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대향 6기통 자연흡기 엔진을 다시 만난 박스터. 돌고 돌아 다시 봄이 온 걸까?
누군가 새롭게 출시한 포르쉐 718 박스터 GTS 4.0에 어울리는 곳이 어디냐고 물어오면 아마도 괴수들이 득실대는 레이스 트랙이나 매연으로 가득 찬 도시는 아니라고 말할 터다. 왜냐고? 박스터 GTS가 거짓말처럼 실린더 6개로 다시 돌아와서다. 포르쉐는 박스터에서 실린더 2개를 앗아간 5년 동안 찜찜했던 마음의 짐을 이제는 말끔히 덜었을 터다(4기통 터보 엔진을 사용하면서 많은 팬이 아쉬워했다).
박스터에 다시금 봄이 온 것이다. 이 차에 어울리는 곳은 봄꽃 흐드러진 교외 도로다. 마침 초록 봄옷을 곱게 차려입은 박스터를 몰고 진짜 봄을 찾아 떠났다. 서울에서 출발해 2시간쯤 달려 도착한 곳은 충주호다. 이맘때면 커다란 호수를 주위로 만개한 벚꽃길이 볼만한 곳이다. 봄 내음 물씬 풍기는 이곳이 새 엔진으로 나름의 봄을 맞이한 박스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나만 그렇게 생각해?).
사실 이 기사의 주인공은 따지고 보면 차가 아니다. 엔진이다. 모델명 끝에 붙은 ‘4.0’도 차에 중요한 업그레이드가 엔진이라고 암시한다. 이 차를 가져온 이유도 순전히 엔진 때문이었다(오픈에어링 때문에 탄다고 오해하지 마시라. 찔려서 말한 건 아니다. 진짜로…).
718 박스터 GTS 4.0은 718 스파이더와 718 카이맨 GT4가 사용하는 수평대향 6기통 4.0L 자연흡기 엔진(MDG)이 들어갔다. 911 카레라 S의 수평대향 6기통 3.8L 엔진에서 과급기를 떼고, 보어와 스트로크를 손봐 배기량을 늘린 엔진이다.
예상컨대, 포르쉐는 애써 개발한 엔진이 극소수의 마니아를 고객으로 둔 718 스파이더와 718 카이맨 GT4에만 사용되는 걸 원하지 않았을 터다. 경제적인 이유로 판매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718 박스터 GTS가 수혜를 입었다는 합리적인 추측이 가능하다.
문득 생각난 게 있다. 모르긴 몰라도 6기통 수평대향 자연흡기 엔진 하나만 보고 718 스파이더를 사는 사람이 있을 터다. 좋든 싫든 앞으로 수동 루프 개폐의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718 스파이더 오너들은 같은 엔진이 이제 718 박스터 GTS에도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화병 나지 않았을까?
이제 GTS가 더 빠르다는 사실도 알까? 제원상의 수치를 보면 엔진은 디튠해서 최고출력이 13마력 줄었지만, 0→시속 100km 가속은 오히려 0.2초 단축해 4초가 걸린다. 완전히 PDK의 승리라고밖에 생각 들지 않는다. 같은 엔진을 사용하는 만큼 배기시스템 역시 718 스파이더와 718 카이맨 GT4의 트윈 테일파이프 스포츠 배기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했다. 배기음 좋은 건 말해 뭐하랴. 자연흡기 엔진을 추종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배기음 때문이라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점은 배기 플랩이 열리는 회전 구간이 다소 높다는 점이다. 스포츠 주행 시 배기음은 더없이 황홀하지만, 엔진회전수를 많이 쓰지 않는 일상 주행 때는 조금 그르렁거릴 뿐 좀처럼 괜찮은 배기음을 듣기 어렵다. 각각 7000rpm에서 터져 나오는 최고출력 407마력과 5000rpm에서 분출하는 최대토크 43.9kg·m는 작정하고 휘몰아치지 않는 이상 쉽게 맛볼 수 없다는 말이다. 엔진 회전한계는 7800rpm이다.
