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6월 8일 / 음력 5월 15일 ~ 1857년 9월 21일 / 음력 8월 4일 )
조선 제23대 왕인 순조 의 정비(正妃)이자 문조 (효명세자, 文祖)의 어머니이며 헌종 의 할머니이다.
본관은 안동 (安東)이다.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 과 청양부부인 심씨(靑陽府夫人 沈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789년 6월 8일 ( 음력 5월 15일 ) 에 태어났다.
시파 계열이자 정조 의 최측근dls 아버지 김조순의 영향으로 당시 왕세자 였 던 순조의 유력한 세자빈으로 떠올랐고
초간택과 재간택을 거쳐 사실상 세자빈으로 확정되었으나 1800 년 , 정조가 갑작스럽게 승하하자 최종적인 삼간택이 미루어졌고 결국 순조의 즉위 2년 뒤인 1802 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805년 , 대왕대비 인 정순왕후 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순조의 친정이 선포되자 순조의 장인이자 순원왕후의 아버지인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 은 안동 김씨 시파를 등용하였는데 이들 중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많아 정순왕후 집권 이후 계속된 천주교 박해는 다소 완화되었다.
이 대규모 숙청은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시발점이 되었다.
순원왕후는
1809년 에 맏아들인 효명세자 를 낳았는데 효명세자는 어릴때부터 총명하여 순조의 많은 귀여움을 받았다.
당시 순조는 안동 김씨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1819년 , 풍양 조씨 인 조만영 의 딸을 효명세자의 세자빈으로 맞아들였는데 훗날 신정왕후 이다.
1827년 , 순조는 효명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 을 하게 하였는데
이 대리청정 기간 동안 효명세자는 현재(賢材)를 등용하고 형옥(刑獄)을 신중하게 하는 등의 선정을 베풀었으나
1830년 , 대리청정 4년 만에 갑작스럽게 급서하였고
1834년 에는 순조마저 승하하자 당시 8세였던 왕세손이 헌종 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헌종이 즉위하자 효명세자를 익종으로 추존하고
순원왕후는 대왕대비가 되어 수렴청정 을 하게 되었는데,
헌종의 왕비를 자신의 친척인 김조근 의 딸로 맞아들였으니,
이가 헌종의 정비인 효현왕후 이다 .
그러나 1849년 ,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그녀는 친가인 안동 김씨 세력과 결탁하여
장헌세자 의 서자이자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 의 손자 원범(元範)을
강화도 에서 궁으로 데려와 덕완군(德完君)으로 책봉하고 자신과 순조의 양자로 입적하여 즉위시키니
조선의 제25대 왕인 철종 이다.
철종을 즉위시킨 뒤에도 그녀는 철종의 왕비를 다시금 안동 김씨인 김문근 의 딸( 철인왕후 )로 맞아들여
안동 김씨의 60년 세도정치를 이어나갔으며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하던 1857년 9월 21일 ( 음력 8월 4일 ),
창덕궁 양심합(養心閤)에서 69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능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에 위치한 인릉(仁陵)으로 남편인 순조와 합장되어 있다 .
조부 : 서흥부사 증 영의정 김이중 (瑞興府使 贈 領議政 金履中, 1736~1793)
조모 : 부사 신사적(牧使 申思迪, 1683~?)의 딸 평산 신씨(平山 申氏)
아버지 : 영안부원군 충문공 김조순 (永安府院君 忠文公 金祖淳, 1765~1832)
어머니 : 청양부부인 청송 심씨(靑陽府夫人 靑松 沈氏, 1766~1828)
외조부 : 증 좌찬성 심건지(贈 左贊成 沈健之, 1733~?)
외조모 : 현감 이윤언(縣監 李胤彦, 1686~?)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
오빠 : 영돈녕판사 김유근 (領敦寧判事 金逌根, 1785~1840)
오빠 : 증 이조판서 김원근 (贈 吏曹判書 金元根1786~1832)
동생 : 영돈녕부사 충익공 김좌근 (領敦寧府事 忠翼公 金左根, 1797~1869)
시아버지 : 제22대 정조선황제 (正祖宣皇帝,1752~1800)
시어머니 : 효의선황후 김씨(孝懿宣皇后 金氏, 1753~1821) 서시어머니 : 의비 성씨 (宜嬪 成氏, 1753~1786)
시아주버니 : 문효세자 (文孝世子, 1782~1786)
생시어머니 : 현목수빈 박씨(顯穆綏嬪 朴氏, 1770~1822)
남편 : 제23대 순조숙황제 (純祖肅皇帝, 1790~1834)
장남 : 추존 문조익황제 (文祖翼皇帝, 1809~1830)
며느리 : 신정익황후 조씨(神貞翼皇后 趙氏, 1808~1890)
손자 : 제24대 헌종성황제 (憲宗成皇帝 , 1827~1849)
1809년 1월 21일 / 1808년 음력 12월 6일 ~ 1890년 6월 4일 / 음력 4월 17일 )
조선 의 추존왕 문조 의 아내이며 헌종 의 어머니이다.
