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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성도 여러분.
에스라의 나무 강단 성경 어휘 연구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 또 다른 중요한 주제를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연구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194회 강의로서 '왜 유다인은 사마리아인을 증오했는가?'라는 제목으로 그 사상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증오(憎惡)는 몹시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을 뜻합니다. 역사적으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을 굉장히 증오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사마리아인이 오면 얼굴을 돌려 보지도 않고 지나쳤습니다. 그런 관계가 된 역사적인 이유와 배경이 무엇인지 함께 공부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반역이 일어납니다. 솔로몬 왕의 신하 중에 장군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느밭인데, 그의 아들이 바로 여로보암입니다. 솔로몬의 아들은 르호보암이고, 느밭의 아들은 여로보암입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깁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아들이니까 왕위를 물려받게 되지만, 솔로몬의 신하였던 여로보암은 반역을 일으켜 나라의 절반 이상을 뚝 잘라 차지하고는 스스로 왕이 되어 '북방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왕조를 시작합니다. 여기서부터 분열의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1장 26절로 31절을 보면 이 반역의 사건이 자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에브라임 족속인 여로보암이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습니다.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이 무너진 것을 수축할 때, 여로보암은 큰 용사이자 부지런한 청년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이를 보고 그를 세워 요셉 족속의 공사를 감독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갈 때,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아가 길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아히아는 자기가 입은 새 옷을 잡아 열두 조각으로 찢고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가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겠다" 하였습니다. 이는 여로보암이 앞으로 행할 반역과 분열을 선지자를 통해 미리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 일로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자, 여로보암은 애굽으로 도망하여 애굽 왕 시삭에게 이르러 솔로몬이 죽기까지 망명 생활을 하였습니다.
결국 솔로몬이 죽은 후 여로보암은 돌아와 북방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지도를 보면 남방 유다에 비해 북방 이스라엘의 영토가 훨씬 큽니다. 남쪽 유다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고, 북쪽 이스라엘은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았습니다. 북방 이스라엘에 속한 지파는 르우벤, 단, 납달리, 갓, 아셀, 에브라임, 므나access, 잇사갈, 스불론, 시므온 등 열 지파였고, 남쪽에는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만 남았습니다. 이렇게 나라가 쪼개졌으니 남방 유다 사람들이 북방 사마리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증오의 역사가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통일 왕국이 왜 이렇게 분열되었을까요? 성경은 그 근본 원인을 분명하게 짚어 줍니다. 열왕기상 11장 9절 이하를 보면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났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셔서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명하셨으나 솔로몬이 그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가 내 언약과 내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하셨습니다. 나라가 갈라진 근본 원인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명령을 지키지 않은 실패에 있었습니다.
나라가 갈라진 후, 북방 이스라엘은 남방 유다 사람들이 용납할 수 없는 종교적 죄악을 저지릅니다. 첫 왕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예배를 드리러 예루살렘 성전으로 내려가면 그들의 마음이 다시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 자신을 죽일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굴려 금송아지 우상을 만듭니다.
열왕기상 12장을 보면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또 브누엘을 건축한 후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는 베델에 두고, 하나는 저 북쪽 단에 두었습니다. 이 일이 큰 죄가 되었으니, 백성들이 단과 베델까지 가서 금송아지에게 경배하며 우상 숭배에 빠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로보암은 높은 산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으며, 여호와께서 정해주신 절기가 아닌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8월) 보름날을 절기로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만들고 제단에 올라가 분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법도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우상을 세우고 날짜를 바꾸었으니 종교적으로 완전히 타락한 이단이 된 것입니다.
지도를 보면 예루살렘 북쪽의 베델과 갈릴리 북쪽의 단에 금송아지가 세워졌습니다. 오늘날 성지순례를 가면 '텔 단(Tel Dan)' 유적지를 방문하게 됩니다. '텔'은 고대인들이 살던 흔적이 남은 언덕을 뜻합니다. 텔 단에는 고대의 성문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창세기 14장에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사병 318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갔을 때 통과했을 성문이라 하여 '아브라함의 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텔 단 유적지 안으로 들어가면 여로보암이 세웠던 금송아지 제단 터와 번제단 뿔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서 레위 지파도 아닌 자들을 제사장으로 세워 우상에게 절하게 했으니, 예루살렘 성전을 고수하던 유다인들이 보기에는 천불이 날 지경이었고 사마리아인들과 상종도 하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는 빈번한 전쟁과 침공이 이어졌습니다. 국경 충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상 14장과 15장을 보면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었고, 아사 왕과 북방 왕 바아사 사이에도 일생 동안 전쟁이 있었습니다. 북방 왕 바아사는 유다를 압박하기 위해 예루살렘 북쪽인 라마에 축대를 쌓아 국경을 봉쇄하고 유다인들이 성전에 오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이에 남방 왕 아사는 화가 나서 다메섹에 있는 아람 왕 벤하닷과 동맹을 맺고 금과 은을 보내어 북방 이스라엘을 치게 했습니다. 서로 이방 나라를 끌어들여 형제를 치는 악순환이 계속된 것입니다.
