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5회> 2003/05/04
9) 夫道 보통 말할 때, 대저 道라는 것은 한계가 있기 전에, 도란 무한하다. 형이상위지도의 세계이다. 言이란 무한 할 수 없다. 言이란 知에서 나오니까. 한정이 되어야 대상화를 해야 안다. 한정하면 자꾸 쪼개진다. 知는 화살과 방패가 계속 싸우는 뜻이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세상은 험악해 진다. 知란 분열의 근원이니까 자꾸 갈라진다. 예로 좌우가 갈라지고, 윤리 정의 지행이 갈라지고, 분변이 갈라지고 변명하게 된다. 경쟁하고 다투게 된다. 형이상의 세계(육합지외)에 대해서는 있다고 믿는 세계이지 따지는 세계가 아니다. 형이하의 세계는 성인이 말은 하긴 해도 좋다 나쁘다 하지는 않는다. 예로 공자의 춘추에서는 옛 왕들이 어떻게 세상을 다스렸는지를 평하고 있다. 말하기는 해도 나쁜 것은 자세하게 얘기하지는 않는다.(議而不辯) 교육상 안 좋으니까,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선악을 갈라놓아도 비판은 안 한다. 성인은 모든 사람을 품어서 바로 잡자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중인들은 서로 갈라서 다지고 죽이고 살리고 야단들이다. 서로 드러내고 난리다. 변론을 하는 자는 전부를 보지 못해서 그렇다. 대도불칭. 침묵이 금이다. 진짜 깨끗한 사람들은 자기가 깨끗하다고 그러지 않는다. 비는 빗자루 비이다. 비가 오고 나면 깨끗해진다. 자연은 깨끗하지만 깨끗하다고 안 한다. 진짜 용감한 사람은 남을 해치지 않는다. 따지면 도가 아니다.(道昭不道) 말도 따지면 말이 아니다. 사랑도 애착하면 사랑이 아니다. 이 다섯 가지는 원만하게 가야지 모가 나면 안 된다. 안다는 것은 모르는 데 가서 그쳐야 진짜 아는 것이다. 모름지기 즉 모름을 지켜야 한다.(반드시 必) 가온찍기다 진리를 깨달았다는 말이다. 누가 말못할 말을 알 수 있겠나.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자기 자신인데.. 말해야 하긴 하는데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가긴 가야 되는데 드러내기 어렵다. 자기만 알고 자기만 가야 할 길이 있다.(예수와 베드로) 자기에게는 언제나 비밀이 있다. 그렇게 알면 하늘의 집(天府)이다. 즉 하늘의 아들이다. 하늘 집이 되면 바다같고, 생명의 샘이 강같이 흐른다. 부어도 차지 않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이런 생명, 이런 세계가 어디서 오는 지 모르는데 이것을 정신의 세계이고 ?光(보광)이라고 하낟. 요새 말로 블랙홀이다. 숨은 빛, 우주도 무한 사람의 정신세계도 무한이니 무한을 가지고 사는 것이 참 좋다. 블랙홀에서도 우주가 자꾸 나와 확장되어 간다. 이 넓은 세계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사는 것이 진짜 사는 것이다.
10) 설결이 선생인 왕예에게 묻기를 “모든 사람이 옳다(보편타당)는 것을 아십니까?” 내가 어찌 알겠느냐! , 인식의 한계다. 知의 한계이다. 모른다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 아닌가? 안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은 아니다. 예로 사람이 습한데 자면 허리가 아프다고 하는 데 미꾸라지도 허리가 아프냐? 우리가 아는 것은 일부분이지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칸트의 말과 같이 物自體는 모른다. 나무에 올라가면 벌벌 떨리는데 원숭이도 그런가?
11) 설결 말하기를 子 선생님은 이해타산(이 세상)에 관심이 없는데, 성인들도 다 관심이 없습니까? 왕예 말하기를 성인(지인)은 신의 아들이다. 성인의 정신세계는 큰못이 불이 붙어도 안 뜨겁고 얼음이 얼어도 안 추운 것같이 번개가 치고 산이 무너지고 폭풍이 불어도 꼼짝 안 한다. 이런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이 우주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노는 사람과 같다. 死生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는데, 이해타산이야 하물며?
