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전망대에서(허송세월)/김훈
태풍전망대는 경기도 연천의 군사분계선에 인접한 산마루다. 이 고지에 올라서면 눈앞에 무진강산無盡江山이 펼쳐진다. 여기서는 사람의 누이 한평생 붙어 있던 자리에서 풀려나서 말馬의 눈처럼 얼굴의 양쪽에서 모든 방향을 동시에 볼 수 있고, 모든 방향으로부터의 느낌을 통일된 이미지로 종합할 수 있게 된다. 시선은 보이지 않는 저 너머까지를 기웃거리다가 힘이 다하여 스스로 잦아진다.
작은 봉우리들이 시야 너머까지 잇닿아서 출렁거리고, 임진강이 그 사이를 돌아서 흘러온다. 물의 흐름은 산을 때리거나 깍지 않고, 산의 흐름을 물을 가로막거나 건너가지 않는다. 산과 물을 서로 범하지 않고,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 주며 제 갈 길을 가는데, 제 갈 길을 가면서 더불어 간다.
이 고지에서, 사람이 산천을 보는 시선과 산천이 사람에게 보여지는 시선이 겹쳐지는데, 이 겹눈의 시선 속에서 나는 내가 산천으로부터 격리隔離된 객관적 존재로서 산천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산천과 연결된 내부자로서 산천을 바라보고 있음을 스스로 알게 된다. 이 고지에서 나의 생명은 산천과 더불어 생동한다. 여기는 내가 사는 마을에서 가까워서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간다.
봄은 겨울의 심층부로부터 사람 쪽으로 다가온다. 아직 잔설이 남이 있는 먼 산들은 이미 희뿌연 봄의 기운을 품어 내고 있다. 신록은 나무속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먼 산을 바라보면 신록은 먼 곳으로부터 다가온다. 사람을 중심에 놓고 말한다면, 봄은 멀리서 다가와서 가까운 곳에서 완성된다.
낙엽 한 개를 보면 천하의 가을 안다고 옛사람이 말했는데, 이 말은 작은 조짐으로 시류를 예측하는 정치적 언설일 뿐, 가을의 공활空豁을 표현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말은 오히려 봄에 합당할 터이다. 신록의 생명은 확실하고 자명해서 인간의 생명감과 직통하므로, 나무 한 구루에 새 잎이 돋으면 천하의 봄을 알 수 있다.
봄에 태풍전망대에 올랐더니, 먼 산천의 초록은 가까이 다가올수록 선연했고, 나무 한 그루에 새 잎이 돋으면 천하의 봄을 알 수 있다.
이런 날에는 나는 이 세상에 더 오래 머물러 있고 싶다.
여름의 산천은 푸르고 힘차다
여름의 봉우리들은 잎으로 덮이고, 부푼 강물은 산모퉁이를 빠르게 돌아나간다 산천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크게 내쉰다. 이 강력한 숨결은 사람의 폐활량을 압박한다. 여름의 태풍전망대에서 나는 산천의 숨결을 내 숨결로 감당해 내기 힘들어서 숨을 헉헉거렸다. 멀리서 온 초록이 세력을 부풀려서 천지간에 가득차면, 시간의 밀도는 촘촘해진다. 여름의 시간은 밀물로 밀려와서 공간을 가득 채운다.
소나기는 시야의 먼 가장자리부터 때리기 시작해서 숲을 훑으면서 다가온다. 멀리서 소나기가 시작되면 아직 비가 닿지 않은 숲은 수런거리기 시작하고, 먼 상류 쪽의 강은 흐려진 세상 속으로 사라진다. 젖은 숲은 천지간의 거대한 관능으로 흔들리고, 비가 지나가면 기름진 윤기로 번들거린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 나는 태풍전망대에서 소나기를 만나면 나무처럼 두 팔을 치켜들고 비를 맞았다. 짧은 바지와 짧은 티셔츠 차림으로 소나기를 맞으면 빗줄기는 내 맨몸을 직접 때리고 몸의 구석구석을 흘러내린다. 그때 나는 한 구루의 나무였는데, 지금은 신명이 줄어서 이런 기막힌 놀이를 할 수가 없다.
