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②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③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맞이하였더니, ④아다는 엘리바스를 에서에게 낳았고, 바스맛은 르우엘을 낳았고, ⑤오홀리바마는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들들이요, 가나안 땅에서 그에게 태어난 자들이더라. ⑥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⑦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⑧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산에 거주하니라.”
사람들은‘에돔’이라 부른다. 그런데 굳이 그의 본 이름이‘에서’였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1절) 둘 다 ‘붉다’라는 뜻이다. 한 가지가 다르다. ‘에서’라는 이름을 들으면 팥죽을 위하여 장자권을 팔았던 어리석은 사람이 떠오른다.7절까지는 ‘에서’라는 이름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⑥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⑦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6~7절) 혈기 많은 에서의 성품이 많이 변하였다. 동생을 원수 같이 대하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지금은 동생의 재산이 풍성해질 수 있도록 스스로 세일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에서의 족보가 화려하다. 에서는 또 다른 자기 이름, 곧 ‘에돔’의 이름으로 왕국을 건설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은 이러하니라.”(31절) 가나안에서 가장 먼저 왕정제도를 도입했다. 그의 아들들이 대를 이어 왕의 자리에 또한 오른다. “시브온의 자녀는 아야와 아나며, 이 아나는, 그 아버지 시브온의 나귀를 칠 때에, 광야에서 온천을 발견하였고”(24절) 경제적으로 성공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축복하신다. 그리고 에서 또한 축복하신다.
창 36장을 듣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에서는성공한 사람이라고. 맞다. 성공한 사람, 그리고 성공한 가문이다. 그런데 창 36장중, 우리가 아는 사람은 ‘에서’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전혀 모른다. 또한 알 필요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의 삶과 완전히 반대되는 삶을 기록한 말씀이 있다. “⑨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⑩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9~10)
정치적, 경제적으로 성공한 에서이다.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하며, 그와 관계 맺기를 소원한다. 모든 사람들이 에서의 이름을 들으면 다 안다. 그는 어느 새 우상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유명한 자가 되었다. 그런데 에서에게는 한 가지가 부족하다.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여호와의 칼이 피, 곧 어린 양과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 기름 곧 숫양의 콩팥 기름으로 윤택하니, 이는 여호와를 위한 희생이 보스라에 있고, 큰 살육이 에돔 땅에 있음이라.”(사 34:6) 에돔은 이스라엘의 원수, 곧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다. 이사야는 에돔에게 큰 살육이 임할 것을 경고한다. 에돔, 하나님께서 버리신 자의 이름이다. 세상에서는 유명한 자, 그러나 하나님께는 무명한 자가 곧 에돔이다.
세상에서는 크게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한다. 가나안, 곧 하나님 안에 머무르기보다는 기꺼이 하나님 밖으로 나가서라도 성공하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젊을 때는 그럴 수 있다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참 성공은 하나님 안에서의 성공이다. 하나님 앞에서 유명한 자가 되는 것이다.세상에서의 성공은 사람들이 빼앗아간다. 금고 안의 보물을 도둑이 훔쳐가는 것처럼, 세상의 성공은 하루가 지나면 다른 사람의 것이 되어버린다.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꿈쟁이 요셉의 옷을 누구도 벗길 수 없는 삶, 이것이 하나님 안에서의 성공이다.
“③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④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창 24:3~4)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결혼을 준비한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지 못하던 시대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아주 극소수였다. 예수쟁이들끼리 결혼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결혼의 원칙을 세웠다. 가나안人이 아닌, 예수쟁이와 결혼해야 한다고.
에서는 이 원칙을 너무 쉽게 어겼다. 헷 족속의 딸들과 결혼하였다.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창 26:35) 부모의 걱정은 걱정으로 끝났다. 잔소리로 끝났다. 또 다른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다.
부모가 원하지 않는 결혼을 했음에도 에서는, 그리고 그의 자손들은 승승장구했다. 사업을 하면 사업을, 정치를 하면 정치를 장악했다. 뭘 하던지 잘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당연히 이야기한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아버지 이삭이 잘못했다고. 에서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었어야 했다고, 그것이 옳다고.
아브라함은 백 세에 아들을 얻었다. 이삭도 결혼 후 20년이 지나도록 자녀가 없었다. 야곱의 아내 레아와 라헬은 임신하기 위하여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렀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그에 비해서 에서와 그의 후손들은 임신과 출산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척척 이뤄졌다. 세상에서는 에서와 야곱 중, 누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했을까?