12) 구작자(瞿鵲子) 가 장오자(長梧子)에게 물었다. 성인은 이해타산에 관심도 없고, 구하지도 않고, 말 안 하는 것이 말하는 것이고, 말하는 것이 말 안 하는 것이다. 선생님의 말씀이 말도 안 되는 소리, 맹랑한 소리인 것 같지만 나는 그 말씀이 참 좋습니다. 석가도 49년 설법에 不說一字라고 하지 않았던가. 했다면 다 잔소리이지. 공자도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지 않으십니까? 자오자 말하기를 황제도 못 알아들을 소리인데 어찌 공자가 알겠는가? 너무 서둘지 말거라. 천천히 알게 될 것이다. 계란을 보고 닭이 울 것을 구하지 마라. 탄환을 보고 새를 구어 먹을 생각을 미리 하지 마라. 나도 이 말이 쓸데 없는 소리인지 알고 하지만 너도 그런 줄 알고 들어라. 해와 달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우주를 겨드랑이에 끼고?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고 혼돈 노자도 세밀하게 다지지 말고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통일지)속에 두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다. 세상 사람들은 분주하다. 만사는 정해져 있는데 이 들뜬 세상에 쓸데없이 분주하게 돌아다닌다.(萬事皆有定 浮世空自忙) 성인은 언제나 바보처럼 가만히 있다. 다만 參萬歲一成純 만고에 참여하여 하나의 순수함을 이루어간다. 만세 대신에 萬古, 萬苦라고 되어 있는 글(판본)도 있다. 苦 : 용광로 속에 들어가서 순금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라. * 一道出生死 一切無碍人(出화엄경) , 발분망식 낙이무우 부지노지장지, 먹는 것을 잊고 몰두해 보면 붕 더 올라온다. 과학은 3년쯤, 철학은 6년쯤, 종교는 12년쯤, 예술은 24년쯤 몰두하면 일가를 이룬다. 철학은 자기를 아는 것이고 종교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아는 것이다. 만세라고 할 때, 시간을 정해서 자기의 전공을 하나 붙잡아야 한다. 몰두해 들어가야 한다. 모든 만물이 다 그렇게 되려면 서로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나.
-2) 予 惡乎知 說生之非惑邪 .... 내가 어찌 알겠나. 사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미혹된 것인지, 내가 어찌 알겠나.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젊어서 부모를 잃고 고향에 돌아갈 줄 모르는 것임을, 산다는 것이 좋다고 야단치는 것, 이것이 꿈이 아닌가. 13) 사는 것이 꿈이 아닌가. 영원한 생명의 입장에 서야지 사는 것은 일시이다. 유영모 선생님은 ‘인생은 죽음으로부터’라고 늘 말씀하셨다. 엄마 배속의 캄캄함과 이 세상의 낮과 밤의 절반과 죽음의 광명편조의 세계이다. 우리는 꿈에 살고 있으면서도 꿈인 줄 모른다. 꿈속에서 또 꿈을 꾼다. 죽음을 覺이라고 한다. 살아서는 有情覺, 죽어서는 無情覺이다. 진짜 깨닫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이다. 깨달으면 이 세상은 허무한 것이다. 大覺 진짜 죽은 후에 이 세상이 꿈이었다는 것을 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깨달았다고 산다. 그것은 어린애 같이 아는 것이다.(竊竊然 知之) 나는 임금이고 너는 목동이라고 야단친다. 공자야 너와 내가 살아있는 것이다 꿈이다. 꿈인 줄 알고 살자. 내가 너에게 꿈이라고 하는 말조차도 꿈이다. 이 말이 큰 궤변처럼 들릴 것이다. 만세지후에 큰 성인을 만나서 알면 이것이 참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그런 말을 네가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다.
-3,14) 若너 약, 네가 나를 이기면 네가 과연 옳은 것인가, 내가 너를 이기면 내가 과연 옳은 것인가. 나하고 너하고 서로 알 수가 없다. 그럼 우린 누구에게 판단해 달라고 하나. 어떻게 바로 잡아야 되나. 재판관이 어느 한 쪽을 동조하여 네가 옳다고 하던, 내가 옳다고 말하면 과연 그것이 제대로 판단된 것인가. 사람은 다 부족한 존재 아닌가? 그런즉 나, 너, 재판관이나 서로 모르기는 일반이다. 또 누구를 기다려야 하나. 결국은 天倪, 그리스도를 찾아갈 수밖에 없지 않나. 이다, 아니다, 그렇다, 안 그렇다. 是가 是라면 ... 시비의 상대이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인 것으로는 안 되고 절대까지 가야 문제가 해결된다. 자연의 법칙에 일치해야 끝이 난다. 생사를 잊어먹고 시비를 초월하여 절대세계로 떨쳐 올라가서 살면 해결 안 되는 문제가 없다. * 상대는 절대로 해결해야 한다.
<장자6회> 2003/05/11
15) 罔兩이 그림자(景 = 影)에게 물었다. 당신이 가다가 멎었다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데 어째서 그렇게 합니까? 지조가 없습니까? 그림자가 하는 말이 나도 기다림이 있다. 주인이 시키는 데로 하는 것뿐이다. 내 주인도 또 주인이 있다. 내 맘대로 못 한다. 나는 뱀의 비늘과 같고 매미의 날개와 같다. 어찌 내가 그럴지 안 그럴지를 알겠나. 모든 만물에게는 주인이 있다. 인간 - 그리스도 - 하나님이 진짜 주인이다. 제물론 전체가 주인에 대한 얘기이다. 천뢰, 진재, 진준, 도추, 천균, 천부, 대각, 천예, 일성순 모두 결국은 주인의 이름이다. 오케스트라의 주인은 지휘자이고 주인이 있어야 무엇이 된다. 결국 말하려는 것은 평등이다. 모든 악기가 값도 다르고 모양도 소리도 가치도 다르지만, 지휘자가 나서면 모든 악기는 다 똑 같아진다. 어느 것 하나 빠지면 음악이 안 된다. 지휘자가 서면 똑같은 가치를 갖게 된다. 각각의 악기가 오케스트라가 되려면 지휘자가 중요하다. *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 - 무상 정편지, 평등각. 무엇을 깨달았나? 평등을 깨달았다. 아뇩다라는 無上이라는 뜻이고, 삼막은 正等, 삼보리 正覺.... 석가는 깨달은 후 인도의 계급을 타파하였다. 무상, 최고 절대자 앞에 섰을 때 평등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뇩다라(절대자)가 없으면 평등이 아니다. 실로 꿰는 것이 아뇩다라이다. 가온찍기 하늘과 당을 태극점으로 딱 찍어야 천지동근이 된다. 하나님이 있어야 모든 만물이 평등이다. 결론은 ‘아뇩다라’ 라는 주인이 있어야 일체가 평등이다. * ‘아뇩다라’의 모습을 제법공상(諸法空相)으로 표현한다. 불생불멸(천뢰, 도추) 부증불감(천부) 불구부정(일성순)으로 제법공상을 설명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최고의 주인이 ‘아뇩다라’이다. 평등을 있게 하는 것이 주인이다. 로마의 경우는 만인은 법 앞에 평등이다. 이것이 제물론 전체의 결론이다.
