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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과 나눈 이야기(닐 도날드 윌쉬 지음)」 사랑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
내가 하던 일들이 하나 둘 씩 실패를 하고, 있던 돈 마저 모두 사라지고, 나의 가족들도 나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할 때, 어느 순간 내 삶에서 오직 남은 것은 고통 뿐이었습니다. 삶이라는 처절한 고통에 시달리면서 나는 결국 이 원흉인 신이라는 놈에게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마음처럼 처절하게 추운 어느 날 그 신이라는 놈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글을 쓰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에 대한 분노를 써내려 가다가 던질려고 할 때, 어떤 힘에 단단히 붙잡히기라도 한 것 처럼 내 손은 종이 위에 그대로 있고, 펜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처음 흘러나온 것이 "너는 이 모든 질문에 대답을 받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그냥 푸념을 늘어 놓고 싶으냐?" 라고 하는 응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묘한 신과의 대화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 질문 : 인간은 왜 항상 서로 파괴하고 다시 사랑하고 그런 실수들을 반복하는 거죠? 인간들의 역사가 되풀이 되듯이 왜 우리는 항상 반복하는 걸까요?
○ 신 :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 가장 깊은 단계에서 두 가지 감정 중 하나에서 시작된다. 곧 두려움이나 사랑에서 시작된다. 사실 영혼의 언어 속에서는 단 두 가지 감정, 단 두 마디의 말만이 존재한다. 이 둘은 내가 우주와, 너희가 오늘날 알고 있는 바 대로 세상을 만들었을 때, 함께 창조했던 양극성의 두 극단이다.
이 둘은 너희가 상대성이라 부르는 체계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두 극점 알파와 오메가다. 이 두 극점이 없다면, 현상에 관한 이 두 개념이 없다면, 어떤 다른 개념도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사랑이나 두려움, 어느 한쪽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밖에는 다른 어떤 행동 동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밖의 모든 개념은 이 둘의 파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그저 같은 주제의 변주들, 다른 꼬임들일 뿐이다. 이것에 대해 깊히 생각해 보라. 그러면 너는 그것이 사실임을 알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받침 생각이라 부른 것이다.
받침 생각은 사랑이나 두려움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이것은 생각 뒤의 생각이다. 이것은 최초의 생각이며, 원초의 힘이고, 인간 체험의 엔진을 움직이는 가장 원초적인 에너지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행동이 거듭 반복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며, 사람들이 사랑하다가 파괴하고, 다시 사랑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이 감정에서 저 감정으로 늘 흔들린다. 사랑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두려움을 낳고... 이런 식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신이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첫 번째 거짓말, 너희가 신에 관한 진실이라 여기는 바로 그 거짓말, 신의 사랑에 기댈 수 없으며, 신은 너희를 조건부로 받아들이며, 따라서 궁극의 결과는 불확실하다는 그 첫 번째 거짓말에서 찾을 수 있다.
너희가 항상 거기에 있는 신의 사랑에 기댈 수 없다면, 대체 누구의 사랑에 기댈 수 있단 말인가?
너희가 제대로 해내지 않았다고 해서 신이 뒤로 물러나 움츠린다면, 평범한 인간들이야 말할 나위도 없지 않겠느냐? 그리하여 너희가 지고한 사랑을 맹세하는 그 순간 너희는 가장 큰 두려움을 맞아들이게 된다.
왜냐하면 너희는 사랑한다고 말하자마자 과연 상대방이 그 말을 되돌려 줄 것인지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사 그 말을 되돌려 받는다 해도 너희는 그 순간부터 이제 막 찾아낸 사랑을 잃게 될까봐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너희의 모든 행동이 상실에 맞선 방어라는 반작용이 된다. 심지어 너희는 신의 상실에 맞서 자신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자신이 누군지 안다면, 자신이 신이 창조한 가장 장대하고, 가장 비범하고, 가장 멋진 존재임을 안다면, 너희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그토록 경이로은 장대함을 그 누가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런 존재에게서는 신조차도 흠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자신이 누군지 알지 못하며, 엄청나게 못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너희는 자신이 그토록 못난 존재라는 생각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온갖 것들에 대해서 너희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전해 준 유일한 사람들, 즉, 너희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다. 이들은 너희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어째서 그들이 거짓말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들은 너희에게 이건 지나치고 저건 부족하다는 식으로 말해오지 않았던가?
