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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만든 걸작 「주왕산(周王山)」의 한문학 25수(首) 中 8수(首). 3편>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앞글에 이어--
주왕산(周王山) 국립공원은 경상북도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쳐 있는 주왕산을 중심으로 1976년에 지정된 국립공원이다. 주왕산의 명칭은 중국 진나라의 주왕이 이곳에 피신하였다는 데에서 왔다는 설과 신라시대에 주원왕이 임금의 자리를 버리고 이곳에서 도를 닦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 중에 하나이며, 특히 주왕 계곡은 기암괴석과 다양한 식생이 분포되어 있어 봄에는 신록이,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영남 제1의 명산이다.
이번 3편에서는 앞서 제시한 2편의 한시 11수(首)에 이어 (18)~(25)번, 8수(首)의 「주왕산(周王山)」 시를 소개하겠다. 이번에 소개하는 8수(首)는 앞선 이야기보다 한층 더 깊고 은밀한 주왕산의 속살을 보여준다. 거친 바위산의 귀로(歸路)에서 느낀 애틋함, 선현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숭고함, 그리고 마침내 자연과 하나 되는 절정의 순간을 담아 감탄을 자아내는 줄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2편에도 전편과 마찬가지로 크게 3가지 시정(詩情)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①선계(仙界)의 문이 열리는 기묘한 풍경을 읽을 수 있다. 첩첩이 둘러싼 바위 골짜기로 들어서는 순간(入周王山), 거대한 돌문이 세속의 경계를 완전히 끊어버린다. 또 웅장하게 솟아오른 암벽과 암봉들이 낮에는 흰 구름을 허리에 두르고, 밤에는 은하수를 붙잡아 두는 듯한 기묘하고 영엄한 자태를 뽐낸다. ②두 번째로 벗과 함께 걷는 길, 자연이 주는 위로가 담겨 있다. 산길에서 피어난 시정(詩情)이 묘사되어 있다. 험준한 바위산을 오르고 다시 내려가는 귀로 속(周王山歸路)에서, 문인들은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고단함을 잊고 깊은 우정을 나눈다. 이어 기암절벽 사이로 세차게 쏟아지는 폭포와 맑은 계곡물은 귀와 눈을 씻어주고, 가슴속에 쌓인 세상의 먼지와 번뇌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다. ③세 번째로 선현의 숨결을 이어받는 고결한 여정을 서술했다. 앞서 주왕산을 다녀간 위대한 스승(대산(大山) 이상정 선생)의 시운을 공경히 따르며(謹次大山先生韻), 자연을 바라보는 눈과 학문적 깊이를 더해간다. 주왕산을 노닐고 돌아와 남긴 유람의 감회(游周王山錄後說)는 단순한 산수 구경을 넘어,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고 군자의 도를 되새기는 고결한 성찰의 기록이다.
⇨이번 3편에서는 ⑱김종섭(金宗燮 1743~1791)의 「유주왕산록후설(游周王山錄後說) 1780년(庚辰)」, ⑲권렴(權濂 1701~1781)의 「주왕산(周王山)」, ⑳김사정(金士貞 1552~1620)의 「주왕산에 올라(登周王山)」, (21)이보(李簠 1629~1710)의 「주왕산을 노닐다가(遊周王山)」, (22)권석회(權錫晦 1789~1851)의 「주왕산에 노닐다가(遊周王山)」, (23)조언관(趙彦觀 1805~1870)의 「차성후주왕산유상운(次成侯周王山遊賞韻)」, (24)김태중(金台重 1649∼1711)의 「주왕산귀로증김생필학(周王山歸路贈金生必學)」, (25)서효원(徐孝源 1839~1897)의 「여유원직 정호 입주왕산 근차대산선생운(與柳元直 廷鎬 入周王山 謹次大山先生韻) 무오년(戊午)」 등, 총 25수(首) 중에 8수(首)를 소개한다.
18) 다음 고전수필(說) 「유주왕산록후설(游周王山錄後說) 1780년(庚辰)」은 조선후기 학자이자, 경북 의성군 점곡면(點谷面) 사촌(沙村) 출신인 제암(濟庵) 김종섭(金宗燮 1743~1791)의 작품으로, 『제암집(濟庵集)』 권7(卷之七) 설(說)편에 수록되어 있다. 저자가 1780년(경진년)에 지은 이 글은, 단순히 자연의 웅장함을 보는 것을 넘어 ‘참된 위대함(大觀)은 훌륭한 인물의 덕성과 학문을 본받는 데 있다’는 유학자적 가치관을 담은 명문이다.
