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2:25-37절) 패물을 잊은 新婦 3-61.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 중에서 부부의 부정(不貞)을 소재로 한 것이 상당히 많습니다. 즉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관계를 하자,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관계를 하는 것 등입니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주로 이런 내용을 많이 다루는 이유는 실제로 그런 일들이 만연하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시청률을 따라가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 주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내용들을 보면,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딱딱하고 사람을 속박하는 것이라면, 부부 관계를 떠난 불륜(不倫)의 사랑은 좀 더 진실하고 인간미가 있는 사랑이라는 식으로 묘사됩니다. 이것이 실제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기혼 남성이나 여성이 갖고 있는 결혼에 대한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많은 남편들이나 아내들이 애정이 없는 결혼생활보다는 가정이나 아이를 버리더라도 욕망(慾望)을 찾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아내나 남편에 대해서는 무뚝뚝하고, 신경질적으로 대하면서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새로 보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게 따뜻하고, 친절할 수가 없습니다.
본문 말씀은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偶像)을 따라간 것에 대하여 패물을 잊어버린 신부라고 말씀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과의 관계를 결혼한 관계로 생각하셨습니다. 어떤 부부도‘우리가 서로 미워해서 나중에 갈라지자’라고 하면서 결혼하는 부부는 없을 것입니다.
결혼할 때는 사랑의 감정을 가졌고, 또 서로 패물들을 주고받았으며,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결혼해서 살다보니까 지금의 아내나 남편보다 더 멋진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지 않아도 권태(倦怠)에 빠져 있는 남편과 아내를 부추기면서‘당신은 지금보다 훨씬 더 멋있고 훌륭하게 살 수 있는데 지금의 남편과 부인 때문에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바람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 바람이 나서 눈이 뒤집혀진 사람은 결혼의 아름다운 행복이나, 소중한 자식들의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기 욕망(慾望)에 빠져서 가정 밖으로 달아나 버리는 것입니다.
원래 부부가 된다는 것은 한 몸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쪽이 부정(不貞)을 저지르고, 가정을 깨면, 마치 몸에서 칼로 팔다리를 잘라내는 것과 같은 고통이 생기게 됩니다. 따라서 남편이나 아내가 부정을 저지르면 상대방은 완전히 팔다리가 없는 병신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과의 관계를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신앙적으로 결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사랑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복이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부추기기를,‘여호와만 믿지 않았으면 가장 큰 나라가 될 수 있고 부자 나라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여호와를 믿는 바람에 답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부추긴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그 꾐에 속아 넘어가서 하나님과의 소중한 약속과 축복을 모두 다 팽개치고, 우상(偶像)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 마음속의 엄청난 상처였습니다. 하나님이 유다백성들을 지키지 않으셨더라면, 그런 상처를 받으실 필요가 없었는데, 그들을 믿고 사랑하신 것 때문에 팔다리가 잘라지는 고통과 깊은 상처를 입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유다 백성들의 배반에 대한 뒷일을 수습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유다 백성들에 대한 법적(法的)인 처리였습니다. 그들은 원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다고 큰 소리를 치는 가나안 땅도 하나님과의 결혼 지참금이었습니다. 그들이 신앙을 버렸을 때, 가나안 땅을 잃고, 전 세계에 노예가 되어 팔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유다가 완전히 망한 이유는 욕심(慾心)을 너무나 많이 냈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에 만족했더라면, 귀한 축복을 오래오래 누릴 수 있었을 텐데, 그 작은 축복에 만족하지 못하는 바람에 모든 소중한 축복을 빼앗기고, 완전히 빈손으로 내쫓기고 말았습니다.
Ⅰ.우상을 따라가는 유다 백성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향해 바알 신(神)을 따라가느라고 발을 벗지 말고, 목을 갈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25절)내가 또 말하기를 네 발을 제어하여 벗은 발이 되게 말며 목을 갈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나 오직 너는 말하기를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내가 이방 신들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가겠노라 하도다.”
여기서‘벗은 발이 되게 하지 말며 목이 갈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어떻게 보면, 유다 백성들이 바알 신(神)을 열렬하게 사모한 나머지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허겁지겁 따라가는 장면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맨발이 되지 말며’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당시 바알의 제사가 우리나라 무당(巫堂)들이 굿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즉 사람들은 맨발로 타작마당 위에서 날뛰면서‘바알이여, 바알이여’하면서 목이 갈할 정도로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이들의 제사는 대단히 격렬한 제사였습니다. 원래 유다 백성들은 이런 식의 화끈한 제사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함께 출애굽 했을 때도 모세가 없는 동안 시내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춤을 추면서 뛰놀았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번 월드컵 경기를 하면서‘바알’은 아니지만, 수십 만 명이 길거리에 뛰어나와 태극기를 흔들면서 목이 타도록‘대한민국!’을 부르짖으니까 얼마나 신바람이 났습니까? 특히 월드컵 경기에서 이기니까 흥분되어 못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길 한복판을 걸어가기도 하고, 밤새도록 차에서 경적을 울리며 돌아다녀도 잡는 사람이 없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그런 것을 좋아했습니다. 조용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죄가 되는 것도 많고, 생각해야 할 것도 많고,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바알 제사는‘하지 말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뿐더러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바알은 사람을 억압하는 것을 죄(罪)라고 가르쳤습니다.
