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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절의 절기의 누림과 약속된 축복
34: 21-24
21.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는 쉴찌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찌며
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23.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찌라
24.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번씩 여호와 너의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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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운데 "내 고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날 충청북도음성에 있는 강희탁씨가 운영하는 국수 공장이 소개되었습니다. 강희탁씨는 당시 70세 된 노인인데 군대생활에서 사고로 두손이 모두 절단된 1급 장애인입니다. 그는 비참한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25년 간 국수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입지전적인물이었습니다. 새벽 4시경이면 밀가루 반죽을 시작하며 국수를 만드는데 국수가 건조되어 포장되기까지는 거의 30시간이 걸립니다.
공장을 직접 찾아간 현장 리포터가 국수요리를 직접 맛본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직접 먹어보니까 정말 쫄깃쫄깃하고 맛이 그만 이예요. 너무 맛있어요... 그 말을 듣고 있던 강희탁씨는 "저는 그 말 듣는 것이 최고의 기쁨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소문만 듣든 것하고 직접 먹어본 것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을 믿는 것을 영적으로 먹과 마시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요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요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 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주 예수님을 먹는 것은 거듭난 사람에 의해 생명의 방법으로 흡수되도록 그 분을 우리 안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는 영접한 분에 의하여 사는 것입니다.(계3: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을 굳이 맛에 비긴다면 맛이 있어서, 그 어느 맛에도 비교할 수 없어서, 다른 맛과는 상대가 되지 않아서 믿는 것입니다. 수가성 여인도 이 맛을 알았습니다. 삭개오도 이 맛을 알았습니다.
세리도 생명의 떡과 생수의 이 맛을 알았습니다. 시몬 베드로로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사오니 어디로 가겠습니까? 바울도 알았습니다. 유익한 것을 모두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이 맛을 알고 체험한 주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미국의 억만장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하워드 휴즈는 신경과민증으로 불행한 여생을 산 사람입니다. 특히 세균감염에 대한 노이로제 환자였습니다. 어느 날 입던 옷을 다 불태우는가 하면 남과 악수를 한 다음에는 반드시 손을 씻곤 했다고 합니다. 믿음 없이 사는 사람은 억만 장자라도 잠을 평안히 잘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안식이 없습니다. 예수 안에 생명의 맛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르만 필(Norman Vincent Peale) 박사는 늘 쪽지에 써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글이 있었습니다. 그 글은 "하나님의 빛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품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지키고 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평안으로 나를 지키신다"라는 글이었습니다. 주님을 가까이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평안과 기쁨을 주십니다. 이것이 예수 안에서 공급되는 참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양식이요 음료인 그리스도를 누리며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들을 만들어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하심과 공급하신 은혜의 실제를 잊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그 은택을 잊지 않도록 절기를 만들어 잔치를 누리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절기가 있습니다. '삼일절, 광복절, 제헌절' 등이 우리나라 절기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오늘날 지구상에 현존하는 주권국가마다 고유한 전통과 절기가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각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할만한 절기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절기들은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대변해 주기도 하며 민족의 문화와 국민성을 나타내 주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어느 민족의 절기와는 그 성격과 개념에 있어서 다릅니다. 물론, 각 나라마다 절기를 제정하는 목적과 의미는 동일할 것입니다. 대개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기념하기 위해서, 계승, 발전, 유지하기 위해서 절기를 제정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절기가 여느 민족의 절기와 크게 다른 점은, 이스라엘의 절기는 사람이 제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제정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이 지구상에 숫한 절기와 행사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제정하시고 하나님께서 직접 선포하신 절기는 이스라엘의 삼대 절기 외에는 없습니다.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절기는 사람 중심의 절기이지만, 이스라엘의 절기는 하나님 중심의 절기라는 사실입니다.
