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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창작론
나는 소설이란 땅 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소설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세계의 유물이다. 작가가 해야 할 일은 자기 연장통 속의 연장들을 사용하여 각각의 유물을 발굴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간단한 두 가지 명제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의 중심부에 접근하려 한다. 첫째, 좋은 글을 쓰려면 기본을 (어휘력, 문법, 그리고 문체의 요소들을) 잘 익히고 연장통의 세 번째 층에 올바른 연장들을 마련해둬야 한다. 둘째, 형편없는 작가가 제법 괜찮은 작가로 변하기란 불가능하고 또 훌륭한 작가가 위대한 작가로 탈바꿈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스스로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고 시의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그저 괜찮은 정도였던 작가도 훌륭한 작가로 거듭날 수 있다. - (172쪽)
뮤즈는 땅에서 지낸다. 그는 지하실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여러분이 뮤즈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내려간 김에 그의 거처를 잘 마련해줘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낑낑거리는 힘겨운 노동은 모두 여러분의 몫이라는 것이다.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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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176쪽)
독서는 작가의 창조적인 삶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나는 어디로 가든지 반드시 책 한 권을 들고 다니는데, 그러다 보면 책을 읽을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번도 오랫동안 읽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읽어나가는 것이 요령이다. 가족 대기실은 도서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179쪽)
재능은 연습이라는 말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자신에게서 어떤 재능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고 눈이 빠질 정도로 몰두하게 마련이다. 들어주는 (또는 읽어주는, 또는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밖에만 나가면 용감하게 공연을 펼친다. 창조의 가쁨이 있기 때문이다. 환희라고 해도 좋다. -(182쪽)
독서가 정말 중요한 까닭은 우리가 독서를 통하여 창작의 과정에 친숙해지고 또한 그 과정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작가의 나라에 입국하는 각종 서류와 증명서를 갖추는 셈이다. 꾸준히 책을 읽으면 언젠가는 자의식을 느끼지 않으면서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는 어떤 지점에 (혹은 마음가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미 남들이 써먹은 것은 무엇이고 아직 쓰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진부한 것은 무엇이고 새로운 것은 무엇인지. 여전히 효과적인 것은 무엇이고 지면에서 죽어가는 (혹은 죽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하여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분이 펜이나 워드프로세서를 가지고 쓸데없이 바보짓을 할 가능성도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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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일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진짜 중노동이다. 오히려 글을 쓸 때가 놀이터에서 노는 기분이다. -(187쪽)
규칙적인 (트롤로프 방식이랄까?) 작업을 하려면 차분한 분위기에서 일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 설령 타고난 다작가라해도 걸핏하면 비상벨이 울려 방해를 받는 환경에서는 제대로 일하기 어려운 법이다. 간혹 나에게 ‘성공의 비결’을 묻는 사람이 있을 때 (터무니없는 발상이지만 도무지 피할 길이 없다) 나는 두 가지가 있다고 대답하곤 한다. 육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것(적어도 1999년 여름에 길가에서 승합차에 받히는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그랬다)과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 이만하면 괜찮은 대답이다. 질문을 적당히 물리칠 수 있고 또 어느 정도는 진실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건강한 신체를 가졌고 또한 누구에게든 엄살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자신 만만한 여자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지금껏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뒤집어도 역시 옳다고 믿는다. 즉 글을 쓰면서 그 속에서 기쁨을 느꼈기에 건강과 가정생활도 유지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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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바깥세상을 차단한다. 그와 동시에 여러분을 방 안에 가두어 당면한 일에 정신을 집중하게 한다.