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식당 벤치마킹을 위해 일본 후쿠오카에 다녀왔다. 일본은 지금도 라멘 열풍이 거세다. 일본의 3대 면식 중 연륜이 가장 짧은 라멘이, 그 내력이 훨씬 오래된 우동과 소바를 제치고 부동의 정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원인은 다름 아닌 고기 국물 때문이다.
주로 간장과 가츠오부시 등으로 국물을 낸 우동과 소바에 비해 라멘은 돼지와 닭 등을 사용한 고기국물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그 중에서도 남쪽 지방 규슈에 본거지를 두고 돼지 뼈를 사용한 하카타 돈코츠(豚骨)라멘이 일본 전국 라멘시장의 주력이다. 한국에서도 일본식 라멘의 주류는 다름 아닌 하카타 돼지 뼈 라멘이다. 한국에서 국밥인 탕반 시장의 주력을 돼지 뼈로 국물을 낸 순댓국밥과 돼지국밥이 주도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돼지 뼈 라멘이 한국사람 입맛에 꼭 맞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 후쿠오카를 방문할 때 가끔 돼지 뼈 라멘을 먹었지만 거의 매번 느끼는 점은 기름지고 느끼하고 너무 진하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일부러 후쿠오카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돼지 뼈 라멘 전문점 한 곳을 방문했다. 식당 상호는 ‘잇소우(一双)’로 하카타역에서 도보로 7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다.
늘 줄을 서서 먹는 곳이지만 찾아간 시각이 오후 4시여서 비교적 한가하게 먹었다. 지금까지 먹어 본 돈코츠라멘 중 으뜸이기는 했지만 기름진 맛은 분명했다. 나는 또래의 중년 남자에 비해 기름진 맛을 꽤 선호하는 편인데도 일본 돈코츠라멘의 느끼함은 한국의 순댓국밥이나 돼지국밥에 비해 훨씬 강하다.
한국에서 돼지국밥, 순댓국밥 잘하는 식당에서 국밥을 먹으면 기름진 맛보다는 구수하고 담백한 국물 맛이 난다. 하지만 일본 돈코츠라멘은 담백함보다는 기름지고 느끼한 맛이 압도한다. 일본 사람들이 담백한 맛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라멘 국물 맛만은 느끼한 맛이 대세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라멘으로 일본에서 미국 뉴욕에 진출해 뉴요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하는데 맛의 본연보다는 콘텐츠나 마케팅의 영향이 아니었나 싶다. 사설이 이렇게 긴 것은 일본의 라멘보다 국물 맛이 훨씬 맛있는 국수 국물을 지난 주 먹었기 때문이다.
연휴 바로 전날 싱글로 외롭게 살고 있는 30년 지기 친구를 불러 저녁을 사주었다. 서울 논현동에 있는 <진시미엔>이라는 중국집이다. 몇 달 동안 다른 메뉴를 팔았는데 짬뽕과 중국요리로 다시 돌아왔다.
필자는 연휴를 염두에 두고 소주를 좀 마시기로 작정했다. 요리가 나오기 전에 새우요리인 칠리새우와 멘보샤에 소주를 연신 마셨다. <진시미엔>의 요리는 주로 1만 원대 중반이나 후반의 가격으로 강남 중식당 기준으로는 저렴하다. 더욱이 식재료를 넉넉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그 만족도가 꽤 괜찮다.
특이한 것은 이 집에서는 요리 가격은 저렴한데 짬뽕은 좀 비싸다는 점이다. 짬뽕 가격은 9000원으로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중에 주인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이해가 갔다. 짬뽕을 제대로 만들려면 원가가 생각 이상으로 높았던 것이다. 전에도 짬뽕을 먹어봤지만 그날은 둘이서 요리를 두 접시나 먹고 배부른 상태였는데도 짬뽕을 추가로 주문했다.
깊고 진하고 깔끔한 국물 맛이 일품인 명품짬뽕
짬뽕을 주문했더니 사기그릇에 듬뿍 담은 짬뽕이 나왔다. 마침 그날 동행한 친구는 입맛이 나름 예리하다. 국물 맛이 깊고 오묘한 데가 있다. 원래 필자는 짬뽕을 아주 선호하지 않는다. 유명하다는 군산, 평택의 유명 짬뽕조차도 내 입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맛이 깊지가 않았다. 반면 <진시미엔> 짬뽕은 묵직하면서 맛의 품격이 느껴졌다. 친구가 식사 양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연신 국물과 면을 비웠다. 양도 다른 중국집 곱빼기 정도로 넉넉하다. 돼지고기와 채소, 해물 등 고명도 푸짐하다.
