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빠쁜지, 요즘은 서재에 오기도 힘들다. 물론 차가 없어 잠시 다녀갈 수 없으니 더욱 그렇다. 서재에 자주 오지 못하다보니 글 쓰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지난 번에도 반성을 했는데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베의 경제전쟁 도발로 인해 일본상품에 대한 불매운동, 일본 여행 안 가기 등 국민들의 극일 열기가 뜨겁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다.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중국에 대한 선전포고도 없이 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죽였다. 우리나라와 중국에 몹쓸 짓을 많이 했다. 그러나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2세들에게도 전쟁에 대해 교육시키지 않고 있다. 마치 자신들이 피해국인양 국민을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강점 30년이 지나자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이제 독립을 틀렸다고 체념하며 일신의 안위를 위해 친일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임시정부와 독립군을 어려운 처지에도 굴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렇게 지킨 나라요, 글과 말이다. 김구, 안중근, 홍범도, 김좌진, 김원봉, 이봉창, 윤봉길, 최재형 같은 분들이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그런데 나라를 팔아 먹은 이완용 등 매국노와 친일파와 밀정이 있었다. 그들이 버젓이 활개를 치고 지금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이승만은 취약한 자신의 국내 기반을 위하여 친일관료와 경찰 등을 그대로 중요했다.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키고 독재이 길을 걸었다. 친일잔재를 청산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아베로 인해 친일잔재를 청산할 호기가 왔다. 마치 나라를 생각하는 듯 일본을 비호하고 감정을 억제하라는 친일파가 아직도 존재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분노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들이 있어 일본이 우리를 아직도 깔보고 무시하는 것이다. 집안에 도둑이 들었으면 내가 상처를 입더라도 도둑과 싸워 이겨야 한다. 그들이 도발한 경제전쟁의 승자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오늘은 74주년 광복절이다. 금년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다시 단단히 하여 극일의 그날까지 흐트럼이 없어야겠다.
6월 12일 오병석 후배의 장인상 조문을 다녀와서 저녁에는 전남으로 공장을 옮기려고 하는 후배를 만나 애로점을 들었다. 13일 수도군단을 방문했다. 최진규 군단장은 학사장교 출신으로 전남대 출신으로는 최초의 3성 장군이 되었다. 더욱 정진하여 4성 장군이 되길 빈다. 14일에는 이학영, 서삼석의원과 점심을 하고 15시 농협물류 이사회가 참석했다. 저녁 역시 서울에서 기업은행 임원 후배들과 했다. 15일과 16일 덕봉 형과 양덕준 회장 등과 함께 신안투어를 했다. 아직은 기반시설이 부족하지만 천혜의 자연자원을 활용하면 발전가능성이 크게 느껴졌다. 17일 아침 이개호 장관이 농생대를 방문한다고 하여 안기완 학장과 함께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에는 남평 아파트 회의가 있었다. 18일 기아 타이거즈 응원을 하러 갔다. 전남대의 날로 정해 학생들과 동문들이 함께 참여했다.
19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입장권을 총동창회에서 구입했다. 시장실을 방문하여 3,500만원의 입장권을 구입했다. 구입한 입장권의 2/3정도를 전남대에 우학온 학생들에게 전달하여 자신의 나라 시합있는 날 응원하도록 했다.20일 아침 정갑채 교수님과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광주공고총동창회에서 기아 타이거즈응원을 했다. 22일 산하 연합산행이 대전 계족산에서 있어 참석했다. 23일 서울에서 점심을 하고 바로 내려와 러시아 캄차카 준비팀들과 저녁을 했다. 24일 치과에 갔는데 몇 군데 치료를 해야할 것 같다. 다행스럽게 아직까지 임플란트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집사람도 함께 갔는데 몇 개의 임플란트를 하야 해서 치료비가 1,000만원 정도 나온다고 한다. 26일 전남대총동창회 집행위원회가 있었다.