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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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우수성에 이끌려 소설책을 구입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비행기에 가지고 탈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다. 처음부터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끝까지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그런 소설 말이다. 그렇게 되려면 책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나 그들의 행동이나 주변 환경이나 대화 내용 등이 독자들에게 어쩐지 낯익은 것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내용이 독자 자신의 삶과 신념 체계를 반영하고 있을 때 독자는 이야기에 더욱더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무슨 도박꾼처럼 시장성을 계산하여 이 같은 인과 관계를 계획적으로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195쪽)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쓰되 그 속에 생명을 불어넣고, 삶이나 우정이나 인간관계나 성이나 일 등에 대하여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들을 섞어 넣어 독특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특히 일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일에 대한 내용을 즐겨 읽는다.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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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플롯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첫째, 우리의 ‘삶’ 속에도 (설렁 합리적인 예방책이나 신중한 계획 등을 포함시키더라도) 플롯 따위는 별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둘째, 플롯은 진정한 창조의 자연스러움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소설 창작이란 어떤 이야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신념이다. 작가가 할 일은 그 이야기가 성장해갈 장소를 만들어주는(그리고 물론 그것을 받아 적는) 것뿐이다. -(199쪽)
나는 플롯보다 직관에 많이 의존하는 편인데, 그것은 내 작품들이 대게 줄거리보다는 상황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덕분이기도 하다. 그 작품들을 탄생시킨 아이디어 가운데 어떤 것들은 다른 것들보다 복잡한 게 사실이지만, 대부분은 백화점의 진열창이나 밀랍 인형처럼 지극히 단순한 것에서 출발한다. -(200쪽)
글쓰기에서 정직은 문체의 수많은 결점들을 상쇄시켜주는 미덕이다. 반면에 거짓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큰 결점이다. 거짓말쟁이가 잘 산다는 말은 어김없는 진실이지만 그것은 대체로 그렇다는 뜻일 뿐, 막상 창작이라는 정글 속으로 들어서면 한 번에 한 단어씩 쓸 수밖에 없다. 글을 쓰면서 자기가 알고 느끼는 것들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만다.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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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는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탁월한 묘사력은 후천적인 능력이므로, 많이 읽고 많이 쓰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묘사의 ‘방법’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묘사의 ‘분량’도 그만큼 중요하다. 많이 읽으면 적절한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고, 많이 써보면 요령을 알 수 있다. 묘사력은 직접 해보면서 습득해야 한다. -(213쪽)
내가 말하는 탁월한 묘사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말해주는 몇 개의 엄선된 사실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대개 머리에 처음 떠오르는 사실들이다. 적어도 출발점으로는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나중에 바꾸거나 덧붙이거나 빼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수정 작업이 필요한 거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아마도 처음에 떠올랐던 사실들이 가장 진실하고 가장 훌륭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묘사는 흔히 부족해지기도 쉽지만 또한 지나치게 많아지기도 쉽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마 모잘 때보다 넘칠 때가 더 많을 것이다. -(215쪽)
우리가 거금을 투자하여 책을 사는 것은 스토리를 읽기 위해서다. 식당에 대한 묘사가 길어지면 스토리의 진행 속도가 느려지는데, 그렇게 되면 좋은 소설이 가지고 있는 마법의 힘이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218쪽)
묘사를 잘하는 비결은 명료한 관찰력과 명료한 글쓰기인데, 여기서 명료한 글쓰기란 신선한 이미지와 쉬운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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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다른 요소들이 모두 그렇듯이, 좋은 대화문의 비결도 진실이다. 등장인물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솔직하게 쓸 때 여러분은 상당량의 비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228쪽)
