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 산과 숲과 들에 산다
박정미
산이 있어 산에 간다.
한국의 사람들은 언제나 산에 오른다. 겨울이 되어도 산에 오른다. 한국의 유명한 한비야 등반가는 여성 혼자의 몸으로 겨울에 백두대간을 정복한 적이 있지 않은가? 산을 사랑하는 놀라운 민족이 아닐 수 없다. 산에 가지 않아도 명품 등산복을 일상복으로 입는 나라는 한국 사람들이다. 해외여행을 가도 비싼 명품 등산복 차림으로 국제무대를 누비고 다닌다. 그런 이력으로 인해 세계 명품 브랜드마다 한국 사람만 있어도 판매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단다. 왜 이처럼 한국 사람들은 등산복을 좋아할까? 눈앞에 산이 있고 창문을 열어도 대부분 산이 보이고 들이 보이고 숲이 보이는 산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적 요소가 최근 들어 얼마나 세계인들이 호평을 하고 한국의 자연을 사랑하고 찬사를 보내는지 모른다. 우연히 한 외국인이 찍은 한 장의 사진이 SNS에 올라오자 해외의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찍은 사진 뒤에 산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수도에 이렇게 가까이 산이 있을 수 있느냐고 감탄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는 잠시 차를 타고 나가기만 해도 가까이 산이 있고 울타리처럼 가도 가도 산이 나온다. 낮은 동산 구릉이 나오고 호수가 나오고 마을마다 시내가 있고 강이 흘러가고 심산유곡 명산들도 즐비하다. 21세기에 와서 자연이 국가의 보물이 되고 천혜의 유산이 되어 주니 국가의 품격이 저절로 올라가는 중이다. 아름다운 자연이 이렇게 가까이 사람의 삶 속에 함께 호흡하고 있기에 우리는 그냥 놀이처럼 산에 오르게 된다. 산에 오르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닌 가벼운 일상이 되었다. 요즘은 잠시 시간을 내어 산책을 하고 있다. 처음 시작한 산행이 벌써 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오를 수 있는 산이 가까이 있다. 손만 뻗어도 닿을 수 있는 산 앞에 살고 있어도 초등 교과서에 나오는 산에 오르는 일이 어려웠다. 살다 보니 산이 눈에 보여서 산에 오르게 되었다.
산에는 인생의 맛이 난다.
산에서도 맛이 난다는 것을 잘 모르고 살았다. 요즘 들어 가까운 명산인 대둔산에 올라가면서 그 맛에 취하게 되었다. 바위와 잘 어우러진 나무 사이를 올라가다 보면 삶에 도전을 받게 된다. 바위 사이에 뿌리를 뻗어 겨우 몸을 지탱하는 대부분의 나무들도 하늘로 곧장 뻗어 있다. 그 강인함과 열정을 보면 인내의 쓴맛과 달콤함이 묻어난다. 처음부터 아주 잘 어우러진 관계는 아님을 볼 수 있다. 바위가 많은 산에 이처럼 울창한 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바위와 산과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기에 쉽지 않은 이곳에 뿌리를 내린 나무마다 뿌리가 절반은 밖으로 나와 있다. 제대로 뻗지를 못해 서로 얽히고 꼬여서 나무들이 곧장 위로 올라가는 버팀목처럼 심지어 바위를 닮아있다. 아랫부분이 대부분은 둥그렇게 말려 있다. 내가 살아온 삶이 너무 미안해서 잘 정비된 나무 계단을 일부러 피한 채 산의 허리를 휘어잡고 매달린 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보았다. 나도 오늘만큼은 이렇게 버텨내 준 한 그루의 나무가 되고 싶었다. 단 하루 만에 나도 산 중턱까지 올라서서 나무들의 땀 냄새며 잎사귀에서 나는 향수를 맡으며 산이 되고 나무가 되어 보았다. 산에 오르며 힘들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순간 숨을 몰아쉬며 침묵을 하게 된다. 바위 사이에 버티고 살아가는 나무들이 위태로움과 그 진지함에서 묻어나오는 무게로 인해 산이 오히려 나를 견인해 준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려는 나무들의 아우성이 들린다. 둔탁한 몸짓으로 겨우 버티고 바위틈에서 생존하는 그들의 거룩한 몸짓은 가지마다 하늘로 뻗어나가 그 위용을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나무들 사이를 헤치고 오르다 보면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순간 정상에 서 있다. 그러나 놀랄 일은 나의 행보가 아니었다. 암벽등반가들은 협곡 사이를 지나 아찔한 바위를 마치 걸어가듯 즐기고 있었다. 사람과 바위와 바위틈 사이에 서 있는 소나무들은 조선 시대에 유명한 산수화 작품에나 등장할 명장면들을 연출해 주는 과연 비경의 산이다. 산에 오른 암벽등반가들은 아찔한 바위 정상에서 손을 들어 환호하는 모습은 또 다른 소나무들이 되어 서 있는 황홀감을 안겨 준다.
