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잠언 2장 1-8절)『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카샤브) 네 마음을 명철(데부나)에 두며”
카샤브는 곤두세우다, 주의를 기울이다 라는 의미를 가지는 바, 적극적인 관심과 예민한 주의력으로 지혜의 교훈을 경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데부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신령한 능력으로서의 올바른 판별력을 가리키며, 두다라는 말도 카샤브로서, 집중하여 쏟다, 향하게 하다란 뜻을 가진다.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소리를 높이며(티텐 콜레카)는 울부짖다 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바, 지혜 추구의 간절한 열망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지혜의 추구를 보배를 찾는 일에, 또 지혜의 가치를 보배의 귀중함에 각각 비유하는 것은 광부가 광산을 파서 금을 캐듯이 인내심을 가지고 간절한 열망으로 지속적으로 지혜를 찾으라는 말이다.
모든 지혜와 지식을 추구하는 목적과 그 결과에 대한 진술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모든 지식의 근본인 동시에 최고의 가치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이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자의적인 윤리적, 종교적 노력과 열성에 의해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택한 백성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사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다아트 엘로힘)
다아트 엘로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아는 지식(다아트)은 실천적이며 체험적인 포괄적 의미의 지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야다는 하나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부부가 하나되는 것처럼 그와 같은 아는 것이다. 영어 번역에서 같은 the knowledge로 번역하였으나, 의미는 다르다.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이텐:나탄), 신령한 지혜의 원천이 오직 여호와뿐임이 다시 강조된다). 나탄은 배당하다, 승인하다라는 뜻을 가진 나탄의 미래형으로 인간이 원하며 찾아야만 주겠다는 조건절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지혜를 얻게 되는 데에는 사람의 노력과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람에게 직접 말씀을 들려주기도 하시지만 대체로 다양한 경로, 곧 선지자, 교사, 지혜자와 같이 부름받은 자들을 통해서 지혜를 전달하신다.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에게 지혜를 전하시며 그 지혜를 깨달을 수 있도록 역동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이다.
“완전한 지혜(투쉬야)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르홀르케 톰)에게 방패(마겐)가 되시나니”
투쉬야는 능력, 도움, 지혜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르홀르케 톰은 흠없이 걷는 자이다. 톰은 전인격적인 순종의 상태와 도덕적, 종교적 결백의 상태를 지칭한다. 여호와 경외를 삶의 주요한 원리로 삼고 그의 모든 삶을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뜻에 순종하여 의탁하고자 노력하는 자를 가리킨다.
마겐은 하나님의 신적 보호와 그로 인한 완전한 안전을 상징화한 말이다.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나차르) 그의 성도(하시드)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대저 라는 말을 통해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시는 사실을 더 구체화시킨 내용임을 설명하고 있다.
나차르는 준수하다, 보호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는데, 마음에 간직하여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정의의 길(아레호트 미쉐파트)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합당한 모든 길에 대한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는 말로서 성도들의 길과 병행을 이룬다.
하시드는 구별된, 거룩한, 경건한 이다.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로서의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특별히 마카비 시대 때에는 헬라 사상에 반대하여 유대인의 순수성을 고수하고자 했던 민족주의자들을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했다. 이들은 후일 바라새파의 원조가 되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말은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었다.
(요약 정리)
잠언 2장 1-8절은 지혜를 얻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마음에 간직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와 명철을 추구할 수 있게 만든다. 성경은 신자가 지혜와 명철을 추구하고 이를 삶에 적용하도록 권장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경외는 단순히 무서워하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존경하므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영적 통찰력과 진리를 깨닫게 된다.
잠언서는 이러한 지혜가 삶을 이끄는 등불이 되며, 하나님을 참되게 아는 것이 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경험과 지식으로 아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과 하나되는 앎이 된다. 이것은 앎의 주체가 나로부터 하나님에게로 변경되며, 자기를 내려 놓고 오직 하나님께 의지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