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언론소비자주권행동(언소주)의 사설 탐정입니다.
오늘 우리가 해부해 볼 텍스트는 조선일보 양상훈 기자의 [양상훈 칼럼] '5·18 피로증'은 민주당이 만든 것입니다. 제목부터 아주 도발적이죠?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두고 벌어진 조롱과 폄훼 현상의 원인을, 엉뚱하게도 특정 정당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사를 읽고 "아, 요즘 사람들이 5·18에 피로감을 느끼는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셨다면, 언론이 짜놓은 프레임에 완벽하게 걸려드신 겁니다. 자, 돋보기를 꺼내 들고 이 기사의 이면에 숨겨진 의도와 논리적 구멍들을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1. 현상과 본질 구분: 기사의 껍데기와 숨겨진 프레임
이 칼럼이 말하는 껍데기(Fact)는 이렇습니다.
ᄀ "스타벅스 마케팅이나 고교 야구부의 5·18 조롱은 잘못됐다."
ᄀ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와 민주당의 징계나 불매운동 등 대응이 너무 과도하다."
ᄀ "민주당의 내로남불과 정치적 이용 때문에 국민들이 '5·18 피로증'을 느낀다."
하지만 이 기사가 진짜로 유도하려는 본질적 프레임(Intent)은 무엇일까요? 바로 ‘가해자의 책임 지우기’와 ‘역사적 비극의 정쟁화’입니다.
기명 칼럼의 첫 문단에서 필자는 분명히 "조롱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습니다. 하지만 글이 전개될수록 그 조롱을 한 주체(일베 등 극우 커뮤니티의 영향을 받은 일부 대중)에 대한 비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모든 화살을 민주당으로 돌립니다. 즉, "사람들이 5·18을 조롱하는 건 나쁘지만, 솔직히 그렇게 만든 건 민주당 너희들 탓이잖아?"라는 교묘한 양비론적 면죄부를 발행하고 있는 겁니다.
2. 논리적 허점 타격: 인과관계의 실종과 피장파장의 오류
합리적으로 추론해 보자면... 10대 야구부 학생이 타 지역 팀을 야유하며 5·18을 조롱한 것이 과연 '민주당이 사법부를 장악하려 해서'일까요? 아니면 '민주당이 헌법기관인 검찰을 삭제하려 해서'일까요?
이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칼럼은 전혀 상관없는 두 가지 사안을 억지로 묶어 인과관계를 조작하고 있습니다.
1. 원인의 왜곡: 일부 국민이 5·18을 조롱하는 진짜 원인은 극우 세력이 수십 년간 생산해 온 가짜뉴스와 혐오 선동(북한군 개입설, 유공자 특혜설 등) 때문입니다. 그런데 칼럼은 이를 '민주당의 입법 폭주'라는 전혀 무관한 정치적 행보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전형적인 허수아비 때리기입니다.
2. 피장파장의 오류 (Whataboutism): 후반부를 보면 가관입니다. 갑자기 6·25 전쟁, 천안함 폭침,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일(탕탕절), 심지어 26년 전인 2000년의 새천년NHK 룸살롱 사건까지 영혼까지 끌어모아 소환합니다. "너희도 과거에 다른 사건들 조롱하고 왜곡했으니, 5·18 수호자 행세하지 마라"는 논리입니다. 민주당의 과거 행적을 비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5·18의 역사적 가치를 훼손하거나, 현재 벌어지는 5·18 조롱에 면죄부를 줄 명분이 될 수는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동네에 방화범이 불을 지르고 다녀서 소방서가 화재 예방 단속을 강하게 했더니, 언론이 대고 "소방서장이 평소에 성격이 괴팍하고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에 주민들이 '소방 피로증'을 느껴서 불을 지르는 것이다"라고 기사를 쓴 격입니다. 황당하죠?
3. 역사/사회적 맥락: 왜 하필 '유공자 명단 공개'를 다시 꺼냈을까?
맥락을 봐야 합니다. 이 칼럼에서 가장 위험한 대목은 슬쩍 끼워 넣은 '5·18 유공자 명단 공개' 부분입니다.
필자는 "대부분 여론조사는 명단 공개 의견이 더 높다"며 "일부 정치인이 관련 없이 유공자로 선정됐다는 의혹"을 기정사실처럼 언급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프레임의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유공자 명단 공개 요구는 본래 지만원 씨를 비롯한 극우 세력이 "가짜 유공자가 세금을 축낸다"며 5·18을 폭동으로 매도하기 위해 만든 악의적인 가짜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법적/상식적 진실: 5·18 유공자 명단은 이미 광주 5·18 기념공원 추모승화공간에 이름이 다 새겨져 있습니다. 숨긴 적이 없습니다. 다만, 온라인에 개인 신상(주소, 주민번호 등)을 나열한 명부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른 것이며, 극우 단체의 좌표 찍기 와 테러로부터 유공자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국가보훈처가 관리하는 다른 독립유공자나 참전유공자 역시 세부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도 메이저 언론의 주필급 논객이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극우 유튜버들의 레퍼토리를 그대로 차용해 '의구심'이라는 단어로 포장해 유포하고 있습니다. 기득권 세력이 시민의 피로 이룩한 민주화의 성과를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자신들의 정치적 반대파를 공격하는 무기로 삼기 위해 '5·18'이라는 상징을 역이용하고 있는 현장입니다.
탐정의 최종 결론
이 칼럼은 '5·18을 모독해선 안 된다'는 점잖은 훈계로 시작하지만, 종착지는 결국 "민주당이 꼴 보기 싫으니 5·18이 조롱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는 궤변입니다.
시민 여러분, 정치권의 위선이나 내로남불은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언론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비판의 도구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뼈대인 '5·18 민주화운동'을 볼모로 잡고, 희생자들에 대한 혐오를 '피로증'이라는 세련된 단어로 정당화해 주는 행태는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기득권 언론이 짜놓은 교묘한 양비론의 함정, 이제는 주권자인 우리가 날카롭게 부숴야 할 때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ES3jkKMTL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