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성질이 개좋은 딸아, 엄마한테 그러면 안 돼
①#26-0927》푸꾸옥 가족 여행기
by여유시간
Sep 27. 2026
성질이 개좋은 딸아, 엄마한테 그러면 안 돼
아내가 칠순을 맞았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 딸 가족과 푸꾸옥으로 여행을 갔다.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의 칠순이니 기분을 맞춰주자는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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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신난 사람은 아내였다.
아내는 수영을 무척 좋아한다. 아침을 먹고 나면 커다란 야외 수영장에서 한 시간 넘게 수영을 즐겼다. 나는 수영장에 들어가지 않고 야자수 그늘이 드리운 벤치에 앉아 아내가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우리 가족은 호텔 노보텔에서도 4인 이상이면 독립된 방갈로형 풀빌라를 이용해야 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가족끼리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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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꾸옥은 당시만 해도 관광지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같은 길을 또 지나고, 다음 날에도 또 그 길을 지나곤 했다.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내가 좋아하니 그것으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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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 성당과 분수대가 보이고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광장에 갔다. 해변가 작은 공연장 계단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앉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전자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점점 많아졌고, 딸과 사위는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우리 노부부는 분수대 가까이에 앉아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공연을 즐겼다.
아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백만 송이 장미.’
그때 사위가 달려왔다.
“장모님, 여기 계시면 어떡해요! 다들 식당에서 체크인하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빨리 가세요!”
그제야 상황을 알았다.
우리만 모르고 있었다.
일행은 이미 다음 일정으로 이동했고, 우리는 공연장에 남아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한참을 앉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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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랴부랴 내려가니 딸이 엄마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남들은 다 모여 식당에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만 없었다는 것이다.
아내는 공연장에 너희들이 함께 있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화가 난 딸에게는 그 말도 변명처럼 들렸던 모양이다.
“엄마, 그런 말 하지 마!”
아내도 가만있지 않았다. 자기는 정말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 사실을 말한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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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황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 우리가 다음 디너파티장 입장 시간을 잊고 있었던 거구나.’
그곳은 심포니 오브 더 시 공연장과 식당이 함께 있는 해변가 식당이었다. 가이드가 정해준 시간에 들어가야 중앙의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곳이었다.
늦게 들어간 우리는 대형 스피커가 있는 해변가 사이드 자리를 배정받았다.
딸은 그게 또 속상했던 모양이다.
일행들에게도 미안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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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엄마 입장에서는 크게 늦어서 공연을 못 볼 것도 아닌데 계속 지적을 받으니 서운했다.
딸은 딸대로 생각이 있었다.
‘엄마가 한 번만 조용히 있으면 끝날 일인데 왜 계속 설명하지?’
엄마는 엄마대로 생각했다.
‘내가 왜 조금 늦었는지 말하면 알아주겠지.’
결국 둘은 싸우기 직전까지 갔다.
일행들도 눈치를 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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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편도 들 수 없었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를 몰라서가 아니다. 양쪽 이야기를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 편을 드는 순간 일이 더 커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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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날 우리 테이블 주변에는 재미있는 가족 하나가 더 있었다.
우리 또래쯤 되어 보이는 노인이 며느리와 손자와 함께 여행을 왔다. 사업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며느리와 사이가 참 좋아 보였다. 카드를 며느리에게 맡기고 편하게 따라다니며 돈을 쓰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가족과는 여행 방식부터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런 여행을 온 것이 아니었다. 아내가 여행을 좋아하니 칠순을 맞아 기분을 맞춰주려고 딸이 주선해서 함께 온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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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우리 손녀는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자기 역할만 했다.
중학생인데 태권도 4단인 녀석이다. 몸도 빠르고 눈치도 무척 빠르고 입도 무겁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상황은 나처럼 다 알고 있다.
손녀와 나중에 상황극처럼 이야기를 나눠보면 더 웃긴다.
할아버지는 못 들은 것 같아도 다 듣고 이해하고 알고 있다.
할머니는 다 듣고도 “그런데 그게 뭐야?”라고 한다.
엄마는 아는 척하지만 나중에 보면 대충만 알고 있다.
아빠는 한참 지나서 “뭘 했다고?”라고 묻는다.
그래서 손녀는 모두가 알아듣도록 설명하지 않는다.
“할아버지, 이거 해줘.”
나는 “알았어.” 하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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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손녀는 자기 역할만 했다.
딸이 씩씩거리고 엄마가 서운해하는 사이, 준비해 둔 칠순 생일 케이크가 우리 테이블로 왔다.
딸이 엄마의 칠순 파티를 준비해 놓은 것이다.
“서윤아, 네가 해.”
손녀가 촛불에 불을 붙였다. 일행들과 생일 축하곡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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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푸꾸옥의 밤바다는 화려했다.
바다에서는 야간 수중쇼가 펼쳐지고 있었고, 음악이 울리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멀리 키스 브리지의 불빛까지 반짝였다.
조금 전까지 엄마와 딸 사이에 오가던 날카로운 말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우리 테이블에서는 칠순 생일 축하 노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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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을 보며 속으로 한마디 했다.
성질이 개좋은 딸아, 엄마한테 그러면 안 돼.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딸이 참 웃겼다.
엄마에게는 그렇게 화를 내면서도 엄마의 칠순 케이크는 준비해 놓았다.
화가 나도 엄마의 생일은 챙기는 딸.
그게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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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그날 또 하나를 보았다.
가족은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알면서도, 이상하게 서로에게 가장 쉽게 서운해한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한 식탁에 앉는다.
싸우다가도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서운하다면서도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아마 가족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질이 개좋은 딸아, 엄마한테 그러면 안 돼.
그런데 엄마도 딸에게 너무 서운해하지 마라.
둘 다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그런 것이니까.
⑨작가의 시선#26》AI수정·협업》실용인문학을 독학한 관찰작가 여유시간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