"눈에 보이는 산과 바다의 웅장함을 구경하는 데 그치지 말고, 위대한 스승을 찾아 배움을 넓히고 옛 성현의 학문을 닦아 처세의 도리를 아는 진정한 '인생의 대관'을 완성하라"는 깊이 있는 격려와 당부의 글이다.
**「유주왕산록후설(游周王山錄後說) 1780년(庚辰)」** 주왕산을 유람한 기록 뒤에 덧붙이는 말 / 김종섭(金宗燮 1743~1791)
옛날에 소자철(蘇轍)은 천하의 위대한 볼거리(大觀)를 모두 보아 자신의 안목을 넓히고자 했다. 그리하여 태산에 오르고 창해(넓은 바다)를 임했으며, 곤륜산의 높음과 황하의 거대함, 촉도(촉나라 길)의 험난함에 이르기까지 두루 보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그것들을 일컬어 ‘위대한 볼거리를 다 보았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한태위공(한기)을 한 번 만나보고서야 비로소 "천하의 위대한 볼거리를 다 보았다"라고 말했다.
아! 지금 그대는 지난 해에 바다에서 노닐었고, 올해는 주왕산에서 노닐었다. 주왕산은 곧 우리나라(東國)의 곤륜산이다. 그대는 중국 산천의 장대함은 멀어서 나아가 볼 수 없지만, 우리나라의 위대한 볼거리에 대해서는 다 보았다고 할 만하다. 그대 또한 (이것으로) 위대한 볼거리를 다 보았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말하노니, 아니다. 모름지기 위대한 군자(학덕이 높은 인물)의 문정(門庭, 문하)에 가서 노닒으로써 우리나라의 볼거리를 다해야 하고, 또 천백 년 전의 옛 성현들을 상론(尙論,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성현을 논함)함으로써 천하의 위대한 볼거리를 다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대의 볼거리는 어찌 겨우 소자철이 한 명의 한공(韓太尉)을 본 것에서 그치겠는가? 오직 원하건대 그대는 (학문과 처세에서) 어떻게 나아가고 물러설 것인지(進退)를 잘 살펴볼 뿐이다.
[昔蘇子轍欲盡大觀 以大其眼目 登泰山臨滄海 以至崑崙之崇 黃河之大 蜀道之險 莫不遍觀 未嘗謂之盡大觀 及一見韓太尉公而曰盡天下大觀 噫今君去年游于海 今年游於周王 周王卽吾東之崑崙也 子於中華川澤之壯且大 遠不可就觀 而於東國之大觀 可謂盡之矣 子亦以謂盡大觀否 曰未也 須去游大君子門庭 以盡東方之觀 又尙論於千百載之上 以盡天下之大觀 則子之觀 奚但蘇子之於一 韓公而止也 惟願子看如何進退耳]
[주1] 소자철(蘇子轍) : 북송의 문장가 소철(蘇轍). 그의 유명한 글 「상추밀한태위서(上樞密韓太尉書)」의 내용을 인용했다.
[주2] 한태위공(韓太尉公) : 중국 북송(北宋) 시대의 명재상이자 명장인 한기(韓琦, 1008~1075)를 높여 부르는 말. 소철은 한기를 만나 그의 당당하고 큰 도량과 덕성을 보고 나서야 "진정한 대관(大觀)을 보았다"고 감탄했다.
[주3] 주왕산(周王山) : 경북 청송에 있는 산으로, 기암괴석이 웅장하여 예로부터 영남의 명승지로 꼽혔다. 글쓴이는 이를 중국의 곤륜산에 비견했다.
[주4] 상론(尙論) : 《맹자(孟子)》에 나오는 말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옛 성현들의 삶과 학문을 논하며 그들과 벗이 된다는 뜻이다.