16) 옛날에 장주가 꿈을 꾸었는데 나비가 되었다. ??然(허허연) 기쁜 듯이, 훨훨 날아다녔다. 자유를 상징. 내가 즐겁게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며 기분 좋게 나비인 줄만 알고 사람인 줄은 몰랐다. 그러다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틀 꿈틀하는 장주이더라... 사람의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의 꿈에 사람이 된 것인가? 말씀이 육신이 됐나? 육신이 말씀이 된 것인가? 사람과 나비는 다른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나비도, 사람도 됐다(物化) 하는가? 모르겠다. 이것이 소요유와 제물론의 공통된 결론이다. 성리학은 화엄경에서 나왔다. 一而二, (한 사람이 꿈도 꾸고 깨기도 하고..), 이발기발, 이사무애법계, 정치, 자유, 심무사. 二而一, (장주와 나비가 하나다. ), 기발이승, 사사무애법계, 경제, 평등, 사무심. * 理事가 理氣로 바뀌었다. 성리학이다. 화엄경에서 법계를 이사법계와 사사무애법계로 나눈다. 대통령과 백성의 관계, 정치 얘기하자는 것이 이사법계이고, 백성끼리 경제 얘기를 하자는 것이 사사무애법계이다. 사사무애법계는 이상세계요 복지국가라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일해서 다 먹을 수 있다. 事無心, 일은 걱정 안 한다. 직장은 걱정 안 한다. 영국은 직장있는 사람만 대학에 들어온다. 心無事, 생각하는 데는 걸림이 없어야 한다. 자기 발전하는 것은 자유다. 자유주의다. 다 밥을 먹을 수 있다. 평등이다. 사회주의이다. 민주사회주의다.(공산주의, 독재주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퇴계는 이발기발을 주장, 理를 씨앗으로 氣를 나무로 보았다. 봄여름, 율곡은 기발이승을 주장, 나무에서 열매가 맺으면 가을, 겨울이다. 조선말 정다산은 몇 백년을 이론적 논쟁을 벌여 왔던 이 문제를 결국 같은 말이다. 계절에는 봄가을이 다 있어야지, 나는 가을이 좋다. 나는 봄이 좋다 그러면 곤란하지 않는가? 퇴계는 종교적이니까 유교, 율곡 율곡은 과거시험을 9번 장원급제하였는데, 마지막 답안지가 天道策에 대한 답이었다. 천도란 오늘날 천문학이다. 은 과학자이니까 유학, 유도는 도덕과 철학을 강조한 말이다. 과학의 목적은 종교이고 종교의 수단은 과학이다. 칸트는 이것을 종합하였다. 종교는 관념론, 과학은 경험론, 귀납법(二而一) 對 연역법(一而二) 이다. 이 두 가지가 다 있어야 산다. 하나님과 자연이 다 있어야지...(성리학의 과학과 종교)
理는 一 태극이고 氣는 음양이다. 태양은 하나인데 계절은 두 계절이다. (설명) 퇴계는 봄의 철학(종교)이고, 율곡은 가을의 철학이다. 이발기발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다와 같은 말이다. 퇴계는 종교적인 사람이다. 유교 유학 유도(도덕 철학이다). 과학과 종교를 통일시켜주는 것이 철학이다.
