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기사
원제 : Ivanhoe
1952년 미국영화
감독 : 리처드 소프
음악 : 미클로스 로자
원작 : 월터 스콧
출연: 로버트 테일러, 엘리자베스 테일러, 조안 폰테인
조지 샌더스, 핀레이 커리, 로버트 더글러스
바실 시드니, 가이 롤프
'흑기사'는 1952년에 만들어진 칼라 고전영화이며 53년 '성의'로 인하여 2.35 : 1 비율의 시네마스코프 화면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직전, 즉 4 : 3 비율의 스탠더드 비율의 마지막 시대에 만들어진 대작영화입니다.(물론 할리우드에서 그랬다는 것이고 유럽이나 우리나라는 50년대 후반까지 여전히 4:3 비율의 영화가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30년대 중반부터 이미 미남 배우로 이름을 떨친 인기 스타 로버트 테일러와 50년대 세계 최고의 미인 배우로 명성을 높인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공연합니다. 이른바 두 테일러의 전성시대에 만들어진 영화지요.
영국의 문호 월터 스콧 원작소설을 각색한 영화인데 소설과 마찬가지로 '아이반호'라는 제목이고 우리나라에서 '흑기사'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습니다. 흑기사라는 제목은 원래 아이반호를 연기한 로버트 테일러를 일컫는 제목이 아니라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이었던 사자왕 리처드가 검은 말에 검은 옷을 입고 신분을 숨긴 것을 의미하는 제목입니다. 현재는 주로 남을 대신해서 도와주는 역할을 할 때 흑기사라고 많이 하지요.
아이반호와 로웨나 공주의 제회
용맹한 로웨나 공주
유태인의 딸 레베카로 출연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소설로, 동화로 유명한 작품이며 십자군 원정시대인 12세기 영국이 배경입니다. 일단 당시 영국의 상황을 좀 설명하면 영국은 사자왕 이라고 불리우는 리처드 1세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리처드 1세는 10년간의 재위 기간중 영국에 머무는 시기는 불과 반년 남짓이었다고 합니다. 왕이 재위기간 내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 자리를 비우니 나라의 정치는 엉망이었겠죠. 리처드의 동생인 존 왕이 대신 통치를 하고 있었는데 존 왕은 아예 형을 몰아내고 왕권을 찬탈할 생각이 있었습니다. 앵글로 색슨족과 노르만족 혈통이 함께 있던 영국인데 아이반호 이야기는 두 종족의 대립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리처드 1세와 함께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용맹한 기사 아이반호(로버트 테일러)가 혼자서 돌아오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왕이 오스트리아에 잡혀 있는 것을 알고 왕을 구하기 위해서 거액의 몸값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당시 존 왕이 대신 통치하고 있었고, 존 왕은 색슨족을 굉장히 탄압하는 것으로 설정되었고, 앵글로색슨족인 아이반호의 아버지 세드릭(핀레이 커리)은 성주이면서 노르만족을 굉장히 싫어하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세드릭이 보호하고 있는 귀족출신 로웨나 공주(조안 폰테인)는 아이반호의 연인입니다. 그리고 세드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리처드 왕을 따라서 전쟁에 참여한 아이반호를 더 이상 세드릭은 아들로 생각하지 않는 의절한 상황입니다.
로버트 테일러, 엘리자베스 테일러
두 테일러가 전성기때 출연한 영화
세드릭의 성에 아이반호가 돌아오고 노르만족 기사인 길버트(조지 샌더스)일행이 들어와서 함께 묵고, 거기에 유태인 노인까지 그날 하루 묵어가면서 이야기가 구성됩니다. 세드릭과 노르만족의 대립이 그려지고 있고, 로웨나 공주와 재회한 아이반호를 세드릭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유태인 노인이 야밤에 습격을 받는 것을 아이반호가 구해주고 그 인연으로 노인의 집까지 가게 된 아이반호는 노인의 딸인 레베카(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알게 됩니다. 레베카의 도움으로 갑옷을 장만한 아이반호는 존 왕이 추최하는 기사대회에 참여하여 노르만족 기사들과 1 : 5의 대결을 펼치지만 4명을 물리치고 길버트에게 패합니다. 큰 상처를 입은 아이반호를 의술을 배운 레베카가 정성껏 치료하게 되고, 이런 와중에 아이반호를두고 레베카와 로웨나 공주가 벌이는 신경전이 만만치 않습니다. 미남 배우 로버트 테일러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조안 폰테인 이라는 두 미녀의 사랑을 함께 받는 행복한 역할입니다.
노르만족 일당들이 세드릭의 성을 점령하면서 이야기는 흥미로워 지는데 위기에 빠진 아이반호가 로빈 후드 일행의 도움으로 결국 성을 탈환하고 아버지와 아들은 화해하게 됩니다. 성은 탈환했지만 길버트에게 납치된 레베카를 구하러 아이반호가 달려가고 아이반호는 레베카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길버트와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칩니다.
흑기사 등장하다!
부상당한 아이반호
두 여인의 신경전은 시작되고....
아이반호를 극진히 간호하는 레베카
꽤 흥미로운 시대극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여러번 개봉되었을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이고, 특히 50년대를 대표하는 미남, 미녀 배우가 등장한다는 점이 인기의 결정적 요인입니다. 로버트 테일러는 50년대 들어서 '쿼바디스' '흑기사' '원탁의 기사' 등 시대극에 출연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높였는데 찰톤 헤스톤이 '십계'를 통해서 시대극을 대표하는 배우가 되기 전에 그 역할을 한 셈이고 시네마스코프 영화 등장 이전에 시대극에서 활약한 셈입니다.