즉 아무것도 억압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하고, 정욕을 마음껏 발산하라는 것이 바알의 신앙이었습니다. 즉 맨발로 마음껏 뛰면서 춤을 출 수도 있고, 평소에는 할 수 없었던 죄도 실컷 지을 수 있고,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지금까지 여호와의 신앙은 매우 비인간적이고, 사람을 속박하는 것이며, 자신들은 진정한 만족을 누리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바알 신앙을 경험한 후에는 아주 마음에 들고, 좋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바알 신앙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는 완전히 청천벽력(靑天霹靂)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는 필요한 다리이며,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몸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칼로 자르고, 떨어져나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절)...벗은 발이 되게 하지 말라’의 또 다른 의미는 무엇인가를 따라갈 때는 좀 자세히 알아보고 따라가야 되는데, 유다 백성들은 완전히 철부지 아이들처럼 앞뒤도 따져 보지 않고, 무조건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내가 바알을 따라가면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가? 바알이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를 생각 해 보고, 함부로 벗은 발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끔 여학생들이 유명한 가수나 배우의 집 앞에 몰려가서 밤을 새워가면서‘오빠’를 부른다고 합니다. 물론 한때, 재미로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귀중한 줄 아는 사람은 재미있게 구경하거나 관람하면, 되는 것이지, 맨발로 달려가서 소리를 지르는 것은 대개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 없는 사람의 행동입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의 마음속에 만족감이 없고, 자존감이 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주신 행복을 다 부수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바알을 따라가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 아니면 마음속에 충동이 일어나더라도 발을 제어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마치 구정물통과 같아서 누군가가 휘젓기만 하면, 온갖 생각과 충동들이 다 일어납니다. 대개 이런 순간적인 충동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영혼의 균형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즉 충동이 일어나는 대로 모두 옳다고 생각하여 다 행동에 옮기면, 무시무시한 파멸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에도 안전벨트를 매어서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지 않도록 자신의 충동을 하나님께 잡아매어야합니다.
26절)도적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 같이 이스라엘 집 곧 그들의 왕들과 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수리를 당하였느니라.”도둑은 잡히기 전까지는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습니다. 즉 남의 집을 내 집처럼 마음껏 들락거릴 수 있고, 남의 물건을 내 물건인 양 마음껏 사용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일단 경찰에게 붙들리면 그때부터는 모든 자유를 빼앗기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또한 그 후로는 도둑이라는 불명예가 붙어 다닙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은 마음껏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즉 우상의 집, 가서는 안 되는 다른 사람의 집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집이란 가난한 이웃들의 집을 말합니다. 그들은 아직 붙들리지 않은 도둑들이기 때문에 마음껏 자기 욕심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왕과 지도자, 제사장과 선지자도 있습니다. 모두 한탕하기 위해 온 데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정해놓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그 축복의 범위 안에서는 얼마든지 돌아다니고, 그것을 누리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서 향락을 누리거나, 부자가 되려고 하면,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도둑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한번 붙들리는 날에는 꼼짝하지 못하고, 그 동안 훔쳤던 것들을 모두 다 빼앗기고, 감옥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이런 왕과 제사장을 잡아가라고 수배령을 이미 내려놓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생명처럼 중요한 것이‘내게 주시는 범위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눈앞에 좋은 것이 보여도 하나님이 나에게 합법적으로 주신 것이 아니면, 절대로 가져서는 안 됩니다.
혹 돈을 많이 가지고 있고, 잘 생긴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생각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런 유혹에 대해서는 아예 시체(屍體)처럼 무 반응해야만 하나님의 축복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Ⅱ.유다 백성들에 대한 법적인 처리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비롭고, 사랑이 많으신 분임을 알았기 때문에 바알을 섬겨도 자기들을 버리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알을 섬기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축복을 잃게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27절)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버지라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들의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들의 얼굴은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다가 그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바알을 섬기는 것이란, 나무가 아버지가 되고, 돌이 나를 낳은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즉‘나의 아빠, 돌 엄마’를 섬기는 것이고, 자기들은‘나무 아들, 돌 딸’이 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알 신(神)을 섬긴 이유를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호기심(好奇心)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한번 알아나 보자는 식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지어 보지 못한 죄에 대한 호기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온갖 죄를 짓고 사는데, 그런 것을 할 기회가 없으니까 마음속으로 한번 알아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죄에 때한 호기심은 한 번 불붙으면, 스파크 가 일어나면서 자기 힘으로는 끌 수 없는 불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더 위험한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偶像)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인간보다 높은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즉 하나님만 섬겨야 올바른 것인데, 오히려 자기들보다 못한‘돌’더러‘엄마’라 부르고‘나무’보고‘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크게 진노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상(偶像)과 관계되는 사람들과는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상 아무런 관계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을 하면서 그분의 도우심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알과 가까이 하게 되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와 기쁨을 잃게 됩니다.