27일 아침 기차로 오송으로 가서 환승하여 신울산역에서 내려 지난번 종착지였던 진하해변으로 가서 비를 맞으며 걸었다. 덕하역에서 스탬프를 찍고 활고개교차로까지 갔다.(24KM) 28일 활고개교차로를 출발하여 울산대공원 마루금을 걸었다. 업다운이 생각보다 심했다. 태화강전망대까지 걷고 호텔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점심 후 다시 출발하여 태화강 십리대숲과 태화강변을 걷고 내친김에 염포산을 넘어 방어진항까지 37KM를 걸었다. 발바닥이 뜨거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29일 해돋이를 보려했지만 날씨가 흐려 보지 못하고 슬도를 돌아보고 해안도로를 따라 대왕암으로 갔다. 이곳은 문무대왕비의 수중능이다. 경관이 아름답다. 일산해변까지 걸었는데 다시 비가 내린다. 아침을 먹지 못해 스타벅스로 들어가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일기예보를 체크해보니 쉽게 그치지 않을 것 같아 광주로 되돌아 와야 했다. 30일 서일석 변호사의 초청으로 캄차카 준비팀 저녁을 했다.
7월1일 상경하여 점심은 국회에서, 저녁은 굴비마을에서 하고, 3일에는 후배들이 방원재를 방문하여 함께 저녁하고, 4일에는 광주지법 민사조정위원으로 조정사건이 있어 참석한 후 저녁에는 남평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하고, 5-6일은 산업관계연구원 지원장 회의가 제주에서 있어 그들과 함께 이호해변 , 사려니숲길을 걷고, 다음날은 우도로 들어가 서빈백사까지 걸어가서 점심을 하고 오후 비행기로 광주로 돌아왔다. 7일 손녀 은성이와의 추억여행을 위해 집사람과 설악산으로 가서 큰아이 부부를 만나 케이블카타고 권금성에 오르고, 숙소인 롯데리조트 주변을 걷고, 큰아이(석인)과 소주를 나누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다음날 한계령에 갔으나 안개로 인해 아름다운 경치를 보지 못하고 헤어졌다. 저녁 광주에서 조성수 기업은행본부장 초청으로 몇 사람과 정주를 나누고, 9일 상경하여 안산에서 농협물류 이사회에 참석하고, 저녁에는 이경춘 법원장과 윤승기 국장 등 후배들과, 10일에는 이종범 호남학진흥원장과 에산문제로 점심을, 낮에는 광주공고 재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저녁에는 남평회의에 참석했다.11일 목포에 있는 전남창조혁신센터 멘토선정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였고, 저녁에는 무송회 모임을 했다.12일 아침에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사현권 전 광주공고총동창회장을 초대하여 식사를 함께 했다.13일 광주공고총동창산악회 7월 정기산행을 지리산 육모정으로 갔는데 새벽 갑자기 이 치료한 게 탈이나 치과에 가느라 등산을 하지 못했다.14일 후배들과 운동을 하고, 15일은 대전으로 가서 산업관계연구원 대전지원 식구들과 점심을 저녁에는 오랫만에 사공호상 박사를 만나 정담을 나누었다.
16일 둘재 석민이의 장인과 저녁을, 17일은 대전에서 목포에 호텔을 짓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현동배 회장, 양덕준 회장 등과 만나 저녁을 하고, 18일은 서울에서 골산회우너들과 점심을 저녁은 지인들과 하고 하광했다. 19일 조성희 이사장이 모교 총장을 비롯한 보직교수들과 총동창회장단을 초청하여 즐거운 저녁을 했다. 20일 41명의 캄차카탐사단이 인천을 출발하였다. 21일 01시45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창하여 환승하고 08시 40분 캄차카에 도착, 바로 아바친스크 화산 트레킹을 했다.(캄차카 이야기는 별도로 올리려고 한다) 트럭을 개조한 카마스로 길도 없는 길을 올라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낙타봉 트레킹을 했다. 주도인 페트로페브롭스크 캄차스키 호텔에서 저녁을 하고 가장 좋은 팝을 찾아 첫날 밤을 즐겼다. 22일은 시내관광과 아바차만 해상투어를 23일은 소수민족복합단지를 방문하고, 24일은 븨스트리아강 래프팅가 낚시를, 25일은 고렐리화산 트레킹을 하고 26일 아치 캄차카를 출발하여 블라디보스토크로 와서 우수리스크에 있는 안중근 기념비와 이상설 유허비, 발해유적 그리고 최재형 선생 마지막 거주지를 보고 저녁식사 후 러시아를 떠났다. 자연이 숨쉬는 캄차카여행은 기리 기억될 것이다.27일 큰아이 석인이와 며느리의 생일을 미리 축하하는 가족모임을 하고 28일 광주로 내려왔는데 왜 이리 더운지, 29일 무궁화의 대가인 조동회 선배의 미수전을 보고, 저녁에는 목포로 내려가 이행송 목포지부 회장 등과 정주를 나누었다. 30일 새로 부임한 남평아파트 관리소장을 축하하는 모임이 있었고, 31일은 상경하여 점심과 저녁을 했다.