정식 시호가 56자로 조선의 왕후 가운데 가장 긴 시호를 가지고 있는 왕후이기도 하다.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 과 덕안부부인(德安府夫人) 송씨(宋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809년 1월 21일(음력 1808년 12월 6일) 탄생 하여. 1819년 , 왕세자 였던 효명세자 와 혼례를 올리고 세자빈 이 되었다.
1827년 원손(훗날의 헌종)을 낳았다.그러나 1830년 에 남편인 효명세자가 대리청정 을 한 지 4년만에 요절하였다.
1834년 에 시아버지인 순조 가 승하하고 아들 헌종 이 왕위에 오르자 왕 대비 가 되었다.
그러나 1849 년,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헌종의 할머니이자 선왕 순조의 정비였던 순원왕후 는 친가인 안동 김씨 세력과 결탁하여 전계군 ( 全溪君)의 아들 철종 을 옹립하여 외가인 안동 김씨의 세도를 계속 이어나갔다.
1857년 , 시어머니인 순원왕후 가 승하하자 대왕대비 가 되었으며 1863년 에 철종이 또다시 후사 없이 승하하자 당시 대왕대비로서 왕실의 최고 어른이었던 신정왕후는 흥선군 과 사전 모의하여 흥선군의 둘째아들인 이재황 (李載晃)을 익종과 자신의 양자로 입적시켜 왕위에 옹립하였는데 그가 조선의 26대 왕인 고종이다.
이후 신정왕후 자신은 고종의 법적인 어머니로서 수렴청정 을 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고종의 친부로서 대원군에 책봉된 흥선대원군에게 전권을 주고 물러났다.
한편 안동 김씨 가문에 빼앗겼던 세력을 되찾아오고자 했던 신정왕후는 고종의 비를 자신의 친정 일가인 조면호 의 딸로 정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역시 흥선대원군의 반대로 취소해야 했다.
1890년 6월 4일(음력 4월 17일), 83세의 나이로 경복궁 흥복전 (興福殿)에서 승하하였으며
능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에 남편 문조와 합장되어 있는 수릉(綏陵)이다.
.
한편 고구마 를 조선 에 들여온 이조 판서 조엄 은 조대비의 증조할아버지였다.
조부 : 증 영의정 이조 판서 효문공 조진관 (贈 領議政 吏曹判書 孝文公 趙鎭寬, 1739~1808
조모 : 부사 홍익빈(洪益彬)의 딸 남양 홍씨(南陽 洪氏, 1739~1799)
아버지 : 증 영의정 풍은부원군 충경공 조만영 ( 豊恩府院君 忠敬公 趙萬永, 1776~1846)
어머니 : 덕안부부인 은진 송씨(德安府夫人 恩津 宋氏, 1776~1834)
오빠 : 판서 문숙공 조병구 (判書 文肅公 趙秉龜, 1801~1845)
양자 : 문헌공 조성하 (文獻公 趙成夏, 1845~1881) - 생부 조병준 (趙秉駿, 1814~1862 /
양부 조병구 와 신정황후 조씨 의 6촌 동생)
남동생 : 우참찬 효헌공 조병기 (孝獻公 趙秉夔, 1821~1858)
양자 : 충문공 조영하(忠文公 趙寧夏, 1845~1884) - 생부 현령 조병석(趙秉錫)
시아버지 : 제23대 순조숙황제 (純祖肅皇帝, 1790~1834)
시어머니 : 순원숙황후 김씨(純元肅皇后 金氏, 1789~1857)
남편 : 추존 문조익황제 (文祖翼皇帝 , 1809~1830)
장남 : 제24대 헌종성황제 (憲宗成皇帝, 1827~1849)
며느리 : 효현성황후 김씨 (孝顯成皇后 金氏, 1828~1843)
며느리 : 효정성황후 홍씨 (孝定成皇后 洪氏, 1831~1903
양자 : 제26대 고종태황제 (高宗太皇帝, 1852~1919)
양며느리 : 명성태황후 민씨(明成泰皇后 閔氏, 1851~1895)
효명세자
그는 순조의 아들로 풍양조씨인 신정왕후와 11세의 나이에 혼인을 올렸고
순조의 건강이 약화되자 대리청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대리청정을 시작한 이후 재정분야를 장악하였다.
그러나 대리청정을 한지 3개월만에 각혈로 급사하게 된다.
어떻게 3년 3개월만에 세상을 뜰수가 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힘들었던 사람은 신정왕후 였을 것이다.
