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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칼
겔 21:8-17
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9 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같이 말하라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10 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규가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11 그 칼을 손에 잡아 쓸 만하도록 빛나게 하되 죽이는 자의 손에 넘기기 위하여 날카롭고도 빛나게 하였도다 하셨다 하라
12 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이것이 내 백성에게 임하며 이스라엘 모든 고관에게 임함이로다 그들과 내 백성이 함께 칼에 넘긴 바 되었으니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
13 이것이 시험이라 만일 업신여기는 규가 없어지면 어찌할까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4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두세 번 거듭 쓰이게 하라 이 칼은 죽이는 칼이라 사람들을 둘러싸고 죽이는 큰 칼이로다
15 내가 그들이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세워 놓았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죽이기 위하여 날카로웠도다
16 칼아 모이라 오른쪽을 치라 대열을 맞추라 왼쪽을 치라 향한 대로 가라
17 나도 내 손뼉을 치며 내 분노를 다 풀리로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노라
겔 21:8-17 / [처형의 칼 노래] 여호와께서 또 내게 말씀하셨다. 9) `너 사람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라! 내가 시키는 대로 그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칼이다! 너희를 쳐죽일 칼이 이제 다 갈렸다. 번쩍번쩍 날이 선 칼이다! 10) 누구든 닥치는 대로 쳐죽이는 칼이 다 갈렸다. 번개처럼 번쩍이며 춤을 추는 칼이 다 갈렸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이 칼이 다른 백성을 쳐죽이는 데 쓰일 줄 알고 즐거워만 할 것인가! 이 칼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쳐죽이려고 번쩍번쩍 시퍼렇게 날이 서게 갈린 것이다. 11) 나는 이미 살인자의 손에 그 칼을 넘겨 주었다. 살인자가 벌써 그 칼을 받아 손에 꼭 쥐고 있다. 이 칼은 본래 살인자의 손에 들려 주려고 그토록 날카롭게 갈린 것이다. 그토록 번쩍거리게 갈린 것이다.' 12) 너 사람아, 부르짖으며 통곡하여라! 그 칼은 이제 내 백성을 겨누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을 칠 것이다. 지도자든 백성이든 하나같이 그 칼에 찔려 죽을 것이다. 그러니 너는 가슴을 치며 울어라! 13)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 칼이 왕마저도 하찮게 알 때에야 그 백성이 어떻게 되겠느냐? 이제는 왕도 없어질 것이다. 나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14) 너 사람아, 너는 이제 손뼉을 치면서 예언하여라! `그 칼은 갑절로 불어나고 세 배로 불어날 것이다. 그것은 닥치는 대로 찔러 죽이는 칼이요 어디서나 번쩍이며 휘도는 칼이다. 어느 도성에서나 파도 치는 칼이다. 15) 더없이 용감한 자들도 모두 낙담하고 무수한 사람이 쓰러져 죽어서 쌓이도록 내가 그들의 성문마다 그토록 무서운 칼을 가져다 놓았다. 슬프다, 번개처럼 번쩍이며 모든 사람을 죽이는 날카로운 그 칼이여! 16) 너 칼아, 이제 일어나서 사람을 쳐죽여라. 이쪽 저쪽 휘돌며 사람을 쳐죽여라. 17) 그러면 나도 손뼉을 치면서 쌓였던 분을 풀 것이다. 나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신 하나님의 심판이, 백성들에게 철저하며 임박하게 임할 것을 환상으로 보여주시며 예언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너는 예언하라(8-13)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에게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 도다(7-8)’라고 말씀하시며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심판을 예언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칼의 날카로움이 예리하여 빛이 날 정도로 이 심판은 번개와 같이 빠르고 단호하게 이루어지되, 이스라엘도 이방인도 교회도 다 심판을 받을 것이며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내 아들의 홀’은 유다의 왕을 의미하며, 나무는 하나님의 심판도구를 상징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미 앗수르라는 나무를 통해서 북 이스라엘을 멸망케 하심으로 경고하셨지만, 유다의 왕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넓적다리를 치는’ 행위는 절망과 비통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진노하신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게 합니다. 그리고 ‘만일 업신여기는 규가 없어지면 어찌할까’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업신여기는 규’는 유다의 왕입니다(13).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경고를 끝까지 무시하다가 유다 왕국까지 없어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경고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은 부르짖으며 통곡해야 합니다. 그 칼이 이스라엘 백성을 치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를 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가슴을 치며 통곡해야 합니다.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14-17) 계속해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에게 ‘손뼉을 쳐서 칼로 두세 번 거듭 쓰이게 하라’라고 예언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손뼉을 치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일임을 나타내는 것이고, 칼이 두세 번 거듭 쓰인다는 것은 3차 침공까지를 당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그 칼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요 큰 무리를 학살하는 칼로써, 여호와가 성문마다 살육하는 칼에게 날을 세워 오른쪽을 치며 방향을 잡아 왼쪽을 치라고 하십니다. 진노하신 하나님의 분노가 다 풀릴 때까지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렇기에 왕이 아무리 밀실에 들어가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론의 칼을 두려워하여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환난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자만이 회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용: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아무도 그 심판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주로 오시기 전 우리가 준비해야 할 등과 기름은 무엇입니까?