一而二 : 부자유친 자유. 一而二 : 부부유별 평등, 가정 도덕이나 국가의 도덕이나 이 두 가지가 정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들이 마음껏 발전해서 날아가라. 너무 날아가지만 말고 돌아오기는 해라. 이것이 유친이다. 이것이 孝이다. 부부는 너무 하나가 되면 정신이 없어지니까 어느 정도 떨어져라 유별이다. 가까이 하는 것이 자연이니까, 자연을 극복해야 인간이다. 멀리하려는 성질과 가까이 하려는 성질을 극복해야 한다. 동양의 도덕은 부자유친이 강하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고생하다가 죽는 것뿐이다. 서양도덕은 부부뿐이다. 자꾸 가까워지니까 싫증이 나서 이혼을 자꾸 한다. 서양은 부부중심인데 장단점이 있고, 동양은 부자중심인데 여기도 장단점은 있다. 서양은 음란에 빠져 결국 싸우고 전쟁을 하고, 동양은 자식을 나서 자꾸 나눠주니까 가난이 문제이다. 서양은 밤낮 싸우고 동양은 결국 가난해지고 만다. 그래서 동서양을 종합해야 한다. 서양은 과학적이고 동양은 종교적이다. 이 둘이 합쳐가야 한다. 반야심경의 공즉시색과 색즉시공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장자7회> 2003/05/18
p. ?丁, 백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는다. 손이 닿고 어깨가 들썩이고 발을 디디고 무름을 구부리고 하는 품이 춤을 추듯이 하는데 탕의 桑林之舞와 요의 經首之會 중국사람이 가장 알아주는 음악과 무용이다. 와 하나가 된 손놀림이었다. 어느 것 하나도 음악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것을 보고 있던 문혜군이 아 멋지다. 기술이 어떻게 이런 수준이 될 수 있나? 백정이 칼을 놓으며 대답하여 말하기를 ‘제가 소를 잡는 방법은 道입니다.’ 이것은 기술이 아닙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에는 밤낮 소만 생각하였습니다. (보이는 것은 소뿐이었습니다.) 3년이 지나서야 소를 전체적으로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초능력으로 보는 것이지 눈으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화엄경에 지통 - 도통- 신통) 오관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초능력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神通妙用입니다. 사람의 이치가 아니라 天理에 의지해서 소를 잡는 것이다. ?(각) 힘줄과 힘줄 사이를 누비고 뼈 사이를 누비고 틈 사이로 칼을 움직인다. 힘줄이 모인 곳을 칼이 지나 가는 법이 없다. 하물며 뼈를 다치겠는가? 소 잘 잡는 백정은 해마다 칼을 바꾼다. 칼날이 무디어지기 때문이다. 보통 백정은 매달 칼을 바꾼다. 칼날이 뼈에 닿아 부러지기 때문이다. 저의 칼은 19년을 써서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숫돌에다 방금 간 칼날 같습니다. 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은 두께가 없으니 두께가 없는 칼날로 틈이 있는 힘줄사이를 누비고 다니게 하니 칼날이 획획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힘줄이 뭉친 곳을 만나면 소신도 어려움을 느낍니다. 해서 조심조심 시선을 정지하고 손놀림을 천천히 합니다. 그러면 툭하고 힘줄이 풀립니다. 흙이 무너지듯 해결이 됩니다. 그러면 칼을 들고 일어서서 사방을 돌아보고 주저주저 하면서 마음에 흡족해 하고 칼을 닦고 칼집 속에 집어넣습니다. 문혜군이 참 잘한다. 나는 네 말을 듣고서 양생법을 얻었다. 정치하는 법을 깨달았다. * 철인이 정치를 하든지, 왕에게 철학을 가르치든지 ; 여기서는 철인이 정치를 하는 모습이다. 백정에 비유하여 천리에 따라 정치를 해 가면 이상정치가 된다는 말이다. 칼날은 천리이고, 백정은 철인이다. 3) 노담이 죽었다. 노자의 친구였던 秦失이 조문을 갔다. 세 번 곡 만하고 나왔다. 제자왈 선생님은 노자의 친구가 아니었습니까? 조문을 그렇게 간단하게 하여도 괜찮습니까? 왈 괜찮다. 나는 처음엔 노자가 큰 인물인줄 알았다. 이제 가서 보니 아니더라. 조문을 가서 보니, 노인들이 자기 아들이 죽은 것 같이 곡을 하더라, 젊은이들은 자기 어머니가 죽은 것 같이 통곡을 하더라, 이 것을 볼 때 노자는 나쁜 놈이다. 그 놈이 이럴 줄 다 알았을 것이다. 나 죽으면 곡을 해달라고 말은 안 했겠지만, 無言 중에 곡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이치에서 도망가는 것이고, 하늘의 정서를 배반하는 것이다. 천리에 어긋난다. 우리의 생명을 하늘로부터 받았다는 것을 잊어먹었다. 옛날 같으면 천리를 배척했다고 큰 형벌을 받을 놈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때가 되어서 오는 것이고, 가는 것도 때가 되어서 가는 것뿐이다. 세상에 태어나는 이유와 떠나는 이유를 알고 대해야지, 무조건 슬프다거나 즐겁다거나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천리를 따를 뿐이다. 죽는 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해방시켜주시는 것이다.(縣解)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과 같다. 세상에 왔다가 할 일을 다 하고 이데아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마치 손가락으로 장작을 떠밀어 아궁이 속으로 집어넣어 계속 불붙게 만드는 것과 같다. 불이 꺼지지 않도록... 불은 영체이고 장작은 육체이다. 몸이 육체에서 영체로 바뀌는 것뿐이다.