가을에는 잎이 떨어진 나무들 사이가 넓어져서 나무들은 제가끔 호롤 선다. 가을에는 먼 산들의 능선이 뚜렷하고 새 울음소리가 가깝다. 가을에는 시야가 넓어져서 사라져 가는 산천의 뒷모습이 보인다. 가을에는 시간의 미립자들이 멀리 밀려 나가서 몸이 느끼는 존재의 무게가 줄어든다. 가을에, 시간은 가볍고 공간은 헐겁다. 가을에 이 고지에서는 숨쉬기가 편안하다.
봄은 사람에게 다가오지만 가을은 사람으로부터 멀어져서 시계 너머로 간다. 하늘과 땅 사이가 헐거워지고 수만 낙엽이 흩어져 날리면 천하의 가을을 안다.
가을의 끝자리에 두루미의 무리는 이 산천을 건너온다. 두루미의 자태는 독립된 생명체로서 당당하다. 두루미는 무리를 이루며 날아올 때도 그 배별적 존재의 위엄을 잃지 않는다. 두루미가 날아올 때, 이 산천은 문득 창세기의 그날로 돌아간다. 두루미는 인간의 역사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시공을 건너서 온다. 두루미는 날갯짓 두어 번만으로 그 넓은 산천을 무착륙으로 건너오는데, 이 날갯짓은 비행이라기보다는 시간 위에 올라탄 흐름처럼 보인다. 두루미가 하늘을 날아올 때 두루미의 그림자가 땅위로 따라온다. 그림자는 땅 위를 스쳐 가고 자취를 남기지 않아서, 그림자는 두루미로부터 비롯되지 않았고 두루미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두루미의 울음소리는 크고, 거칠다. 두루미는 난데없는 외마디 소리를 질러 댄다. 나는 여러 새들의 울음소리를 유심히 들어보았는데, 자음과 모음을 구별할 수 없었다. 새들은 모음만으로 운다. 두루미의 울음소리는 성대가 아니라 몸통으로 우는 소리인데, 이런 고리는 초성, 중성, 종성으로 구분할 수 없다. 이런 울림소리로 전하려는 메시지의 의미내용을 나는 모른다.
두루미의 울음소리는 태초의 하늘에 내지르는 신화神話의 고함이 들린다, 라고 나는 쓰고 있는데, 이런 언설은 모두 그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는 자의 가엾은 수사일 뿐이다. 두루미의 자유 앞에서 나는 부자유를 느낀다.
이 고지에서 겨울에는 시간의 작동이 감지되지 않는다. 시간은 지하 심층부로 흘러가고, 땅은 눈으로 덮는다. 눈이 가득 쌓인 산천이 오히려 비어 보이는 것은 눈이 모든 것의 차별성을 덮어서 오직 하얗고, 얼어붙은 산천에서 시간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겨울에 이 고지에 오르면 시간의 속박에서 풀려나는 생명의 느낌은 자유 속의 두려움인데, 자유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
고지에서는 산천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보인다. 눈이 쌓이면 많고 많은 산봉우리들은 오래된 무덤들처럼 눈 아래서 온순하다. 여기는 낙양성洛陽城 이 아니지만 주변 십리허十里墟에 무덤이 들어서기는 낙양성이나 산골의 초읍이나 다를 바 없다. 공동묘지는 새 풀이 돋아나는 봄날보다 흰 눈이 덮인 겨울 풍경이 죽음의 절대성과 보편성을 더욱 확실히 알게 해 주는데, 겨울의 태풍전망대에서는 모든 산봉우리들이 하얗고, 그 높낮이가 같아져서 평등하다. 이 하얀 평등성은 이 세상에 속하는 것이 아닐 터이므로 이 많은 봉우리들은 모두 인연에서 풀려난 무연고 분묘처럼 보였는데, 죽음이 보편성에 덮여서 무덤들은 모두 편안해 보였다.
