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신앙을 넘어 이웃을 위해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희망의 이웃 프로젝트> 이야기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동네에서 성경이 말하는 가치관인 '공동선'을 추구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정의하고 있는 동네, 공동선의 개념은 이렇다.
22쪽
동네: "당신이 거주하는 장소나 당신이 사는 지역을 의미할 수 있다. 이름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33쪽
공동선: "어느 특정 장소에서 함께 사는 모든 것의 번영과 행복"
소위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딜레마가 있다. 개인적인 믿음 생활로 제한하며 살아가야 할지 기독교적 가치관을 이웃과 사회에 드러내며 살아가야 할 지 고민하게 된다. 최근 들어 교회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고 부정적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성경은 우리 주변을 섬기고 돌보라고 사람에게 명령하셨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네 지역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는데에 열심이었다. 역사적 자료에 의하면 로마제국 시대에 감염병이 돌았을 때 자신의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감염병에 걸린 환자들을 돌봤던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심지어 자신을 학대하며 공격했던 사람들의 영아, 유아들을 돌보고 키워냈던 이들도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사회적 가치관에 비춰보면 위험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그리스도인들이 감수해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우리 주변을 섬기고 돌보는 일' 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떤가?
그리스도인들의 선행 사례들이 널리 들려오는가?
예수 그리스도 뿐만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도 하나같이 강조했던 것이 있었다면 바로 '열심으로 선을 행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누가 내 이웃인가라고 물어보면 종교, 학연, 지연을 모두 떠나 사람이라면 모두가 내 이웃이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공동선(어느 특정 장소에서 함께 사는 모든 것의 번영과 행복)을 위해 열심으로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위한 일이다.
저자는 공동선을 추구하고 있는 다양한 모임들을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런드리 러브(Laundy Love)라는 모임은 미국의 저소득 또는 무소득 가정, 노숙자 분들의 의복과 침구를 세탁해 주는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다.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 종교를 떠나 그 뜻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모집하여 선한 일들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도 우리 동네를 둘러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장소에서 우리가 돌봐주어야 할 대상이 있는지 적극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리스도인이 깍쟁이 같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춰지는 이유는 성경의 가치관을 개인으로 축소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모두에게 <희망의 이웃>으로 불려져야 한다. 선한 뜻에 열심을 내어 혼자의 힘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186쪽
"혁명에는 늘 일정한 체계가 필요하다. 재능 있는 개인과 강력한 사상이 문화를 빚고 변화시키지만, 이런 변화는 문화에 새겨져서 제도를 통해 미래 세대에 전수된다. 역사학자들이 역사의 핵심 동력은 천재 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망과 그 안에서 파생된 새로운 제도라고 생각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너무도 위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야만 하는 그런 사명에 동참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189쪽
"희망의 이웃 프로젝트는 모든 사람이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 창조되었을 뿐 아니라, 이 공통 과업에서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과 함께하도록 창조되었다는 확신에 기초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지역사회에서 공동선을 추구하는 그룹에 적극적으로 소속하여 자신이 가진 은사와 재능들을 기부해야 한다. 교회가 희망의 이웃이 될 때 교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