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31 해설
[19~22]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 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질투는 나의 힘」-
(나) 그동안 나는
내 뒷모습이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사치를 부려 왔다.
내 뒷모습에 가끔 함박눈이 내리고
세한도의 소나무가 서 있고
그 소나무에 흰 눈꽃이 피기를 기다려왔으나
내 뒷모습에도 그믐달 같은 슬픈 얼굴이 있었다.
오늘은 내 뒷모습에 달린 얼굴을 향해 개가 짖는다.
아이들이 달려와 돌을 던진다.
뒷모습의 그림자끼리 비틀비틀 걸어가는 어두운 골목
보행등의 흐린 불빛조차 꺼져 버린다.
내일은 내 남루한 뒷모습에 강물이 흘러라.
내 뒷모습의 얼굴은 둥둥 강물에 떠내려가
㉠배고픈 백로한테 쪼아 먹혀라
- 정호승,「뒷모습」-
(다) 고니 떼가 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다
그 꽁무니에 물결이 여럿 올올이
고니 떼를 따라가고 있다
가만, 물결이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니다
강 위쪽에서 아래쪽까지 팽팽하게 당겨진
수면의 검은 화선지 위에
고니 떼가 붓으로 뭔가를 쓰고 있는 것,
붓을 들어 뭔가를 쓰고 있지만
웬일인지 썼다가 고요히 지워 버리고
또 몇 문장 썼다가 고요히 지워 버리고
저 문장은 구차한 형식도 뭣도 없으니
대저 만필(漫筆)이라 해야 할 듯,
애써 무릎 꿇고 먹을 갈지 않고
손가락 끝에 먹물 한 점 묻히지 않는
평생을 쓰고 또 써도 죽을 때까지
얇은 서책 한 권 내지 않는 저 고니 떼,
이 먼 남쪽 만경강 하구까지 날아와서
물 위에 뜻 모를 글자를 적는 심사를
나는 사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쓰고 또 쓰는 힘으로
고니 떼가 과아니, 과아니, 하며
한꺼번에 붓대를 들고 날아오르고 있다
허공에도 울음을 저는 저 넘치는 필력을
나는 어찌 좀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 안도현,「고니의 시작(詩作)」-
*사사(師事):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음.
19 (가)~(다)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가)와 (나)는 단정적 어조를 써서 시적 화자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② (가)와 (다)는 회상의 기법을 활용해 과거와 현재를 대비하고 있다.
③ (나)와 (다)는 비슷한 통사 구조를 반복해 시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④ (가), (나), (다) 모두 반어적 표현을 활용해 시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⑤ (가), (나), (다) 모두 시적 화자가 작품 표면에 등장해 자신의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
20 <보기>를 바탕으로 (가)의 시어를 해석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기형도는 도시인들의 삶을 담은 시들을 많이 발표했다. 그는 도시의 생활 속에서 자신이 비록 절망하고 병들더라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려고 애썼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부정적인 표현들은 자신의 불행에 대한 좌절보다는 그것을 이겨 내려는 의지를 바탕에 깔고 있다.
① ‘공장’은 시적 화자가 여러 삶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과 관련이 있겠군.
②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라는 표현은 자신이 저버릴 수 없었던 많은 삶들이 있었다는 것이겠군.
③ ‘개처럼’ 공중에서 머뭇거렸다는 것은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화자의 절망적 상황을 표현한 것이겠군.
④ ‘질투’가 희망의 전부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불행에 대한 절망보다는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겠군.
⑤ ‘사랑’은 궁극적으로는 화자가 자기 삶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가장 큰 힘으로 작용했음을 추리할 수 있겠군.
21 <보기>는 (다)의 작가와 나눈 가상 인터뷰이다. 그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질문 1: 이 시를 쓴 그날은 어떤 상황이었나요?
*시인: 그날은 만경강 하구에서 강변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
*질문 2: 고니 떼는 그때 발견하셨나요?
*시인: 네 그렇지요. 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는 고니 떼를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
*질문 3: 고니 떼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던가요?
*시인: 고니 떼의 모습이 마치 수면 위에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쓰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
*질문 4: 고니 떼의 태도가 부러우셨던 것이군요?
*시인: 네 그렇습니다. 제 상상이겠지만 시집을 내서 명성을 얻고 싶어 하는 제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
*질문 5: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것인지요?
*시인: 고니 떼처럼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창작하는 그런 시인으로 생활하고 싶습니다.… ⓔ
① ⓐ ② ⓑ ③ ⓒ ④ ⓓ ⑤ ⓔ
22 ㉠에 담긴 시적 화자의 심경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
① 나는 자연의 일부분으로 돌아가고 싶다.
② 나의 희생을 기대하는 이에게 나를 바치고 싶다.
③ 죽음의 순간만은 아름다운 자연에서 맞이하고 싶다.
④ 나약한 모습이더라도 다른 이에게는 힘이 될 수 있겠다.
⑤ 초라한 내 모습이 산산이 부서져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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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 현대시 1
(가) 기형도,「질투는 나의 힘」
http://blog.naver.com/japanbook/220244341426
http://blog.naver.com/kls12/110145055234
[해제] 이 작품은 미래에서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재설정하여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화자는 삶에 대해 많은 열정으로 살아왔지만, 그런 과정에서 얻은 결과가 허망하고, 실속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하려 노력하였으나, 결국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않고, 사랑보다는 질투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음을 반성하고 있다.
[주제] 질투밖에 없는 자기 삶을 반성함.
