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을 나 말고 본 사람이 있을까?
옛날 서학동 집에서 식구들은 봤겠다.
참 오랜만에 꺼내 본다.
1987년 봄인가, 가을인가?
3교시가 첫 수업인 날 아침에 일찍 챙기고 보니, 통학차 올 때까지 한 시간쯤 남아있어서, 거울 보고 얼른 쓰사삭 그리고 학교에 갔지.
8절지 화판에 그렸는데, 오래 지나니 나무가 헐어 부서지길래, 종이로 싸서 깊이 넣어 놓았다.
고별전을 열며 이별을 앞둔 일터를 살피다가 잊고 있던 젊은 날 얼굴을 찾았다.
70• 80년대 초등(국민)학생들이 쓰던 화판을 추억해 보는 것도 재밌다.
스물하나, 스물둘 나이
그땐 무얼 그릴지, 어떻게 그릴지 많이 생각하면서도 아직 길을 몰랐다.
그리고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을 세 번이나 넘기면서 그림이 쌓인다.
그림을 꿈이라 했다.
바라는 것을 꿈꾸어 그려가는 것이다.
아직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둘로 갈려 싸우는 나라에 인권과 정의는 없다.
평화로운 통일과 정의롭고 인권을 보장하는 민주화, 그 꿈은 내 꿈이고 우리 꿈이다.
그런 그림• 꿈을 그려내는 것이 그림이다.
그땐 누가 ‘화가 畵家’냐고 물으면, ‘아니오, 이가 李家 요.’ 했다.
그림과 꿈을 지어내는, 그림을 만드는 사람, 그림쟁이 시절이었다.
`미술`을 `아름다운 술`로 풀었다.
술에 취하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술에 끌려 비틀거린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술, 미술에 취하면 삶이 온통 아름다워질 테니, 미술을 취하라고 외친 미술가 시절도 있었다.
옛말에 ‘아름’은 ‘나’다.
고로 아름다움은 나다움이고, 아름다운 술• 미술은 나를 찾는 기술이고, 나를 이루는 기술이다.
‘그리라, 그리하면 그리되리니’
그리는 대로 그리로 간다고, 그린만큼 누릴 거라고, 그리하고 싶으면 그렇게 그리라고 꾀었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고, 안 할 수는 있어도 못 할 것은 없다고.
그리고 싶으면 그리라고.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눈만 마주치면 말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알아차린 게 온 힘으로 말을 걸고 그림을 보여줘도 누구나 듣고 보고 싶은 것은 아니더라.
그래서 묻는 이에게 딱 그만큼만 대답하고, 궁금해하는 이에게 보여주자 마음먹었다.
1987년 그림 속 젊은 얼굴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얼 그릴지 아리송했는데, 미술은 그러하고 그림은 이러하다고 말 한마디 던질 수 있는 2024년 나는 그릴 것은 많으나 힘이 달린다.
물리로는 같은 60분이지만, 스무 살 적 한 시와 오늘 한 시는 다르다.
헛심!
힘을 허투루 쓰지 않아야 한다.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 자리를 잡으면, 스무 살 통학차를 기다리는 사이에 얼른 그린 얼굴처럼, 어느 틈을 타서 내 얼굴에 무엇이 담겨 있나 그려봐야겠다.
지난 7월 4일 목요일에 문을 연 `화목한 전시`는 오늘 7월 9일 두 번째 문을 엽니다.
* 화목한 전시.
-주마다 화• 목요일에 열림. (공휴일은 쉽니다) 10:00~18:00.
-전주시 완산구 경기전길 87 님바래기.
-010-9476-7011
** 고별전은 화목한 전시 때가 아닌 이른 아침이나 일 마친 밤에도 미리 약속하시면 서로 맞춘 때에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