발티모어의 외과 의사이며 크리스챤이었던 하워드 켈리 박사는 중요한 모임이 있을 때면 항상 그의 양복의 옷깃에 언제나 싱싱하고 아름다운 장미 한 송이를 꽂고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장미는 하루종일을 시들지 않고 그 싱싱함을 유지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그 비밀을 묻자 그는 옷깃을 들추어 그 밑의 물이 담긴 작은 병을 보여 주었습니다. 크리스천의 아름답고 향기나는 생활의 비밀은 예수님의 생수를 날마다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 설 교 >
날카롭게 마광된 하나님의 칼
피영민 목사
서 론
에스겔 선지자는 B. C 598년에 여호야긴 왕과 함께 포로가 되었습니다. 포로가 될 때 25살이었습니다. 에스겔의 아버지는 부시입니다. 바벨론에 잡혀간 후 5년째, 나이 서른이 되었을 때에 (B. C 593년) 그발 강가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에스겔을 가리켜서 “그발 강가의 외로운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5년째에도 말씀이 임하고, 6년째에도 말씀이 임하고, 7년째에도 말씀이 임했습니다. 5년째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여 하나님이 마치 북쪽에서 오는 바퀴 같은 모습으로 오는 환상을 보게 되었고, 6년째에 임한 말씀에서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 일어나는 죄악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은 7년째에 임한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은 멸망이 작정 되었다는 말씀을 받게 된 것입니다. B. C 598년에 포로가 되어서 7년째 말씀을 받았으니깐 이 말씀을 받은 때는 B. C 591년입니다. 591년이라고 하는 것은 최종 멸망하기 4년 전의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21장에는 네 번이나 반복해서 나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1, 8, 18, 28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라는 말씀이 반복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네 번 임한 것입니다. 즉 에스겔 21장은 네 개의 메시지가 종합된 장(chapter)입니다. 에스겔이 축복된 사람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계속해서 받았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가까이하고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고 했습니다. 시편 119편 105절을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말씀을 읽지 않으면 발에 등이 없고, 길에 빛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하시고, 말씀의 깨달음과 위안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Ⅰ. 에스겔 21장의 주제는 칼의 심판이 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데 구약 시대에는 주로 세 종류의 방법을 사용해서 심판했습니다. 그것은 질병, 기근, 전쟁입니다. 칼이라고 하는 것은 전쟁으로 심판한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느부갓네살왕을 불러서 전쟁을 일으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1. 심판의 대상은 누구인가?
본문 2-4절을 보면 느부갓네살왕이 와서 예루살렘을 치겠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칠 때에 의인과 악인을 같이 치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사회든지 악인 때문에 심판이 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의인의 숫자가 적기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 아브라함이 항변 기도를 했습니다. ‘악인을 심판할 때에 의인이 섞여 있으면 의인과 악인을 함께 심판하시는 것이 가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의인이 50명이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돌아가서 수를 계수해 보니 50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6번에 걸쳐서 수를 줄였습니다. 결국, 의인 10명이 있으면 불과 유황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했습니다. 의인 10명이 부족해서 망한 것입니다. 어느 사회든지 악인이 있습니다. 악인이 많다고 욕하면 입이 아픕니다. 그리고 어느 사회든지 의인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의인의 숫자가 너무 적어 의인이 미치는 사회적인 영향력이 너무나 축소되고, 의인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 그 사회는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다수결을 하게 되면 언제나 악인이 이기게 되면, 그 사회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다수결로 이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종종 한 가정에서 장례식을 결정지을 때에도 다수결에서 져서 불교 형식으로 드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의인의 영향력이 커져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악인과 의인이 함께 있습니다. 문제는 역병, 기근, 전쟁의 심판을 받는 것은 의인이 숫자가 줄어들 때에 심판이 온다는 것입니다. 악인 많다고 욕하지 마시고 여러분은 의인에 꼭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즉 우리는 의인을 계수할 때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2. 심판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예루살렘을 심판할 때에 그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8절 이하에 보면 세 번째 메시지가 임하게 됩니다. 여기에 보면 느부갓네살왕이 북쪽에서 쳐들어옵니다. 쳐들어오다가 보니 세 갈림길이 나옵니다. 한 길은 자신이 온 길이고, 오른쪽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암몬으로 가는 길입니다. 보통 어렸을 적에는 어떻게 결정했습니까? 손바닥에 침을 뱉어 많이 튀는 쪽으로 결정했습니다. 느부갓네살왕도 갈림길에서 점을 칩니다. 옛날 사람들은 화살을 가지고 점을 쳤습니다. 그리고 화살이 없으면 짐승의 간(희생의 간)으로 점을 쳤습니다. 간의 색깔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고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화살 점을 쳐보니 예루살렘으로 나오고, 희생의 간의 점을 쳐도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옛날 통치자들은 그런 점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느부갓네살왕은 헛된 점이라 생각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시드기야가 나를 배반하고, 반역했으니 점이 맞든지 틀리든지 상관하지 않고 맞는 점으로 간주해서 가겠다는 것입니다. 점이 신통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느부갓네살왕을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게 하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겔 21:21-24). 심판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심판이 오는 것은 확실하다
