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헤어져야 할 시간 / 곽주현
광주 공항으로 갔다. 벌써 친구 여럿이 나와 있다. 모두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한다. 해마다 이맘때쯤 고향에서 모였는데, 올해는 특별한 여행을 계획했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떠난다. 전국에 흩어져 사는 초등학교 동창들이 함께하는 자리다. 모두 제주 공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두어 달 전부터 준비한 터라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마음이 설레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이 마지막이라 하니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었다.
초등학교 동기 동창들은 고향과 서울을 번갈아 오가며 한 해도 빠짐없이 모였다. 몸이 여물고 빳빳했던 20대부터 시작했으니 어느덧 50여 년이 흘렀다. 생각해 보니 코로나로 3년간 모이지 못한 때도 있었다. 그 악몽 같은 시기를 지나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너무 반갑고 기뻐서 남녀 가릴 것 없이 껴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그때 우리는 코흘리개 시절의 초등학생으로 되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탄 듯했다.
나이가 드니 학교 가방끈이 길든 짧든, 번쩍거리는 고급 승용차를 굴리든 찌그러진 트럭을 타고 다니든 이제는 아무 차이 없어 보인다. 그저 만나는 것 자체가 즐겁고 흐뭇하다. 막걸리 한 잔이 들어가면 이 친구는 코흘리개였고 저 친구는 지앙통(말썽꾸러기의 전라도 사투리)이었다며 서로를 놀린다. 어린 시절의 작은 일들을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해 내는 동창생도 있다. 그때는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던 친구가 이런저런 사건들을 끄집어내 어찌나 세세하게 이야기하는지, 그 기억력에 새삼 놀란다. 흉을 봐도 낯을 붉히는 이 없고 서로의 머리통을 쥐어박아도 그저 웃음판이 된다. 초등학교 동창회만큼 어린 시절의 허물없는 시절로 돌아가는 모임도 드물 것이다. 이런 사이를 죽마고우라 하나 보다.
제주 공항에서 스물다섯 명이 모였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다고 흰머리를 까맣게 물들이고 새 옷을 차려입는 등 나름 멋을 부리고 나왔지만, 얼굴에 번진 검버섯과 깊게 팬 주름은 감출 수 없다. 한 친구는 걸음걸이가 뒤뚱거리고, 또 다른 이는 구부정한 허리를 감추려 애써 자세를 바로잡아 보지만 한 발짝만 떼어도 금세 드러난다. 우리는 지금 그다지 멀지 않은 각자의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졸업생이 210명쯤 되는 것으로 아는데, 참석자는 겨우 스물다섯 명이다. 파릇파릇하던 시절에는 백여 명씩 모이기도 했지만, 세월과 함께 점점 줄어들었다. 금강산 길이 열려 있던 20여 년 전에는 90여 명이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을 떠난 친구도 있고, 거동이 불편해 함께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이제 그만하자는 의견이 몇 년째 오갔다. 결국 마지막 동창회를 제주 여행으로 마무리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관광버스를 타고 승마, 서커스, 산방굴사, 우도 유람선, 4·3 공원, 천제연 폭포, 카멜리아 힐 수목원 등 제주도의 여러 곳을 둘러보고 체험했다. 그중에서도 사계절 다양한 꽃을 볼 수 있는 카멜리아 힐 수목원이 특히 좋았다. 마침 우리나라 것과는 또 다른 세계 각국의 동백꽃이 한창 피어 있었다. 친구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 주며 이리 서라, 저리 앉으라 하며 껄껄 웃는다. 이때만큼은 모두 소풍 나온 초등학생이다. 수목 사이로 난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잘 꾸며진 온실과 연못 등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진다. 그곳에서 하루쯤 머물고 싶었지만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뿐이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시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데 문득 광주 공항까지 왔다가 탑승 직전에 여행을 포기한 친구가 떠올랐다. 곁에 앉아 있던 친구가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졌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식은땀이 쏟아졌다. 인공호흡을 하고 구급차를 부르느라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병원으로 이송되는 모습을 뒤로한 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와 전화를 걸었더니 그의 부인이 받았다. 다행히 빠른 대처 덕분에 위기를 넘기고 안정을 되찾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안도하면서도, 이것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같은 동네 친구였고, 다음 달이면 경기도에 사는 딸 곁으로 이사 갈 예정이라 함께하지 못한 것이 더욱더 안타까웠다.
마지막 밤, 우리는 한 방에 모여 짧은 여행을 아쉬워하며 맥주를 나누었다. 별다른 말 없이 잔이 채워지고 또 비워졌다. 한 여자 동창이 우리 이러지 말고 라이트클럽에나 가보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십 년 만에 찾은 그곳은 여전히 현란한 조명이 돌아가고 강한 비트의 음악이 귀를 울렸다. 사람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었지만, 우리는 그들과 섞이지 못한 채 맥주잔만 기울였다. 그 와중에 누군가 교가를 부르자고 했다. “칡산은 힘찬 기세, 내 품에 안고, 찬란하다 그 사랑 우리 산포교.”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다음 날, 우리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어쩌면, 이후로 얼굴을 다시 볼 수 없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첫댓글 만감이 교차한 여행이었네요. 초등학교 동창은 언제 만나도 개구장이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저도 지난 주에 여고 동창들과 제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하루 사이로 초등 동창 모임도 있었는데 거기는 참석하지 못했어요.
그래요, 갈수록 모이는 숫자가 줄어들더이다. 만날 수 있을 때 가까운 친구들과 더 자주 만나세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선생님 부디 건강 잘 챙기셔서 오래오래 제 글동무해 주세요.
인생의 황혼을 새삼 깨닫게 되는 글이네요. 싸한 아픔이 몰 려와서 한참을 멍해 있었네요. 함께 겪어야 할 일이라 공감이 갑니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일이지만 쉬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네요. 마지막 멋진 여행입니다. 그 나이에 나이트클럽도 가구요. 저보다 낫습니다. 하하.
"이제 우리, 헤어져야 할 시간"
가슴이 먹먹합니다.
비가 오네요. 오늘 날씨처럼 가라앉는 마음은 어쩔 수 없네요.
선생님 글에 손을 쫙 펴고 그 빛을 쪼입니다. 온 몸으로 따뜻한 기운이 전해 옵니다. 점점 몸이 뜨겁다며 눈에선 물을 준비하고요.
아름다운 여행 하셨네요.
가슴이 찡해오는 건, 저만의 감정이 아닌가 보네요.
'사는 일이 이런거였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 선생님의 댓글을 보니 저만 그런 게 아니군요. 재미나게 읽다 마지막 한 구절에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깊이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