○ 내용인즉, 이 글은 주왕산을 다녀온 지인에게 건네는 서문(또는 발문) 형태의 조언이다. 글의 구조는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소철의 고사 인용해 ‘자연의 대관(大觀)과 인간의 대관을 비교했다. 저자는 먼저 북송의 소철이 웅장한 대자연을 모두 보고도 감탄하지 않다가, 당대의 위대한 인물인 한기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의 가장 위대한 장관을 보았다"고 말한 고사를 꺼냈다. 이는 눈에 보이는 거대한 자연보다, 내면의 큰 덕을 지닌 '인물'을 보는 것이 진짜 안목을 넓히는 길임을 시사했다. 두 번째는 조선의 산천을 넘어 '학문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함을 강조했다. 지인이 지난해에는 바다를, 올해는 조선의 곤륜산이라 불리는 주왕산을 다녀온 것을 두고 "우리나라 자연의 대관은 다 보았다"고 인정해 준다. 하지만 거기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경종을 울린다. 진정한 대관에 이르기 위해서는 당대 학덕이 높은 큰 선비(大君子)의 문하에 들어가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셋째로 시공간을 초월한 '성현과의 만남'과 올바른 처세(進退)를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공간적 한계를 넘어, 천백 년 전의 옛 성현들의 학문을 연구하는 상론(尙論)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소철을 뛰어넘는 '천하의 대관'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학문을 바탕으로 세상에 나아가고 물러설 때(進退, 벼슬길에 나아가 의리를 행하거나 물러나 학문에 힘쓰는 것)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당부하며 글을 맺었다.
19) 다음 칠언율시(七言律詩) 「주왕산(周王山)」은 조선후기 학자로 청송 안덕에 거주했던 후암(厚庵) 권렴(權濂 1701~1781)의 작품으로, 『후암집(厚庵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저자 권렴(權濂)이 청송의 명승지인 주왕산(周王山)을 찾아 그 웅장한 자연경관과 감흥을 읊은 한시다. 주왕산의 기암괴석과 깊은 계곡, 그리고 그곳에서 느낀 선계(仙界)와 같은 분위기를 유려하게 표현하고 있다.
권렴의 「주왕산」은 ’주왕산의 거칠고 웅장한 자연(거석, 폭포)에서 시작하여, 신선 세계와 같은 신비로움(백운, 노학)을 거쳐, 정상에서의 호방한 기상(천리목, 백층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찰에서 시를 짓는 담담하고 깊은 여운(선상, 구제)‘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다. 단순히 경치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세상을 벗어나 자연과 동화되어 열흘 동안 풍류를 즐긴 조선시대 선비의 낭만과 호연지기가 돋보이는 명시다.
**「주왕산(周王山)」** / 권렴(權濂 1701~1781)
巨石叢巖故不齊 거대한 돌과 우뚝 솟은 바위 무리 원래부터 고르진 않으나,
洞門深鎖白雲低 골짜기 문은 깊이 닫힌 듯하고 흰 구름은 낮게 내려앉았다.
癡龍一壑吟猶壯 어리석은 용은 한 골짜기에서 읊조림이 여전히 웅장하고
老鶴三淸夢欲迷 늙은 학은 삼청(선계)에서 꿈이 혼미해지려 하는구나.
絶頂直窮千里目 산꼭대기에 올라 곧장 천리 밖까지 눈길을 다하는데
長空誰駕百層梯 높은 하늘에 그 누가 백 층의 사다리를 놓았는가.
聯翩十日收餘興 열흘 동안 연이어 거닐며 남은 흥취를 거두고
共倚禪牀續舊題 함께 승려의 평상에 기대어 예전에 지었던 시제를 이어가네.
○ 내용인즉, [1~2구]에선, 주왕산의 첫인상인 기암괴석의 웅장함과 깊은 계곡의 신비로움을 묘사했다. 구름이 낮게 깔려 비경이 감추어진 모습을 '동문이 깊이 닫혔다'고 표현했다. [3~4구]에선, 계곡을 흐르는 세찬 물줄기(폭포)를 '치룡(癡龍, 어리석은 용)'에 비유하여 그 소리가 웅장함을 나타냈고, 선계에 사는 '노학(老鶴)'을 등장시켜 주왕산의 탈속적인 분위기를 강조했다. [5~6구]에선, 정상에 올라 바라본 탁 트인 조망(천리목)과,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절벽의 형상을 '백 층 사다리'에 비유하여 시각적 수직감을 극대화했다. [7~8구]에선, 산에 머문 지 열흘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흥취가 남아 있으며, 사찰의 선상(禪牀)에 앉아 동행 유람한 이들과 함께 시를 짓는 풍류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 시는 산수유람이 성행했던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자연관을 잘 보여줍니다. 주왕산의 거칠고 독특한 바위 지형을 대구(對句)와 과장법을 통해 생동감 있게 그려냈으며,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승려나 문인들과 교류하던 풍류 정신이 돋보인다.