나는 미국의 중하류 계층에서 자라났고 따라서 내가 가장 솔직하고 자신 있게 묘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부류의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자면 손가락을 찧었을 때 ‘어머나 아파라!’가 아니라 ‘이런 제기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지만 나는 결국 그 문제를 극복하고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었다. 아니, 사실은 그것을 문제로 생각하고 고민한 적도 별로 없었다. -(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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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가 대화에 대하여 이야기한 내용은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을 창조하는 데도 똑같이 적용된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눈여겨보는 일, 그리고 본 것에 대하여 진실을 말하는 일이다. -(233쪽)
좋은 소설은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인물 중심이라는 것이다. 다만 단편 소설의 길이(2천~3천 단어)보다 길어질 때는 이른바 ‘성격 묘사’만으로는 부족하다. 궁극적으로는 언제나 스토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성격 묘사를 원하는 사람은 위인전이나 연극표를 사면된다. 성격 묘사를 지겨울 만큼 볼 수 있을 테니까.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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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기본적인 두 가지 방법은 연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그러나 연습처럼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진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묘사와 대화나 들은 내용을 역시 명료하게 옮겨 적는 (그리고 그 불필요하고 지긋지긋한 부사들을 안 쓰는) 일로 귀결된다. -(240쪽)
작품을 쓰면서 완고하고 보수적일 필요는 조금도 없다. 전통적인 방식도 좋고 현대적인 방식도 좋다. 원한다면 글씨를 거꾸로 써도 좋고 아예 상형 문자로 써도 좋다. 그러나 어떤 방식을 택하든 간에 언젠가는 자기가 쓴 것을 앞에 놓고 얼마나 잘 썼는지 점검해봐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때 독자들이 읽기에 큰 불편이 없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면 그 작품은 절대로 여러분의 서재나 집필실 밖으로 내보내지 말아야 한다. 언제나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아니, ‘일부’ 독자도 언제나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가끔은 일부 독자라도 만족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 말은 아마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했던 것 같다.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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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설을 쓸 때 여러분은 나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확인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일이 다 끝나면 멀찌감치 물러서서 숲을 보아야 한다. 모든 책에 상징성과 아이러니와 음악적인 언어 따위를 잔뜩 퍼 담을 필요는 없다(산문은 운문과 다르니까). 그렇지만 모든 책에는 – 적어도 읽어볼 만한 책이라면 – 뭔가 내용이 있어야 한다. 초고를 쓰는 도중이나 그 직후에 여러분이 작품을 수정하면서 해야 할 일은 그 내용을 더욱 분명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렇게 하려면 더러 큰 변화와 수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로 스토리는 좀 더 통일성을 갖게 되고 여러분과 독자들은 작품을 더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실패하는 일은 거의 없다. -(248쪽)
그러나 다시 말하겠다. ‘주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런 것들은 다만 나의 삶과 생각에서 비롯되고,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비롯되고, 또한 남편으로, 아버지로, 작가로, 또 연인으로 살아온 나의 역할에서 비롯된 관심사들일 뿐이다. 밤이 되어 불을 끄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될 때, 그리하여 한 손을 베개 밑에 넣고 어둠 속을 들여다 볼 때 나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문제들일 뿐이다.
물론 여러분에게도 자기만의 생각과 흥미와 관심사가 있을 텐데, 내 경우처럼 여러분의 경우에도 그것들은 한 인간으로서 지금까지 겪어온 온갖 경험과 모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더러는 내가 앞에서 말한 것들과 비슷할 테고, 또 더러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어쨌든 여러분은 그런 것들을 가졌고, 그렇다면 작품 속에 써먹어야 한다. 물론 작품 속에만 써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하나의 쓰임새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문제나 주제 의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것은 형편없는 소설의 지름길이다. 좋은 소설은 반드시 스토리에서 출발하여 주제로 나아간다. 주제에서 출발하여 스토리로 나아가는 일은 좀처럼 없다. 이 규칙에 딱 하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같은 우화 소설뿐이다.
그러나 일단 기본적인 스토리를 옮겨 적은 뒤에는 그 스토리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수정 작업을 하면서 여러분 자신의 결론을 집어넣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각자의 이야기를 여러분만의 독특한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비전을 작품 속에서 빼앗는 일이다.