<주석> 육체를 어떻게 길러가나 상처를 내면 안 된다.(勿傷) 정치와 경제는 백성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 정신을 길러 가려면 어떻게 하나, 無爲이다. 무위지치이다. 이것의 표본은 요임금에서 비롯된다. 중국사람들은 가장 이상적인 철인 왕을 요라고 생각한다. 요임금의 정치가 무위지치이다. 爲라는 글자는 손톱 爪 와 어미 원숭이를 합친 말인데, 늙은 원숭이인 백성을 젊은 원숭이인 정부가 빡빡 긁어 착취를 하는 것이다. 정부가 백성을 위해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for the people, 사회복지 국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을 져 준다. 요의 격양가. 太上왈 不知有之. (대통령이 있는 줄 모르는 것이 최고의 정치이다.) 스위스의 例, 장관들이 돌아가면서 대통령의 직을 맡는다. 그러니 누가 대통령인지 알 수가 없다. 철인정치, 왕도정치라고 한다. 요는 백성들이 12년 먹을 양식을 비축하였고, 문 왕은 6년 먹을 양식을, 공자는 자기에게 정치를 맡기면, 3년 먹을 양식을 비축하겠다고 하였다. (미국은 10년 먹을 양식을 비축하고 있다고 한다.) 요-순-우가 전하고 전해 받았다는 윤집궐중의 내용은 백성의 정신을 일깨우는 정치가 이상정치라는 것이다. 공자는 이것을 중용으로 바꾸어 표현하였다. 먹을 것을 12년 비축하여 먹을 것 걱정을 없애고, 모든 국민의 정신을 깨워서 스스로 자치할 수 있게 해준다. 화엄경의 보살도와 비슷하다.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을 때까지 자기는 부처가 안 되겠다. 온 국민이 기와집을 짓고 살 수 있을 때라야 나도 집을 짓겠다. * 어미 닭이 계란을 품고 (時順) 병아리가 깨는 것이 아닌가? 어미는 무위이고 계란은 자연이고 나오는 것은 覺이다. 모든 국민을 깨우려면 왕이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 (군자 남면사상이다.) * 구체적으로 얘기를 만든 것이 혜가 단비이다. 달마가 9년을 면벽하고 있었다. 혜가라는 달걀이 9년 동안을 달마를 찾아 다녔다. 나중에 닥 만나서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려도 하는데 문을 안 열어준다.(상신실명이다) 칼로 팔을 자르고 주겠다 하니, 팔 떨어지는 소리에 선생이 문을 열고 너 왜 그러니? 하니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그래 그러면 불안한 네 마음을 가져와 봐라. 아무리 찾아도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너에게 안심을 주노라. 강의 끝.. 했다는 것이다 慧可斷臂, 心不安 將心來 覓心不求 安心竟. . 慧可斷臂 心不安 將心來 覓心不求 安心竟.. 이런 것을 ??之機(줄탁지기, 一機)라고 한다. 어미 닭은 밖에서 계란은 안에서 쪼아 覺이 나오는 것이다.
육체라는 것은 사람의 생명이 의지하고 사는 것이다. 정신은 생명의 주인이다. 허무지도(虛無之道) 虛는 사랑이고, 無는 지혜이다. 즉 philosophia. 철학이란 말이다. 성리학이 되면 虛靈知覺이라고 한다. 허란 비우다 없다라는 말이 아니고 사랑과 지혜라는 말이다. 철학을 가지고 우리의 정신을 깨우치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육체는 건강하게 할 줄 알면서 정신은 건강하게 기를 줄을 모른다. 방법은 무위자연밖에 없다. 참선과 같다. 화두라는 계란 문제를 품고 어미 닭이 앉아있는 것이다. 불교의 참선은 노장에서 나왔다. 육체를 건강하게 한다고 많이 먹으면 육체가 비만해져 망가진다. 도를 가지고 정신을 기르려는 사람은 以虛待物이다. 자신을 비우고 백성을 대해야 한다. 즉 사랑을 가지고 모든 백성을 대해 줘야 한다. 소잡는 얘기는 백성을 대하는 방법을, 정치하는 방법을 비유한 것이다. 칼날은 천리이니 우리의 정신도 아무리 오래 사용하여도 없어지지 않는다. 진리이니까. 정신을 키우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정신을 깨우쳐서 천리 자체가 되어야 한다. 진리는 알아도 아는 척하지 하지 말아야 하고 옛날에 숨어살던 사람은 구멍가게를 하며 숨어서 백성을 맞이하였다. 결국 철학의 핵심은 허정위선(虛靜爲先) 이다. 마음을 비우고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맘을 텅 비우지 않으면 정신을 온전하게 할 수 없다. 깊이 생각 안 하면 자신의 사면을 깨달을 수 없다. (性全命復) 인격, 소질을 완성해서 자기의 사명을 다해 가는 것이다. 즉 의사가 되어서 환자를 잘 돌보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물건에 욕심을 내서 쫓아 가다가 정신을 잃고 만다. 일에 너무 정신을 쏟다보니 천리에 어긋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인생이 제대로 되겠는가! 참인 하나님을, 이치인 그리스도를 떠나서 살면 되겠나. 死者는 다른 사람에게 죽음으로서 왜 태어났다 죽는 지를 보여줘야 한다. 사명을 완수하고 인생을 끝내면, 遯形이라 육체를 떠나서 영체가 되어 하늘나라로 날아갈 것이다. 이것을 이 세상에서 해탈이라고 한다. 장작이 다 타면 도 장작을 넣어야 불이 영원한 것이다. 養形의 이치를 다 하는 사람은 神全不喪이라 유의 세계에서 나와 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정신이 온전해져서 잃을 것이 없다. 어디를 간들 바르지 않음이 없다. 중국인의 낙관주의를 보여준다. 황제도 죽어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지 않느냐. 소크라테스도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겠나! 노자왈 죽어도 죽지 않는 자가 오래 사는 것이다. 죽은 후 망하지 않는 사람이 영원한 생명이다. 죽은 후에 더 잘 사는 사람이 오래 사는 사람이다. 인생은 꿈이고 죽음은 깸이다. 유정각과 무정각의 차이이다. 석가 35세에 유정각을 했다면, 80세에 죽음으로서 무정각, 대각을 이루었다. 그러하니 죽음에 대해 별로 걱정할 것이 없다. 가온찍기, 햇빛은 내려오고 물은 올라가고 수승화강이 영원한 생명이다. 如去如來이다. 직선의 시간 관을 원의 시간 관으로 바꾸면 된다. 태어났다 죽는 것이 아니라, 물-수증기- 구름- 비로 돌아가는 원의 순환의 시간 관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붙잡아야, 아버지께로부터 와서 아버지께로 돌아간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장자8회> 2003/05/25