태풍전망대의 산천은 객관화된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고, 산수화 속의 자연이 아니다. 이 산천은 나의 살아 있는 생명 속의 자연이다. 이 고지에서 나는 공간감각과 시간감각이 합쳐지는 어지럼증을 느낀다. 가까운 것이 멀어지면서 먼 것이 가까워지고, 흘러간 시간이 다가오면서 다가온 시간이 다시 멀어지는데, 시간은 흘러감도 다가옴도 없고 지나간 시간과 닥쳐올 시간에 사슬에 묵이지 않는 절대적인 현재의 시간이다.
산천은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 공간이고, 무정하고 불인不仁해서 수억만 년이 지나도 그 안에서 인간을 닮은 의미가 발생할 리 없지만, 그러한 산천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서 삶의 기운으로 약동할 수 있게 되는 까닭을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시공의 무한감에 실려 있던 나의 의식은 이 봉우리들의 이름이 떠오르는 순간 역사의 땅바닥으로 추락한다. 눈 아래 펼쳐진 이 봉우리들의 이름은 베티고지, 니키고지, 캘리고지, 노리고지, 테시고지, 대머리고지… 들이다. 본래 무명의 야산이었는데 6·25전쟁 때 미군들이 작전상의 식별 표시요응로 붙여 놓은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산천은 인간의 소유가 아니므로 이름이 없지만, 인간이 지어 준 이름을 붙이고 전쟁사에 남게 되는 것은 봉우리들의 불운이다.
피가 모여서 강으로 흘렀고, 시체가 쌓여서 산을 이루었다‘는 문장은 옛 전쟁 로망roman에 흔히 나오는 말인데, 6·25전쟁 당시의 산악고지에서 이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1951년 4월에 공산군은 70만 대군을 몰아 춘계공세를 시작했고 연합군은 제반격했다. 지상전의 주 전선은 전쟁 이전 때처럼 38선 접경에서 고착되었다. 휴전협정 조인이 성사될 듯하자 한 뼘의 땅을 더 차지하려는 고지전이 봉우리마다 전개되었다. 죽음이 죽음을 잇대어 가는 무한 소모전이었다. 폭탄을 맞는 봉우리들이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뭉개져서 흘러내렸고 피아의 시신이 함께 흙무더기에 쓸려 내려갔다. 백병전이 벌어진 참호 안에서는 찌르고 찔린 피아의 시체들이 썩어서 구더기가 들끓었다. 1952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이 고지들은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고, 싸움은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태풍전망대에는 이 싸움에 참전했던 소년전차병Boy’s tank corps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중학생 신분의 소년 120명이 전차하사관으로 임관되어 1953년 1월 이 지역 전투에 투입되었다. 소년전차병들은 베티고지, 퀸고지에서 싸웠다고 기념비에 적혀 있다. 소년병들의 기념비 앞에서는 천주교회에서 세운 성모마리아상이 시산혈해屎山血海의 봉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
태풍전망대에서 내려올 때 내 마음속에서 자연과 역사는 극심한 불화로 부딪힌다. 이처럼 크고 무서운 적대감의 뿌리가 대체 무엇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봉우리들이 신록으로 덮이고 또 백설로 덮여도 중무장한 적의의 진지들은 능선을 따라서 대치하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으로 나의 산천예찬은 무색해진다. 이념의 깃발이 무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지층 아래 적개심은 날마다 차곡차곡 쌓여 가는 것인가.
백설이 봉우리들을 덮어서 높낮이를 지우듯이 역사르 ㄹ백설이나 신로긍로 덮을 수는 없다. 고지에서 내려오며 나는 이 불완전하고 부자유한 현실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안다.
돌아보니, 고지의 성모마리아는 여전히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마리아의 눈길이 무력한 것이 아니기를, 나는 마리아께 기도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우리가 우리의 불쌍함을 스스로 알게 하소서.
―김훈, 『허송세월』, 나남, 2024. 96~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