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옥 님이
여국현 님과 함께 있습니다.
4월 21일 오전 1:29 ·
- 종소리의 기원
19세기 찰스 디킨스의 소설 『종소리』가 국내에서 처음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번역자는 시인 여국현과 맹문재로 두 사람은 영문과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내게 책을 보내준 이는 여국현샘인데 나는 그의 시를 좋아했다.
그의 시는 시어와 이미지의 연결이 탁월해서 풍경 속에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외국소설의 운명은 번역가가 좌우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소설을 번역하는 이의 언어 감각을 느끼는 건 즐거운 일이다.
같은 책을 번역가별로 구입해서 문장의 호흡을 느끼는 게 한때 나의 취미이기도 했다.
직역보다 나은 의역을 만나면 무릎을 치기도 하는데 좋은 번역가가 많아 독서가 즐겁다.
『종소리』를 읽으면서 나는 상상력을 다시 생각한다.
가난과 현실을 잊는 방법의 하나가 상상력인데 그 힘은 단지 잊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거대한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보다 나은 자신으로 나아가게도 한다.
이 소설의 가난한 주인공이 유령이 보여주는 미래를 통해 변화하는 모습도 그렇다.
찰스 디킨스는 1812년 영국의 런던에서 태어나 1870년에 유명을 달리한 작가다.
19세기 영국은 사회적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한 시대였다.
집안이 빚으로 파산되면서 그는 12세 때 런던의 공장에 취직하여 하루 열 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했다.
어릴 때의 상처가 무서운 건 어른들을 믿지 못하게 된다는 거다.
그는 열다섯 살에 법률사무소의 사환으로 일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의 학력은 아홉 살부터 열두 살까지 3년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는 독학으로 신문기자까지 되었다.
그의 자전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David Copperfield』의 부제 중 한 문장이 ‘결코 출판되기를 원하지 않았던 역사에 대한 개인적 경험과 소견’이다.
내가 이 소설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내 인생 어느 시기의 비슷한 경험 때문이다.
가난이 주는 불편함이란 단순히 고통과 치욕으로만 말해지는 것이 아니다.
디킨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노동자들은 “우리의 친구가 죽었다”고 울부짖었다.
그는 가난하고 박해받는 자들의 친구였다.
그리고 빈부의 격차가 가장 많이 벌어진 21세기 대한민국에 다시 『종소리』로 찾아왔다.
소설 『종소리』는 미친 듯이 일을 해도 하루 한 끼를 먹기 힘든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교회 문 앞에 서서 온종일 일거리를 기다리는 심부름꾼 토비다.
교회의 종소리는 그에게 밥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지만 먹지 못하는 현실을 일깨운다.
그러나 그는 종소리를 좋아했고 보이지 않지만 어떤 존재가 거기 있을 거란 상상을 한다.
공장에서 일하는 그의 딸이 가난한 청년과 결혼하기 위해 허락을 받으러 오는 장면이다.
없는 돈을 털어 음식을 해온 딸과 남의 집 계단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가난한 딸은 굶었는데도 식사를 했다고 한다.
음식은 고기도 아닌 부산물인 내장이지만 감동한 그가 하는 말이다.
”말도 안 돼. 하루에 두 끼를 먹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
층계 위의 집주인 시의원과 그의 비서가 내려와 야단을 친다.
한마디로 빈민층은 종족이 다르다.
토비의 음식인 내장을 집어 먹으면서 떠드는 말이 어디서 듣던 소리같다.
이 음식은 쓰레기지만 도축 통계표로 볼 때 수비대 병사 오백 명에게 다섯 달 하고도 20일이나 더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분량이며 효용적 쓰임새로 볼 때 이런 인간이 먹는 것은 ‘낭비’라는 거다.
인간이 인간을 보는 시각이 빈부로 갈라지던 19세기는 21세기에 이르러 어떻게 달라졌을까?
절대빈곤에서 상대빈곤으로 심리적 박탈감만 달라졌을까?
신자유주의 자본시대 능률과 효용으로 평가되는 ‘능력의 인간’만이 대우받는 사회로 의식의 진보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걸까?
다시 『종소리』를 생각한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심부름꾼 토비가 종의 유령에 이끌려 경험하는 이야기다.
종소리는 시간을 알리기도 하지만 군중을 부르기도 한다.
꽹과리 소리가 불온하게 느껴지듯 빠른 종소리는 전쟁의 서막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의 저자 찰스 디킨스는 말한다.
”위대한 창조주께서 마땅히 누리도록 허락해주신 합당한 몫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기를!“
토비가 꿈을 꾼 것으로 단락을 지었지만 사실 그 당시의 소설로 상당히 불온하다.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이며 그 해결책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연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의 『종소리』는 중의적이고 다의적이다.
종소리는 권력층에게 불온하지만 하층민에게 희망의 서막이다.
이 작품으로 찰스 디킨스가 체포된 적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꿈이라는데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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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번역과 원서가 같이 수록되어 있다.
원문과 대조하며 읽어보는 기쁨도 있다.
저녁의 종소리 덕분에 오랜만에 듣는다
The Evening Bell
https://youtu.be/bX1a8UAb2ls
첫댓글 아,글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찰스 다킨스의 책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막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