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드라 디도는 사도 바울의 제자이며 동역자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교인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빌립보 교회와 바울 사이의 연락책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선교헌금을 바울에게 전달하고 바울의 소식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병이 들었는데 모든 사람들의 기도로 건강을 되찾게 되어 기쁘다는 것입니다.
‘에파프로 티토스’란 뜻은 풍채가 좋은 건강한, 사랑스러운, 호감형, 양념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에바브라 디도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에바브라 디도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 있는 군사입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자라”(25절) 그는 군사 된 자입니다. 군사의 모든 것은 나라에서 책임집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군사가 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지십니다.
일반 신자들은 어린아이와 같아 구원 받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지만 자신 밖에 모릅니다. 이런 신앙 단계는 사단이 미혹하고, 기도응답을 체험하기 어렵습니다. 청년의 신자는 성령을 체험하고 능력이 있습니다. 시험도 이기고, 전도도 하며 기도응답을 받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주지 못합니다. 아비의 신앙은 전도하고, 기도 응답을 받으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양육하게 됩니다. 성도는 아비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을 위해 더는 구할 것이 없어지게 됩니다. 에바브라 디도는 청년, 아비와 같은 신앙인입니다.
에바브라 디도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친 자입니다.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26-27절). 병이 든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닙니다. 단 병든 것을 믿음으로 고치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은밀한 비밀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간증 있는 삶입니다.
그는 누구에게나 기쁨이 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28절). 다른 사람에게 걱정을 덜어주는 자입니다. 전도는 간증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만난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에바브로 디도는 주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은 자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30절).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자기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사명이 있기 때문에 이 땅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에바브로 디도는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시는 자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30절).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귀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께 올인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nd... 다른 사람보다 고난이 많다는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지금은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해 원망스러울지라도 고난을 통해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비밀이 쌓여지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통해 주님을 체험하는 것과 고난 없이 주님을 체험하는 것은 그 깊이가 다릅니다. 고난에는 특별한 주님의 사랑이 있기에 더 많은 감사를 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기쁨은 쾌락으로 자신을 멸망으로 인도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순수함이 많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세상의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 앞에 순수한 그런 사람이 그립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사람에게도 인정받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면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주님은 큰일을 맡기십니다. 사명은 우리가 찾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할 때 방향을 틀어 하나님께서 인도해 가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사명을 다하는 삶이 됩니다.
에바브로 디도는 자신이 죽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갈등을 하는 것은 내 자아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내 뜻대로 모든 일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뜻이 죽고 하나님의 뜻만 남으면 갈등하지 않습니다. 갈등이 사라지면 삶이 단순해집니다. 그리고 삶이 쉽습니다. 성도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주님을 위한 삶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갈 때 주님이 축복하십니다.
자신의 몸을 주님을 위해 거룩한 헌신의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주의 종에게 힘을 실어주는 지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질서입니다. 질서가 무너지면 공동체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리더자가 부족하면 기도로 힘을 실어주어야 합니다. 그도 하나님이 세운 사람입니다. 에베브로 디도가 그립습니다. 내 자아를 버림으로 공동체를 살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