자연은 삶의 지혜를 준다.
한국인의 열정과 도전은 자연에서 묻어 나온 것이어서 사람의 두뇌로는 측량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한 대학의 선교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의 이야기에도 그걸 여지없이 증명해준다. 수많은 나라에 파견한 한국 선교사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아마존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잠시 길을 잃고 헤매는 가운데 ‘한국인들이 온 세계를 다 누비고 다녀도 여기 아마존에는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마존의 깊은 산 속에서 한 한국인을 만나게 되고 나서 한국인의 저력과 도전정신에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는 것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징용으로 끌려간 사탕수수밭에서 노동하던 한인들이 후에 브라질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척박한 환경 속에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한국인들이 시내에 작은 강들이 흐르는 곳에 고기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살 때 시냇가에서 고기를 잡던 뜰채가 생각나서 뜰채를 만들어 고기를 잡아 팔기도 하고 먹기도 했다는 것이다. 브라질 주민들이 이 모습을 보고 이 작은 도구를 만들어서 어떻게 고기를 잡을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신비하고 지혜로운 사람들로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작은 땅에 채소를 심고 가꾸어 채소 가게를 열어 팔게 되는데 아침 일찍 문을 여니 싱싱한 채소를 사려고 문전성시를 이루자 브라질 주민들도 일찍 가게를 열었다고 한다, 그러한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고 다음 날 한 시간 더 일찍 열게 되자 브라질 주민도 같은 시간에 가게 문을 여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마침내 브라질 주민이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더 이상 새벽 4시에 일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에서 배운 교감과 부지런함이 세상 어디에서든 뿌리를 내린 한인들의 삶이 대둔산 나무들의 생존과 닮아있어 마음이 아련해진다. 아, 정말 한국인은 어디서든 적응을 하고 강한 뿌리를 내리는 힘이 있다. 자연에서 익히고 배운 교훈이라서 삶이 탄탄하고 고난을 견디는 위용이 있고 그 지혜가 경이롭다. 산을 좋아하는 외국인들 중에서도 요즘 한국의 산행에 큰 관심과 한국의 산의 매력에 빠져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대둔산을 오르는 날에도 외국인들이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 등반하고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산이 부른다.
이 울창한 숲과 장엄한 산들과 강들과 시내들과 삼면에 바다가 위치한 한국의 지역 특성상 에덴동산이 부럽지 않을 만큼 그 아름다움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산과 강과 시내와 들판을 누비며 한국의 동산 안에 사는 우리는 매일 행복하다. 작은 들판에도 어느 곳을 가든 씨를 뿌리고 개간을 하여 생명이 자라도록 한다. 채소를 심는 일을 놀이처럼 소일거리로 삼아 자연을 뿌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즐긴다. 때론 버려진 산자락이나 도로 주변에 자투리땅만 있어도 목숨 걸고 돌멩이를 쌓아 경계를 만들어 어린아이 땅따먹기 놀이처럼 경쟁심이 불붙기도 한다. 그것도 부족하여 베란다나 옥상에 공간만 있어도 우리네 한국인들은 온갖 식물을 키우고 작은 정원사가 되기를 좋아한다. 우리네 일과는 마치 산에 사는 생명체들처럼 새벽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산속에 동물들과 함께 살고 있는 착각이 든다. 이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 나는 산을 사랑하는데 빠져 헤어 나올 수가 없을 듯하다. 겨울 산에는 눈꽃이 피어있으니 겨울에도 산을 만나고 싶다. 가을에는 국화 향기 가득 산이 차를 마시라 하니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단풍이 들어 매일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산수화를 보며 산과 함께 도란도란 거닐 수밖에 없다. 여름 산은 녹음이 출렁거려 매일 푸르름이 빵처럼 부풀어 올라오니 그 숲의 장관을 보러 가지 않을 수 없다. 여름 산에 올라 나의 눈을 씻지 않을 수 없다. 봄이 오면 난 다시 산으로 가야 한다. 수줍은 진달래가 나의 마음을 달래주고 어릴 적 마음의 문을 열어 주어 순수한 웃음을 찾기 때문이다. 벚꽃이 피고 목련이 피는 곳으로 달려가 나의 꿈을 꽃처럼 마음 자락에 펼칠 시간이 다가온다. 이 겨울 한 없는 눈이 산에 내리고 밤새 내려 잠을 자지 못한 채 눈부시게 달빛에 빛날 때 나는 이 세상의 어둠을 보지 못했노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눈부심을 사랑하여 한 겨울 내내 손을 호호 불며 먼 산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사랑하노라. 진주처럼 빛나는 눈꽃을 가지마다 매달고 나를 내려다보는 산이 있어 산을 마시러 산에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