돌이 아버지가 되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어디까지나 나무는 나무이고, 돌은 돌이지, 나무나 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하나님은 아주 싫어하십니다.
28절)너를 위하여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네가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사람들이 우상(偶像)의 재미에 빠지는 이유는 결국 자신들의 상상(像想)을 믿기 때문입니다. 즉 돌이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믿고는 자신의 상상력(想像力)을 절대시합니다. 그러나 그런 우상들은 환난 날에 그들을 도울 수 없습니다.
환난 날에 우상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비로소 하나님을 찾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에 받아야 하고, 하나님이 가까이 하실 때에 만나야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유다에 대한 법적인 절차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면 그들이 이미 돌아올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9-30절)너희가 나에게 대항함은 어찌됨이냐 너희가 다 내게 잘못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희 자녀들을 때린 것이 무익함은 그들이 징계를 받아들이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 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여기서‘나에게 대항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리브’라고 합니다. 이것은 법적으로 소송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대항한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반항한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리브’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패역(悖逆)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법적으로 정리해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너희 자녀를 때린 것’자녀는 유다 백성 개인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 전체나, 개인이나 조금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올 가능성이 있으면, 법적인 정리를 하지 않으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올바른 선지자들을 모두 다 죽이는 바람에 이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 줄 수 있는 자가 없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죄를 짓더라도 선지자의 책망을 들어가면서 죄를 지으면, 돌아갈 가능성이라도 있을 텐데, 선지자라는 선지자는 모두 다 죽여 버렸으니까 누구의 말을 듣고, 회개하겠습니까?
유다 백성들은 계산(計算)에 실패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빈손으로 하나님을 믿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고, 많은 축복(祝福)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면, 가나안 땅을 다시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포기하시고, 순순히 물러나실 줄 알았던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인지, 말도 못하는 돌이나, 나무 때문에 가나안 땅의 모든 축복(祝福)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공식적으로 유다 백성들을 버리신 후, 그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바벨론 군대를 보내십니다.
바벨론 군대는 유다 사람들을 가나안 땅에서 쫓아내는 집행관이었습니다. 요즘 외국의 경우에는 이혼할 경우, 부인이 남편의 재산을 절반 이상 가지가게 됩니다. 그래서 돈이 아주 많은 부자들은 이혼하게 되면, 결국 위자료 지불로 완전히 망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대로 이혼하지 않고, 함께 살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그렇게 변해야합니다. 이혼하게 되면, 여자가 재산을 거의 다 갖도록 해서, 남편은 완전히 알거지가 된 채, 나쁜 여자와 살도록 만들어야 함부로 이혼하지 못할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어리석게도 계산(計算)을 잘못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선택했다가 완전히 망(亡)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約束)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좌우간 계산(計算)을 잘 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에 세상 사람들처럼 잘살지 못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는 살아 있으며, 하나님의 모든 축복과 연결된 관(管)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祝福)이 우리의 것으로 약속(約束)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約束)을 믿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자족(自足)하면서 살면,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가면, 세상 사람들만큼도 살지 못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31절)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 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캄캄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이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아니하겠다 하느냐”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광야 같고, 캄캄한 땅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재미가 없고, 무미건조(無味乾燥)하고, 딱딱하다는 뜻입니다. 즉 바알은 가나안 땅과 같고, 오아시스와 같은데, 하나님은 너무나 엄격하시고, 아무런 자유도 주지 않으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진정으로 거듭난 체험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맛은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달고, 오묘한지, 그 샘물을 마시기만 하면, 아무리 병든 영혼이라도 다 정신을 차리게 되고, 지치고 상한 사람도 새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아직 말씀으로 변화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말씀을 알아들을 수도 없고, 또 그 말씀이 자꾸 욕심을 죽이라고 하기 때문에 나의 행복과 능력을 모두 다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 유다 백성들은 말씀의 맛을 몰라서 가장 귀한 것을 모두 다 잃어 버렸습니다. 32절)처녀가 어찌 그의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의 예복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셀 수 없거늘”
처녀는 남편에게서 받은 패물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결혼 패물은 금전적인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사랑의 약속(約束)입니다. 마치 결혼반지와 같습니다. 아내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결혼반지 하나만 있으면 언제든지 남편에게 갈 수 있고, 남편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신부는 결혼할 때, 입은 예복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옷을 입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약속(約束)하신 많은 축복 중에 최고로 귀한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 있으면,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축복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 권을 주셔서 그들이 누구를 축복하든지,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즉 축복하기만 하면 무한정의 축복이 이 땅에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시겠다고 약속(約束)하셨습니다.
