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물 모둠밥
시래기밥, 곤드레밥, 더덕밥, 감자밥, 강냉이밥, 기장밥, 수수밥, 조밥, 콩밥, 메밀느쟁이밥, 감자붕생이밥…. 밥이 곧 생명인 세상에서 이밥 저 밥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지요. 온갖 밥을 한데 모아 함께 먹는 밥은 또 얼마나 맛있을까요.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지만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농촌 들녘에서는 ‘모둠밥’이 일상이었습니다. 길 가던 나그네까지 불러 함께 먹었던 밥! 그 밥엔 나눔과 배려, 사랑이 녹아있었지요. 정으로 버무려진 한 끼 행복이었습니다.
밥이 뭘까요. 스탠퍼드대학 Dan Jurafsky 교수는 ‘음식의 언어(Language of food)’에서 “음식에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가족과 공동체 문화와 합일하고 싶다는 열망이 녹아있다”고 했습니다. 밥에 나의 존재 이유와 가치,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욕구가 내포돼 있다는 것이지요. 채식 위주로 식단이 짜인 한식은 어떨까요. 전문가들은 “채식은 한식의 바탕이고, 채식의 바탕은 나물에 있다. 나물 문화에 우리의 식생활 지혜가 잘 드러난다. 나물은 사계절의 맛과 자연의 향기로 한국인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는 식생활의 꽃”이라고 설명합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40%를 차지하며 혼밥 혼술이 고착된 세상에서 ‘먹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놀랍게도 빅데이터는 여성은 저체중, 남성은 비만을 조심하라고 일러줍니다. 생존을 위한 음식이 건강을 해치는 격이지요. 그러나 음식을 ‘관계’와 연결 지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회식문화가 사라진 직장의 분위기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되겠지요. 혼자 먹는 것이 익숙해지고, 누군가와 마주하는 것이 불편한 사회에서 ‘관계의 밥’은 설 자리를 잃습니다. 하버드대 월딩어 교수는 인간의 행복이 ‘사람들과 의지할 수 있는 관계’에 있다고 했습니다. 혼밥시대! 주래프스키 교수가 진단한 ‘밥’의 욕망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합니다.
새해 첫날, 2022년 어느 봄날의 에너지를 불러내 밥을 짓습니다. 다래 순을 불리고, 곰취를 볶아냅니다. 도라지를 무치고 진초록 개두릅을 밥상에 올립니다. 말린 느타리버섯은 아이 손가락처럼 부풀었습니다. 모두 지난 봄가을 갈무리해두었던 재료들이지요. 도톰하게 살이 오른 굴과 나물을 넣어 뜸을 들이면 나물 모둠밥 완성! 참기름 몇 방울에 고추장 두어 숟가락 넣어 싹싹 비빕니다. 새해 모든 소망이 한데 어우러지는 시간. 오순도순 나누는 밥 한끼가 행복을 불러옵니다.
강병로 brkang@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