-(256,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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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고 – 스토리만 있는 원고 – 는 누구의 도움도 (또는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서 써야 한다. 간혹 집필중인 원고를 가까운 친구에게 (흔히 한 침대를 쓰는 친구가 제일 먼저 떠오르게 마련이다) 보여 주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 그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작품이 자랑스럽거나 미심쩍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충동을 억누르라고 충고하겠다. 긴박감을 계속 유지하라. 자기 작품을 ‘바깥세상’의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그들의 의견을 듣게 되면 – 불신의 말이든 칭찬이든 호의적인 질문이든 간에 – 긴박감이 줄어든다. 아무리 힘들어도 성공에 대한 희망을 (그리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품은 채 계속 나아가라. 작품을 끝마치고 나면 자랑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웬만하면 초고를 완성한 뒤에도 조심하는 것이 좋다. 방금 눈이 내린 들판처럼 작품 속에 오직 자신의 발자국만 찍혀 있을 때 좀 더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258,259쪽)
나는 숟가락으로 일일이 떠먹이지 않고도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방법을 찾아본다. 플롯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나의 권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메시지나 교훈 따위는 몽땅 햇빛이 안 드는 곳에 감춰놓아야 옳지 않겠는가. 내가 원하는 것은 울림이다. 결국 나는 ‘이 소설에서 내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인데, 왜냐하면 수정본을 쓸 때는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몇몇 장면이나 사건들을 덧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해가 되는 것들은 지워버려야 한다. 그런 것들은 늘 수두룩하게 나오는데, 특히 스토리의 도입부에 많이 몰려 있다. 내가 처음에는 좀 갈팡질팡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려면 오락가락하는 부분들은 없앨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읽기를 끝마친 후 사소한 수정 작업까지 째째할 정도로 꼼꼼하게 끝내고 나면 바야흐로 문을 열고, 기꺼이 읽어주겠다고 말하는 네댓 명의 가까운 친구들에게 내 작품을 보여 줄 때가 된 것이다. -(264쪽)
독자들의 기호에 따라 스토리를 수정하는 것은 매춘 행위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혹시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굳이 그 생각을 바꿔놓으려고 애쓰지 않겠다. -(269쪽)
그런데 과연 모든 의견이 똑같은 무게를 가질까? (1차 수정본을 보여준 친구들) 내 경우에는 아니다. 궁극적으로 내가 가장 주의 깊게 경청하는 사람은 태비(아내 이름)인데, 그것은 내가 애당초 그녀를 대상으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 내가 감동시키고 싶은 사람이 바로 그녀이기 때문이다. 만약 여러분도 주로 자기가 아닌 어느 한 사람을 대상으로 글을 쓰고 있다면 그 사람의 의견에 주의 깊게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말에 일리가 있으면 작품을 고쳐야 한다. 온 세상 사람들의 의견을 다 감안할 수는 없지만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의 의견은 충분히 감안할 수 있다. 아니, 마땅히 그래야한다. -(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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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독자를 갖는 것은 스토리의 진행속도가 적당한지, 배경 스토리를 만족스럽게 처리했는지 가늠하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진행속도란 이야기를 풀어놓는 속도를 말한다. 출판계에는 어떤 무언의 믿음이 존재하는데,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소설들은 모두 진행 속도가 빠르다는 믿음이다. 내가 짐작하기에 이 믿음의 밑바닥에 깔린 생각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할 일이 너무 많고, 따라서 인쇄된 글을 차분하게 읽을 만한 여유가 없다. 따라서 무슨 즉석 요리사처럼 지글거리는 햄버거와 튀김과 계란 따위를 후딱후딱 내놓지 못하면 독자들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72쪽)
그렇다면 적당한 중용을 찾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히 가상 독자다. 문제의 어떤 장면에서 과연 여러분의 가상 독자가 싫증을 느낄지 안 느낄지 상상해보라. 여러분이 가상 독자의 취향을 나의 절반만큼이라도 알고 있다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274쪽)