인간세 : 주석해석, 出世 養生이란 출세하여 백성들을 길러주고 사려주는 것이 왕이며 세상의 주인이다. 住世人間이란 세속에 파묻혀 도를 닦는 사람들을 주세라고 한다. 한마디로 內聖外王이란 말이다. 철인왕인데 왕이 철학을 배우든지, 철인이 왕이 되든지, 세상이 자꾸 복잡해지면서 힘이 있는 사람이 권력을 잡게 되고, 선생을 찾게 되고 한다. <이성계와 무학대사> 이성계는 중량천에 도읍하고자 하고 무학은 왕십리 인왕산 밑에 도읍을 하라고 조언함. 이성계는 왕이고 무학은 성인, 철인이다. 복잡한 시대는 힘있는 왕이 나오고 이 왕을 가르치는 선생이 나와야 한다. * 양생주 : 외왕, 住世 : 내성.
<주석> 이 편의 뜻이 무엇인가? 外應世에 있는 것이 아니라, 內全眞, 시골에 숨어서 참을 온전히 하는 데 있다. 진리를 떠나지 말아야 모든 만물을 살릴 수 있다. 옛날의 성현들은 할 수 없어서, 부득이 해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찾아와서 자꾸 도와 달라고 하니, 제갈량, 강태공 등이 할 수 없어 나온 사람들이다. 나와서 성공하면 세속의 칭찬(상)을 받고 실패하면 박해를 받고 속죄양이 되고 만다. 제갈량은 뻔히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전쟁에 나가 싸우다 죽었다. 이들은 죽든지 살든지 도의 존엄성 때문에 생명을 바치는 것이다. (道, 진리가 문제다.)
* 그래서 공자의 顔回와 문답도 이것을 밝히는 글이다. , 接與의 노래도 세상에 나가서 다스리는 것을 뿌리치고 시골에 머물러 사람들이 재물에 급급하여 죄악세상을 싫어 할 줄 모르고 사는 것을 깨우쳐 주려는 것뿐이다..(結以 山木膏火桂漆之患)결론은 산의 나무나 등잔의 심지나 계수나무나 옻나무는 자기 자신 때문에 자꾸 죽게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조심조심하라.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공자도 인생을 한마디로 어려울 難이라고 하였다. 어려운 줄을 알고 살면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노자도 성인은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어려움이 없다. *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이 군신관계이다.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자관계가 중요하다.) 그것을 완성해야 한다. 장자는 국가와 집을 중요시하였다. 이점에서 장자는 노자와 공자를 아울러 계승 발전시킨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유가에서 불교와 노장을 배척하는 이유가 이들 모두 국가와 가정을 배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조의 배불정책도 여기에 기인하여 중은 성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였다. 출가와 출국으로 나라와 가정을 무시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론이다. 나라를 위해서 공직에 나갈 때에는 역사를 참고해 보아서 부끄럼이 없이 처신을 해야 한다. 후회 없이 아낌없이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한다. * 안자의 將之衛(위나라 가는) 얘기는 공자가 임금 섬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세밀히 설명하고 있다.(備言) 어진 사람들은 벼슬하려고 야단치지 않는다. 다만 진리를 깨달으려고 애쓸 뿐이다. 깨닫고 나면 위아래가 저절로 좋아지게 만든다.(위정자나 백성이나) 안회가 몸을 단정히 하고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쓰면 됩니까? 그러면 겨우 화를 면할 수 있지만 큰 일은 못한다. 백성을 변화시키려면 불언이신 말을 안 해도 믿을 만 해야 한다. 즉 큰 선생이 되어야 한다. 벽암록에 석가가 강의를 하려고 강단에 서니 사회를 보던 문수가 선생님 강의는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큰 선생이 되어야 사람들로 하여금 나쁜 생각을 없어지게 만들어 감화되게 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됩니까? 하니 齋라,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 된다. 산상수훈, 팔복의 하나ㅇl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마음을 비우고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 들여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지 말고 氣로 들어라. 마음이 비워지면 육신을 잊고 그래야 다른 사람을 감화시킬 수가 있다. * 子高 顔闔의 이야기 : 나쁜 폭군을 호랑이에 비유하고 성나 말을 길들이는 데 비유하고 있다. 밖에 있는 물건을 다스리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곡원(曲轅) 마을에 쓸모없이 큰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쓸모가 없어 자기 힘으로 오래 살았다.(無保爲保) 상구 불신이신? 이름이 헛되게 나면 질투를 받아 쓸데없이 해를 입는다. 이익을 쫓아가면 화가 미치게 된다.세상에 나가서는 백성을 살려내고, 들어와서는 도를 닦는다. 노자가 말하기를 옛 도를 붙잡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라.