에스겔 21장 5절입니다.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집에서 빼어낸 줄을 알찌라 칼이 다시 꽂혀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의 칼은 빼어내면 반드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심판이 확실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9절에는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칼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햇볕에 반짝거립니다. 번개같다는 것입니다. “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마광되었도다” 칼이 이미 준비되었고, 칼이 사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루살렘 하늘에 칼이 날카롭게 마광되어서 빛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메시지입니까? 웃어넘길 메시지입니까? 이것은 심각한 메시지입니다. 이 상황을 보고 웃어넘기는 사람은 먹을 약을 안 먹었거나, 안 먹을 약을 먹었을 것입니다.
Ⅱ.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는 유다 백성의 태도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웃고 있습니다. 춤추고 있습니다. 술을 먹고 있습니다. 본문 10절입니다. “그 칼이 날카로움은 살육을 위함이요 마광됨은 번개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홀이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10절 후반부의 “내 아들의 홀이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라는 말씀은 바벨론 왕이 칼을 가지고 와서 시드기야 왕의 홀(왕권)을 동네 막대기 취급을 한다는 것입니다. 시드기야 왕의 홀을 멸시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멸시를 당하고, 칼에 목에 들어오고 있는데도 우리가 어찌 즐거워하겠느냐고 에스겔이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심판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기고 여전히 세상 쾌락에만 탐닉하고 있을 수가 있느냐고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알란 카인즈(Alan Cairns)라고 하는 미국 장로교의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멸망의 가장자리에서 춤추고 있는 영혼들(souls dancing on the edge of destruction)”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런 유다 백성을 가리켜 “지옥의 문턱에서 웃고 희롱하는 사람들(grinning and jesting between the jaws of hell)”이라고 했습니다. 지옥의 턱뼈 사이에서 웃고 즐기고 농담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멸망의 메시지가 와도 웃고, 즐기고, 농담하는 사람들이 성경에 있습니까? 창세기 19장 14절을 보면 롯이 딸들과 결혼하는 사위들에게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기 때문에 나가자고 했지만, 사위들은 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심판의 메시지를 농담으로 여겨 죽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8절을 보면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을 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80세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 배를 만들었습니다. 노아가 심판이 오니 방주에 들어가라고 말을 해도 사람들은 농담으로 여기고, 놀며, 춤을 추었습니다. 지금은 물 보다 더 무서운 것이 하나 남았습니다. 불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불 심판이 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 심판이 오면 하늘과 땅이 절단이 납니다. 사도 베드로가 불 심판이 온다고 명백히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이 심판을 농담거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했습니다. 칼이 목으로 들어오려고 살육될 위험을 안고 있음에도 무관심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서 강퍅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지자는 허리가 끊어지도록 울며 탄식하고 있는데 백성은 술을 마시며 춤을 추며 놀고 있습니다. “노새 노새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은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 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선지자는 탄식하고 있는데 백성은 놀고 있습니다. 19세기 초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로버트 맥쉐인이라는 목사님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환희가 어울리지 않는다. 즐거운 잔치를 벌일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고,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말하면 동일한 반응을 보입니다. 예수 없이 살면 영원한 지옥 형벌이 기다린다고 말을 해도 웃고, 즐기고, 술 먹고, 춤춥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리고 물질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즐거운 음악이 있는 잔치와 영원한 지옥의 형벌과는 한 글자 차이입니다. 살육(slaughter)과 웃는다(laughter)는 S차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술 먹고 춤추다가 돈 내고 밖에 나가 차에 치여 죽으면 곧바로 지옥 가는 것입니다. 술 먹는 자리와 지옥은 간발의 차이입니다. 간발의 차이는 머리카락과 머리카락 사이의 차이입니다.
