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국가 권력
이것도 다루는 것이 중국 불교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불교도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교단의 힘도 강해졌다. 이 때문에 국가 권력과 교단이 충돌하기도 하였다.
인도의 불교 이념에 의하면 불교는 어디까지나 개인이 정신적으로 수양하는 것이지 국가 권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왕권과 불교 교리는 완전히 따로따로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달랐다. 중국은 인도보다 왕의 지배력이 훨씬 더 강력하였다. 불교도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왕에게 굽신거려야 했다. 불교의 세력이 강해졌다기보다는 스님 중에는 불교의 교리에 충살햐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스님이 나왔다.
격의불교를 몰아낸 도안 스닙의 제자 혜원(334-416)은 ‘沙門不敬王者’ 이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여산에 은거하여 오로지 염불만으로 성불을 이루고, 세속의 모든 연결고리를 끊으려 하였다. 혜원의 염불 교단은 白蓮社라는 결사 조직을 결성하였다.
여산에 들어갔다는 것은 일종의 은둔 생활이다. 그때 유행하였던 청담사상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하였다. 그 영향으로 그의 사상은 逸民사상을 가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제왕의 권력이 막강하였던 북쪽에서는(북위) 불교 교단을 왕권에 종속시켜 국가 불교로 만들었다. 운강석굴과 용문석굴을 뚫었다.
수나라가 중국의 남, 북을 통일하자. 불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이렇게 하여 불교는 수-당 시기가 펼쳐지고, 많은 불교 미술이 만들어져서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