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홍빛 홍어 살 / 정희연
김장은 여름에 하지 않는다. 겨울에 담근 김장이 맛이 좋다. 그것은 낮은 온도에서 자라는 미생물이 긴 시간동안 천천히 발효되어 좋은 맛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높은 온도에서는 활동이 너무 빨라 정상적으로 발효되지 않고 상하게 된다. 홍어도 마찬가지로 낮은 온도에서 몸 안에 효소로 분해 과정을 거쳐 암모니아가 발생한다. 강한 알칼리성으로 유해한 세균이 증식할 수 없어 썩지 않고 탈이 나지 않는다.
전라남도 장흥에 있는 해상교량 ‘정남진 대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콘크리트 구조물의 뼈대가 완성된 것이다. 가로등과 다리에 설치되는 경관 조명과 선박의 운행을 돕는 항로등을 설치해야 한다. 그래서 전기 분야 건설 사업 관리자가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는 해상과학기지 건설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바다 이야기을 많이 했다. 겨울은 홍어가 잡히는 계절이고 홍어 잡이 선장을 알고 있다고 했다. 갓 잡은 홍어를 다음날 받아볼 수 있는데 눈이 내리는 날 먹으면 최고라며 내게 추천했다. 귀가 솔깃했다. 참치머리 해체하기, 방어 회뜨기, 홍어 숙성하기가 내 버킷리스트에 들어 있다. 직장을 그만 두고 무료해 질 때 친구를 불러 소주 한잔 하면서 회포를 풀고 싶어서다.
홍어 하면 신안 흑산도를 떠올리지만, 인천 앞바다에서 더 많이 잡힌다.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냉수 어종이기 때문에 따뜻한 남부지방 보다는 수온이 낮은 곳을 좋아한다. 홍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때는 11월부터 이듬해인 2월까지다. 수심 50~100m의 깊은 곳에 살고, 흑산도 연안에서 충남 태안을 거쳐 인천의 대청도로 이동한다고 한다.
전라도에서 잔칫날 빠지면 안 되는 것이 홍어다. 홍어가 없으면 먹을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선호하는 음식 중 하나다. 소중하고 귀한 음식이라 아무에게나 칼을 맡기지도 않았다. 8kg이 넘는 암컷을 최고로 친다. 홍어 잡이 고깃배가 항구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유튜브에서 해체 순서를 익혔다. 홍어가 도착했다. 대형 스티로폼 상자에 담긴 홍어는 어마무시하게 컸다. 10kg이 넘어 보인다.
넓은 탁자에 홍어를 펼쳤다. 껍질에서 나오는 점액질을 제거하고, 먹기 좋게 살과 뼈를 분리해야 한다. 먼저 배를 갈라 홍어애(간)를 꺼낸다. 연노랑 색 커다란 간이 나온다. 쓸개가 터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홍어의 내장은 간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막걸리와 기름소금를 가지고 그가 왔다. 가장 맛깔스러운 곳이면서 신선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한 입에 먹을 수 있도록 적당한 크기로 잘라 접시에 담았다. 막걸리 한 병이 금세 사라졌다. 살살 녹았다. 코와 입 사이 인중을 자르고 입과 아가미를 제거한다. 다음은 몸통, 날개, 꼬리, 머리 순으로 자르고, 양쪽 날개는 5cm 넓이로 자른 후 포를 뜨면 홍어회가 된다. 주둥이, 아가미, 몸통, 꼬리 등 뼈 옆에 붙은 살을 도려낸다. 찰지고 풍미가 깊다. 홍어의 알싸한 맛을 느끼려면 내장을 꺼내고 긴 시간 숙성을 해야 한다.
홍어애는 기름소금에 회와 살은 초고추장에 찍어 먹고 나머지 부산물은 탕 끓일 때 넣거나 젓갈로 담는다. 끓은 물에 살짝 대쳐서 먹으면 홍어의 독특한 알알한 맛이 일품이다. 구경꾼들이 하나둘 모여 들었다. 홍어 맛을 아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 등 다양했다. 부위별로 접시에 담았다. 선홍빛 홍어 살이 입맛을 돋운다. 날은 우둑어둑해지고 잔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첫댓글 멋진 글인걸요. 엄지 척.
뒤에서 놀고 있는데, 부끄럽네요. 고맙습니다.
저도 홍어를 아주 좋아한답니다. 군침도네요.
쉽지 않은 경험을 했습니다.
홍어가 많이 잡힌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썩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래도 홍어삼합은 김치와 돼지고기 맛으로 먹으니 좋아해요.
홍어 맛을 아는 시간이 올까요?
선생님, 혹시 술 맛을 아시나요? 그 다음 단계가 홍어 맛인 듯 합니다.
@정희연 술맛을 모르니 안타깝네요.
@조미숙 술맛을 더해주는 제곱근쯤 되는데......
아, 해체 쇼 진짜 보고 싶네요.
선생님 대단하세요. 그거 무지 어렵다던데.
홍어 학교가 있다는 기사를 봤어요.
작년에 홍어 한 마리 사고 싶었는데 계절이 더 빠르게 지나가 버렸어요.
홍어를 통채로 사서 해체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정 선생님은 무슨 일이던 적극적으로 하네요.
잘은 못하고요, 흉내 내는 정도입니다. 좋은 부위를 냉동고에 숨겨 놓았다가 궁할 때 내놓으면 좋습니다.
와우, 이제는 해체까지 하시나 봐요.
아쉽게도 전라도 토종인 저는 홍어를 먹지 못합니다.
몇 년 전 영산포 홍어 거리 식당엘 갔는데 메뉴가 한 가지밖에 없더군요.
배를 쫄쫄 굶고 왔던 기억이 납니다.
아내가 채소를 다듬는 일은 저만 시킵니다. 채썰기를 잘한다면서요. 하하하!
홍어에 대한 재밌는 정보가 담긴 글이네요. 홍어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읽는 내내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홍어 속으로 더 파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많이 부족합니다. 고맙습니다.
유튜브에서 보기만 하면 그게 되나요? 못하는 게 없으시네요. '알쓸신잡'이네요.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처음 알았습니다. 긍께요, 교수님께서 집중하라 했는데 또 한소리 듣겠어요.
@정희연 '쓸데있는' 아닌가요? 하하.
@송향라 tvN 예능 프로그램의 힘인 것 같아요(제목 :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예 알겠습니다.
저는 경상도라도 홍어를 은근 좋아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홍어 애에다 소주 한잔 곁들이고 싶네요. 이제 글이 읽을 만합니다. 좋아졌어요.
으악! 빨간색으로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