* 인생은 허무한 것이지만 인격은 존엄한 것이다. <본문>
인간세 첫머리에 안회와 공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안회가 공자를 만나 나들이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어디로 가려느냐?" "위(衛)로 가고자 합니다." "무슨 까닭이라도 있느냐?"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위국의 군주는 그 나이가 젊은데다가 단독적인 행동을 많이 하고 경솔히 백성들을 부리는데 그러면서도 자기의 과오를 자인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경솔히 백성을 부리는지라 죽는 사람까지 속출하여 시체가 온 나라 안에 가득하고 진펄의 풀숲까지 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어쩔 바를 모르는 형편입니다. 저는 예전에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잘 다스려진 나라를 떠나 어지러운 나라로 가야한다. 의사가 자기 집에 모여오는 환자들을 치료하듯이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선생님에게 배운 바를 기초로 하여 그 현실을 구제할 방법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마 그 나라의 폐단도 바로 잡아질 것입니다." ?만일 그런 태도로 위나라에 간다면 너는 아마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대체 도란 순수한 것이어서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복잡하면 다방면에 걸치고 다방면에 걸치면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마음이 어지러워지면 조심을 지니게 된다. 자기에게 조심이 있는 자가 어찌 남을 구할 수 있으랴. 옛날의 성인은 먼저 자기를 확립하고 남을 확립시켰다. 자기도 채 되지 않은 사람이 폭군의 소행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할 수가 있겠느냐. 덕은 명예욕에 의해 무너지고 지혜는 다툼 속에서 생겨난다. 명예욕은 사람들이 서로 남을 해치는 근본이 되면 지혜는 다투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명예와 지혜는 다같이 흉기인 것이니 그것이 사람을 되의 경지로 이끌어 가는 것은 아니다. 또 아무리 덕이 높고 성의가 흔들림이 없다 해도 아직 상대의 마음가짐을 알지도 못하는 터이며 아무리 명성을 다투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해도 아직 상대의 마음가짐도 충분히 이해 못하는 주제에 갑자기 인이니 의니 행위의 규범이니 하는 딱딱한 말을 폭군 앞에 떠드는 자는 남의 악행을 기회로 하여 자기의 좋은 점을 과시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자를 남을 불행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남을 불행하게 하는 사람은 반드시 남에게서 불행의 보복을 받게 마련이다. 너도 아마 남에게서 불행을 받으리라. 더욱이 위나라의 임금이 현인을 좋아하고 불초를 미워한다면 어찌 너 같은 사람을 채용해서 새로움을 구할 필요가 있겠느냐. 너는 위나라에 가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무엇인가를 말한다면 왕은 반드시 그 말꼬리를 잡아 도전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의 눈은 아찔해지고 네 안색은 태연을 가장하려 하여 누르락푸르락하며 입에서는 마음에도 없는 말이 나오게 되며 태도는 비굴해지고 마음마저도 그를 따라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불로 불을 그려하고 물로 물을 막으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을 세상에서는 한술 더 뜬다고 말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상대를 따라 가면 나중에는 어디까지나 양보 안하고 ! ! 있어야 할 것이다. 반대로 네가 신용도 못 얻고 있는 주제에 군주를 간한다면 반드시 폭군의 손에 쓰러져야 할 것이다.” "태도를 단정히 하고 마음에 잡념을 품지 않으며 항상 노력하여 순일하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아, 그 정도로는 안 된다. 너는 겉으로 보기에는 덕이 충만해 있는 것 같으나 안색 하나를 보아도 조금도 안정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저는 속이 곧되 겉은 완곡하게 행동하고 무슨 의견을 진술해야 할 경우에는 옛사람의 말을 빌리기로 하겠습니다." " 아 그것으로 어찌 좋다 하랴. 너무 잔재주를 많이 부려서 번거롭구나. 비록 벌은 안 받으려니와 그러나 그것에 그치고 만다. 어찌 상대에게 감화를 미칠 수 있겠느냐. 너는 아직도 자기의 분별심에 너무 많이 얽매여 있다." "제게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네 정신을 통일하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마음으로도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 귀는 소리를 들을 뿐이며 마음은 사물을 상대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기는 공허한 것이면서도 일체의 사물을 포용한다. 도는 이 공허한 상태에만 깃든다."
이 공허한 상태를 심재(心齋)라 이른다. 마음의 재계란 정신을 통일하여 잡념을 없이 하는 것이다. 귀나 의식 같은 감각이나 지각으로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기 즉 우주적 직관으로 파악할 뿐이다. 귀는 감각적 판단이요 의식은 지각의 주체다. 감각과 지각은 형상에 붙잡히고 주관으로서의 한계를 가진다. 그러나 기 즉 우주적 직관은 그 자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천변만화하는 일체현상를 마음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다. 우주적 직관만이 사물의 본질을 바로 파악할 수가 있다. 마음의 재계란 내 지성을 우주적 직관까지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리하여 내 지성을 허령지각이 되게 한다. 일체 인위적인 것을 내버리고 인간의 지성을 한없이 높이 끌어올려 인간의 허(虛)와 우주의 허가 하나가 될 때 인간은 귀나 마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로 보는 것이다. 허란 아무도 없단 말이 아?! 求? 자기 의지를 우주적 예지까지 끌어올리는 일이다. 자기 의지가 우주적인 지와 하나가 될 때 그제서야 인간은 아무것에도 붙잡히지 않는 자유무애의 삶을 이룩할 수 있다.