세상에서 아무리 에서를 좋게 본다 하더라도, 분명한 것이 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에서는 영적인 분별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둔감한 사람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맺는 일에 너무 서투른, 무관심한 사람이다.
에서는 식솔들을 이끌고 세일산으로 갔다. 세일산은 해발 1,500m 이상의 가나안 땅 남부, 시내 광야 동쪽에 있는 높은 땅이다. 이곳은 에시온 게벨(Ezion-Geber, 현재 아카바)이라는 항구를 끼고 있고, 왕의 大路가 있어서 통행료만 받아도 부를 유지할 수 있는 곳이다.
물론 가나안이 아닌 세일산으로 갔던 에서의 마음은 아름다웠다.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7절) 칭찬해주어야 할 마음이다. 그런데 가나안을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인간적으로 좋다 하여서, 하나님께도 좋은 것일까?
예를 들어보자.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나는 당신을 99% 사랑해”라고 고백했다. 여자가 그 사랑의 고백을 받아들일까? 뭐라고 이야기할까? “나는 100%의 사랑을 원합니다.”라고 할 것이다. 이건 대학에 가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대법원에 가서 사실 확인을 할 필요도 없다. 사랑은 100%를 목적한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이다. 100% 사랑, 곧 100%의 순종을 원하신다. 에서의 마음이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야곱과 에서가 함께 가나안에 머무르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힘이 되면서 약속의 땅에서 축복의 열매를 맺어나가는 것이다.
에서의 가정도 매력 있다. 자손들마다 사업가, 왕을 포함한 정치가들이 즐비하다. 이런 가정을 명문가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정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시다. 성경에서 내리는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세상적으로는 성공하였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실패한 가정, 실패한 사람이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 집안은? 루스벨트? 부시? 케네디? 2009년 브루킹스 연구소는 정치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케네디 가문을 첫 번째로 꼽았다. 케네디 가문은 대통령 1명, 상원의원 3명, 하원의원 4명, 장관 1명을 배출했다. 케네디 가문을 1위로 만든 사람들은 재선 상원의원을 거쳐 대통령이 된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법무부 장관과 상원의원 출신의 로버트 케네디, 9선 상원의원을 지낸 에드워드 케네디 등 케네디 3형제였다.
기실 케네디 형제는 미국 정치의 산 증인이다. 그중 2009년 8월 25일 세상을 떠난 에드워드 케네디는 1962년 상원의원이 된 이래 47년간 미국 민주당의 진보파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활약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가난한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중요한 법안 제정을 주도했다.
1964년 민권법, 1965년 투표권법, 1990년 장애인법, 2002년 낙오아동방지법 등 중요한 개혁 법안을 추진한 그는 명연설로 ‘상원의 사자(lion)’라고 불리기도 했다. ‘검은 케네디’라고 불린 대통령 오바마는 그를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정치인”이자 “미국 민주당의 혼(soul)”이라고 불렀다.
첫째 조 주니어 케네디가 제2차 세계 대전에 공군으로 참전하여 독일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전사했다. 둘째 캐슬린도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셋째 대통령 케네디가 1963년 암살로 떠난 지 6년 만에, 넷째 로버트 케네디도 암살로 목숨을 잃었다. 세상이 말하는 ‘케네디가의 저주’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 케네디의 아들 존 케네디 주니어와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 데이비드 케네디, 마이클 케네디 등 조카들도 잇따라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로즈메리의 정신 지체, 아버지의 뇌졸중, 자식의 투병은 계속 되었다.
“①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②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1~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축복의 명령은 이스라엘의 시작이다. 근간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포기하면 안 된다. 인간적인 마음이지만, 아름다운 마음이지만, 하나님께서 틀리다고 하신 것은 틀린 것이다.
“⑰네가 말하기를,‘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⑱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⑲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7~19) 물론 부자로 살면 좋을 것이다. 먹고 싶은 것 먹고, 즐기고 싶은 것 즐기고,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성경의 경고를 들어야 한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 8:36)
물론 에서의 후손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신다. 축복하신다. 그러나 정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좋겠다. 회개이다. 회개하기 위하여 열심을 내면 좋겠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고, 고민하고, 결단하고, 애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한 사람을 찾으신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부자가 아니다. 권력가도 아니다. 박사도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유명한 사람, 하나님께서 이름을 아는 사람만 천국에 들어간다. 세상에 살고 있다 하여서, 세상에서 유명하려 하지 말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 더하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