아무리 강(强)한 적(敵)이 쳐들어오고 큰 흉년과 재앙을 당한다고 해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붙들고 있으면, 다 극복할 수 있도록 하시겠다고 약속(約束)하셨습니다.
또 기도 응답의 축복이 있습니다.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모든 기도를 들어 주시겠다고 약속(約束)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패물(佩物)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가지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부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부족해도 나의 소중한 믿음이 있음을 기억하고,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신부(新婦)인 우리는 우리의 패물(佩物)과 그 고운 예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옷과 반지를 사 준다 해도 거기에 속아서 넘어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Ⅲ.점점 더 떠내려가는 유다 백성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욕심을 냈을 때, 그들은 점점 더 세상을 향해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 앞에는 무시무시한 바벨론의 공격이라는 큰 폭포(瀑布)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들은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그들은 다른 나라의 호의(好意)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33절)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난 후에 적극적으로 다른 나라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 많은 우상(偶像)들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예전에는 우리가 너무나 무식해서 다른 신상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모든 신을 인정합니다.’라는 뜻으로 우상(偶像)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까지 우상(偶像)을 섬기는 법을 가르쳐 줄 정도였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그동안 여호와 신앙 때문에 소외된 것이 가장 큰 손실이었다고 생각하여 적극적으로 다른 나라들과 같아지기를 위해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원래 여호와 종교 자체가 세계적인 종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올바른 믿음만 지키고 있으면, 결국 세계가 그들에게 오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전 세계에 없는 것이 그들에게 있었고,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귀한 축복이 그들에게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믿지 못해서 자기들의 소중한 패물은 모두 다 버리고, 싸구려 가짜 패물만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들려고 아첨(阿諂)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매우 계산(計算)에 빠릅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새롭고 특별하며, 자기들에게 없는 것입니다. 물론 유다 백성들이 자기들과 다를 때는 그렇게 싫어하고 미워하지만, 일단 같아지고 난후에는 맛 잃은 소금처럼 더 이상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입니다. 만일 유다 백성들이 소금이라면, 소금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짜니 어쩌니 하며, 불평하지만, 결국 김장을 담글 때가 되면, 모두 소금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향기와 맛을 잃어버렸습니다. 또한 세상 냄새를 많이 풍겼는데, 그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역겨운 냄새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탐욕(貪慾)은 절제되지 않았습니다. 34절)또 네 옷단에는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 때문이니라.”
그들의 옷단에는 피가 묻어 있는데, 죄 없는 사람을 죽인 피였습니다. 원래 율법에는 밤에 담에 구멍을 뚫고, 침입하는 자는 정당방위로 죽일 수 있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이 사람들이 밤에 담을 뚫었기 때문에 죽였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바른 말하는 사람들을 어떤 핑계를 대서든지 죽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생명은 자기 욕망과 싸우는 데 있습니다. 욕망은 생각나는 모든 것을 다 해 보고 싶어 하는 것으로, 이 욕망을 죽이면 죽일수록 더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남으로 욕심이 많아서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의 땅을 빼앗고, 항의하는 사람들은 죽이든지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유다 백성들은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고 보신 것입니다. 지금 그들이 탄 배는 바벨론의 공격이라는 폭포를 향해 점점 떠내려가고 있는데 그들은 돌이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그들이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즉 가진 재산을 다 포기하고 맨손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35절)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의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였으므로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하나님의 책망하시는 말씀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면, 지금까지 누리고 있던 관계나 특권을 버리고,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까워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됩니다.
36-37절)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냐 네가 앗수르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함 같이 애굽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을 말미암아 형통하지 못할 것임이라”
유다 백성들은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앗수르와 애굽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이 유다를 버리셨기 때문에 사람의 도움으로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레미야의 말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아마 거의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갔을 것이나, 그들의 목숨은 건질 수 있으며, 목숨을 건질 수 있으며, 목숨을 건지면, 얼마든지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귀한 것은 하나님께 다 있는데, 우리는 이 세상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이 주신 신부의 패물을 팽개치고, 세상으로 달려가기 쉽습니다.
사랑하는 성도(讀者)여러분,
그러나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이 준비해 주실 것이며, 끝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범위 안에서 만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지속적인 축복(祝福)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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