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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1-11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 박조준 목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축복하셔서 허락하신 새 땅 가나안에 들어와 그 땅을 차지한 지 25 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가나안의 모든 땅이 이스라엘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민 족들을 지도하고 있던 여호수아도 황혼기에 접어들어 그의 인생을 결산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2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방 대적을 다 멸하시고 안식을 이 스라엘에게 주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 장로들과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 많아 늙었도다 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수아의 일종의 유언장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지금까 지 생사고락을 같이해 왔으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함께 가나안 정복에 참여했던, 사랑하는 자기 의 백성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는 여호수아의 충성스러운 동역자요, 격려자요, 후원자였던 갈 렙이 있었을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피와 눈물과 땀을 함께 흘렸던 동지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전우들도 같이 있었을 것입니다. 노병들이 여호수아의 마지막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새 세대인 젊은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 눈에 띄게 강조되고 있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 하나님 여호와 라는 구절입니다. 3절 말씀을 보세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시니라. 5절에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으사 너희 목전에서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 하나 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8절 에는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기를 오늘날까지 행한 것같이 하라 는 말씀이, 10절 에는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11절에서는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 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로, 우리의 과거를 인도하신 분이십니다. 여호수아는 문자 그대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역사에서 주인공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 일을 자기가 해냈다고 말하지 않습 니다. 3절 말씀을 다시 보세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시니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오늘 우리가 역사적인 이 기점에서 이룰 수가 있었던 모든 것은 모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다스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하신 것입니다 하는 말씀입니다. 여호수 아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모든 싸움은 하나님이 직 접 싸워주셨다는 사실을 그 백성에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과거의 발자취 속에서 하나 님이 함께하셨다는 사실을 긍정합니다.역사의 표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영웅은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가 그 백성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가 싸움을 싸웠으며 그 백성들의 행렬을 인도하였 습니다. 그러면서 그 백성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나는 다 만 하나님의 심부름을 한 것뿐이며, 하나님이 이 삶 속에 역사하신 주인공이십니다 라는 것입니 다. 둘째로, 우리의 미래를 인도하신 분이십니다. 5절 말씀을 보세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으사 너희 목전에서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팔레스틴 땅의 거의 전부를 정복했지만 아직 완전히 다 정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직도 이스라엘의 적들이 팔레스틴 땅 구석구석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행군해야 할 땅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들의 미래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으실 것이다.너희 목전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그들을 떠나게 하실 것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다. 여호수아는 하 나님이 과거에 그들을 인도해 주셨듯이 미래에도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 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승리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적들을 쫓아내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이 우리의 여정을 끝까지 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길 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세요. 셋째로, 우리의 현재도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10절 말씀에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 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했습 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인도하셨듯이, 우리의 미래도 복되게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하나 님은 현재도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싸우고 계십니다. 지금도 우 리 삶 속에서 활동하시며, 지금도 우리의 인격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의 무엇이 세상 사람과 다 릅니까? 시간 따라서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은혜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만일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형성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불 신자의 삶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여호 수아는 22장 5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 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 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이 교훈이 오늘 주신 말 씀에서 계속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한복판에 두어야 합니다. 6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 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삶 의 한복판에 있게 하십시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의 동기가 되게 하세요.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의 원리가 되게 하십시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의 원리가 되게 하십시오. 이 말씀이 여러분 의 삶의 능력이 되게 하십시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의 초점이 되게 하십시오. 이 말씀을 따 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십시오. 모세의 율법책,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지켜 행하십시오 하는 뜻입니다. 앞에서 생각한 여호수아 1장에서도 비슷한 구절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 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 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7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역사의 새 아침에 주께로부터 받았던 말씀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처음에 그가 받은 말씀을 이제 죽음을 앞두고 다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눈을 감을 날이 올 것인데 그때 우리 후손에게 남길 유훈이 무 엇입니까? 우리는 사람들이 마지막 남긴 말을 통해서 그 사람의 일생 동안 지배한 사상이 무엇 이고, 그의 주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로부터 처음 받은 말씀을 일생동안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마지막 순간에도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책 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고 후손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이렇게 평생 말씀을 붙들고 살았던 여호수아에 비추어 우리의 신앙의 수준을 알아보려면 하나 님의 말씀에 나는 얼마나 비중을 두고 사는가를 보면 됩니다. 우리가 왜 성경 말씀을 읽습니까? 일을 위해서, 공부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다면 우리는 성경에 대한 지식으로만 가득 차서 머리 만 커진 기형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6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세요.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말은 지켜 행하라 는 말입니다.요한계시록 1장 3절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 니 때가 가까움이라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강조되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읽는 것과 듣는 것보 다 더 강조되는 말씀은 지키는 것,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 따라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경은 날마다의 삶을 땀흘리며 부지런히 살고 있는 거 리의 사람들을 위해서,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서 주어진 책입니다. 성경은 신학자, 사상가, 철학 자를 위하여 주어진 책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이 가장 크게 기여한 바가 무엇입니까? 성직자의 손에만 들려있던 성경을 빼앗아 평 신도들의 손에 넘겨준 것입니다. 종교개혁 전에는 성경이 신부들만 읽고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 했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후에는 특수한 사람의 손에만 들려져 있었던 이 성경이 모든 사람 에게 내어 준 바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고, 누구나 성경을 연 구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누구나를 위한 책이며, 성경은 우리 모두의 책입니다.