20) 다음 ’東‘ 운목(통운)의 칠언율시 「주왕산에 올라(登周王山)」는 조선중기 의성군 출신 의병장‧학자 후송재(後松齋) 김사정(金士貞 1552~1620)의 작품으로, 『후송재문집(後松齋文集)』 권1(卷之一)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주왕산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여성의 머리 모양에 비유한 섬세한 묘사로 시작해, 정상에서 느끼는 대자연의 호방한 기상(호연지기)으로 확장을 이룬다. 마지막에는 장자의 고사를 멋지게 녹여내어, 이 위대한 자연을 직접 보지 못하고 일상에 갇혀 지내는 인간의 좁은 식견을 은근히 꼬집으며 풍류의 가치를 드높인 뛰어난 유람시다.
○ 내용인즉, 시인의 시선이 주왕산의 전경을 포착하며 시작된다. 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좋은 친구들, 그리고 신선 같은 풍류를 아는 동반자들과 함께 이곳을 다시 찾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낸다. 주왕산 정상에 올라 바라본 호방한 기상을 노래하며, 대자연의 거대한 스케일을 고사를 인용해 표현했다. 주왕산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남쪽으로 펼쳐진 산줄기와 벌판을 바라보니 가슴이 탁 트여, 호연지기가 솟구치는 심경을 '팔구흉(八九胸)'으로 형상화했다. 장자의 고사를 인용한 철학적 깊이가 돋보인다. 이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주왕산의 풍경을 보지 못하고 속세에 갇혀 예전의 유람 약속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그 좁은 식견이 마치 겨울을 모르는 여름벌레와 같아 도리어 실소(哂)를 금할 수 없다는 뜻이다. 대자연의 호연지기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풍류객으로서의 자부심이 함께 묻어난다.
**「주왕산에 올라(登周王山)」** / 김사정(金士貞 1552~1620)
周王山色入望中 주왕산의 산 빛이 바라보는 눈 속에 들어오니
一朶螺鬟翠揷空 한 송이 소라 모양 비녀 같은 푸른 봉우리 공중에 꽂혀 있네.
願與良朋同蠟屐 원하노니 좋은 벗들과 함께 나막신에 밀칠 하고
更期仙侶會琳宮 다시 신선 같은 동반자 기약하여 아름다운 사찰에서 만나고 싶어라.
滄溟東豁三千眼 푸른 바다 동쪽으로 활짝 열려 삼천 개의 눈을 뜨게 하고
雲夢南呑八九胸 운몽택 남쪽으로 삼켜내니 여덟아홉 개의 가슴이 웅장해지네.
何處有人違宿約 어느 곳에 묵은 약속 어기는 사람 있단 말인가
語氷還哂篤時䖝(蟲) 얼음을 말하려 하니 도리어 한 철에 얽매인 벌레를 비웃게 되누나.
[주1] 일타라환(一朶螺鬟) : 여인의 소라 모양 머리 고계를 뜻하는 표현으로, 주왕산의 기암괴석 봉우리가 마치 푸른 비녀처럼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기괴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주2] 랍극(蠟屐) : 등산할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밀을 칠한 나막신으로 유람을 상징.
[주3] 림궁(琳宮) : 도교의 궁궐이나 주왕산의 아름다운 사찰(대전사)을 뜻함.
[주4] 삼천안(三千眼) : 눈이 번쩍 뜨일 만큼 광활한 풍경을 표현함.
[주5] 운몽택(雲夢澤) : 중국의 거대한 호수.
[주6] 팔구흉(八九胸) : 맹자의 고사에서, 운몽택을 삼킬 듯한 기상의 남쪽으로 펼쳐진 산줄기와 벌판을 바라보며 가슴이 탁 트이고 호연지기가 솟구치는 심경을 형상화함.