여기 짬뽕은 돼지등뼈를 기본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일본에서 먹었던 돈코츠라멘에 비해 풍미가 진하면서 깔끔한 맛이 난다. 서양인 혹은 일본인들도 이 짬뽕 국물 맛을 보면 돼지 뼈 라멘보다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돼지등뼈 외에 닭뼈, 표고버섯, 생강, 파뿌리, 양파, 다시마 등 10가지 재료를 6시간 동안 끓인다.
면발도 소다 등 첨가제를 안 넣는 면으로 부드럽다. 다 먹고 나서도 속에 부담감이 없는 면발이다. 부드러운 면은 호오가 다소 있는데 나이가 좀 든 사람은 이런 면발을 선호할 것이다. 유명 짬뽕집의 면발은 이태리 파스타처럼 뚝뚝 잘리는 맛이 있는데 그런 면발은 젊은 층이 더 선호한다. 이런 면발은 배달음식으로는 좀 잘 안 맞을 것이다.
배달음식이 편하기는 하지만 즉석요리나 음식의 온도 등을 감안해 제대로 된 식사는 식당에서 직접 먹는 음식이라야 한다는 것이 본인의 지론이다. 그래서 필자는 중국집에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진시미엔> 짬뽕은 국물도 면발도 고명도 딱 밸런스가 잡혔다. 식당 직원에게 공깃밥을 약간 주문해서 밥도 말아서 먹었다. 소주 세 병을 비웠는데 취기가 가실 정도로 시원하고 개운하면서 깊이 있는 국물이었다. 이런 수준의 짬뽕이라면 중국집에서 내 선택은 짜장면보다 짬뽕일 가능성이 높다.
마침 좀 한가해서 주인장에게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식당을 개업하기 전 전국의 유명하다는 짬뽕집을 순회했는데 그래도 대구 <**반점> 짬뽕은 남달랐다고 한다. 필자는 그곳은 안 가봐서 뭐라고 답변을 못했지만 대구는 군산, 강릉과 더불어 짬뽕이 강세인 지역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전국 몇 대 짬뽕이니 명물 짬뽕으로 규정하는 것은 좀 그렇다. 유명 중국집 혹은 짬뽕집의 짬뽕 수준이 그 유명세에 못 미치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짬뽕 가격이 9000원 인 것은 주문과 동시에 조리하는 요리 개념이 강하고 특히 식재료 원가 비중이 40% 이상을 상회한다고 한다. 즉 짬뽕은 이 식당 주인장의 자존심이 담겨 있는 음식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진시미엔> 짬뽕은 지금까지 본인이 먹어본 짬뽕 중 최고였다. 맛도 좋았고 그 내용물과 식재료도 단연 발군이었다.
이런 짬뽕 맛은 일본 라멘보다 우위에 있다. 다만 일본에서 고기 국물 음식은 라멘이 절대 대세이고 한국은 설렁탕, 곰탕, 순댓국밥, 육개장 등 다양한 고기 베이스 국물이 있기 때문에 일본의 라멘보다는 한국의 짬뽕이 덜 뜨는 것일지도 모른다.
국물을 떠먹는 면식이 국제적으로도 강세다. 이런 짬뽕 같은 음식들의 콘텐츠를 개발해 외국인들에게도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음식으로 다듬었으면 한다. 분명히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일본 후쿠오카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잇소우 라멘보다는 <진시미엔> 짬뽕이 훨씬 맛있었다. 짬뽕이나 중국요리 등은 오후 5시 30분부터 먹을 수 있다. 지출(2인 기준) 칠리새우 1만8000원+멘보샤 1만5000원+짬뽕 9000원+소주 3병 1만2000원= 5만4000원 <진시미엔> 서울시 강남구 강남대로 520 02-517-0670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외식콘텐츠마케팅 연구소 (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월간외식경영 발행인,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고 인심 넉넉한 서민 음식점을 일상적인 ‘식당밥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