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롬 !!
경항공기 지역 신우회 5월3일(수) 예배순서
4월9일 주일부터 5월28일 주일까지 ‘예수님 부활과 교회공동체의 형성’을 로마서1장~8장까지 이어져 갈 내용 중에서, 첫 번째로 ‘하나님의 언약적 정의가 드러나다’ 말씀선포 내용을 적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에게 우리에게 주시는 보화같은 말씀입니다.
성경말씀 : 로마서4장18-25절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나라 신약성경)
아브라함은 도저히 희망이 없는 데도, 희망 가운데,“네 가족이 이와 같을 것이다”. 라고 들은 말씀대로 자신이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되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백세 가량 되었으므로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자기 몸과 사라의 태가 죽은 것을 알았지만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대면했을 때 그는 믿음 없이 흔들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믿음으로 굳건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능력이 있다고 전적으로 확신했습니다. “그에게 그것이 언약적 정의라는 관점에서 산정된 까닭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에게 산정되었다”라는 말은 아브라함만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도 기록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을 믿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그것이 산정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범죄 때문에 넘겨지셨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려고 일으켜지신 분입니다.
말씀선포 : 산정되다 (It is calculated to him/her)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 신약성경에 41회 사용된 고대 그리스어 단어로 ‘산정하다, 간주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이 단어의 변화형으로 아브라함과 초대 교회 성도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산정되었다고 말했습니다(새번역에선 ‘여겨 주셨다’고 번역했습니다).
21세기 교회는 사도 바울이 사용한 이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는 많은 성경번역이 ‘로기조마이’를 ‘여겨 주셨다’고 번역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많은 성도가 하나님이 지금 교회를 의롭게 여기신다고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 단어를 사용해서 성도가 앞으로 의롭게 정해질 것을 미리 여기서 의롭다고 정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잘 생각해 보면 성도가 완전히 의롭게 여김 받는 때는 미래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온 창조 세계에서 만왕의 왕으로 다스리기 시작하실 미래 말입니다. 성도는 거기서 완전히 의롭게 여김 받을 것이 현재에서 미리 정해졌습니다. ‘로기조마이’를 ‘산정하다’로 사용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정하다는 말은 ‘셈하여 정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뜻은 미래를 지향합니다. 언젠가 성도가 지금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고 산정된 것이 예수님 재림 때에 의롭게 된 것으로 지불될 것입니다. 성도가 완전히 의롭다고 하나님에 의해 값이 지불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날까지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셈여림 되어 정해진 대로 의인으로서 살아갑니다.
이 말이 마치 성도가 지금 의로운 것은 불완전하다는 것인가 말처럼 누군가에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언약적 정의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성경에 기록되어 예언되었던 온 세상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서 신실하게 이루어졌다고 전했습니다. 언약적 정의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약속을 이루신 신실하신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바꾸어 마침내 회복의 종지부를 찍는 날에 자기 백성을 불의하다고 여기시겠냐고 확신하며 하나님의 언약적 정의를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의롭다고 산정하신 자기 백성을 마침내 최후의 날 그대로 확정하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산정하다는 말이 셈의 거래를 하는 당사자들 간에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교회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의 대속죽음을 통해 사람을 의롭게 산정하신 것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이를 온전히 믿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거래하는 상호 간에 신뢰가 없다면 산정하는 일은 애초에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산정하신 백성이 나타난 것은 하나님이 신실하게 언약적 정의를 실현하셨다고 믿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산정하심이 성립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믿음을 먼저 보였던 사람으로서 아브라함을 말합니다. 모든 믿는 이의 조상.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셨던 그의 후손이 정말 많아질 것이라는 말을 믿음으로 언약적 정의가 산정되었다고 로마 교회에 전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아브라함이 그 믿음으로 백 살이 되어 낳은 아들이삭을 인신제사로 바치라는 야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삭이 인신제사로 희생되더라도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실 것이라 아브라함이 확신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삭은 실제로 죽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를 부활과 연결하며 이삭이 어떤 면에선 죽은 사람으로부터 다시 산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야웨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신실하게 이루시는 분임을 믿었기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자신을 향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보이는 가운데서 그를 의롭게 산정하셨던 것이 실제로 그의 인생 말년에 확증되어 나타났습니다.
바울 사도는 모든 교회의 성도가 유대인 출신이든 비유대인 출신이든 관계없이 구세주 예수님이 자신과 모든 사람 그리고 온 창조 세계를 구속하시기 위해 죽으셨음을 믿음으로 야웨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을 통해 아들 예수님 안에서 그들을 의롭게 산정되었고 평화를 누린다고 로마 교회에 전했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모두 최종 역사의 종언에 완전히 의롭다는 확정적 판결을 받게 될 것을 성령 하나님의 충만함 가운데서 확신하기에 어떤 고난 속에서도 인내를 가지며 그 인내가 하나님 백성다운 확실한 성품 형성으로 이어진다고 로마 교회에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성품 형성은 바로 하나님 백성다운 삶을 만들어내는 기초입니다. 단련된 성품은 성도가 지금 의롭다고 산정된 것이 실제로 정말 의롭다고 인정되는 값이 지불되는 날에 그 성도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산 백성이었다고 증명하는 핵심이 될 것입니다. 단련된 성품은 오직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적 정의를 믿으며 증인과 청지기로서 살아가며 생기는 것이기에 주님 은혜로만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단련된 성품은 행위로 구원받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 은혜로만 산 사람은 어디서나 주님 은혜의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이 사람은 주변 상황이 아닌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에 의지하여 참된 청지기로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