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에도 결국 그렇게 되었다. 외손주 봐주러 다니랴 딸네 반찬 만들어주랴 종자골 텃밭 가꾸랴 아르헨티나 언니네가 오셔서 함께 여행 다니랴 쉴 틈 없이 종종걸음을 치며 다녔다. 아니나다를까.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목이 건조해지고 콜록거렸다. 심하지는 않아서 감기약을 먹으면 쉬이 괜찮아질거라는 안이한 생각이 화근이었을까. 조금 나아지는가 싶다가는 열이 나고 조금 나아지는가 싶다가는 기침이 났다. 감기는 끈질기게 한 달 반이 넘게 지속되었다. 친구들과의 백두산 여행도 불참하였다. 몸이 부실해지니 마음도 부실해졌다. 전화도 카톡도 만남도 귀찮아졌다.
그런 시간은 지속시키면 안된다. 마음의 병으로 전이되기 마련. 자꾸 눕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종자골 텃밭으로 향했다. 의욕이 없고 기운이 없을 때 혹은 아플 때 비지땀을 흘려 몸을 부리면 기분 전환이 되고는 했다. 마침 꽃밭에는 4월에 뿌려두었던 백일홍 모종이 제법 자라 있었다. 비가 간간이 내리니 솎아내야 하고 다른 곳에 옮겨 심을 적기였다. 백일홍꽃들이 긴 꽃밭 가득 만발해 앞뜰이 신천지 같았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욕구가 솟구쳤다.
백일홍을 솎아냈다. 텃밭 울타리 안쪽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모종을 정성껏 심었다. 죽어가는 단풍나무를 베어내 서쪽하늘과 바람이 널찍하게 들어선 앞뜰 끝자락에도 모종을 심었다. 뒤엉켜있던 오미자 나무를 베어내 아침 햇살과 저녁햇살이 골고루 비춰드는 바깥뜰 위쪽에도 심었다. 내 두 팔로 안아도 부족할만큼 크게 자란 벚나무나 죽어가고 있어 볼 때마다 쯧쯧 소리를 냈는데, 나쁜 일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했던가. 그늘이 사라지고 햇살이 가득하니 백일홍 자리로 안성맞춤이었다. 실컷 심었다. 땀이 비오듯 하였다. 몸이 가뿐해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매번 감기로 의욕상실중일 때 백일홍 모종을 심고나면, 모종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 꼿꼿해지듯 나도 서서히 감기에서 벗어나 꼿꼿해지고는 했다. 백일홍이 활짝 피어나는 날에는 나도 기운차게 활짝 피어나고는 했다. 이번에도 땀흘려 일하는 동안 감기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백일홍은 내게 명약일까?
백일홍과의 첫 만남은 꽤 인상적이었다. 컴퓨터가 일반화되면서 어른들을 위한 컴퓨터 교실이 초등학교마다 개설되어 있던 그때, 나는 옆 동네 초등학교 컴퓨터 교실에 등록하였다. 교문을 쭈뼛쭈뼛 들어서는데 상상이나 해 보았는가. 들어본 적도 없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멈춰선 내 심장이 요동쳤다.
누구의 손길일까. 학교 운동장 둘레를 따라 선생님의 호루라기에 맞춰 행진하던 일학년 시절 우리들처럼 서너 줄로 나란히 나란히 서서 환하게 웃고 있는 저 꽃들을 보라. 각각 다른 빛깔로 피어나 화려하게 보이나 가까이 다가서보면 유별나지 않고 각각 다르면서 순하고 정겨운 백일홍이었다. 고향 동네 아이들 얼굴이기도 했고 언니 얼굴이기도 했다. 어머니 얼굴이기도 했다. 고향집 꽃밭과 장독대 둘레에서 하나 둘 피어나 뒷간에 갈 때나 엄마를 찾아 집 안팎을 돌아다닐 때 문득 마주치던 얼굴이 아닌가.