[주7] 독시충(篤時蟲)과 어빙(語氷) : 《장자(莊子)》 추수(秋水) 편에 나오는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말할 수 없고, 한 철에 얽매인 벌레(하충)에게 얼음을 말할 수 없다(夏蟲不可以語冰)"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21) 다음 ’東’ 운목의 칠언율시 「주왕산을 노닐다가(遊周王山)」는 조선후기 안동시 출신 문인 경옥(景玉) 이보(李簠 1629~1710)의 작품으로, 『경옥유집(景玉遺集)』 권1(卷之一)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저자가 청송의 명산인 주왕산을 유람하며, 주왕산의 장엄한 바위 절경과 그곳에 얽힌 전설을 바탕으로, 마치 신선의 세계(洞天)에 들어온 듯한 황홀함과 자연의 위대함을 노래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주왕산의 독특한 지형적 특징인 거대한 암벽과 깊은 계곡을 중국의 신화적 고사(우공, 과아)를 빌려 역동적으로 찬양한 명시다. 주왕의 전설이 서린 역사의 현장에서 시인은 단순한 등산객에 머물지 않고, 바람을 타고 달과 구름을 벗 삼으며 신선과 시를 논하는 도학적 풍류와 호방한 기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왕산을 노닐다가(遊周王山)」** / 이보(李簠 1629~1710)
巖逕鏗鏗響短筇 바윗길에 쨍그랑쨍그랑 짧은 대지팡이 소리 울리고
霞裾拂拂御冷風 노을빛 옷자락은 떨치며 찬 바람을 맞아들이네.
周王城上月千古 주왕성 위에는 천고의 달이 떠 있고
靑鶴巢邊雲萬重 청학의 둥지 주변에는 구름이 만 겹이나 쌓였구나.
愚叜移來曾幾日 우공(愚公)이 산을 옮겨온 지 일찍이 몇 날이나 되었나.
夸娥削出費多功 과아(夸娥)가 깎아내느라 참으로 많은 공을 들였도다.
洞天㴱處招仙子 신선 세계(동천) 깊은 곳에서 신선을 불러내어
手把苔篇細討工 손에 이끼 낀 책을 쥐고 자구(字句)를 세밀하게 다듬어보네.
[주1] 단공(短筇) : 짧은 대나무 지팡이, 문인들이 등산할 때 필수품. 바윗길을 걸을 때마다 지팡이가 부딪히며 나는 맑은 소리(鏗鏗)를 청각적으로 표현했다.
[주2] 하거(霞裾) : '노을빛 옷자락'이라는 뜻, 저녁노을이 질 무렵 산을 오르고 있거나 혹은 시인 스스로가 신선처럼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높은 산의 찬 바람을 맞고 있는 모습을 시각화했다.
[주3] 주왕성(周王城) : 당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하고 신라로 도망쳐 주왕산에 숨어들었다는 '주왕(周王)'의 전설이 깃든 성이다. 옛 역사는 사라졌지만, 그 성터 위에는 변함없이 천고의 달이 비추고 있어 인생의 무상함과 자연의 영원함을 대비시켰다.
[주4] 청학(靑鶴) : 신선이 타고 다닌다는 상상의 새, 주왕산의 깎아지른 절벽(학소대)에 구름이 겹겹이 쌓인 신비로운 모습을 묘사했다.
[주5] 우수(愚叜) : 대를 이어 산을 옮겼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우공을 뜻함.
[주6] 과아(夸娥) : 열자에 등장하는 힘이 센 천신(과아씨의 두 아들)으로 우공을 도와 산을 옮겨준 신이다.
○ [1~2구]에선, 주왕산에 오르는 화자의 모습을, [3~4구]에선, 주왕산의 장엄한 풍경과 역사적 전설을. [5~6구]에선, 기이한 암벽 절경에 대한 예찬(중국 고사 활용)을. [7~8구]에선, 신선 세계(洞天)에서의 풍류와 문학적 자부심(신선의 경지)을 보여주며 마무리했다.
22) 다음 ‘灰’와 ‘刪’ 운목의 칠언절구 2수(首) 「주왕산에 노닐다가(遊周王山)」는 조선후기 학자 역파(櫟坡) 권석회(權錫晦 1789~1851)의 작품으로, 『역파문집(櫟坡文集)』 권1(卷之一)에 수록되어 있다. 저자가 주왕산의 변함없는 절경 예찬과 세월의 흐름에 따른 인생무상(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한 한시다.
이 시는 봄이나 초여름에 피는 붉은 꽃(단화)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징으론, 전반부(1~4구)에서는 주왕산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묘사(先景)하고, 후반부(5~8구)에서는 변하지 않는 자연과 대비되는 인간의 늙음과 회한을 감상적으로 표현(後情)하는 선경후정(先景後情)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주왕산을 노닐다가(遊周王山)」** / 권석회(權錫晦 1789~1851)
<제1수> ‘灰’ 운목, 평기식
松溪十里萬峰回 소나무 시냇길 십 리에 일만 봉우리 둘러섰고
仙境雲烟滿眼來 신선 세계 같은 구름과 안개가 눈앞에 가득 밀려오네.
