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1987), 에프렘 짐발리스트(Efrem Zimbalist, 1889~1985) 등 20세기의 걸출한
바이올리니스트를 줄줄이 배출시킨 비에니아프스키. 그와 루빈슈타인 사이의 깊은 우정은 이렇게
계속되었고, 그것은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의 초연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비에니아프스키는 루빈스타인이 설립한 콘서바토리에서 1872년까지 재직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서유럽으로 연주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고 있던 시기였다.
그가 악화된 건강상태에도 불구하고 1878년 베를린에서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의 초연을
했던 날, 비에니아프스키는 갑자기 심장발작을 일으키는 바람에 연주도중 중단해야 했다.
객석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당대 독일의 명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아힘(Joseph Joachim,
1831~1907)은 객석에서 나와서, ‘나의 친구의 멋진 협주곡’을 끝까지 들을 수 없었음을
대신 사과하면서 즉석에서 바흐의 〈샤콘느〉를 연주했다. 이후 비에니아프스키는 대중들 앞에서
이 곡을 다시 연주할 수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사기를 당해서 가산을 탕진하기에 이른다.
죽음에 임박해서도 병원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 차이콥스키가 자신의 후원자에게
병원비용을 부탁해야 했을 정도였다.
2.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제1악장(알레그로 모데라토, 소나타 형식) :
비교적 긴 오케스트라 Introduction 에 이어서 독주 바이올린이 비로소 모습을 나타냅니다.
약간은 침울한 듯한 북구적인 정서가 돋보이는 악장. 관현악으로 중요한 테마를 조금 길게 제시한 후
독주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연주하는데, 제1주제와는 대조적으로 제2주제가 바이올린에 의해 나타난다.
그 후 여러 갈래로 발랄하게 전개되어 그의 격조 높은 시정의 표현을 나타내며 매력 있게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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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악장(안단테 논 트로포, 내림 나장조) :
널리 알려진 악장으로 너무나 아름다워 단독으로 연주되기도 한다. 처음에 독주 바이올린으로 흐르는 표정적인 선율은 전 악장에 이르는
기초적인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이 악장은 정열적이면서도 극히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독주 바이올린 선율의 아름다움이 특히 돋보이는 부분. 단독으로도 자주 연주되고 주제 선율도 인상적이다.
제3악장(알레그로 콘 푸오코→알레그로 모데라토, 론도 형식) :
집시풍으로 라는 지시어가 있는 격렬한 정열을 가진 집시풍의 장이다.
바이올린 독주가 반주없이 그 기능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카덴차가 나타나며 2박자의 춤곡과 함께 연주된다.
집시의 민속 무곡과 같은 힘차고 매우 정열적안 악장이다.
폴란드 출신인 그로서는 집시 계통의 음악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기회가 있었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점진적으로 분방하고 열정적인 음악으로 몰아간다.
기교적으로는 완숙함이 상당한 경지를 보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점진적으로 분방하고 열정적인 음악으로 몰아가는 악장..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비교적 긴 오케스트라 Introduction 에 이어서 독주 바이올린이 비로소 모습을 나타냅니다.
약간은 침울한 듯한 북구적인 정서가 돋보이는 악장.
2악장. 로망스 - 안단테 논 트로포
독주 바이올린 선율의 아름다움이 특히 돋보이는 부분.
단독으로도 자주 연주되고 주제 선율도 인상적이고요.
3악장. 알레그로 콘 푸오코 - 알레그로 모데라토
'집시풍으로' 라는 지시가 붙어 있습니다. 폴란드 출신인 그로서는 집시 계통의 음악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기회가 있었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교적으로는 완숙함이
상당한 경지를 보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점진적으로 분방하고 열정적인 음악으로 몰아가는 악장.
너무나도 유명한 2악장
1악장은 열정에 찬 주제가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1악장은 중간 휴지 없이 바로 2악장
로망스로 이어진다. 전체 곡에서도 가장 유명한 악장인 이 2악장은 노래하는 듯 서정적인
주제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 이 주제선율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한 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마지막 악장은 앞선 1악장과 2악장에 대해서 날카로운 대비를
이룬다. 차분하면서도 진중했던 앞서의 분위기를 단번에 즐거운 결말로 마무리하고 있다.
1851년에서 1853년까지 비에니아프스키는 러시아에 머무르고 있었다. 쇼팽의 피아노 음악으로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었던 요제프와 함께 그는 러시아의 이곳저곳에서 연주회를 열고 있었다.
작곡가가 직접 ‘장대한’(grand)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했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이 시기에 쓰였다.
비에니아프스키 형제는 이후 다시 러시아를 떠나 유럽 전역을 연주하는 비르투오소로 승승장구하였다.
라이프치히, 파리, 런던 등을 돌며 이들은 연주를 가졌고, 때로 19세기의 명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기도 했던 안톤 루빈슈타인이 비에니아프스키와 함께 연주를 가지기도 했다.
1860년 루빈슈타인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음악원을 설립하자 그는 비에니아프스키를 초대 바이올린 교수로 초대하고 비에니아프스키는 이를 계기로 12년간의 타지 생활을 접고 러시아에 돌아오게 된다.
비에니아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오케스트라의 제시부로 시작한다. 어두운 제1주제는 클라리넷에 의해 도입되고 이는 다시 보다 서정적인 제2주제로 이어진다. 이어서 등장하는 솔로의 패시지는 바이올리니스트의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한다. 1악장의 곳곳에는 바이올린의 드라마틱한 솔로 패시지와 트리플 스탑, 현란한 아르페지오 등 바이올린의 기교를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부분들이 포진해있다. 2악장 라르게토는 솔로 바이올린의 G현에서 시작하는 아름다운 ‘기도’(Preghiera)이다. 마지막 론도 악장은 주제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대비 뿐 아니라, 다양한 바이올린의 보잉 테크닉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