여러분도 ‘사건의 중심에서(in medias res)’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매우 유서 깊고 쓸 만한 테크닉이긴 하지만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 버리면 나중에 회상장면을 넣을 수밖에 없는데, 내가 보기에는 좀 따분하고 진부한 방법이다. 나는 회상 장면을 읽을 때마다 화면도 어지럽고 목소리도 윙윙 울리는 1940년, 50년대 영화를 연상하곤 한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나는 ‘이미 일어난 일’보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
-(277,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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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조사에 대해서도 잠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자료 조사는 전문화된 형태의 배경 스토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혹시 여러분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되어 자료조사가 꼭 필요한 경우가 있더라도 부디 ‘배경’이라는 말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자료 조사는 되도록 멀찌감치 배경에 머물면서 배경 스토리를 마련하는데 그치는 것이 좋다. -(281쪽)
자료 조사는 배경 스토리를 위한 것일 뿐이고, 배경 스토리에서 중요한 낱말은 ‘배경’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감은 모든 소설에 공통적으로 중요한 것이지만 특히 기이하거나 불가사의한 사건을 다룬 소설에서는 더욱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구체적 사실들을 충분히 넣어두면 나중에 까다로운 독자들로부터 편지가 쇄도하는 것도 웬만큼 방지할 수 있다. 여러분이 ‘아는 것에 대하여 쓰라’는 규칙을 무시하려 한다면 자료 조사는 불가피한 일이다. 그것은 여러분의 스토리에도 많은 보탬이 될 것이다. 다만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곤란하다. 여러분이 쓰고 있는 것은 연구 논문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언제나 스토리가 우선이다.
-(285,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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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창작 교실이나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이 초보 소설가들에게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런데 그렇게 묻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기적의 특효약이나 비결이나 마술 깃털 따위일 때가 너무 많아서 탈이다. 안내 책자가 제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여도 교실이나 작가 양성소에 그런 것들이 있을 리 없다. 내 의견을 묻는다면 창작 교실에 대해 회의적인 편이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반대하지도 않는다. -(286쪽)
우리가 수정작업을 하려고 앉았을 때, 그렇게 불분명한 비평은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위에 나왔던 의견들 중에서 작품의 문장이나 화법 등에 대하여 지적하는 의견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 의견들은 실질적인 조언이 아니라 그냥 허세일 뿐이다 .
그리고 날마다 비평을 듣게 되면 항상 문을 열어놓고 글을 써야하는데, 내 생각에 그것은 목적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웨이터가 도시락을 들고 살금살금 오두막으로 다가왔다가 역시 사려 깊게 살금살금 물러가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차피 밤마다 진행 중인 작품을 소리 내어 읽어줘야 할텐데, 그리고 다른 작가 지망생들은 작품 분위기는 마음에 들지만 방울이 달린 돌리의 그 모자는 어떤 상징적 의미가 있느냐고 꼬치꼬치 캐물을 텐데, 내가 보기에 그것은 창조적 에너지를 엉뚱한 일에 낭비하는 셈이다. 화석의 형태가 마음속에 아직 선명할 때 마치 무엇에 쫓기듯 부지런히 글을 써야 하는데, 그 시간에도 자신의 글과 의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될 테니까. 창작 교실에서는 ‘잠깐, 방금 그 대목의 의미를 설명해봐’하고 캐묻는 일이 너무 많다. -(289,290쪽)
그러나 창작 교실이나 세미나에도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이점이 있다. 그런 곳에서는 시나 소설을 쓰겠다는 욕망을 진지하게 존중해준다. -(291쪽)
글쓰기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귀중한 교훈들은 스스로 찾아 익혀야 한다. 이런 교훈을 얻는 것은 서재문을 닫고 있을 때가 거의 대부분이다. 물론 창작 교실에서의 토론도 지적인 자극을 주고 흥미진진할 때가 많지만, 글쓰기의 실질적인 문제들을 도외시하고 곁길로 빠지는 일도 많다는 게 문제다. -(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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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대리인은 꼭 필요하다. 팔릴 만한 작품만 있다면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설령 팔릴 만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가능성만 보인다면 충분히 대리인을 구할 수 있다.