Ⅲ. 유다 백성은 왜 강퍅했는가?
1. 거짓 종교인들에게 속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예루살렘에는 예레미야가 예언했고, 바벨론에서는 에스겔이 예언했습니다. 에스겔과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진실한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들의 인기에 영합했습니다. 사람들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했습니다. 예레미야 6장 14절입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예레미야 8장 11절에도 똑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짓된 종교인들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칼이 오기는 뭐가 오느냐? 이렇게 평안한데. 그리고 바벨론의 포로가 된 사람들은 2년만 있으면 돌아오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데, 감히 누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겠느냐?” 그러나 이 말은 마귀의 피리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백성은 마귀가 피리를 “삐리 삐리” 불면 뱀처럼 춤을 추는 것입니다. 멸망의 길목에서 마귀의 연주에 맞추어 춤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수없이 많은 거짓 종교가 있습니다. 거짓 종교는 사람을 지옥으로 이끌어 가는 마귀의 피리 소리에 불과합니다. 마귀의 피리 소리에 춤추는 싸구려 뱀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마귀의 피리 소리가 아닌 것은 성경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무시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경은 2000년간 수많은 사람이 믿고, 변화된 말씀입니다. 수많은 악한 사람이 공격해 보았지만, 공격만 사람만 망해버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지금도 베스트셀러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은 거짓 종교인에게 속았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이 강퍅해지고, 무관심했습니다.
2. 시드기야 왕과 유다 백성은 애굽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백 년 전에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36장 6절입니다. “보라 네가 애굽을 의뢰하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일반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에 찔려들어가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지팡이를 짚는데 단단한 것으로 만들어 짚어야 합니다. 상한 갈대로 짚고 다니면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지팡이에 자신의 손이 찔려 피가 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애굽을 의지하다가 두 눈이 뽑히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죽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유를 예수만이 천국 갈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피난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도 보장해 주지 않는 피난처가 자신의 피난처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지옥가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에게 밥을 줬기 때문입니다. 이런 허망하고 잘못된 도피처를 가지고 천국을 가려고 생각합니까? 천국 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한 이름밖에는 없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유다 백성이 칼이 오는데도 마음이 강퍅한 이유는 이처럼 거짓 종교인에게 속고, 스스로 잘못된 도피처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3. 유다 백성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헨리 마한(Henry Mahan)이라는 미국의 부흥사가 지적한 말입니다. 이사야 56장 7절 후반입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성전에 와서 기도는 하지 않고 짐승을 비싸게 팔고,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습니다. 유다 백성이 성전에 와서 기도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무감각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배당에 오게 되면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예배당과 교회는 기도하는 곳입니다. 사교 클럽이 아닙니다. 정치하는 모임도 아닙니다. 입을 열어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결 론
유다 백성이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주신 경고의 말씀에 무관심한 대가는 너무나 컸습니다.
칼이 와서 예루살렘을 2년간 포위했습니다. 공성퇴(battering rams)를 가지고 문을 쳤습니다. 성문이 다 망가지고, 토성을 쌓아 화살을 쏘아 댑니다. 그리고 운제라고 하는 사닥다리를 만들어 성으로 올라갑니다. 2년 동안 압박하니 예루살렘 성안에서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두 집이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배가 고프니 오늘은 당신의 아들을 잡아먹자고 합니다. 서로의 아들을 잡아먹자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이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사악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다가 바벨론이 포로로 끌고 가고, 70년간 포로 생활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던 것입니다. 잠깐 술 먹고, 춤추다가 큰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에 이렇게 무관심한 유다 백성을 향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증거했습니다. 에스겔 21장 6절입니다. “인자야 너는 탄식하되 허리가 끊어지는 듯이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 허리가 끊어지듯이 우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찌어다(중략)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찌어다” 크게 부르짖어 웁니다. 가슴을 치며 웁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손뼉을 치면서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를 받고, 주위를 끄는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메시지를 증거했습니다. 예수 없이는 영원한 멸망과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엄중한 경고 앞에 우리의 가족은 무관심하고, 이웃은 신경도 안 쓰고, 웃고 즐기고, 춤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양수리 수양관에 올라가서 손뼉 치며 기도해야 합니다. 허리가 끊어지도록 탄식하면서 내 가족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축복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악인이 많다고 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먼저 내가 의인의 숫자에 들어가는가를 생각하며, 자신이 먼저 의롭게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