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그 섬에서 / 송덕희
새봄이면 노란 유채꽃이 만발하는 그곳에 가 보지 못했다. 친구는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살았던 그 섬을 늘 그리워하며 옛 추억을 이야기하곤 했다. 언젠가 한번 가자고 했지만, 바쁘게 살다 보니 세월만 흘렀다. 그렇게 청산도는 상상 속에만 오래 머물러 있었다.
마침내 개천절 연휴에 남편과 2박 3일 일정으로 청산도를 찾기로 했다. 미리 묵을 곳과 다닐 데를 정해 두었다는 말만 믿고, 나는 별다른 준비 없이 따라나섰다. 단둘이 떠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한 가지 약속을 제안했다. 의견이 맞지 않아서 목소리를 높이거나 불만을 드러내면 벌금 만 원씩 내기로 했다.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는데, 내내 서로를 배려하게 해 준 좋은 장치가 되었다.
숙소는 슬로길 10코스에 자리한 예그리나 펜션이었다. 완도항에서 배를 타고 50분쯤 지나 도청항에 도착하니 주인이 마중 나와 있었다. 타지에서 살다 귀향하여 펜션을 운영한 지 12년째라고 했다. 잘 가꾼 잔디밭에는 무농약으로 키운 단감이 떨어져 있었다. 장미허브와 체리세이지, 치자꽃에서는 달짝지근하고 상큼한 향이 풍겼다. 갖가지 꽃과 나무, 다육식물은 저마다 생김새에 어울리는 오지그릇에 뿌리를 내리고 튼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실내는 단출하면서도 정겨워 부산스럽던 마음이 절로 차분해졌다. 아침이면 저만치 지리 청송 해수욕장의 은빛 모래와 윤슬이 눈부셨다. 저물녘에는 붉은 노을 아래 해가 바다로 사라지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새벽에 문을 열면 총총히 박힌 별들이 금세라도 쏟아져 내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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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 주인은 섬 곳곳에 얽힌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품고 있는 박물관 같았다. 우리가 여행하기 전에 가 볼 만한 데를 추천해 주며, 꼭 풀어야 할 숙제를 한두 가지씩 내주었다. 무엇보다 느리게 걸어라, 그래야 비로소 보인다고 했다. 바쁘게 달려온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섬이 간직한 문화를 세심히 들여다보라고 했다. 청산도는 2007년 아시아 최초로 슬로 시티로 지정되었다. 섬의 상징으로 달팽이 조형물도 세웠다. 천천히 보고 마음을 붙드는 것들에 눈을 맞추도록 조성한 슬로길은 11개 코스 17개 길로 총 길이는 42.195킬리미터에 이른다. 올여름에 제주도 올레길을 완주한 남편은 한껏 들떠서 사흘이면 거뜬하다며 눈을 반짝인다. 나는 무리하지 말고 발길 닿는 대로 천천히 다니자며 의욕을 누그러뜨렸다. 느림의 미학을 느끼자는 뜻으로 종을 세 번 치고 출발했다.
1번 코스는 도청항에서 당리 마을의 영화 촬영지로 이어진다.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이다. 봄이면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텔레비전에도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가을이라 그 풍경을 볼 수 없어 아쉽지만, 누렇게 익어 가는 벼와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빈자리를 채웠다.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서 한 폭의 수채화가 따로 없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돌담이 예스럽고, 사위질빵은 담을 감고 올라 하얀 꽃을 피웠다. 가느다란 꽃술이 바람에 파르르 떨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에는 이곳의 구불구불한 황톳길과 아담한 돌담을 배경으로 소리꾼 송화와 북 치는 동호, 그의 아버지 유봉이 진도 아리랑을 맛깔나게 부르는 장면이 길게 나온다. 오래전 보았던 명장면이 떠올라 걸음을 멈췄다. 눈을 감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 아리랑 가락에 귀 기울였다. 조금 더 올라가니 책에서만 보았던 초분이 눈에 띈다. 2000년까지도 행해지던 섬 지역의 장례 문화라고 한다. 관을 땅에 묻지 않고, 짚이나 풀로 엮은 이엉을 덮어 두었다가, 2~3년이 지나면 뼈를 골라 땅에 묻는 방식이다. 고인돌처럼 무거운 돌로 얹거나 흙으로 쌓는 것보다 나았을까. 혼령이 훨훨 날아가라는 염원이 담겼을까.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를 지나 한참을 걸으니 화랑포길을 거쳐 2코스인 사랑길로 이어졌다. 군데군데 마련된 쉼터에는, 의자가 꼭 두 개씩 놓여 있었다. “우리는 둘이라 괜찮은데, 일행이 많으면 서로 앉겠다고 하겠는걸?” 했더니, 남편은 걷다 보면 욕심도 사그라져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꽃과 나무, 산들거리는 바람이 찌그러진 감정마저 펴 주는 마법을 부리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이 길은 숲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해안 절경을 함께 즐기기에 좋았다. 청산도의 젊은 남녀가 어른들 몰래 찾아와 사랑을 속삭이던 곳에 이르렀다. 지금 함께 걷는 여자가 첫사랑인 남자의 눈에만 보인다는 일명 연애 바위, 안내판 앞에서 목을 빼고 여기저기를 살핀다. 남편은 기필코 찾아내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더니, 끝내 보이지 않자 왜 없냐며 투덜거렸다. 나는 진작 첫사랑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실망이 크다고 한마디해 주었다. 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지만, 실실 웃음이 났다.
