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틴’은 기름과 물이 분리되는 것을 막아주는 ‘유화제’ 역할을 한다. 레시틴은 시중에 판매되는 샐러드 드레싱의 성분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고, 음식이 팬에 달라붙지 않도록 막아주는 조리용 스프레이에도 들어간다. 레시틴은 초콜릿의 성분이기도 하다. 녹은 초콜릿의 점도를 낮춰 틀에 붓기 쉽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코코아 지방이 분리되어 초콜릿 표면에 하얀 줄무늬가 생기는 이른바 '지방 꽃' 현상도 방지해준다. 레시틴은 콩기름을 추출하는 과정의 부산물로 대두에서 대량 생산된다.
그런데, 우리 뇌 속에도 레시틴이 들어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후 세계에서 뇌가 쓸모가 별로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시신을 미라로 만들기 전에 콧구멍 속으로 특수 갈고리를 넣어 뇌 조직을 조금씩 끄집어내 제거했다. 반면 심장은 인간 존재∙지성의 중심이라 여기고 사후에도 쓸모가 있다고 믿어 그대로 두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사고∙감각∙감정∙인지의 본거지가 뇌라고 주장했지만,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어떤 화학 작용이 관여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2,000년이 지나서야 독일 의사 요한 토마스 헨싱이, 뇌가 영혼의 왕좌이자 지혜의 거처라고 믿으며 '화학 분석'을 시도했다. 당시의 분석은 시료를 가열해 수분과 휘발성 물질을 날려 보내고 남은 고형물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1669년, 독일의 연금술사 헤니히 브란트는 생명의 영약을 찾던 중 우연히 소변을 끓여 증발시켰는데, 잔류물이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을 보고 이 물질을 분리하고는 '빛을 품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따와 인燐phosphorus이라고 이름 붙였다. 18세기 초에 이 신기한 물질에 대한 소문이 퍼졌고, 헨싱은 뇌 조직을 태우고 남은 재에서 인의 존재를 확인했다. 뇌 속에 있는 빛을 발하는 물질이 사고를 일으키는 불꽃일 수 있다는 생각에 당시엔 센세이셔널한 발견이었다.
화학에 매료된 프랑스 의사 앙투안-프랑수아 푸르크루아는 헨싱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뇌 분석에 용매추출법을 도입, 알코올로 인간의 뇌에서 어떤 물질을 분리해 ‘기름진 오일’이라고 불렀다. 푸르크루아의 제자 중 한 사람인 니콜라-루이 보클랭은 나중에 이 기름진 오일에 인이 들어있음을 밝혀냈지만, 오일의 정확한 조성까지는 규명하지 못했다.
뒤이어 약학 교수 테오도르-니콜라 고블레는 끓는 에테르로 달걀노른자를 추출해 점성이 있는 물질을 분리해내고, 이것이 보클랭이 뇌 조직 추출물에서 발견한 기름진 오일과 동일한 것임을 확인했다. 그는 달걀노른자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따와 이 물질을 '레시틴'lecithin이라 명명했다. 1874년에 고블레는 레시틴의 분자 구조를 밝혀내고, 이 물질이 지방산∙인산∙콜린이라는 소분자가 결합된 '인지질'phospholipid임을 알아냈다.
달걀노른자와 사람 뇌 조직에 왜 인지질이 들어 있는지는 20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밝혀졌다. 인지질이 세포 내부와 외부 환경을 분리하고 보호하는 ‘세포막’의 핵심 구성 성분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세포막은 어떤 물질이 세포 안팎으로 드나들 수 있는지를 제어하기에, 세포막의 온전함은 건강 유지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 몸은 식이를 통해 섭취한 지방, 인, 콜린으로 이 인지질을 합성한다. 계란, 육류, 콩, 옥수수 등에 들어 있는 레시틴이 이 영양소들을 공급할 수 있다.
레시틴 보충제를 먹으면 뇌기능이 좋아질까?
보충제 제조사들은 레시틴이 콜린의 공급원이며, 인체는 이 콜린을 이용해 알츠하이머병에서 결핍되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을 생산한다고 강조한다. 레시틴이 모발과 피부를 건강하게 만들고, 간 기능을 개선하며,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관절염을 완화하며, 콜레스테롤을 낮춘다는 주장도 한다. 콜레스테롤에 대한 효과는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문제는 장내 세균이 레시틴의 콜린을 산화트리메틸아민TMAO으로 전환하는데, TMAO는 관상동맥에 플라크를 형성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레시틴 보충제의 위험-편익 비율이 불확실한 데다, 라벨에 표시한 성분이 보충제에 제대로 들어있지 않은 문제도 있고, 일부 레시틴 보충제는 지방산만 들어 있는 것으로 밝혀진 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