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5일, 늦은 네시에 대학로 동숭무대 소극장에서
극단 인터의 '나뭇잎 사이로' 란 연극을 봤다.
마지막 공연이 올라간 일요일의 날씨는 성급한 겨울이 벌써 왔나 싶을 정도로
차갑고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거리엔 낙엽이 뒹굴어 스산한 느낌이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찾은 대학로는
여전히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나 역시 연극 관람이라는 모처럼의 호사를 하기 위해 서둘러 발길을 떼고 있었다.
연극은 '사랑'과 '이별' 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니, 어쩌면 삶에 대한 얘기라고 해도 될듯 싶다.
3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태의 극은 20대에 만난 청춘 남녀가
결혼을 하고 30대 현실적인 삶에 부딪히면서 서로 이별을 얘기하지만
또 세월을 함께 보내게 되고 40대를 맞아 여전히 으르렁거리지만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고 또 함께 간다는, 좀 도식적인 내용이었다,
행여 진부적일 수 있는 소재를 작가와 젊은 배우들의 잘 소화해 내 재미있게 본 것 같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다 알았을 그 무렵에나
시작하지 않아서 끝나지 않을거란 걸 확인한 그 즈음이나
계속될 거라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완고한 습관이란 걸 체득하는
그 지점이 닿으면
그때나 잘 할 수 있을까 이놈의 사랑,
그때는 잘 할 수 있을까 이놈의 사랑. "
주인공의 독백이다. 정말이지 누가 잘 할 수 있을까, 그 놈의 사랑
정말이지 누가 잘 할 수 있을까, 그 놈의 이별.
서로 다른 두사람이 만나서 결혼하고 함께 살아가는 동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슴앓이 하지 않은 자 뉘 있을 것이며,
또 이별이란 것을 가슴에 품고 상대에게 칼날을 들이대지 않은 자 뉘 있을까?
사랑을 꿈꾸고, 이별을 꿈꾸고........
시간의 굴레 속으로 사라지면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은 또 얼마나 흘려버릴까?
연극은 첫번째 이야기, '이상한 술'로 막이 오른다.
가을 날 밤늦게 술에 취한 여자에게 남자는 이별을 요구하고, 여자는
사랑하니까 헤어지지 못한다고 하면서 이들의 사랑 얘기는 시작된다.
젊음은 감각으로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아는 것이고,
가을이 오는 것을 후각으로 느끼는 것은 성숙됨이란다.
가을 냄새, 나뭇잎 사이로 깊어가는 가을이 뿌리는 그 진한 향에 취해
'사랑하는 사이'라는 익숙함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주인공,
오래된 나뭇잎 냄새 같은 것이 베인 추억이란 병을 하나씩 가슴에 품게되는
것이 나이듦인 것일까?
"쓰지도 달지도 않은, 딱딱하지도 물컹하지도 않은,아주 무감각한 추억
보기만 하고 먹지는 않는 아주 이상한 술, 추억...."
두번째 이야기 ; 혁명 전야
"혁명을 꿈꿔보지 않은 젊음은 젊음도 아니다. 우리가 노력도 없이
그저 갖고는 대충 접어서 서랍 속에 집어 넣은게 있지. 서른.
서른,오는 나이가 아니라 보내는 나이더라."
서른 중반, 소위말하는 백수인 남편에게 생활전선에서 뛰고있는 여자는
당당하게 이별을 요구한다. 헤어지자는 이유? 당신은 혁명을 꿈꾸어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은 20대 때 무얼 했나요?
윤동주 시인은 조국의 해방을 노래하면서 감옥에서 죽어갔고,
민중의 해방과 노동자들의 단결을 부르짖었던 체 게바라는 원하던 쿠바의 혁명을
이루었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남미로 가서 투쟁을 하다가 짧은 생애를 마친다.
30대 그들의 삶은 그대로 투쟁이었다.