유다 왕 아마샤와 이스라엘 왕 요아스 때에도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 아마샤가 이스라엘에 무모하게 도전했다가 폐전하여 사로잡혔고, 예루살렘 성벽 일부가 파괴되었으며 성전과 왕궁의 보물들을 약탈당하고 백성들이 볼모로 잡혀가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비극은 이스라엘 왕 베가와 아람 왕 르신이 연합하여 유다를 침공한 사건입니다. 역사에서는 이를 '시리아-에프라임 전쟁(Syro-Ephraimitic War, BC 735년경)'이라고 부릅니다. 구약에서 사마리아나 에브라임은 북방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명칭입니다. 북방 왕 베가가 아람과 결탁하여 남방 유다를 쳐서 유다 용사 12만 명을 하루에 죽이고 백성 20만 명을 포로로 사로잡아 갔습니다(이사야 7장, 역대하 28장). 유다 왕 아하스는 공포에 질려 저 멀리 강대국인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앗수르 군대가 내려와 아람 왕 르신을 죽이고 시리아를 멸망시켰으나, 유다를 구원해 준 대가로 유다를 자신들의 속국으로 삼고 조공을 바치게 만들었습니다. 형제간의 증오와 전쟁이 결국 이방 강대국의 속국이 되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이후 북방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결국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합니다. 앗수르 왕은 사마리아를 점령한 후 철저한 강제 이주 정책(Deportation)과 혼혈 정책을 폈습니다. 열왕기하 17장 6절과 24절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로잡아 앗수르의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고을들에 강제로 분산 이주시키고, 반대로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이방 사람들을 데려다가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어 살게 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마리아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주해 온 이방인들이 섞여 살면서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완전히 혼혈족이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의 종교와 풍습이 섞여 뒤죽박죽이 된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보기에는 혈통의 순수성도 잃고 하나님도 저버린 가증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여로보암 때의 금송아지 숭배를 시작으로, 아합 왕과 이세벨이 도입한 가나안의 폭풍 신인 바알(Baal)을 국가 종교로 섬겼습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850 대 1로 대결하여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함으로써 승리한 역사가 바로 이 배경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여신 아세라를 섬기며 다산과 풍요를 구했고, 해와 달과 별들을 경배하는 일월성신 숭배에 빠졌으며, 심지어 자녀를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여 인신 제사를 드리는 가증한 몰렉(Molech, 밀곰) 신까지 섬겼습니다. 온갖 사술과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방 종교와 여호와 신앙이 뒤섞인 혼합주의(Syncretism) 종교가 사마리아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순수한 신앙을 재건하려던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 또다시 큰 충돌이 일어납니다. BC 516년경 스룹바벨의 주도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때, 사마리아인들이 와서 방해하고 페르시아 왕에게 고발 서신을 보내 공사를 오랜 세월 동안 중단시켰습니다. 훗날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와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에도 사마리아의 지도자 산발랏(Sanballat)과 도비아, 게셈 같은 자들이 조롱하고 야유하며 군사적 위협을 가했고, 느헤미야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다섯 번이나 꾸몄으나 느헤미야가 이를 묵살하고 52일 만에 성벽을 완공했습니다.
느헤미야 13장 28절에는 성경에 이름이 자세히 나오지 않는 아주 중요한 일탈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이자 요야다의 아들 중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적수의 딸과 눈이 맞아 결혼한 것입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언약을 어긴 그를 단호하게 예루살렘 성전에서 추방해 버렸습니다.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유대 고대사》에 따르면, 이 추방당한 제사장의 이름은 므나access(Manasseh)이고 그와 결혼한 산발랏의 딸 이름은 니카소(Nicaso)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사마리아로 간 므나access는 사마리아인들의 대환영을 받으며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고, 그의 장인 산발랏은 사마리아의 그리심산(Mount Gerizim) 위에 예루살렘 성전을 그대로 본뜬 성전을 건축해 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보기에 사마리아인들은 정통 성전을 모독하고 짝퉁 성전을 세운 철천지원수가 된 것입니다. 이 그리심산 성전은 훗날 BC 2세기경 유다의 마카비 가문 지도자인 요한 힐카누스(John Hyrcanus)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불타버렸고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오경 두루마리를 가지고 그리심산에서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역사를 종합하면 사마리아인들은 유다인들에게 첫째 정치적 반역자들이고, 둘째 혈통적 혼혈족이며, 셋째 우상 숭배와 혼합주의로 신앙을 버린 자들이고, 넷째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성전 건립을 방해하고 전쟁을 일삼은 미운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오면 예수님에 의해 이 사마리아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새로워집니다. 누가복음 9장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사마리아의 한 마을을 통과하려 하셨으나,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성질 급한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며 불을 내려 다 태워버리자고 격분했습니다. 