처음에는 나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다. 자신의 작품과 비슷한 종류의 작품들을 싣는 잡지들을 구독해야 한다.
특히 작품을 읽어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대리인들을 조심해야 한다. 그런 대리인 중에도 평판이 괜찮은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대부분은 파렴치한 사기꾼들이다. 굳이 돈까지 바쳐가며 작품을 출간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면 대리인을 찾거나 출판사에 문의 편지를 보내는 일 따위는 집어치우고 차라리 곧장 자비 출판 전문 출판사를 찾아가는 게 낫다. 적어도 투자한 금액만큼의 결과는 얻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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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 가지 일만 짚고 넘어가겠다. 내 인생을 바꿔놓은 그 사건과도 직결되는 일인데, 앞에서도 간접적으로나마 이미 건드렸던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 문제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묻는 질문으로, 어떤 이들은 은근하게 묻고 또 어떤 이들은 우악스럽게 묻지만 그 요지는 언제나 똑같다. ‘당신은 돈 때문에 일합니까?’
대답은 ‘아니요’다. 지금도 그렇고 전에도 그랬다. 물론 소설을 써서 꽤 많은 돈을 모든 것은 사실이지만,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종이에 옮겨놓은 낱말들은 단 한 개도 없었다. 더러는 우정 때문에 했던 일도 있었지만 – 출판계의 용어로는 ‘상부상조’라고 한다 – 그것은 아무리 깎아내려도 좀 유치한 물물교환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나 자신이 원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써서 주택 융자금도 갚고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냈지만 그것은 일종의 덤이었다. 나는 쾌감 때문에 썼다. 글쓰기의 순수한 즐거움 때문에 썼다. 어떤 일이든 즐거워서 한다면 언제까지 지칠 줄 모르고 할 수 있다.
글쓰기라는 것이 신념에 따른 행동일 때도 몇 번 있었다. 그것은 절망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었다. 이 책의 후반부도 그런 정신으로 썼다. 우리가 어렸을 때 쓰던 표현을 빌리자면 창자를 쥐어짜면서 썼다. 창작이 곧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창작이 삶을 되찾는 한 방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것을 깨달은 것은 1999년 여름, 한 남자가 푸른 승합차를 몰고 달려와 나를 죽일 뻔했을 때였다. -(309쪽)
첫댓글 학교에서 소설 수업 중에 발제한 내용을 올려봅니다. 쉽게 잘 써진 이론서인 듯합니다. <창작론> 위주로 발제 아닌 '발췌'했습니다. 글 쓰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공부했어요.. 고마워요.
올해 스티븐 킹의 열정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훔쳐올 수 있도록~~^^
재밌게 잘 읽었어요,,,부지런한 휘짱님에게 감사! ^^
읽으면서, '아 맞아'수없이 머리 끄덕였습니다. 휘짱에게 박수!
묘사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시작되어 독자의 상상력으로 끝나야 한다, 라는 말이 뜻깊었습니다. 그게 참 어렵다는 것. 위 발췌문에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ㅠ
타고난 이야기꾼입니다...그의 자전적인 창작론을 읽고...저도 한줄기를 잡아 보았습니다.
어찌했던 이야기...story가 소설은 바탕을 이루어야지...한다는 생각입니다. 일단 독자의 관심을 끈 후에야 글의 깊이 내용, 신념 철학등, 글쓴이가 의도했던 바를 독자와 교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한 편의 삶을 story라는 <숨>을 불어 넣어 줌으로써 생명을 갖도록 하는 작업이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다 집어치우고...흥미로운 storytelling을 하자. 그 후에 다른 요소, 단어, 문장, 구성, 철학등 소설적 장치를 하자라는 것 입니다...해해해...해피.
플롯은 쓸데없는 거라는 내용이 나와요. 아마 스티븐 킹은 상황(이미지)을 잘 만든, 그야말로 스토리텔링을 겸한 천재적인 작가인 듯해요. 그의 삶 또한 소설같다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