세번째 이야기 ; 개와 타조의 대화
나뭇잎 사이로 그들의 꿈과 그들의 추억,
그들의 청춘과 그들의 사랑이 소풍을 떠났다.
이제 그들은 더이상 사랑을 꿈꾸지도, 이별을 꿈꾸지도 않고
일상과 타협한다.
이들 부부의 결정이 올바른 것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그 결정으로 그들이 행복해 지는 것을 바랄 뿐이다.
문득 연극을 보면서 '투쟁'이란 단어에 날개가 달려버렸다,
삶이라는 것이 결국은 투쟁을 불러내는 멍석같은게 아닐까?
혁명과 투쟁, 우리네 젊은 시절도 독재에 항거하던 젊음이 있었고,
자유를 갈망하던 젊음이 살아있었다.
어느덧 나이가 들고 그 반짝이던 젊음이 사라졌다 싶었을 때,
이념도 구호도 투쟁도 다 남의 얘기인듯, 그렇게 생활 전선의 전사로
빠르게 편입됐고, 나 자신에 대한 성찰 조차도 게을리 하는 듯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젊음은 갔지만 삶을 향한 치열함은 보이지 않는 혁명을 꿈꾸며 살아 꿈틀대고 있다.
삶은 곧 혁명이고 투쟁이었다,
나이에 걸맞는 혁명과 투쟁, 그 소리없는 전쟁이 얼마나 사람을 긴장되게 만드는가.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사는 것일까?
어떻게 살아야 내가 속한 이 사회의 건강이 유지될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나이 값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왜 나이 든 사람은 나이 값을 해야하는가?
흐르는 강의 표면에 물결이 그대로 나타나지만
물 속 깊은 곳은 유속이 빨라도 드러나지 않듯이,
더 나은 삶을 위한, 보다 나은 공동체를 향한, 진정 인간답게 살기 위한
투쟁은 보이지 않은 곳에서 피를 흘리며 진군하는 이름없는 병사에 다름아니다.
내 삶의 투쟁을 그래서 그치지 않는다.
윤동주의 서시가 낭독된다.
하늘의 별을 노래한다.
나는 '덧씌움'에 대해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별은 별이 아니었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빛깔 무지개가 아이들의 상상력을 제한하듯이
사회 관념이 주는, 세뇌 교육이 주는 그 덧씌움,
그것이 인간의 자유를 구속한다. 모든 것의 본성에 덧칠을 하듯
인습과 관습과 사회적 제도로 뒤덮어버린다.
물론 그것이 옳을 경우도 많을 것이지만, 더러는 왜곡의 덫에 걸리고야 만다.
혁명과 투쟁도 마찬가지 아닌가?
박종철 고문사건이 폭로되고, 6월 항쟁이 이 땅의 새 역사를 열어갈 때,
나는 감격에 겨워하면서도 앞으로 우리네 젊은이들은 무얼 위해 투쟁할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386 세대들이 정권의 실세로 떠올랐고,
이젠 이념 논쟁마저 구시대의 유물처럼 치부되는데,
이 땅의 젊음은 무엇을 위해 혁명을 할까?
개혁이니 진보니...이런 관념적인 혁명만 혁명이 아닐진데,
-아니 이 싯점에서 혁명이란 단어가 적절치 않을지 모르지만,
굳이 이 단어를 쓰는 것은 그 의미를 헤아리자는 것이고, 이왕지사 연극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기에 거기에 나온 단어로 표현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힘겹게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지금 혁명을 꿈꾸고 있다,
내 삶의 변혁을 도모하고 있다.
연극 속에서, 윤동주의 얘기를 할 때, 체 게바라 얘기를 할 때,
그 노래 가사에 눈시울을 붉히면서
나는 내 가슴에서 무언가 '뻥'하고 뚫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 나는 지금도 투쟁을 하고 있으며,
지금도 혁명을 시도하고 있는거로구나.
