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너 시험을 당해’ 342장(통395)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시편 88편 6~8절
말씀 : 시편 88편은 읽는 독자들을 당황하게 하는 시편입니다. 대부분의 시편은 고난 속에서 눈물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은 찬송으로 끝이 납니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감정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재조정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은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도구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편 88편은 시작부터 어둡지만 마지막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끝이 납니다.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면서 마지막엔 “주께서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라고 끝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통 때문에 자신의 친구들이 다 떠나갔고, 결국 남은 친구라곤 흑암과 어두움만이 나의 친구가 되었다는 원망이자 조롱에 가까운 말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마무리되는 시편이 성경에 기록되었을까요.
구약학자인 데릭 키드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고통당할 때 얼마나 힘든지를 이해하시는 분이시다.” 고통 가운데 원망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시편을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가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고통당할 때 얼마나 힘든지를 이해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가 당하는 시험을 다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당한 이유는 인간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하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인간이 되지 않고서도 인간의 힘듦을 다 이해하시는 분이십니다. 마치 CEO가 말단 사원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체험하는 프로그램처럼 하나님이 경험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인간에게 알게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당하셨고, 그것을 이기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이해하시는 분이시며, 또한 그리스도가 흑암과 죽음을 겪으시면서 우리는 더 이상 사망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시편 88편의 저자는 흑암이 친구가 되었고 하나님이 자신을 떠났다고 원망하지만 그 기도의 응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흑암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기도할 때 그 기도는 진리가 아니라 우리의 감정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 감정을 다 받아주시는 분이시며 나의 느낌과 상관없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며, 나에게 더 이상의 흑암을 없애기 위해 친히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를 받으신 분이십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흑암 가운데 부르짖을 때도,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를 함께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기도 :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시는 하나님,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가정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32757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