절기를 제정하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념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대로 계승,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 절기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절기가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매우 소홀해지고 형식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절기를 형식적으로 지키지 말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못하게 하라." (골2:16절) ☞ 여기서 '폄론'은 '비난'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은 문자적으로는 "절기를 형식적으로 지킨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요, 의미상으로는 "절기 속에 담긴 영적 교훈을 제대로 계승, 유지, 발전시켜 나가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남자에게 무교절,초실절,수장절 3대 절기를 지키도록 하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은 3일 이내에 행하여 졌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3일 이내인 초실절에 부활하셨습니다. 유월절 과 초실절 사이에 무교절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 절기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신 시간 안에 행하여 졌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지금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절기를 완성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성령을 쏟아 부어주시는 오순절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 안에 계신 그리스도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누리며 능력의 영으로 하늘로부터 쏟아 부어주신 보혜사 성령이신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 절기들은 항상 죽음과 부활과 능력의 성령으로 하늘부터 쏟아 부어주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절기인 것입니다.
(골2:15-17)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貶論)하지 못하게 하라(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모든 절기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절기를 제정하시고 몸이신 절기의 실제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갈망은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함께 누리며 그분과 함께 절기를 누리고 그 분과 함께 안식하는 것을 갈망하십니다.
눅가복음 15장에서 탕자가 그의 아버지에게 돌아와서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말한 것은 돌아온 탕자가 그 아버지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려 하였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런 것이 아니였습니다. (눅15:23) "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아버지의 갈망은 그들 모두가 잔치를 즐기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옷은 회개하는 죄인들을 덮는 의의 옷인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고 가락지는 회개한 자에게 부어주는 인치심이며 약속의 성령을 부어 주어 장자의 명분을 회복한 것을 말합니다. 신은 그분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우리를 분별시키는 구원의 능력인 것입니다.
이처럼 돌아온 아들은 잔치를 즐김으로 그들은 누림과 안식의 축복을 가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항상 무엇을 하기 원하는 우리의 육적인 갈망과는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그분을 누리며 절기를 누린다면 우리의 삶에 만사가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하려한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를 의무감에서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이 절기가 모형이요 예표로 약속이 성취가 된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누리게 되었습니다.
아침에는 무교병의 절기를 누려야 합니다. (출34:18)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 그 기한에 칠일 동안 무교 병을 먹으라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
유월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교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기서의 관심은 구속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의 교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으나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는가?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려면 우리의 생활에서 나온 모든 누룩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무교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속죄제이시고 속건제이신 그리스도를 매일 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매일 아침마다 그리스도를 적용한다면 우리는 일상생활 중에서 나온 누룩들을 없앨 수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요 참 떡이요 산 떡인 것입니다. 무교병은 참 떡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려 오신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생명주는 떡인 것입니다. 아침마다 송이 꿀보다 더 단 말씀을 섭취하여야 합니다.
무교병인 그리스도를 속죄제로 속건제로 취한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성 프란시스는 어느 날 우물에서 물긷는 여인을 관찰했습니다. 물통에 물을 가득 담은 뒤 작은 나뭇조각을 물위에 띄우고 어깨에 메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왜 물항아리에 나뭇조각을 띄우고 갑니까?” 그녀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군요? 항아리가 흔들려도 물이 넘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프란시스는 “격노가 일어날 때, 마음의 동요가 일어날 때,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띄우면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분노와 갈등, 마음의 동요가 일어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과 인내를 생각하면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낮에는 오순절의 절기를 누려야 합니다. 아침에 우리의 속제죄와 속건제인 그리스도를 누리면 매일의 오순절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순절에 왔던 그 영은 구약에서 하나님께 드려졌던 첫열매의 성취인 것입니다. 첫열매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그 영입니다. 그러므로 초실절을 누린다는 말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 성령의 부으심을 온전히 누리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삼위일체 되신 아버지 아들 성령이 결코 분리될 수 없고 상호 내재하신 살리는 영입니다.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 하리라" 그러므로 그 영을 따라 행하도록 계속하여 기도로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하루를 마칠 때 우리는 수장 즉 수확의 때를 가질 것입니다. 수장은 충만한 누림을 위하여 충만한 산출의 수확을 모으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장절을 경험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충만한 누림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를 충만히 누리는 것을 예표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누린 최종적인 결과와 완성은 신격의 충만인 아버지의 충만을 영원히 누리는 것입니다. 이 절기는 새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충만히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매년 누렸으나 유월절(무교절) 맥추절(초실절) 장막절(수장절)을 우리는 아들이신 푸른 초장이신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누려야 하며 그 영이신 쉴만한 물가를 누리고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을 그의 보좌 앞에서 생명나무로 날마다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진리에 빛 비추임이 있습니까?