신정왕후는 왕실에서 기댈곳 하나 없고
심지어 헌종이 죽은 후 뒤를 이은 철종의 수렴청정도 시어머니 순원왕후가 하게 되니 혼자 숨어서 씁쓸했을 것이다.
이런 고난도 잠시 철종이 집권하던 시기에 순원왕후가 죽게되고
왕실에서 최고의 대왕대비마마가 되었다.
그때부터가 그녀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녀는 고종을 채택하여 왕위로 올린 후 경복궁추진,과거제 폐단시정 등을 하였는데
이 모든 계획은 원래 효명세자가 하려던 것이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그의 뜻을 따라
이 모든 일들을 실행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얼핏보면 흥성대원군의 개혁과도 마딱떨어지는데
당연히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녀가 직접나서서 한게 아니라 흥선대원군과 손을 잡고
자신이 직접 나서면 화가 일어날수도 있으니 대신에 흥선대원군을 내세워서 실시하게 되었다.
그렇게 고난을 겪은 후 마침내 열매를 결실하게된 그녀를 보고 있는
나로서는 엄마미소가 절로난다.
역사를 통틀어서 살펴보면 흥할때가 있으면 반드시 망할때가 온다는게 느껴진다.
출생 1828년 4월 27일(음력 3월 14일)~1843년 10월 18일(음력 8월 25일)
조선 헌 종 정비이다.
김조근 (金祖根)의 딸로, 본관은 안동 (安東)이다 .
1837년 왕비에 책봉되었으나 자손을 두지 못하고, 1843년 어린 나이에 사망하였다.
헌종, 효정왕후 와 함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경릉에 묻혀 있다.
조부 : 충주목사 증 영의정 김지순(忠州牧使 贈 領議政 金芝淳) 조모 : 이조판서 민종현(閔鍾顯)의 딸 여흥 민씨(驪興 閔氏)
아버지 : 영흥부원군 효간공 김조근 (永興府院君 孝簡公 金祖根, 1793~1844)
외조부 : 직산현감 이희선(稷山縣監 李羲先, 1775~1818) 외조모 : 박홍수(朴泓壽)의 딸 (潘南 朴氏, 1774~1811)
어머니 : 한성부부인 한산 이씨(漢城府夫人 韓山 李氏)
시아버지 : 추존 문조익황제 (文祖翼皇帝, 1809~1830)
시어머니 : 신정익황후 조씨(神貞翼皇后 趙氏, 1808~1890)
남편 : 제24대 헌종성황제 (憲宗成皇帝, 1827~1849
효정황후 판돈녕부사 익풍부원군(益豊府院君) 홍재룡(在龍)의 딸이다 .
1844년(헌종 10) 왕비가 되었고,
1849년 철종이 즉위하자 대비(大妃)가 되었으며,
1857년(철종 8)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純元王后)가 죽자 왕대비(王大妃)가 되었다.
딸이 있었지만 일찍 죽었다.
능은 경기도 양주에 있는 경릉(景陵)이다.
1832년 음력 8월 27일 ~ 1907년 음력 4월 21일 (양력 6월 1일 ))
조선 의 24대왕 헌종 의 후궁이다.
조선 헌종 의 후궁으로 본관은 광산 이다.
아버지는 김재청 (金在淸 )이고, 어머니는 평산 신씨 신명하의 딸이다.
1832년 (순조 32년) 8월 27일 한사루동 사제의 유연당(悠然堂)에서 탄생하였다.
1847년 (헌종 13년) 순원왕후 가 헌종이 나이가 많은데도 후사가 없자
정식으로 간택하여 들인 후궁으로 이 해 음력 10월 20일 경빈(慶嬪)으로 책봉되었고, [1] 궁호를 순화(順和)라 하였다.
헌종은 경빈 김씨를 위해 창덕궁 내에 낙선재 (樂善齋)를 지어 자신과 경빈의 사랑채로 사용했으며,
같은 창덕궁 내에 석복헌 (錫福軒)을 지어 경빈의 처소로 쓰게 하였다.
1849년 (헌종 15년) 6월 6일 헌종이 승하함에 따라 순원왕후 , 신정왕후 를 정성을 다하여 받들었으며,
효정왕후 에게 예를 다하면서 검소하게 생활하였다.
1907년 (광무 11년) 6월 1일 ( 음력 4월 21일 ) 향년 76세를 일기로 별세.
고종 은 깊이 애도하고 조문을 직접 지어 내렸다.
이 해 7월 5일 양주 전 휘경원 천봉 국내 서록 손좌에 예장하였다.
현재 묘소는 서삼릉 내 귀인묘역에 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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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순원왕후 김씨 / 신정왕후 조씨 / 효현왕후-효현왕후 -경빈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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