欲教泉石增顔色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에 빛을 더해주려는 듯,
朶朶丹花挾岸開 송이송이 붉은 꽃들이 강기슭을 끼고 피었구나.
<제2수> ‘刪’ 운목, 측기식
三入名區卅載間 이 이름난 곳(주왕산)을 서른 해 동안 세 번이나 찾아왔으니
雲山無改舊時顔 구름 덮인 산은 옛 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네.
潦倒塵埃成底事 나는 속세의 티끌 속에서 늙고 병들어 도대체 이룬 일이 무엇인가.
仙靈應笑鬢毛斑 산신령이 살포시 센 내 귀밑머리를 보고 응당 비웃겠구나.
[주] '노도(潦倒)'는 기운이 없고 늙어 쇠약한 모습, '진애(塵埃)'는 속세의 찌든 삶을 뜻함.
○ 내용인즉, [1~2구]에선, 주왕산의 장엄하고 신비로운 첫인상을 노래했다. 소나무가 우거진 계곡을 따라 일만 개의 바위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선 주왕산의 웅장한 지세를 묘사했다.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신선이 사는 세계(선경)에 발을 디딘 듯한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3~4구]에선, 기슭에 피어난 붉은 꽃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천석(泉石)'은 샘과 돌, 즉 자연 풍경을 뜻한다. 맑은 시내와 기이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주왕산에 화사함을 더해주려는 듯, 물가마다 송이송이 피어난 붉은 꽃(수달래 또는 진달래)이 푸른 산세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5~6구]에선, 변함없는 자연의 모습을 그렸다. '삽재(卅載)'는 30년을 의미한다. 시인은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곳을 총 세 번 방문했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주왕산의 구름과 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푸르고 아름다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7~8구]에선, 자연 앞에서 느끼는 인생의 무상함과 자신에 대한 자책을 하며 끝맺었다. 변하지 않는 자연(6구)과 달리, 자신은 속세에서 허덕이며 나이만 먹고 이룬 것이 없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희끗희끗하게 세어버린 귀밑머리(화자의 늙음)를 보면 주왕산의 신선이나 산신령이 "그동안 무얼 하다 그렇게 늙어서 왔느냐"라며 비웃을 것 같다고 독백하며 시를 마무리했다.
23) 다음 ‘尤’ 운목의 칠언율시 「차성후주왕산유상운(次成侯周王山遊賞韻)」은 조선후기 학자 하담(荷潭) 조언관(趙彦觀 1805~1870)의 작품으로, 『하담집(荷潭集)』 권1(卷之一)에 수록되어 있다. 성후(成侯, 성씨 성을 가진 원님 또는 수령)가 주왕산을 유람하며 지은 시의 운자(韻字)를 따라 지은 한시다. 조선 남부의 명승지인 주왕산(경북 청송군)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 속에서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회화적으로 그려냈다. 전체적으로 수려한 묘사와 대구(對句)가 뛰어난 작품으로, 번잡한 세상일을 잊고 자연과 하나가 된 조선 후기 문인의 풍류가 그대로 녹아있다.
**「次成侯周王山遊賞韻」** / 조언관(趙彦觀 1805~1870)
周王奇景最南州 주왕산의 기이한 경치는 남쪽 고을(영남)에서 으뜸이니
暇日肩輿辦勝遊 한가한 날에 가마를 채비하여 명승지 유람을 떠나네.
已賞䳌花餘興味 이미 진달래꽃(두견화)을 감상했어도 흥취가 여전히 남아
㪅翩鳬舃挈朋儔 다시 신을 재촉해 가볍게 걸으며 벗들을 이끌고 가네.
頂丹老鶴行聲報 정수리 붉은 학(단정학)은 울음소리로 사람의 행차를 알리고
眉白高僧短律詶 눈썹 하얀 고승은 짧은 시(율시)를 지어 화답하누나.
緩步微吟詩趣足 느릿하게 걸으며 조용히 읊조리니 시적 흥취가 넉넉하고
滿山風物一笻收 온 산의 아름다운 풍경이 지팡이 하나에 다 들어오네.
[주1] 성후(成侯) : '후(侯)'는 고을 수령을 높여 부르는 말. 성씨를 가진 수령(군수나 현감)이 먼저 지은 시에 조언관이 화답한 것이다.
