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양 은 가난다집에 태어나 서울에 있는 S여상을 나와 어느 무역회사에 다녔는데 하는일이 라고는 타이프 치는일과 카피떠오는일 커피 심부름 그리고 기타 잡일이 전부였다고 하는데 그러니 고작 월급이 80만원 이었다고한다.그래도 열심히 돈을 모아 유럽여행을 했는데 이태리의 베네치아를 여행하면서 이곳의 모든것에 매료되어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는 각오로 베네치아 에서 집을 하나 임대하여 (그때 까지 모은돈 을 전부털어) 한국 일본에서 오는 배낭족을 상대로 B/B(Bed and Breakfast)를 하기시작 했는데 손님이 늘어나 월 수입이 600만원이 되었다네.여유가 생겨 손님들에게 열세를 주고 개인 생활을 할 생각이 들어 처음 에는 언어를배우고취미생활을 했었는데 나중에는 대학도 나와 내가 만났을 때는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장래에 대학교 교단에 서는것이라했는데 지금쯤 은 그 꿈이 이루어 졌을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상하기도하고 가슴이 뿌듯해온다.
2. 태국에 있을때 나를 찾아온 P군
P군 은 내가 알고있는 친지의 조카되는데 내가 태국에 있을때 나를 찾아와서 일 자리를 구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한국에서 인문계 고교를 나와 취직이 안되어)친지의 부탁도있고 해서몇마디 물어 보았는데 한심하기 그지없었다("자네 할 줄아는게 무어냐? 글세요. 언어는? 영어하니? 못 합니다.그럼 일본말? 태국말? 전혀 못합니다.) 그런데 넉살은 좋아서 한국말은 잘 한다나. (지금 생각하니 해외에서는 한국말 잘하는것도큰 자산이긴하다.) 생각 끝에 내가 알고있는 여행사에 일년동안 그저 밥만 먹여주고 태국말 공부만 시켜 달라고 부탁을 했다(공장 건설하느라고 우리회사 기술자들이 수차례 왔다갔다해서 숙소 와운송을 책임지고 있는 여행사 가 있었다) 일년이 지난후 가이드를 한다는 소리는 들었는 데( 내가 얼마있다가 홍콩으로 발령이나 까막케 있고 있었다)얼마전에 수소문 하여 나에게 전화연락이 왔는데 가이드를 한참하다가 그 이후 에 중국계 태국여자와 결혼하고 번듯한 여행사도 차리고 기념품가계도 열고 한국 물건을 수입하는 무역회사도 한다하니 정말 가상하고 흐뭇하지 안을수없다
3.아프리카에 뛰어든 Y군
Y군은 공고를 나와 중동건설붐이 일때 H건설 직원으로 이랔에 같다가 건설경기가 뜸해지자 철수하게 되었는데 귀국해봐도 별 희망이 없어 보이자 "에이 씨팔 어자피 개팔자 면 테스트 나 하고 죽자 "(Y군 의 말)하고 남 아프리카 로 가게 되었는데 생각 과는 달리 그당시 만 해도 남 아프리카 는 흑 백인종 간 에 인종 싸움이 한창인 때 라 이웃나라인 스와지랜드 로 옮겨 갔다. 처음에는 무얼해야 될지 몰라 시간을 보냈는데 낮 과 밤이 기온 차가 심 해서 밤에는 으시시 한게 한기를 느끼게 되었다네. 그래서 한국에서 내복을 부쳐오게 해서 입고는 내복 중 한벌을 마을 유지에게 선물을 하였는데 너무 좋아하드라는겁니다.이 나라 사람들은 겉옷 만 입고 속옷을 안 입으까 그내복을 입어 보고 는 너무좋아 하는것이 아닌가.이것이 Y군의 운명을 바꿔늫을 줄이야.(옛날에야 사냥하고 들판을 이리 저리 뛰어 다닐 때 이니까 추위를 못 느꼈 겠지만 문명의혜택을 본 후로는 상황이 달라진것이네) 처음에는 부쳐다가 팔다가 잘 팔려서 무역으로 한국에서 내복과 다른 섬유 도 수입 판매를 하여 부자가 되어 나중에는 병원 도 세워 그지역에 봉사를 하여 행사 때 는 추장 옆에 앉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네. 참으로 대견하고 정말 애국하는 청년이아닌가.
4.청년 백수 가 심각 한 나라
요즘 돌아 다니다 보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대학이 수두룩 하다.과연 이들 졸업생 을 받아줄 기업이 있을까? 의구심을 지울수가없다 어쩌다가 이지경이 되었을까.무조건 미국식 교육 제도 를 따르다 늪에 빠진것이다. 독일 식 직업 학교 제도를 따를수는 없었을까? 출산율이 낮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젊은이 들을 제대로 키우지 도 못하지 않는가. 많은걸 생각하게 한다.
5.한국 말 을 잘 하는것도 큰 자산이다
젊은이 들이여 용기를 갖자. 두려움 을 떨쳐버리고 해외로 나가자 온 세계 가 우리나라 다 .언어 는 일시적인 불편함에 불과 하다.어설픈 대학 졸업장 으로 체면 치례 하면서 무위도식 하느니 무조건 떠나자.이세상은 학벌 있는 자 가 아니고 용기있는 자 의 편이다 내가 20 년 젊었더라면 쿠바로 당장 짐 꾸려 떠나겠건만.......(10년 후면 쿠바가 미국 화 할것이라는 것 이 불을 보듯 뻔한데) 세월 은 어쩔 수 가 없네
쿠바도 변하는데 북쪽 김씨 왕조는 언제 변할꼬. 체 게바라에 대한 막연한 존경심이 있었는데 제법 두꺼운 전기를 읽고는 생각이 싹 바뀌더라. 그도 소영웅주의에 사로잡힌 속물에 불과한듯하더군.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인간이라는 생각마저 들게되고.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겠지만,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런 인물을 좋아했던 게 부끄럽더군.
첫댓글 "세상은 넓고 할일은 부지기수로 많다"
우리도 아직 10년 이상은 충분히 활동할 수 있을테니 지금이라도 쿠바로
친구들 5~6 가구 가 함께 가면 생각 해 볼 수도있지.쿠바의 따듯한 해안가에 말이야.조그만
모텔 을 인수해서 무역도 하면서.
@John R. 쿠바가 행사에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초청했고 장차 우호적 관계로 발전될 것 같아.
@돌쩌귀 언제 시간을 내서 한번 다녀 오는것 도 좋을것 같네. 한달 정도 만 돌아다니먄 답 이 나오지
않을까?
경험이 돈이라 하더구만, 친구덕에 쿠바도 구경 할 수 있지않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벌써부터 두근두근하네!능력있으신분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기회를 살려 보시게나!
쿠바도 변하는데 북쪽 김씨 왕조는 언제 변할꼬. 체 게바라에 대한 막연한 존경심이 있었는데 제법 두꺼운 전기를 읽고는 생각이 싹 바뀌더라. 그도 소영웅주의에 사로잡힌 속물에 불과한듯하더군.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인간이라는 생각마저 들게되고.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겠지만,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런 인물을 좋아했던 게 부끄럽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