유다인들의 깊은 증오심이 튀어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아보시며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묵묵히 다른 마을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들을 이웃으로 품으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는 수가성 사람들의 청을 받아 사마리아 동네에서 이틀을 유하시며 복음을 전하셨고, 누가복음 10장에서는 자비가 없는 제사장과 레위인을 부끄럽게 하시며 강도 만난 자를 진정으로 구원해 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7장에서 나병환자 열 명을 고쳐주셨을 때, 오직 한 사람 사마리아인 나병환자만이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사례)를 표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셨습니다. 나아가 승천하시기 전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명령하셨습니다. 그 증오의 땅 사마리아를 선교 지경에 공식적으로 포함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대적으로 전파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랜 증오의 벽을 허물어뜨리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향해 극단적인 모욕을 던질 때 요한복음 8장 48절에서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라고 비방했습니다. 그들이 사마리아인을 얼마나 멸시했으면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라 불렀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어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하시며 사마리아인이라 불리는 수모를 굳이 변명하거나 거부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배운 내용을 요약하겠습니다. 유다인들이 사마리아인을 증오한 이유는 여로보암의 쿠데타와 국가 분열, 금송아지 우상 숭배와 혼합주의 종교 타락, 시리아-에브라임 전쟁 등 빈번한 군사적 충돌, 앗수르의 혼혈 정책으로 인한 혈통의 오염, 그리고 포로 귀환 후 성전과 성벽 재건 방해 및 그리심산 짝퉁 성전 건립 등 오랜 세월 누적된 정치·혈통·종교적 배신과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복음 안에서 이 오랜 원수 관계의 장벽을 허무시고 사마리아인들을 형제와 이웃으로 초청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고대의 사마리아인은 존재하지 않지만, 혹시 우리의 마음속에 사마리아인처럼 몹시 미워하고 상종하기 싫어하는 지체나 이웃이 있다면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 정죄와 증오의 장벽을 모두 허물어버립시다. 제사장과 레위인보다 더 선한 사마리아인이 존재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원수까지도 품으신 예수님의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의 참된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오늘 194번째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유익한 어휘를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핵심 요약 정리
남북 왕국의 분열과 정치적 반역
솔로몬의 신하였던 느밭의 아들 여로보암이 반역(쿠데타)을 일으켜 열 지파를 이끌고 '북방 이스라엘'을 세우고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았습니다. 이로 인해 단일 신정 국가가 분열되는 정치적 적대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왕상 11장).
여로보암의 죄와 종교적 타락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배하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남쪽 국경 베델과 북쪽 끝 단에 금송아지 신상을 세우고 "애굽에서 인도해 낸 너희의 신"이라 부르며 대대적인 우상 숭배를 조장했습니다.
또한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자기 마음대로 여덟째 달 보름날(8월 15일)을 절기로 정하는 등 하나님의 법도를 완전히 훼손한 이단을 정립했습니다(왕상 12장).
지속적인 전쟁과 군사적 충돌
남북 왕국은 분열 초기부터 국경 분쟁을 일삼았으며, 특히 '시리아-에프라임 전쟁(BC 735년경)' 때 북방 이스라엘(베가 왕)이 이방 아람 왕과 연합하여 남방 유다의 용사 12만 명을 학살하고 20만 명을 포로로 잡아가는 깊은 혈연적 원한을 남겼습니다.
앗수르의 혼혈 정책과 혈통의 오염
BC 722년 북방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한 후, 앗수르 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강제 이주(Deportation)시키고 바벨론 등지의 이방인들을 사마리아에 이주시켜 살게 하는 혼혈 정책을 폈습니다. 유다인 관점에서 사마리아인은 혈통의 순수성을 잃은 가증한 혼혈족으로 전락했습니다(왕하 17장).
이방 우상 신앙과 혼합주의(Syncretism)
사마리아인들은 여호와 신앙에 가나안의 바알과 아세라 숭배, 일월성신 경배, 그리고 자녀를 불태워 바치는 인신 제사인 몰렉 숭배까지 혼합하여 종교적으로 완전히 혼탁해졌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맞선 850명의 우상 선지자들이 바로 이 배경에서 활동했습니다.
귀환 후 재건 방해와 그리심산 성전 사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인들이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느헤미야 주도)을 재건할 때, 사마리아 지도자 산발랏 등은 공사를 악의적으로 방해하고 고발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므나access가 산발랏의 딸 니카소와 결혼하여 추방당한 후, 사마리아 그리심산 위에 예루살렘 성전을 본뜬 짝퉁 성전을 건립하여 대제사장 노릇을 함으로써 유다인들의 종교적 증오심이 극에 달했습니다.
복음 안에서의 장벽 극복
유대인들은 철저히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았고 예수님을 모욕할 때도 '사마리아 사람'이라 불렀으나, 예수님은 수가성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와 나병환자 치유를 통해 차별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승천 전에는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선포하시며 증오의 장벽을 복음의 사랑으로 완전히 허무셨습니다(행 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