우리는 매일 누려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안식일을 누렸으나 우리는 매일 안식일을 누려야 합니다. 절기를 일년에 한차례 누렸으나 우리는 매일 주님의 절기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전신 갑주를 입는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와 의의 흉배와 진리의 허리띠 평안의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성령의 검 곧 말씀의 검을 구비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누림으로 열방을 내어쫒고 지경을 넓히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출34:24)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번씩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요10:28-2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 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매일 주님을 말씀을 기도로 섭취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리의 허약한 부분을 공격당하며 패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많은 영적인 대적들이 우리를 끌어가려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 안으로 침투해 들어올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누리지 않는다면 많은 죄악의 병균들이 우리를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누님을 누림으로 주님을 속죄제와 속건제로 취하여 죄사함의 은총을 누리며 성령 충만하여 넉넉히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건강한 몸을 갖기 원한다면 합당하게 먹고 좋은 식사를 해야 합니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면 많은 세균들이 죽을 것이며 우리 몸에 면역체가 강화되어 많은 질병이 우리 가까이 올 수 없을 것입니다. 채소와 과일과 곡물과 고기는 유기적인 것들이며 모두 살아있는 것으로부터 나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산 떡이신 그리스도를 먹고 생명수이신 그리스도를 마시기 때문에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미국의 예방의학 권위자인 피터 한센이라고 하는 사람이 "사람이 건강하려면 몇 가지 조심할 것이 있다.
첫째는 적당한 음식을 먹어야하고,
둘째는 적당하게 운동을 해야 하고,
세 번째는 나쁜 습관을 버려야한다." "담배, 술, 화내는 것, 게으름 피우는 것, 이런 것들, 나쁜 습관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그러면 건강하다." 거의 다 알고 있는 상식적인 얘기인 것 같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있습니다.
"이것은 50%고 나머지 50%는 사랑"이라 그랬습니다.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사랑을 하기도 해야 건강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짓습니다. "이웃 사랑은 도덕적 문제만이 아니라 건강상의 문제다" 그랬는데 한 단계 더 붙여서 말한다면 "사랑은 생명문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고 불행하고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건강한 음식을 먹음으로 많은 질병과 병균들을 패배시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고 주님을 매일 먹음으로 매일 그분을 누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 누림으로 주님으로부터 달콤한 사랑을 받기 위하여 태어난 존재임으로 마귀들은 우리에게 근접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날마다 양식으로 음료로 먹는 것입니다. (요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요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 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부활의 첫열매로 드림으로 그 영을 오순절에 부어 주심으로 초실절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요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요7: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 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그 생수는 그분이 부활하시기 전에는 이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부활 안에서 그분이 자신의 형체를 바꾸어 참된 생수의 강인 생명 주는 영이 되신 것입니다. 그분이 부활하신 날부터 그 강이 흐르기 시작하여 이 강에 대한 온전한 누림은 오순절날 그 강은 홍수처럼 제자들에게 임하여 그들을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만족케 하였습니다.
우리는 매일 실제적인 방식으로 그 영을 접촉하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접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그리스도를 양식으로 음료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세끼의 식사를 하는 것처럼 하루동안 매순간 생명 주는 그리스도를 먹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며 우리의 생명의 공급자이며 매일의 양식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모든 배고푼 사람들에게 보리떡과 물고기가 되시는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이 그리스도는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말씀 안에서 현현하시는 생명 주는 영이신 보혜사 성령 님을 접촉하며 누리며 충만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무교절과 추실절과 수장절의 완결 체이신 부활의 주님의 실제를 누리며 주님이 주신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산 예수를 보여주는 한 자매가 있습니다. 그 자매가 누리는 예수의 참맛을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지선,[희망과 용기의 꽃 이지선 이야기] [지선아 사랑해] 수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이지선양은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4학년이던 2000년 7월 여름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오빠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음주운전 차에 부딪힌 것. 차에 불이 나는 바람에 지선씨는 몸의 55%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의료진들이 “가망 없다”며 치료도 안 할 정도였는데 7개월 간의 입원, 또 일본으로 건너가 받은 11차례의 수술로 많이 회복되었지만 예쁘던, 정말 예쁘던 얼굴을 되찾지는 못했습니다.