[주2] 견여(肩輿) : 어깨에 메는 가마. 당시 양반이나 수령들이 산을 오를 때 타던 것.
[주3] 견화(䳌花) : 두견화(杜鵑花), 즉 진달래꽃. 봄철 주왕산의 풍경.
[주4] 부석(鳬舃) : 지방 수령의 신발을 뜻하는 고사성어로, 여기서는 동행한 수령의 발걸음 또는 유람길을 의미함. 또는 후한(後漢) 시절 왕조(王喬)라는 현감이 신발을 부부새(오리)로 변하게 해 날아다녔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여, 지방 수령의 행차를 뜻한다.
[주5] 일공(一笻) : 대나무 지팡이 하나를 뜻하며, 유람하는 시인 자신을 비유함.
○ 내용인즉, 이 시는 봄날의 주왕산을 배경으로 한 선비들의 격조 높은 유람 문화를 잘 보여주는 칠언율시다. [1~2구]에선, 주왕산이 남쪽 지방 최고의 명승지임을 찬탄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유람을 시작한다. [3~4구]에선, 지지 않는 봄날의 흥취 속에서 벗들과 함께 산을 오르는 경쾌한 발걸음을 묘사했다. [5~6구]에선, 시각적 대비와 신선 같은 분위기가 돋보이는 구절이다. 붉은 정수리의 '늙은 학'과 하얀 눈썹의 '고승'을 대비시켜 주왕산이 가진 깊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그 안에서 시를 주고받는 고상한 풍류를 표현했다. 마지막 [7~8구]에선, 서두르지 않고 자연을 즐기는 시인의 태도가 드러난다. 천천히 걸으며 시를 짓다 보니, 온 산의 풍경이 결국 내 지팡이 끝(내 시선과 마음) 안에 모두 담긴다는 호방하면서도 여유로운 깨달음으로 시를 마무리했다.
24) 다음 ‘寒’ 운목의 오언절구 「주왕산귀로증김생필학(周王山歸路贈金生必學)」은 조선후기 유학자 적암(適庵) 김태중(金台重 1649∼1711)의 작품으로, 『적암문집(適庵文集)』 권1(卷之一)에 수록되어 있다. 측기식 한시 「주왕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김생 필학에게 주다(周王山歸路贈金生必學)」는 산속에 은거하며 청빈하게 살아가는 선비의 고결한 지조를 찬양한 작품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산속 생활의 즐거움만 이야기하고 현실적인 곤궁함이나 배고픔은 원망치 않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고결하니 그 고결한 덕성은 자연스레 세상에 퍼지네.”
결국 이 시는 주왕산에서 만난(혹은 그곳에 사는) '김생 필학'이라는 인물에게 돌아오는 길에 선물한 시다. 시인은 그의 가난하지만 기품 있는 삶을 '깊은 산속의 난초'에 빗대어 표현했다. 겉으로는 가난해 보일지라도 내면의 향기는 감출 수 없다는 동양적인 미덕을 아름다운 자연 이미지로 승화시킨 명작이다.
**「주왕산귀로증김생필학(周王山歸路贈金生必學)」** / 김태중(金台重)
但道山居好 다만 산에 사는 게 좋다고만 말할 뿐,
不言生計寒 살림살이 가난하다는 말은 않네.
幽蘭誰遣採 그윽한 난초를 뉘라서 캐 가랴마는
香遠在風端 향기는 멀리 바람 끝에 묻어오네.
○ 내용인즉, [기구(1행)]에선, '김생 필학'이라는 인물은 주왕산에 머무는 것이 그저 좋다고만 말한다. 세속의 명예나 부귀를 탐하지 않고 자연과 동화되어 사는 삶에 만족하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태도가 드러난다. [승구(2행)]에선, 不言生計寒 실제 산속 생활은 먹고살기 힘들고 척박하(寒)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가난을 불평하거나 하소연하지 않는다. [전구(3행)]에선, '유란(그윽한 난초)'은 깊은 골짜기에 숨어 피는 꽃으로, 세속에 타협하지 않는 고결한 선비(김생 필학)를 비유한다. 굳이 누군가 알아보고 꺾어 가거나(발탁하거나)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결구(4행)]에선, 난초는 깊은 산중에 숨어 있어도 그 향기(덕망과 고결함)만큼은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김생이 비록 산속에 숨어 살며 알아주는 이가 드물지라도, 그의 뛰어난 인품과 학식은 결국 세상이 알게 될 것이라는 시인의 깊은 찬사와 존경이 담겨 있다.
