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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거짓말
written by 유키렌
"유비한씨, 영화계를 떠나신다는것이 사실입니까?"
"절정의 시기에 은퇴를 선언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겁니까?"
"은퇴의 이유가 사랑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온갖 질문들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이 자리의 주인공인 비한은 입술을 꾹 다문채, 침묵을 고수하고 있었다.
조금씩 장내가 조용해지자,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게… 거짓이었습니다."
웅성대던 기자회견장이 찬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졌다. 떨리는 목소리가 마치 그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처럼 처연하게 가라앉았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외의 모든것은… "
노련한 배우로서의 눈물이 아닌, 온몸으로 슬프다 표현하는 비한을 보며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바보같이……."
* * * * * * * * * * * * * * *
[200X. 05. 26. 오늘 또 비한이의 열애설에 대한 기사가 났다. 자꾸만 이런 기사가 나오면 비한이가 더 힘들어질텐데… 나도 조심해야겠다. 내가 비한이의 발목을 잡는일따위는, 절대로 없어야할테니까.
… 하지만 솔직히 조금, 아주 조금… 마음이 아릿해…]
"후우…"
거칠게 자켓을 벗어던지며 들어섰다. 까만 눈에 걱정을 함박 담은 그녀가 다가선다.
"…기사봤어. 괜찮아?"
차마 그녀를 볼 면목이 없어 등을 돌리며 외면했다. 원치않았는데… 또 삐딱하게 나가버렸다.
"몇번 만났던게 부풀려진것뿐이야. 금방 사그라들겠지."
"으응…"
돌아보진 않았지만 또 애써 웃고있을 그녀가 뻔히 보였다. 바보같이… 왜 맨날 그렇게 웃기만 하는거야.
"넌 아무렇지도 않아? 내가 다른 여자와 그딴 기사가 나는게?"
퉁명스럽게 나가버린 내 말에 그녀는 잠시 멈칫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곧, 예상했던 말이 들려온다.
"…괜찮아. 난 괜찮으니까… 신경쓰지말고 열심히 해."
바보같이… 그 말을 믿어버렸다. 그녀의 하얀 거짓말을.
[200X. 06. 15. 비한이가 무지 늦게왔다. 무슨 모임이 있었다고 말하는거같은데, 무슨 술에 이리 취해 왔는지. 매니저 겸 고등학교 동창인 기혁이가 겨우겨우 업어다 놓았다. 그런데… 기혁이의 묘한 말은 무슨뜻이었을까?]
"오늘 고마웠어."
"뭘요, 선배. 이정도야…"
내 상대역으로 요새 인기를 누리고있는 이소연이란 이 여자. 살짝 눈웃음을 치지만 역겹게만 느껴진다.
청량한 그녀가 보고싶다. 그녀를 당당히 내보일수있었다면… 이런 가식적인여자, 데려오지도 않았다. 자꾸만… 짜증난다.
"잘 들어가라."
"에이 선배~ 저도 연예인인데 가다가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떡해요. 데려다주세요, 네?"
하아… 한숨이 나오려는것을 간신히 참고 고개를 끄덕인다. 기혁이의 못마땅한 눈길이 느껴지지만, 기어코 소연을 내려주고 차를 돌린다.
"유비한. 너 나랑 얘기 좀 하자."
기혁이에게 이끌려 한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깊숙한 구석에 앉자마자 말을꺼낸다.
"그래야만했었냐."
"뭘."
알면서도, 되물었다.
"네가 데리고있는 그 아이. 비록 지금은 네 것이 되어 조용히 네 품에 있다지만, 고등학교때만해도 그녀를 얻고자했던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지는 너도 잘 알고있을거다. 귀한 이를 얻었으면, 소중히 여겨. 이제 그만 그녀를 드러내도 되는거아냐? 네가 사랑하는사람이 있다는이유로 급락할만큼, 네 인기가 그렇게 허무했었냐? 아니면, 그따위 인기쯤 팽개칠수있을만큼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거냐?"
"……."
할말이 없었다. 오직 나 때문에, 그녀는 숨어 산다. 내 인기를 유지시키기위해, 그녀는 희생한다.
"오늘만해도 그래. 아무리 파트너가 필요한 파티였다지만… 슬그머니 그녀를 데리고 가도 됬었잖아. 네가 자꾸 이런식으로 행동하니까 그딴 열애설따위나-"
"그만하자 기혁아. 힘들다."
쓴 소주 몇잔을 들이켰던 것 같았다. 간신히 기혁이가 날 데려다 놓았던것도 같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가졌던 것 같다. 그녀가 힘들어할만큼, 거칠게.
"미안."
다음날 정신을 차려 씁쓸하게 사과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웃었다. 지난밤 내 거친 손길에 여린피부에 멍이 들었음에도.
"괜찮아. 우린 사랑하잖아. 사랑하니까, 다 괜찮아."
눈부시도록 하얀.
[200X. 07. 31. …아기를 가졌다. 혼자서 너무 많이 울어버린것같아… 축복받지못할 아기, 아니… 세상빛조차 보지 못할테니까… 아가야, 엄마가 너무 미안하지만… 아빠를 위해서. 엄마는 널 버릴수밖에 없을것같아. 미안, 미안해…]
"무슨일 있어?"
유달리 요새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보였다. 걱정스럽게 물었다. 창백한 얼굴에 애써 밝은 미소를 띄우며, 그녀가 말한다.
"아무것도 아니야. 비한아, 너 촬영에 늦겠다. 어서-"
뭔가 숨기려고하는것만 같은 꺼림칙한 기분이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난 너무나 바빴다. 바보같이, 혼자만 바빴다.