1~2행: 자신 없는 삶
3~6행: 지나치게 의욕적이고 허황된 삶
7~11행: 질투밖에 없는 삶
12~14행: 자신조차 사랑하지 않는 삶
(나) 정호승,「뒷모습」
http://blog.naver.com/kls12/110145056745
http://blog.naver.com/korehan3/130143225269
[해제] ‘나’는 자신이 지조 있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자신의 뒷모습이 초라하고 암울하고 절망적인 모습밖에 남아 있지 않음에 우울해 하고 있다. 현재의 암울한 뒷모습을 그대로 방치하기보다는 미래에는 이러한 뒷모습을 과감히 깨뜨리고 싶은 마음을 표출하고 있다.
[주제] 절망적이고 암울한 뒷모습을 통한 자기 반성과 극복 의지
1~2행: 뒷모습이 아름다워지기를 바랐음.
3~6행: 자신의 슬픈 뒷모습
7~10행: 암울하고 절망적인 뒷모습
11~13행: 남루한 뒷모습을 떨쳐 버리고 싶은 마음
(다) 안도현,「고니의 시작(詩作)」
http://blog.naver.com/kls12/110145060858
http://blog.naver.com/gzone9599/150142975381
[해제] 이 작품은 화자가 강가의 고니 떼를 발견하고 그 고니 떼의 모습을 지켜보던 중, 무언가를 끊임없이 적고 있는 고니 떼의 모습에서 자신의 창작 활동에서 과감하지 못했던 모습을 반성하고 있다. 형식이나 자기 과시에 관심을 갖지 않는 고니 떼의 모습에서 자신의 욕망에 찬 글쓰기를 반성하고 있으며, 고니 떼의 멈추지 않는 강렬한 창작 욕구를 배우고 싶어 한다.
[주제] 고니 떼를 통해 느끼는 창작의 욕구
1~3행: 강가에서 고니 떼를 발견
4~19행: 고니 떼의 글쓰기 모습
20~24행: 고니 떼의 필력을 배우고 싶은 마음
19 작품 간의 공통점 파악 ⑤
(가)에서는 시적 화자인 ‘나’가 자신의 질투뿐인 삶을 들여다보고 있으며 (나)에서는 시적 화자인 ‘나’가 남루한 자신의 뒷모습을 되돌아보고 있다. (다)에서는 시적 화자인 ‘나’가 고니의 모습을 통해 그동안 넘치는 필력으로 시를 쓰지 못한 자신의 마음과 태도를 반성하고 있다. 세 작품은 공통적으로 시적 화자가 작품의 표면에 드러나 자기 내면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다.
① (가)와 (나)는 모두 영탄적 어조를 써서 화자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② (가)에서는 회상의 기법이 쓰였으나, (다)에서는 회상의 기법이 드러나 있지 않다. 과거와 현재의 대비는 (가)와 (다) 모두 나타나 있지 않다.
③ 비슷한 통사 구조가 되풀이되어 시적 의미를 강조하는 것은 (나)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다)에는 ‘고요히 지워 버리고’ 등이 되풀이되고 있다.
④ (가), (나), (다)에서는 반어적 표현을 쓰고 있지 않다.
20 자료의 이해와 적용 ③
<보기>에서는 기형도가 도시의 생활 속에서 자신이 비록 절망하고 병들더라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려고 애썼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개처럼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며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다는 것은 도시에서 비록 힘들지라도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힘겨운 삶에 대한 절망적 상황을 나타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① ‘공장’을 너무나 많이 세웠다는 것은 시적 화자가 꿈꿔 온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반성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공장’은 시적화자가 추구한 다양한 삶의 모습과 관련이 깊다.
② ‘기록할 것이 많다’는 것은 기형도 자신이 관심을 갖거나 혹은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삶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④ ‘질투’가 희망의 전부라는 것은 자신은 결코 희망을 놓지 않았음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⑤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는 것에서 그의 삶의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이 ‘사랑’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1 시적 화자와 대상의 태도 ④
시적 화자는 고니 떼의 모습에서 시집을 내는 것에 관심을 가졌던 자신을 반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니의 태도가 명성을 얻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대변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 17행에서 만경강 하구가 구체적인 창작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 1~3행의 내용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고니 떼를 관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4~10행에서 고니 떼가 마치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쓰고 있는 모습으로 보고 있다.
ⓔ 고니 떼를 통해 시적 화자가 얻고 싶은 것은 지치지 않는 창작의 힘이다. 시적 화자는 고니 떼의 지치지 않는 필력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22 시구에 드러난 화자의 심경 파악 ⑤
(나)의 시적 화자는 자신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초라한 모습으로만 남아 있다. 그래서 강물에 떠내려 보내는 뒷모습이 ‘배고픈 백로한테 쪼아 먹혀라’라고 나타낸 것은 초라한 자신의 모습이 없어져 버리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① 백로가 자연 그 자체가 될 수 없으므로 자연의 일부분으로 돌아가 자연에 귀의하고자 하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② 백로가 시적 화자의 희생을 기대하는 주체라고 해석할 근거는 없다. 백로한테 쪼아 먹히라는 것은 자기 내면의 고뇌를 반영한 것이지 ‘희생’의 의미로 확대할 수 없다.
③ 여기서 백로를 아름다운 자연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④ 다른 이에게 뒷모습이 도움이 된다는 점은 자신이 백로에게 먹잇감이 된다는 측면으로 해석한 것인데, 백로한테 쪼아 먹히는 일이 다른 이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한 것을 유추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