"제삶은 하나님이 허락한 저의 새 생명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값진 것이었습니다. 2개월 간의 지옥 같았던 화상치료실에서 치료 회복실로 옮겨져 정신이 들기전에 내가 지르던 비명 소리에 놀라 마취에서 깨어났던 수술 ...너무나 비싼 값을 치른 삶이었습니다. 다 타버린 손가락을 한 마디씩 잘라냈고 화상 상처를 덮기 위해 이식한 피부들이 서로 당겨서 손목이나 팔꿈치 겨드랑이처럼 폈다 구부렸다 해야하는 관절들이 사고 전과는 많이 다르게 불편해 졌습니다.
그러나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되었고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사람에게 이 작은 눈썹마저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알았고 막대기 같아져버린 오른팔을 쓰면서 왜 하나님이 관절이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 손이 귀까지 닿은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통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을 백만 분지 일이라도 공감할 수 있었고 이젠 지난 고통마져 소종하게 느껴집니다. 고통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남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가슴이 없었을 것입니다. .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남편 만나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사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쁜 게 다 인줄 알고 살았더랬는데 진짜 축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 몸의 장애가 그동안의 고통이 그것을 가르켜 주었습니다. 정말 중요하고 영원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셨습니다. 몸의 특이함과 불편함으로 위축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인생이 끝났다고 좌절할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끝없는 관심과 세심한 배려 한없는 사랑을 경험하는 하나님의 VIP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알고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 절망이 얼마나 사람을 죽이는지.. 소망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것인지.. 행복은 얼마나 가까이 있는 것이며 세상에 부질없는 것이 무엇인지 기쁨과 감사가 얼마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지...주님은 그것을 깨닫고 알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정말 솔직히 말해서 다치기 전보다 훨씬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덤의 인생은 좀은 불편하기는 해도 걱정이나 근심 어줍잖은 우울함은 없습니다. 소망 가운데 감사함으로 임했던 평안 예전 얼굴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여덟 개의 손가락을 절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요동하지 않고 더 많이 자르지 않아서 감사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동정꺼리밖에 안 되는 이야기지만 하나님께 받은 위로를 통해 많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내 안에 사시는 주님을 자랑하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만일 부활의 주님이 없었다면 이 서울을 다 준다해도 이 나라를 통째로 준다한들 제자 잃어버린 것에 들에 대해 위로가 될 수가 없습니다. 세상 어느 것으로도 저를, 제모습을, 제꿈을, 제삶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보상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은 저를 지켜 주셨습니다.
제가 받은 위로와 평안으로 상한 영혼과 마음을 치료하고 싶습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난은 축복입니다. 힘겹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이기고 나면 주어지는 보물이 있습니다. 고난을 통하지 않고는 배울 수 없는 가질 수없는 열매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저는 이제 알았습니다.
예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제 안에 고난이 가져다 준 축복의 보물들을 정말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몰랐던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고 사랑을 배웠고 그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복된 일이고 행복한 일인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내안에서 살아서 말씀하시고 위로를 평안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무교병과 맥추절과 수장절의 체험을 살아 계신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를 매일 누리면서 살아가는 지선자매의 감동적인 간증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속죄제와 속건제와 소제이신 우리 주님을 전 존재를 열어 생명의 떡으로 먹고 생명수로 마시는 지선이 자매는 생명을 누리되 풍성하게 누림으로 주님이 주신이 주신 참평안과 안식의 축복을 누리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라 나를 먹는 자는 나로 더불어 살 것이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주리지 않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참 기쁨과 평안과 자유와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