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 8,1-4ㄱ.5-6.7ㄴ-12; 루카 10,1-12
+ 찬미 예수님
어제 교황님께서 ‘찬미받으소서’의 후속 문헌으로 사도적 권고 ‘라우다떼 데움’을 반포하셨습니다. 우리말로는 ‘주님을 찬미하여라(찬양하여라)’로 번역이 되지 않을까 하는데요, 어제 교황청 홈페이지에서 주욱 읽어보니… 외국어였습니다.
우리말 번역이 나오겠지만, 이미 뉴스에서는 기사화되고 있는데요, 권고에서 교황님은 ‘이제 기후 붕괴를 막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며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과 화석 연료의 포기가 시급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기후 위기가 정의의 위기라고 말씀하시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자 나라의 ‘무책임한 생활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는 11월 30일 두바이에서 열리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화석 연료 퇴출을 위한 정책이 합의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찬미받으소서’는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총회를 앞두고 반포되었는데요, 문득 예레미야 예언자가 떠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그래, 또 그 소리군. 그만 듣고 싶다….’
오늘 1독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듣고 우는데요, 백성들의 심정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교황님께서 절절하게 선포하고 계신 이 권고가 정말로 실천되고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를 살리는데 모든 나라와 모든 인류가 하나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오늘 독서 말씀은 일종의 말씀의 전례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에즈라가 율법서를 가져오고, 그것들을 읽어줍니다. 레위인들이 그것을 풀이해 주는데, 아마 히브리어로 된 율법을 백성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아람어로 옮겨준 듯합니다. 그들은 율법을 이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 들었고, 이는 그들의 삶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는데요, 이는 이방인 나라의 숫자였습니다(창세 10; 탈출 1,5; 신명 32,8 참조). 루카 복음 9장에서 열둘을 파견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제자들을 파견하신 것을 상징한다면, 오늘 복음에서 일흔(둘)을 파견하시는 것은 제자들을 이방 민족에게 파견하신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의 사명은 이스라엘에서 시작하지만, 나중에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확대되는데요, 이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사마리아(사도 1,8; 8,5)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실 때와 비슷한데요, 특별한 것은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종 게하지에게 명령한 것을 연상시킵니다. “허리에 띠를 매고 내 지팡이를 들고 가거라. 누구를 만나더라도 인사하지 말고 누가 인사하더라도 응답하지 마라.”(2열왕 4,29)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처럼 급박하고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셈입니다.
또한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라 하십니다. 평화는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인사이기도 했지만,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라고 노래했고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19,38)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24,36)라고 인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전하는 평화는, 단순한 전통적 인사가 아니라 예수님으로 인해 이 세상에 와 있는 하느님 나라와 연관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예수님으로부터 세상에 파견됩니다. 사람을 살리는 복음, 세상에 참된 평화를 가져다 주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파견됩니다. 내가 하는 말이 사람을 살리는 말인지 죽이는 말인지, 내가 하는 행동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행동인지 아닌지 살펴야겠습니다. 이 세상이 생존의 기로에 있다고 교황님은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살려야 한다고 호소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오늘날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찬미받으소서’의 정신을 알고 실천하고 선포해야겠습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루카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