너희는 그들이 너희를 바라보긴 하지만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몇 번이나 느끼지 않았던가? 그들은 너희가 가장 충만감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에 종종 너희를 나무라곤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들은 너희의 더없이 자유로운 상상 중 일부를 무시해 버리도록 유도하지 않았던가?
너희가 받아온 메세지들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이것들은 기준에 맞지도 않고, 따라서 신에게서 나온 메세지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그 메세지들은 너희 세계의 신들에게서 나왔음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사랑이 조건부라 가르친 사람들은 너희 부모들이다. 너희는 그들이 내세우는 조건들을 숱하게 경험했다. 또 너희의 사랑하는 관계에서도 이런 체험을 고려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도 너희 부모들이다. 그것은 또 너희가 내게 적용하는 체험이기도 하다.
이런 체험에서 너희는 나에 관한 결론을 이끌어내며, 이런 틀 속에서 너희는 너희만의 신에 관한 진설을 이야기한다. "신은 사랑의 신이지, 하지만 우리가 그 분의 계명을 어긴다면 그분은 우리를 영원히 추방하고 단죄하실 거야"
너희는 너희 부모가 내린 추방을 체험했고, 그들이 내린 단죄의 고통을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그것과 다르리라고 너희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너희는 조건없이 사랑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잊어버렸다. 너희는 신의 사랑을 체험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너희는 세상에서 보는 사랑의 모습에 따라 신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상상해 보려고 애쓴다. 너희는 부모의 역할을 신에게 투사해왔기 때문에 너희가 한 짓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심판한 다음, 상을 주거나 벌을 주는 신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것은 너희의 신화에 근거한 지나치게 단순화된 신의 상이다. 이것은 내 본질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너희는 이렇게 영적 진리들이 아니라 인간의 체험에 근거한 신에 관한 사유체계 전체를 만들어낸 뒤, 사랑을 둘러싼 실체 전체도 창조해냈다.
그것은 복수심이 불타는 무서운 신이라는 개념에 뿌리를 둔 실체이며, 두려움에 근거를 둔 실체이다. 그것의 받침 생각은 틀린 것이지만, 그런 생각을 부정한다면, 너희의 신학 전체가 무너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신학을 대신할 새로운 신학이 참으로 너희를 구원해 준다고 할지라도, 너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냐하면 두렵지 않은 신, 신판하지 않는 신, 벌줄 이유가 없는 신이라는 개념은 그냥 너무나 근사해서, 신의 본질에 관한 너희의 어떤 거창한 관념으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두려움에 근거한 사랑의 실체가 너희의 사랑 체험을 지배하고 있고, 사실 그런 체험을 실제로 창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너희는 자신이 받는 사랑이 조건부라는 것도 알고 있으며, 나아가 자신이 같은 식으로 사랑을 주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희가 자신의 조건들울 굳게 지키거나 물리거나 설정하는 동안에도, 너희의 한 부분은 이런 것이 진짜 사랑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너희는 사랑을 펼치는 그런 방식을 바꾸기에는 무력하다고 느낀다. 너희는 자신에게 말한다. '이제까지 나는 확고한 사랑법을 배워왔다', '이제 또다시 불안전한 상태로 되돌아간다면 나는 영원히 저주받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다. 불안정한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 너희는 영원히 저주받을 것이다. 사랑에 관한 너희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너희는 자신에게 끝내 순수한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리란 저주를 내리고 있으며, 또한 그 때문에 참된 나를 끝내 알지 못하리란 저주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너희가 나를 영원히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기에, 우리가 화해하는 순간은 반드시 올 것이기에, 너희는 결국 순수한 사랑을 체험하고, 내 참 모습을 알게 될 것이다. 단순히 인간관계와 관련된 것들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행동은 사랑이나 두려움, 어느 한쪽에 뿌리박고 있다.
상업과 산업, 정치, 종교, 교육, 너희 국가들의 사회 문제, 너희 사회의 경제 목표에 영향을 주는 결정들, 전쟁과 평화와 공격과 방어와 침략과 항복에 관련된 선택들, 탐낼 것인지, 양보할 것인지, 쌓아둘 것인지, 분배할 것인지, 합칠 것인지, 나눌 것인지에 대한 결정들, 너희가 지금까지 내린 이 모든 자유로운 선택 중 이 두 가지 생각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즉, 그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이나 두려움이라는 생각이다. 두려움은 움츠러들고 닫아걸고 조이고 달아나고 숨고 독점하는 에너지다. 사랑은 펼치고 활짝 열고 풀어주고 머무르고 드러내고 나누고 치유하는 에너지다. 두려움은 우리 몸을 옷으로 감싸지만, 사랑은 우리가 발가벗고 설 수 있게 해준다.