25) 다음 ‘齊’ 운목의 칠언율시 「여유원직 정호 입주왕산 근차대산선생운(與柳元直 廷鎬 入周王山 謹次大山先生韻) 무오년(戊午)」은 구한말 청송군 지역 의병장, 문인 석간(石澗) 서효원(徐孝源 1839~1897)의 작품으로, 『석간문집(石澗文集)』 권1(卷之一)에 수록되어 있다. 저자가 ‘무오년(1858년)에 벗인 류원직(柳元直), 류정호(柳廷鎬)와 함께 주왕산(周王山)을 유람하며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선생의 시를 차운(次韻)하여’ 지은 한시다. 웅장하고 신비로운 주왕산의 절경과 그 속을 거니는 풍류가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여유원직 정호 입주왕산 근차대산선생운(與柳元直 廷鎬 入周王山 謹次大山先生韻) 무오년(戊午)」** / 서효원(徐孝源 1839~1897)
疊壁層巒萬不齊 겹겹의 절벽과 중첩된 봉우리들 만 가지로 제각기 다른데
遊人筇屐自高低 유람하는 이들의 지팡이와 나막신은 자연스레 높아졌다 낮아지네.
奇巖聳出撐天立 기이한 바위들은 솟구쳐 나와 하늘을 떠받치듯 서 있고
老瀑懸空噴雪迷 오래된 폭포는 공중에 걸려 눈을 뿜어내듯 어지러이 쏟아지네.
地接竆源開玉峽 땅은 아득한 근원과 맞닿아 아름다운 옥빛 골짜기를 열었고
路通仙界度雲梯 길은 신선의 세계로 통하여 구름 사다리를 건너는 듯하네.
登臨竟日尋眞去 온종일 높은 곳에 올라 참된 경치(또는 진리)를 찾아가며
收拾風光摠品題 눈앞의 풍광을 거두어 담아 모두 시로 읊어보네.
[주1] 근차대산선생운(謹次大山先生韻) : 영남 남인의 거두인 대산 이상정(1711~1781) 선생이 남긴 시의 운자(韻字)를 조심스럽게 따라서 지었다는 뜻. (운자는 齊, 低, 立, 迷, 梯, 題)
[주2] 공극(筇屐) : 대나무 지팡이(筇)와 나막신(屐)으로, 전통적인 산행 복장이나 유람을 상징함.
[주3] 분설(噴雪) : 폭포수가 세차게 쏟아지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모습을 눈(雪)을 뿜어내는 것에 비유했다.
[주4] 심진(尋眞) : 직역하면 '참됨을 찾는다'는 뜻, 속세를 벗어난 자연의 참된 비경을 구경하거나 도(道)를 추구함을 의미함.
[주5] 품제(品題) : 사물의 등급을 매기거나 비평한다는 뜻, 여기서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시 비석을 남기거나 시 구절로 노래한다는 의미다.
○ 내용인즉, 이 시는 청송 주왕산의 역동적이고 기암괴석이 가득한 풍경을 눈앞에 보듯 생생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1~2구]에선, 들쭉날쭉 불규칙하게 뻗은 거대한 절벽과 봉우리들의 호쾌한 모습을 보여준 뒤, 그 험준한 산세에 맞추어 지팡이를 짚고 오르내리는 등산객(시인 자신과 벗들)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대비시켰다. [3~4구]에선,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거대한 바위의 정적인 웅장함과, 하얀 물보라를 뿜으며 쏟아지는 폭포의 동적인 아름다움이 완벽한 대조를 이루었다. [5~6구]에선, 깊고 깊은 골짜기(옥협)를 지나 마치 인간 세상이 아닌 신선의 세계(仙界)로 들어가는 듯한 신비로운 감흥을 구름 사다리(雲梯)라는 시어를 통해 극대화했다. [7~8구]에선,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온종일 자연의 참모습을 만끽한 시인은, 가슴속에 가득 담아온 주왕산의 아름다운 풍광들을 하나하나 시의 소재로 삼아 기록하며 유람의 깊은 여운을 달래고 있다. 결국 대산 이상정이라는 대유학자의 발자취를 따르며, 자연의 위대함 속에서 호연지기를 기르고 문학적 풍류를 즐기는 영남 선비의 멋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