져 파괴될 때까지 몇시간 또는 며칠간을 믿음으로 지탱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8. 결론
마 8:16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자를 다 고치시니」, 이 장면은 예수께서 귀신쫓아 병고치셨음을 나타낸다. 이것과 동일한 장면을 누가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눅 4:40~41 「해질 적에 각색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여러 사람들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누가는 예수께서 귀신쫓아 병고치는 장면을 의사다운 객관적 관찰로 묘사했다. 즉 ①병든 자들이 왔는데 ② 귀신좇아 ③ 병고쳤다는 것은 공통이다.
그러나 마태는 귀신들린 자, 누가는 병든 자라 했다. 즉 병든자=귀신들린 자라는 말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이 절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병의 원인은 귀신이다. 성도들의 불신앙적 요소는 귀신들에게 인체(人體)에 들어올 수 있는 틈을 주어서, 귀신이 인체(人體)에 침투해 들어오면 모든 불신앙(不信仰)을 더욱 조장(助長)하고, 타인을 오해케 만들어 불신앙(不信仰)을 키우며 영혼과 육체 사이에 균열을 만들어 병(病)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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