장자는 심재를 처세의 유일한 술법으로 내놓는다. 세속을 한번 떠나지 않으면 세상을 처리할 수 있는 참다운 지혜가 얻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장자는 허실생백(虛室生白) 길상지지(吉祥止止)란 유명한 말을 내 놓는다. 마음은 비어야 지혜는 생기고 분수를 지켜야 행복이 넘친다. 자기의 주관과 인간적 분별을 떠나 무심히 사물과 대할 수 있는 것이다. 장자의 처세는 사실 처세가 아니라 구세(救世)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역시 자유를 얻은 길은 우주적 직관을 할 수 있는 지혜뿐이다. 떠오르는 햇빛에 만물이 소생하는 듯하다.
<장자9회> 2003/06/01 작은 물고기가 큰 새가 되었다.(자유) 제물 천리 오케스트라 (평등) 양생주 백정이 소잡는 얘기 (철인이 어떻게 정치하는 가? 外王) 인간세, 心齋는 곧 內聖이다. 날개 있어 나는 새는 소승이고 날개 없이 나는 새는 대승이다 큰 스승이다. 큰 선생님은 지인, 신인, 성인이다. 자기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날개없이 나는 것이 무기, 무공, 무명이다. 자기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소승이고, 하나님의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대승이다.
& 유교의 배불, 排老의 원인은, 불교는 출가요 도교는 출국이기 때문이다. 노자가 소를 타고 출국하였다. 그런데 노자의 사상을 계승하였다는 장자를 실제로 읽어보면, 장자의 사상은 안 그렇다. 이상국가를 어떻게 하면 가능한가를 필설을 다하여 논한 것이 장자의 전체 내용이다. * 葉公子高가 제나라의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 폭군을 호랑이에 비유하여 호랑이를 길들이듯 하면 되지 않겠나. 호랑이의 약점을 알고 다스리면 좋다. 소의 약점은 코이고 투기의 약점은 귀이고 고양이의 약점은 목덜미이고, 개의 약점은 허리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見性이다. 그러면 호랑이를 타고 갈 수 도 있다. 그러면 개를 만난 것 보다 호랑이를 만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호랑이의 성질을 잘 알고 다루면 잘 활용할 수 도 있다. 그런데 또 너무 애지중지하는 것은 오히려 화근이 되기도 한다. 즉 잘해주다가 화를 입을 수도 있다. *4 匠石 목수가 散木을 만났다. 無用之用이라서 오래 사는 것이다. *7 공자가 초나라에 가서 거짓 미치광이 접여를 만났다. % 세조와 원각사(원각경과 참회),그리고 김시습. 迷陽 거짓에 미혹되어...
양생주는 외왕이란 말이고 인간세는 내성이란 말이다. 철인은 외왕도 될 수 있고, 내성도 될 수 있다. * 인간세의 핵심은 나가서 출세하여 장관노릇 하려 말고 숨어서 큰 나무, 천년 가는 선생이 되라. 이것이 불교의 대승사상과 통한다.
<덕충부 德充符>
그러면 철인은 어떻게 철인이 되나? 허무를 진공으로 1) 노나라에 다리 잘린 올자 왕태가 있었다. 핵심은 모순(생사)이 없었으면 인류의 문명도 없을 것이다. 생은 사를 싫어하고, 사는 생을 싫어하고 상호 배타적인 것을 모순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모순의 원리가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이런 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모순(사생)이다. 이 모순대문에 인간이 괴로워하고 많은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다. 데카르트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있다.) 할 때, 나를 있게 해주는 것이 생각인데 이 때의 생각은 의심하는 생각이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나는 있다. 자꾸 회의가 나오는 것이다. 믿음 전의 회의이다. 믿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믿을 수가 없다. 참 믿음이 없다. 목사들도 죽을 지경이다. 남을 보고는 믿으라고 하는데 자기는 안 믿어지는 것이다. 바울의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다 라는 고백이 나온다. 자기 속의 無를 어떻게 깨우쳐 그것이 허무가 아니라 진공으로 만들어야 묘유가 되는 것이다. 진공묘유가 될 때 허무주의는 사라지고 실존주의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을 바꾸기 위해 한없이 노력하도록 만드는 것, 즉 원동력이 사생이고 그것을 모순이라고 하는 것이다. * 덕을 채워가는 원동력이 死生이다. 데카르트의 의심하는 것이다. 자기 속의 거짓을 깨닫고 참으로 충만하도록 노력하는 과정이 一道出生死이다. 자기 속의 모순(사생)을 느끼게 되어야 발전이 있게 된다. * 사생, 모순이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핵심이다. 이 모순을 극복하기만 하면 이 세상의 모든 변화가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으며, 천지가 무너져도 나를 어떻게 못한다. 나는 一切無碍人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 참 좋은 것이 되고 만다. 모순을 통일하는 것. 문제란? 生死, 생노병사, 108번뇌, 팔만사천문제.... 다 나를 살리는 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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