벌써 8월이다. 1일은 총동창회 사무처장과 그동안 밀린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저녁에는 캄차카 준비팀에게 고맙다는 저녁을 사고, 3일에는 전남대총동창산악회원들과 장수 팔공산 등산을, 저녁에는 지인들과 함께 4일은 후배들과 부부동반으로 화엄사에서 연기암까지 걷고 산동에 가서 산닭구이를 먹었다. 5일 고속열차를 이용하여 강원도 진부로 가서 임상도 현장조사를 하는 지오투직원들과 만나 오대산을 둘러보고 저녁을 했다. 너무나 시원하다. 6일 아침 월정사 전나무숲길을 걷고 방아다리약수도 다녀와 진부에서 기차로 다시 광주로 내려와 휴가온 후배들과 저녁을 하고 다음날 아침 운동을 했다. 점심은 서울에서 내려온 또 다른 후배들과 저녁은 금호의 김성산 선배와, 8일에는 고교동창들과 모처럼 지리산 뱀사골 와운마을로 여행을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9일 나는 남원에서 성우로 올라가 산하 14기 후배들과 저녁을 하고 10일에는 광주공고동창산악회와 피아골계곡 트레킹을 11일에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 집사람 생일을 미리 가족들과 모여 축하하고, 저녁에는 봉오동전투를 봤다. 아베의 경제전쟁으로 우리의 극일의지는 더욱 다져진다. 12일 고겨 은사인 이돈륜 선생님과 점심을 했는데 학정 이돈흥 선생님께서 좋은 글씨를 써보내주셨다. 글씨만 받아도 영광인데 글의 내용이 더욱 감사했다. "厚德流光(후덕유광) 쌓은 덕이 도타우니 영광이 후손에게 이르도다"는 글이다 표구를 맡겨 서재에 두고 더욱 정진하고자 다짐했다. 오후 다시 서울로 올라가 이승재 전 해양걍찰청장과 어혁수 기업은행 부행장과 저녁을 하고, 13일에는 여수로 내려가 한달 전 여수해양경찰서장으로 부임한 이철우 아우를 축하하는 모임을 가졌다. 14일 광주은행 김경태 부행장의 초청으로 정인채 새천년건설 회장님과 운동을 하고 15일 74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극일의 의지를 다지며, 모처럼 서재 청소도 하고 그동안 읽었던 책 독후감도 쓰고 있다. 마침 사랑하는 아우 서삼석 의원이 서재에 들러 둘이서 오붓하게 차를 나누며 담소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내일부터는 캄차카 다녀온 여행기도 쓸 계획이다. 16일 아침 모처럼 드들강을 보며 음악을 듣고 이글을 쓰고 있다. 오늘 저녁에는 김경현 후배가 딸의 공무원 시험 합격을 축하하는 자리를 방원재에서 하고 싶다고 해서 몇 사람 모여 정주를 나눌 예정이다.
서재를 마련하고 책이나 읽고 글 쓰고 하는 일을 가장 보람되고 행복한 삶으로 생각하고 살려고 하는데 아직도 마음을 비우지 못햇는지 서재에 올 시간을 갖기도 어려움을 한탄하면서 금년 나의 화두인 공관병수(公觀竝受.공평하게 보고 두루 받아들인다)를 보며 마음을 추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