컴퓨터를 배우러 간다기보다는 여름 내내 운동장 둘레에 피어난 백일홍을 보러 간 셈이었다. 매번 교문을 들어서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맞아주던 백일홍, 그 덕분에 컴퓨터 교실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씨앗이 맺을 시기를 기다렸다가 색깔별로 골고루 받아놓았다. 둥지에 알을 낳고는 몸피가 줄어들도록 바삐 드나들던 노랑딱새처럼 우리도 어렵사리 마련한 종자골 텃밭을 있는 힘을 다해 드나들던 시기였다. 백일홍 꽃밭을 만들겠다는 희망으로 겨울을 보냈다. 그해 봄은 유별나게 굼벵이보다도 더디게 왔다.
2007년 4월 앞뜰 긴 꽃밭 가득 백일홍 씨앗을 뿌렸다. 촘촘하게 싹이 돋았다. 욕심을 버리지 못해 촘촘한 채로 키웠는데 처음이라서인가. 건강하게 잘도 자랐다. 꽃밭 전체가 우르르 피어난 싱그러운 백일홍들로 한창이던 날, 백일홍 꽃이 내 가슴을 뚫고 여기저기서 올라온 듯 나도 싱그러워지고 벅차올랐다. 그때 사진을 보면 그날의 감동이 지금도 활짝 살아난다.
그때는 손님들도 자주 드나들던 때인지라 많은 이들이 백일홍꽃을 함께 즐겼다. 손님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백일홍꽃이 꼭 안주인을 닮았네요. 기르는 목숨은 주인을 닮게 마련이지요. 수더분함이 닮았을까?. 덤덤한 내게 썩 들어 맞는 말은 아니지만 얼마나 듣기 좋은가. 꽃을 키운 사람, 어미의 정성과 노력을 알아준 것이다. 사실 사람이건 식물이건 동물이건 긴 시간 마음과 손길을 주고 받는 관계라면 저절로 서로를 닮기 마련 아닌가. 요즈음 애완견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데 유심히 보라. 주인과 애완견은 분위기가 대부분 닮은꼴이다.
모든 작물이 그렇듯이 같은 땅에 같은 작물을 계속 기르다 보면 병이 생긴다. 4년은 백일홍꽃이 풍성하고 윤기가 흘렀고 그 다음해부터는 차츰 윤기가 줄어들고 꽃빛깔은 초라해졌으며 꽃송이는 작아졌다. 특히 꽃봉오리가 맺힐 무렵 꽃대에 힘이 없어지다가 아예 툭 꺾이고 마는 병이 생겼는데, 나도 따라서 툭 꺾이는 참담한 기분이었다. 제대로 핀 꽃을 보기가 어려웠다. 거기다가 진딧물이 닥지닥지 붙어 푸른 잎사귀들은 누렇게 말라갔다. 그 다음 해부터 금송화를 가득 심었다.11
십여년이 지나간 2021년도에 종자골로 향하는 도로 가장자리에 백일홍들이 줄을 지어 꽤 많이 심어져있는 것을 보았다. 일주일이 지난 뒤 활짝 피어난 백일홍들을 보게 되었는데, 헤어져있던 친구를 만난 듯 뛸 듯이 반가웠다. 저 꽃씨를 받아다가 심어야지 말은 내가 했는데 고맙게도 종자골에 자주 왕래하는 그가 먼저 꽃씨를 받아주었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요즈음 남편도 꽃을 들여다볼 줄 안다. 백일홍 씨앗을 뿌렸고 싹이 홈빡 솟았다. 잘 자라났다.12
마침 부슬부슬 비도 내렸다. 안성맞춤인 날이었다. 모종을 솎아내 백일홍이 좋아할 자리를 골라 여기저기 옮겨심었건만 모종은 별로 줄지 않았다. 버리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백일홍 모종이지 않은가. 어디에 심을까 궁리 중인 내 눈과 마침 마늘을 캐낸 빈 땅이 딱 마주쳤다. 텃밭 중앙이었다.13