생김새에 대해선 달리 할 말이 별로 없다. 블랙 컬러 디테일은 우리가 아는 기존 718 GTS 그대로다. 어쩌면 오히려 그대로인 게 고마울 정도로 예쁜 디자인이다. 차이가 아예 없진 않다. 4.0 모델에 새롭게 적용한 20인치 새틴 글로스 블랙 컬러 경량 알로이 휠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잘 어울린다. 이전보다 나아진 고성능 타이어를 신었고, 구멍 송송 뚫린 디스크와 레드 컬러 캘리퍼를 포함하는 브레이크 시스템도 향상된 제동력을 뽐낸다. 포르쉐 세라믹 컴포지트 브레이크(PCCB)는 옵션이다.
정확하고 민첩한 스티어링과 뛰어난 코너링 성능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주행 기술을 기본 탑재했다.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 (PASM)는 섀시를 10mm 낮추는 효과도 있다. 스포츠 주행을 지원하는 포르쉐 스테빌리티 매니지먼트(PSM)와 기계식 리미티드 슬립 디퍼렌셜을 지원하는 포르쉐 토크 벡터링 시스템(PTV)을 넣은 것도 확인됐다.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도 향상됐다.
어떻게 달릴지는 직접 몰아보면 알 터. 이곳 벚꽃길은 그저 눈요기를 위한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가 아니다. 호수와 벚꽃나무를 끼고 길게 이어진 와인딩 길이 뜀박질 실력을 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이제 본격적인 시승을 위해 루프를 전동으로 접었다. 운전자가 할 일이라곤 센터콘솔에 있는 스위치를 당긴 채로 9초 기다리는 것이다(718 스파이더는 어떻게 열더라? 아무튼 정말 열심히 움직이면 시간은 비슷하지 않을까?).
카이맨과 차별화되는 박스터 최고의 장점은 역시 오픈에어링이다. 배기음을 더욱 생생하게 들을 수 있고, 살랑살랑 실내로 들치는 바람까지 운전 재미를 더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돌비 사운드가 지원되는 4D 극장쯤 되는 셈이다.
주행 질감이 다르긴 다르다. 강력한 힘과 섀시의 탄탄함이 타자마자 느껴진다. 노면 상태에 따라 댐퍼를 지나치게 조이지 않는 유연함도 마음에 쏙 든다. 종종 작은 요철을 밟고 지나더라도 승차감이 의외로 부드럽다. 운전 재미는 여전하다. 속도를 높이면 물 만난 고기처럼 운전자의 만족감을 높인다.
롤을 확실하게 억제해주니 주행이 안정적이다. 날카로운 스티어링도 명불허전이다. 스티어링휠을 조작하면 이미 운전자의 의도를 파악했다는 듯 즉각적인 방향 전환이 이루어진다. 트랙션은 어찌나 뛰어난지 쫀쫀하다는 표현은 부족하다. 아예 차가 땅에 붙어있는 듯하다. 마치 네바퀴굴림처럼 노면을 움켜쥐고 달리는 기분이 환상적이다.
이 차를 선택할 때, 사람들이 718 박스터 GTS 다음에 붙는 ‘4.0’이라는 이름을 얼마나 특별하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할까? ‘저 돈 주고 저 차를 왜 샀지?’에 대한 결정 기준은 주관적인 문제다. 포르쉐가 맞서 싸우는 상대는 자기 자신이다. 항상 과거보다 더 나은 현재,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성능 향상에 열을 올린다.
비록 큰 차이는 아닐지라도 포르쉐는 이번 신형 박스터 GTS로 하여금 또 한 번의 진화를 만들어냈다. 성능 향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 차의 가장 큰 소득은 결국 엔진이다. 한 차원 높은 주행 실력은 물론 앙칼진 배기음은 사기를 북돋는 군악대가 되어 운전에 엄청난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그나저나 718 박스터 GTS 4.0보다 봄 전도사로 어울리는 차가 또 있을까? 자격으로 보나 페인트 색상으로 보나 박스터만 한 차는 없어 보인다. 박스터에 질세라 한껏 푸릇푸릇하게 차려입은 신형 M3·M4 형제가 있지만, 루프를 열어젖히고 봄바람을 온몸으로 만끽할 수 없으면 박스터의 상대로는 부족하다. 아마 M4 컨버터블이 나올 때쯤이면 진짜 봄은 가고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