이튿날 오전에는 해안가로 이어지는 4코스 낭길부터 출발했다. 오른쪽으로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다. 날이 맑으면 제주도까지 보인단다. 넘어지면 그대로 굴러 떨어질 만큼 경사가 급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먼바다에 풍랑 주의보가 발령되어선지 파도도 거셌다. 절벽을 때리는 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풀이 우거진 명품길로 이어지는 5코스에서는 말탄 바위를 비롯해 주상절리가 펼쳐진 아름다운 해안을 끼고 걸었다. 위로는 범바위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발아래로는 아찔한 절벽이 이어졌다. 이곳에서는 청산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섬 가운데는 분지처럼 마을이 자리 잡았고, 바깥쪽으로는 높은 산지가 둘러싸고 있었다. 자갈 섞인 비탈길을 오래 걷다 보니 발바닥이 아팠다. 결국 400미터 앞에 있는 범바위를 그냥 지나쳤다. 장기미 해변의 몽돌길을 돌아 구들장논으로 향했다. 방에 구들을 놓듯 논바닥에 돌을 깔아 수로를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벼를 심은 이 농법은 세계 중요 농업 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무논을 따라 바다로 향한다. 계단처럼 층을 이룬 다랑이논에서는 벼가 누렇게 익어 갔다.
오후에는 10~11코스인 단풍길과 노을길로 발길을 돌렸다. 11월 중순이 지나야 단풍이 절정에 이른다지만, 푸른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룬 이곳은 호젓해서 좋았다. 지리 청송 해수욕장을 지나는 노을길에는 200년이 넘은 아름드리 해송이 즐비하다. 바다를 향해 반쯤 누운 나무도 늠름하게 버티고 있었다. 물오리 세 마리는 물고기를 잡으려는지 바다에서 자맥질한다. 솔잎이 깔린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의자에 앉았다. 사위는 고요하고 파도가 고운 모래를 밀어 올렸다 쓸어 가는 소리만 들린다. 물결은 시간 차를 두고 서로 다른 곳에서 밀려온다. 오른쪽에서 한 번 치면 가운데 물결이 밀려나고, 다시 왼쪽에서 부딪친다. 한꺼번에 달려들지 않는다. 가는 모래가 포말을 따라 흩어졌다가 모인다. 좌르르, 좌르르, 파도 소리를 오래도록 들었다.
밤부터 거센 바람이 불었다. 육지로 나가야 하는데, 조금 걱정되었다. 남편은 날씨가 이래도 전날 못 간 범바위를 가고 싶어 했다. 주인도 꼭 가볼 영험한 곳이라며 우리를 부추겼다. 마지막 날 아침에 입구까지 차로 데려다주기까지 했다. 호랑이를 닮은 바위는 바다를 향해 달려드는 형상이었다. 이곳과 아래 마을인 권덕리 주변 암석에는 자석철이 많아 자력이 강하게 작용한다고 한다. 몸에 좋은 자기장의 기운을 받으려고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연초에는 무당이나 점술가도 많이 다녀간단다.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꼭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나도 가족이 건강하기를 바라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바람을 피해 전망대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청산도의 산증인이라 할 사진 작가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문화 해설사로 섬을 알리는 일을 한다며, 오늘도 새벽같이 나가 구들장논의 가을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왔다고 했다. 평생 이곳의 자연과 사람들을 찍어 온 사진이 파일 속에 가득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설명하는 작가의 눈에는 열정이 가득했다. 참 대단한 분들이다. 덕분에 청산도는 앞으로도 내내 푸른 섬으로 남으리라는 믿음을 안고 내려왔다.
우리는 늘 어딘가를 향해 서둘러 걷느라 곁에 있는 사람과 같은 풍경을 바라볼 여유조차 잊고 살았다. 걸음을 늦추고, 나란히 같은 곳을 바라보는 소중한 일상을 외면한 채. 이제 마음 한쪽에 작은 의자 두 개를 놓아두고 바쁠수록 잠시 앉아,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쉬어 가는 여유를 찾고 싶다.
오래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청산도를 느릿느릿 둘러본 여행은 늦게 찾아간 만큼 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