두려움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틀어쥐고 집착하게 하지만, 사랑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주게 한다. 두려움은 갑갑함을 지니지만, 사람은 정을 지닌다. 두려움은 움켜잡지만, 사랑은 보내준다. 두려움은 사무치게 하지만, 사랑은 달래준다. 두려움은 공격하지만, 사랑은 치유한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은 이 두 가지 감정 중 어느 하나에 근거하고 있다. 그 외 다른 감정이란 없기에 너희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러나 이 들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너희의 자유이다.
◈ 질문 ; 당신은 아주 쉽게 말씀하시지만 우리가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는 두려움이 이기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건 왜입니까?
○ 신 : 그것은 너희가 두려움 속에서 살도록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너희는 가장 잘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고, 가장 강한 자가 승리하며, 가장 영리한 자가 성공한다고 들어왔다. 너희는 지고한 사랑의 영광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하여 너희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가장 잘 적응하고 가장 강하고 가장 영리한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치며, 어떤 상황이든 자신이 이에 못 미치는 것처럼 여겨지면 가진 걸 잃게 될까봐 두려워 한다. 못미치는 것은 곧 잃는 것이라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너희는 두려움이 뒷받침된 행동을 선택한다. 너희가 이제까지 배워온 것이 바로 그런 것이기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것은 이렇다. 너희가 사랑이 뒷받침된 행동을 선택할 때, 너희는 생존 이상을 하게 될 것이고, 이기는 것 이상을 하게 될 것이며, 성공 이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너희는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 또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닫는 충만한 영광을 체험할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너희는 악의는 없으나 잘못 알고 있는 너희 속세 선생들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다른 원천의 지혜를 지닌 사람들의 가르침을 들어야 한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너희 중에도 그런 스승들은 많다. 너희에게 이런 진리들을 보여주고 가르치고 이끌어주고 깨우쳐 주는 사람들 없이, 내가 너희를 그냥 버려두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러나 깨우쳐 주는 자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너희 외부에 있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희 내면의 소리다.
이것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내가 첫 번 째로 사용하는 도구이다. 내면의 소리는 너희에게 가장 가까우니, 내가 말하는 가장 큰 소리이다. 그것은 자기 외의 다른 모든 것이 너희가 규정하는 식 대로 참인지 거짓인지, 옳은지 그른지, 혹은 좋은지 나쁜지 말해주는 소리이다.
그 소리는 너희가 그냥 내버려 두기만 하면 스스로 알아서 방향을 정하고, 배의 진로를 잡고, 여정을 이끌어 주는 레이더다. 그 소리는 너희가 읽고 있는 바로 그 말들이 사랑의 말인지 두려움의 말인지 당장 그 자리에서 이야기해 준다. 너희는 그 이야기에 따라 그 말들을 유의해야 할지 무시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다.
앞으로 있을 시대에는 많은 가르침들을 접하기 쉬워진다. 너무나 많은 메세지들이 너희들 휴대전화 속과 티븨에서 흘러나오게 될 것이다. 너희들은 그것 또한 그것이 사랑에 기반하여 나오는 것인지 두려움에 기반하여 나오는 것인지 확인하면 그것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나치게 성공을 강조하는 메세지도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의 이면에는 성공하지 못하면, 즉 도태되면 세상에서 버려질 것이고,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나온 이야기 들이다. 너희의 삶에서 궁극적 목적은 나의 찬란한 광휘를 드러내는 것이지, 두려움에 기반한 성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희들이 성공을 하거나 대단한 무언가가 되어야만 사랑을 해주는 그런 신이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함이고, 사랑 그 자체이다. 너희 삶에서 사랑을 매 순간 선택할 때, 너희는 나를 알고 내가 된다.
☞ 여기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우리 자신은 사랑이며, 우리와 신은 분리된 적이 없는 연결된 하나임을 자각하시며 위대한 나를 찾아내고 확인하므로서 성공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