아카데미상 수상 명배우 조안 폰테인이 35살의 원숙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고, 당시 20살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그녀가 출연한 여러 영화중에서도 특히 눈부신 미모를 과시합니다. 이렇게 두 미녀 사이에서 사랑받는 배역을 연기한 로버트 테일러는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영국의 전설적 의적으로 회자되는 로빈 후드가 등장하는 것이 흥미롭고 그런 만큼 활쏘기 장면이 등장하는데 성을 탈환하기 위한 치열한 전쟁장면에서 수많은 화살이 날아드는 광경이 멋집니다. (그런데 대부분 빗나감) 성을 점령하기 위해서 활쏘기 공격, 사다리를 이용한 성벽오르기와 육박전, 통나무를 이용한 성문 부수기, 검술대결 등 시대극다운 액션 장면이 등장합니다. 아이반호의 아버지이자 성주인 세드릭으로 출연한 핀레이 커리는 '위대한 유산' '80일간의 세계일주' '템페스트' 등을 통해서 낯익은 원로배우인데 무려 7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검술액션을 연기하며 그야말로 '원조 할배 액션'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아이반호를 두고 서로 질투를 드러내는 로웨나 공주와 레베카
두 미녀의 사랑을 받는 역할인 로버트 테일러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당시 20세의 절정의 미모를 과시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위기에 빠진 아이반호
로빈 후드 부하들의 활쏘기 장면들이 일품
십자군 원정 시대에 영국의 실제 왕이었던 사자왕 리처드(리처드 1세)와 존 왕이 등장하는데 존 왕은 악역으로 리처드는 선역입니다. 이 설정은 로빈 후드 이야기에서 동일한데 실제 역사와는 좀 다르게 노골적으로 리처드 왕을 미화시킨 부분이 있습니다. 리처드 왕은 십자군 전쟁으로 재위를 보낸 전쟁광이었고, 전쟁물자를 대기 위해서 백성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걷어들였고, 나라의 통치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아서 내치를 제대로 못한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전쟁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었고 그래서 영국에서 강하고 용맹한 왕으로 묘사되는 이야기들이 있고, 그게 로빈 후드 이야기와 아이반호에서 대표적으로 다루어졌습니다.
또한 앵글로색슨족을 선역으로 노르만족을 악역으로 이분법적인 묘사를 한 부분도 너무 노골적인 느낌이며, 마지막에 리처드 왕이 때맞추어 돌아오는 장면은 만화같은 타이밍입니다. 여러모로 완성도를 높이 평가할 수 없는 원작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역사적 고증보다는 로버트 테일러, 엘리자베스 테일러, 조안 폰테인 등 유명 스타배우들이 펼치는 모험과 낭만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이며 용감한 기사가 위기에 빠진 여인을 구한다는 통속적인 재미가 있습니다. 더구나 예상과는 달리 로버트 테일러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맺어지지 못하고 안타까운 이별을 하는 설정도 좀 색다르고. 사랑보다 종교적 신념이 더 강해야 하는 유태인 여성의 아픔을 다루는 설정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의 표정.
죽을 위기의 자신을 구하러 목숨걸고 달려온 아이반호를 보고
감격과 기쁨을 느끼는 레베카
신이여~ 아이반호에게 힘을 주소서~
결국 한 남자에게는 두 여자가 존재할 수 없는 법
남자를 차지한 여인과 아픔을 안고 떠나는 여인
30대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준 조안 폰테인은 슬슬 전성기가 지나가고 있었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신부의 아버지' '젊은이의 양지' 등 10대 끝물 영화에 이어서 20대를 맞이하면서 출연한 영화로 그야말로 활짝 피어나는 시기의 영화입니다. 이후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로 등극하게 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황금기의 시작에 출연한 영화가 된 셈이지요.
'벤허' '십계' '스팔타카스' 등의 헐리웃 대작 고전들에 비하면 매우 소품이지만 인기 스타들이 출연하여 보여주는 사랑, 모험을 즐기기에는 충분한 영화입니다. 50년대 초반이지만 칼라로 제작되었다는 장점이 있고, 비록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 왜곡이 있었지만 당시의 중세 영국 상황도 살짝 들여다볼 수 있는 재미있는 오락물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50년대 6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시대극은 꽤 인기있는 장르였습니다.
ps2 : 아시다시피 십자군 전쟁은 성지로 여겨지는 예루살렘을 두고 아랍인들과 유럽군들이 벌인 오랜 전쟁이었습니다. 1954년 작품인 '사자왕 리처드'라는 영화가 이 내용을 다룬 개봉작이었지요.
ps3 : 조지 샌더스가 연기한 노르만족 기사가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반하여 납치해가는 역할인데 하필 마녀로 몰려서 화형당할 상황이 됩니다. 그때 아이반호가 나타나서 결투로 무죄를 증명하겠다고 하는데 조지 샌더스는 자기가 이기면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사형당하게 되고 자기가 죽어야 그녀를 살릴 수 있으니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물론 결과야 뻔히 주인공이 이기는 설정이 당연하지만 악역이라도 이렇게 한 여자에 대한 연정때문에 고민하는 부분이 약간 안쓰럽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남자와 미녀의 관계는 영화에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소재입니다.
[출처] 흑기사(Ivanhoe 52년) 십자군 전쟁 시대 영국 배경 오락영화|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