남편의 영역은 텃밭이요 내 영역은 꽃밭이다. 나는 꽃밭에 엎드려 지내고 그는 텃밭에 각종 작물들을 애지중지 자식처럼 돌본다. 그러니만큼 텃밭중앙은 침범할 수 없는 그의 영역인 셈이다. 꽃을 좋아하게 된 그의 마음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었다. 저기에 백일홍을 심으면 어떨까? 자리가 아주 좋은데.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뜻밖에도 그래 심어! 그가 흔쾌하게 대답했다. 정말이지 정말이지 나는 세살적 딸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때도 사실 나는 지독한 몸살감기중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아프다고 여러날을 시름시름하던 아내가 신이나서 백일홍모종을 정신없이 심는 모습에 남편으로서 힘을 보태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프다는 말은 거짓이었을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걸까. 그래 심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이 방앗간에 방아 돌아가는 소리처럼 쿵쾅거렸다. 내 몸 구석구석 연결된 피대가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힘이 솟구쳐 신이 나서 날아다니듯 나는 백일홍 모종을 흥얼거리며 실컷 심었다. 역시 그날 이후로 마술처럼 나는 감기에서 벗어나 백일홍 모종이 뿌리를 내리듯 꼿꼿해졌다. 연노랑빛 백일홍으로 피어나 파란 하늘을 마주하는 심정으로 살랑거리며 살았다. 백일홍은 분명 내게 명약이었다.
6월말에 심은 모종이 자라 이주일만인 7 12일. 드디어 백일홍들이 저마다 한두 송이씩 싱그러운 꽃송이를 피워내고 있다. 저마다 한두 송이씩! 이미 백여송이가 넘는다. 빨강 분홍 주홍 노랑 연노랑 흰색등 다양한 빛깔이다. 얄상하게 생긴 홑꽃이 있고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생긴 겹꽃도 있다. 암술과 수술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색실로 수를 놓은 듯 빛깔과 모양새가 각기 다르고 아기자기하고 고와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무엇을 하든 일부러 그 앞을 지나가는데 꽃과 얼굴을 마주하며 참 이쁘게도 피었구나 라고 칭찬을 하게 된다. 그럴 때 꽃들이 유별나게 환하게 웃는다고 내가 말한다면, 열명 중 한명은 분명 고개를 끄떡일 것이다.
백일홍에 대한 다음과 같은 산문시를 남겼다
백일홍
백일홍 백일홍 백일홍마다
빛깔이 다르고
암술과 수술이 다르고
꽃잎 수가 달라
얼굴이 제 각각이네
표정이 제 각각이네
몸피가 다르고
목선이 달라
바라보는 곳이 제 각각이네
서 있는 모습이 제 각각이네
피어난 시간이 서로 달라
싱그러움 제 각각이어도
다정함과 수수함과 정겨움은 한결 같아서
내 어머니 거기 계시네
언니들 저기 보이네
친구들 여기저기 얼굴 내미네
고향 옥골마을 정주도 있고 영란이도 보이네
잊은줄 알았던 얼굴도 가끔 끼여있네
다음 주면 백일홍이 수백송이로 늘어날 것이다. 혼자 보기는 아깝다. 둘이 보기도 아깝다.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라. 벗이 멀리서 찾아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바쁜 세상이라 백일홍 구경하러 오라고는 못하고 무작정 기다림만 끌어안게 될 것이다. 이슬이 마르기 전 이른 아침나절이나 노을이 서쪽 하늘을 주홍빛과 붉은빛으로 물들일때나, 아니면 부드러운 산바람이 살며시 다가와 귓가를 간지르는 어스름 저녁 무렵에 백일홍 곁에 선다면, 함께 바라보는 이 있다면, 눈빛은 얼마나 부드러워질 것인가, 물든 가슴은 얼마나 일렁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