나 안의 나를 바꾸기 위해,
내 의식 속에 내재해 있는 부조리를 몰아내기 위해.
편안함에 안이해지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면서
고통을 껴안는 것만으로 내 역할을 다했다고 자위하면서.
그렇게 무심해져 있는 자신에게, 나는 나뭇잎 사이로 불어오는
그 가을의 냄새를 맡으며,
진정 나 자신에게 자유를 부여하며,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별을 바라보면서 윤동주의 별이나 어린왕자의 별을 떠올리지 않고도
나만의 별, 내 별만을 찾을 수 있는 날까지,
그 나만의 별빛을 위해 오늘 나는
새 이정표를 세운다.
연극을 보면서 많이 웃었다.
남자는 개, 여자는 타조로 비유된 대사와 행위에 아낌없이 웃음을 토해냈다.
개와 타조의 대화가 어찌 제대로 소통이 되겠는가?
하지만, 관찰자가 되면
개의 말도, 타조의 말도 이해가 되며 그들의 낯선 행동들도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을.
연극이 끝난 후,
나는 오래오래 걸었다.
땅을 보며 나뭇잎 사이로,나뭇잎을 밟고.
하늘을 쳐다보니 보름달이 내게 환한 웃음을 보낸다.
덩달아 나도 웃는다.
가슴 속에는 낙엽의 향기가,
머릿속에는 혁명의 열정이,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은 사랑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 언젠가 운동한다고 ?겨다니느라 일정한 거처도 없는 후배랑 식사를 하면서, '야 미안하다 겁쟁이라서...' 했더니 그후배가 그러더군요.'모두가 나처럼 이러고 다니면 세상꼴 어찌 되라구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것이나 자리를 잘 지켜달라고 그리고 선배같은이가 있으니 이렇게 밥도 얻어먹고 차비도 얻어가지...' 하더군요 한편 슬프기도 하고 또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말씀처럼 나쁜것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순수를 지향하며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지 생각하고 또 대체로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 하지만 한편 매도(?)되는 경우도 있어 마음이 아팠는데 글빛고을님글이 위로가 되네요...고마와요^^*
깨어 있는 님의 글을 읽으며 기분이 좋아 지네요. 그리고 삶의 열정이 느껴지고 가슴으로 공감이 가는군요 특히나 매일 혁명을 꿈꾼다는 님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군요. 님의 글 좋았어요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구요 글을 읽으면서 참 멋진 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이 친해지고 싶은 ~~~
첫댓글 절반쯤 읽었어요. 어디 좀 다녀와서 다시 읽겠습니다. 오랜만에 연극감상문을 만나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빛깔 무지개가 아이들의 상상력을 제한... 요즘에 딸아이의 좀더 현명한 교육을 위해 고민하는 엄마의 가슴에 날카롭게 찔립니다. 삶의 변혁을 도모하는 님 부럽습니다.
+, 언젠가 운동한다고 ?겨다니느라 일정한 거처도 없는 후배랑 식사를 하면서, '야 미안하다 겁쟁이라서...' 했더니 그후배가 그러더군요.'모두가 나처럼 이러고 다니면 세상꼴 어찌 되라구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것이나 자리를 잘 지켜달라고 그리고 선배같은이가 있으니 이렇게 밥도 얻어먹고 차비도 얻어가지...' 하더군요 한편 슬프기도 하고 또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말씀처럼 나쁜것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순수를 지향하며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지 생각하고 또 대체로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 하지만 한편 매도(?)되는 경우도 있어 마음이 아팠는데 글빛고을님글이 위로가 되네요...고마와요^^*
깨어 있는 님의 글을 읽으며 기분이 좋아 지네요. 그리고 삶의 열정이 느껴지고 가슴으로 공감이 가는군요 특히나 매일 혁명을 꿈꾼다는 님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군요. 님의 글 좋았어요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구요 글을 읽으면서 참 멋진 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이 친해지고 싶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