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가자 노새야 어서 가자 노새야
안개 낀 지평선 달려가자 노새야
음 - 이 마을 저 마을에 푸른 연기만
애달픈 탄식처럼 솟아 오른다
울고 남은 눈물아 울고 남은 눈물아
마즈막 이별에 풀어져라 풀어져
음 - 노새는 가자 울고 날은 저물어
벌판에 사모친다 먼 데 종소래
타고 남은 사랑아 타고 남은 사랑아
고달픈 유랑에 스러져라 스러져
음 - 피어린 가슴속에 눈물을 싣고
조각달 바라보며 울고 또 운다
조명암 작사, 손목인 작곡
[남인수]
1918년 10월 18일에
경상남도 진주시 하촌동 194번지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최창수(崔昌洙)였으나 개가한 어머니를 따라
진주 강씨 문중에 들어가면서 강문수(姜文秀)로 바뀌었다.
남인수는 가수로 데뷔하면서 작사가 강사랑이 지어준 예명이다.
남인수의 형이었던 최창도의 딸,
그러니까 남인수에게는 조카가 되는 최삼숙은 북한의 인민배우로,
무대 공연 2600회를 한 인기 가수라고 한다.
2016년 5월,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의 탈북자들 중 최삼숙의 딸이
포함되었다고 보도되었다.
학력 사항에 대한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가수 데뷔 전 경력 역시 일본에서 노동자로 일했다는 설과 중국어를
배우다가 경성부로 올라왔다는 설 등 여러 설이 분분하다.
다소 불우한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는 정도로 알려져 있다.
1936년 김상화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눈물의 해협으로
가요계에 데뷔하였고,
1938년 데뷔곡을 이부풍이 개사한 애수의 소야곡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후 약 20여 년간 타고난 미성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물방아 사랑, 꼬집힌 풋사랑, 감격시대, 항구의 청춘시(靑春詩),
울며 헤진 부산항, 서귀포 칠십리, 청노새 탄식, 낙화유수, 남아일생,
일가 친척, 가거라 삼팔선, 달도 하나 해도 하나, 청춘 무성,
고향의 그림자, 고향은 내 사랑, 이별의 부산정거장, 청춘 고백,
추억의 소야곡, 산유화, 울리는 경부선, 무너진 사랑탑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약 1천 곡에 가까운 노래를 불렀고,
"가요 황제"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대개 청춘의 애틋한 사랑과 인생의 애달픔, 유랑의 슬픔 등을
그린 노래였다.
'무너진 사랑탑'은 남인수 선생님의 마지막 히트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62년 45세의 나이로 소천하시기 전 1958년 발표하신 곡이기에
이 후의 새로운 곡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