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성경의 지시를 구하면서 접근하기만 하면 이 말씀은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여 그 삶을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성경은 철학이 아닙니다. 성경은 사상이 아 닙니다. 성경은 삶의 양식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둘째,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사는 것입니다. 8절 말씀을 보세요.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기를 오늘날까지 행한 것같이 하라 고 했습니다. 친근히 한다 는 말은 본래 히브리어 에서 아주 깊이 짜여진 관계 를 뜻하는 말입니다. 적당한 관계가 아니라 밀도 있는, 심도 있는, 깊이 있는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가까이 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가까이 하느냐? 가 우리 삶의 방식을 결정합니다. 친구를 보면 대개 그 사람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 관계를 통해서 피할 수 없이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우 리의 삶을 형성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을 닮습니 다. 또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됩니다. 우리 삶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에 젖어있는 친구들, 자포자기하고 있는 사람들, 원망과 불평 과 한숨을 토하는 사람들, 비판적이고 중상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주 자리를 같이해 보세요.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사람을 닮아서 혐오할만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 니다. 삶을 긍정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 말씀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주님 이야 기 하기를 좋아하고, 주님의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하십시오. 나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호수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곁에 모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옆에 또한 갈렙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의 선배인 모세를 수종들고 따르면서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모세의 삶 전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장 감동을 준 부분은 출애굽기 33장 11절에 기록되어 있습 니다.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 속삭이면서 밤을 지새우는 장면을 연상해 보세요. 모세는 하나님과 그렇 게 교제했습니다. 스승의 이런 삶을 지켜보면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삶의 비밀을 배웠을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명칭이 여럿 있지만 가장 감명 있는 명칭은 나의 친구 하나님 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향해서 나의 친구 라고 부르시던 하나님,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우리 한국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너무 멀리 계시는 분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 서 교회에서 대표로 기도하면 제일 많이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명칭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높 고 높은 보좌 위에서 낮고 천한 인생을 굽어보시는 하나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 주 멀리 계시는 분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기 계시는 하나님, 내 곁에 계시는 하나님,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 다. 수식어가 많을수록 기도는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아버지 하고 매달리는 기도를 드려보세 요. 우리가 가정에서 아버지를 어떻게 부릅니까? 나를 사랑하시고 부족함이 없이 공급하시는 아 버지 라고 부릅니까? 그저 아버지 하면 됩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아버지에게 무슨 수식어 가 필요합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친구에게 눈물을 흘리며 내 약점도, 내 실수도, 모든 속사정을 과감하게 털 어놓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친구라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는 하나님을 친구처럼 좋아합니까? 여호수아의 말을 들어보세요. 8절에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 와를 친근히 하기를 오늘날까지 행한 것같이 하라 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가까이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셋째, 불신자들과의 관계를 주의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친근히 하라 고 하면서 강조된 하나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12∼13절을 보세요. 너희가 만일 퇴보하여 너희 중에 빠져 남아 있 는 이 민족들을 친근히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피차 왕래하면 정녕히 알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 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필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 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친근히 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바로 하려면 지 금까지 내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과의 교제를 끊어야 합니다. 왜 성경은 그렇게 이방인들과의 혼인을 금했습니까? 그들에게서 우리가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 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영적인 능력과 영적인 성숙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내 생활에 잘못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11절 말씀을 보세요.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 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절정은 주님, 사랑합니다, 하 나님,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경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일부 터 시작합니다. 주님, 이 말씀이 진리입니다. 이 말씀이 옳습니다. 이 말씀이 생명입니다. 이 말씀이 위대한 교훈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가까이 하는 동안에 어 느새 우리는 하나님께 친근함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내 곁에 계신 하나님, 내 사정을 아뢰고 싶은 하나님, 내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 내 친구 되신 하 나님 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주님 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지를 확인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시몬 베드로를 디베랴 바닷가에서 만나서 첫 번으로 하셨던 말씀이 무엇입니까? 요한의 아들 시 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면 말씀을 듣게 됩니다. 사랑하면 말씀을 지키게 됩니다. 사랑하면 계명이 완성됩니다. 사랑하면 그분의 명령을 지킵니다. 요한복음 15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 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은 지키면 내 사 랑 안에 거하리라 했습니다. 계명을 지키면 사랑하게 됩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 분들이 성경을 처음 읽다가 제일 오해를 많이 하는 말씀 가운데 하나가 하 나님을 질투하시는 하나님 이라고 표현한 대목입니다. 이것 때문에 당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질투 라는 말을 사람 사이에 있는 치사한 감정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시기 라 는 말과 질투 라는 말을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시기 는 다른 사람이 잘될 때 배가 아파하는 감 정입니다. 형제간에도 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질투 라는 말은 나만을 사랑해야 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내가 그를 사랑하니까 그도 나만을 사랑하기를 요 구하는 것입니다. 질투 는 사랑의 다른 면입니다.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질투의 감정이 생길 필 요가 없습니다. 옆집 아저씨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내 아내가 질투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 다. 그렇다면 문제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질투합니다. 그래서 현대 신학자 중에 위대한 신학자로 꼽히는 칼 바르트는 성경을 읽다가 이 대목 앞에서 항복했습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그토록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 말씀을 깨닫는 순간 그 는 가슴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질투하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내 마음 전부를 차지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내 모든 것을 요구하시면서 나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 을 생각 하면서 감격해 했습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다른 대상 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과 우리 사이에 아무것도 끼여들기를 원치 않으시고, 끼여들었을 때는 질투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일생을 살았던 여호수아는 그의 동족들에게 하 나님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인도하실 분이시고, 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 을 삶의 한복판에 두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불신자와의 관계를 조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 라고 했습니다. 이 네 가지 명령은 단계적이며 상호보완적입니다. 이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특권을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