"알았어. 무슨일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응-"
그녀의 목소리가 약간의 떨림을 담아 서글프게 들려온것을, 그저 난 착각이라고 믿고만 싶었나보다.
…그날이 나와 그녀의 소중한 아이를 잃는 날인줄도 모르고.
바보같이 또 난, 그녀의 하얗디 하얀 거짓말에 속았다.
[200X. 09. 22. 아프다. 이 아픔이… 그때문이었구나. 내 몸에서 자라나고있던 무서운 암덩어리 때문이었구나. 난 이제 어떡해야하는걸까? 한가지 분명한건 절대로 비한이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 내가 드러나지 않았던게 지금 이순간만큼, 너무나 감사해.]
"떠날께."
"…뭐?"
믿기지않았다. 작고 여린 그녀가, 내게 너무나 소중한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 말했던 그녀가.
"떠나겠다고했어. 헤어지자 우리. 더이상 이렇게 부끄럽게 숨어살고싶지않아."
"…….'
아무런 말도 나오지않았다. 치밀어오르는 배신감도 두번째였다. 미치도록 고통을 호소해대는 심장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정신없이 그녀를 보냈다. 바.보.같.이. 난 그녀의 아픔어린 눈동자를 보지못했다.
"더이상 널 사랑하지않아. 혼자서 너 기다리는거 이제 지쳤어. Bye Bye, 비한."
하얀 눈이 모든것을 덮어버리듯, 모든 아픔을 숨겨버리고 내어놓은, 눈처럼 하얀 그녀의 거짓말.
[200X. 10. 22. 그를 떠나온지 벌써 한달이 지났다. 하루하루 힘이들지만, 그를 생각하며 견뎌낼뿐. 그도 나만큼, 내생각을 하고있을까. …이래선 안되는거 알지만, 그가… 날 잊지않았으면 좋겠다. 그의 마음속에 항상 나만이 자리했으면 좋겠다… ]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 없어.-
수화기속에서 들려오는 기혁이의 말에 전화를 놓아버릴뻔했다. 내가, 내가 무슨 말을 들은걸까.
-마지막까지 네게는 알리지말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미안.-
"…어째서…?"
-…내가 그녀의 유품을 정리했다. 다 그녀의 소원대로 불태워주었지만… 이 일기장만큼은 그럴 수 없었어.-
"……."
-이걸 읽고, 네가 얼마나 바보같았는지 조금은 깨닫길바란다, 이 바보자식아.-
이미 미치도록 느끼고있어. 내가… 정말 바보였다는걸.
* * * * * * * * * * * * * * *
숙연했다. 기자회견장이라는것이 믿기지않을만큼. 비한의 말 마디마디 서려있는 절절한 아픔에, 칼날같은 기자들도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유비한씨는 아직까지 한번도 그녀의 이름을 말하지않으셨는데… 그녀가 누구인지 알려주실수있습니까?"
마침내 한 기자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비한이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일기장을 보면서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 모든것이 그녀의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오직 나만을 위한, 하얀 거짓말이었다는걸."
…그래서 이번만큼은, 그녀를 위해 내가 하얀 거짓말을 하겠습니다.
"오직 제 마음속에만 남겨두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이름을 모릅니다."
네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하얀 거짓말…
문득 생각나서 끌렸답니다:) 인소닷에 글올리는건 처음이네요.
다른곳에서 연재하면서도 늘 장편이고 단편은 써본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문득 '하얀 거짓말'이란 말을 보고 주체할수없었답니다..
아무래도 제대로된 단편이 되려면. 완전히 '그녀'의 시점에서 쓴 하얀거짓말이 필요할듯..한데.
끌리면 번외편으로 들고오겠습니다 하하'-';
>>끝부분 약간 수정했습니다.. 옮겨오면서 짤린거같아요ㅠㄷㄷ
첫댓글 ㅠㅠ 정말 잘쓰셧어요 ㅠㅠㅠ 여주번외는 안될까요? 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외편 예정중에 있답니다ㅎ
잘봣어요 번외원츄요 ㅠㅠ
감사해요!! 번외는 최대한 빨리 들고오겠습니다!
우어어어....정말 마음을 찡하게 울리는 멋진 글이였어요 하얀 거짓말.. 정말 잘쓰셨어요
마음 찡하게 보셨다니 제가 표현하고자했던게 잘된거같아 흐뭇:D 감사하구 좋은하루되세요!
ㅠㅠ 아 눈물나 ㅠㅠ 너무 잘봤셔요 ㅠㅠ 번외 추천!!
눈물까지ㅠ_ㅠ 잘보셨다니 감사합니다ㅋ
.........스......슬프네요
의도했던것이 슬픔이어서^^; 감사합니다!
ㅜㅜ번외요~~!너무잘쓰셧다ㅏ...
번외 빨리써야겠네요ㅎㅎ 칭찬감사합니다 좋은하루되세요^^
너무 슬퍼요 ㅠㅠ 눈물이 훌쩍 ㅠ 번외 있던데 지금 곧바로 읽으러 갈게요
눈물ㅠ_ㅠ 제 개인적인 감상은 번외가 더..슬펐답니다ㅠ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잘쓰셧어요 ! 번외가 궁금하네요 ㅇ _ㅇ;
번외 위쪽에 있답니다^^ 칭찬감사드려요!
슬퍼요 ㅜㅜㅜㅜ
ㅠㅠ좋은감상 감사드려요~
ㅋㅋㅋㅋ 번외보러갑니다.ㅋㅋㅋ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하루되세요!
정말너무슬퍼요!정말이요..제대로된소설을봤다는..지금까지계속 단편소설봤지만..리플남기는건처음이네요!잘봤습니다!
이런 영광스러울데가ㅋㅋ 첫 리플이 제글이라니 감사할따름ㅠ 다시한번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