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에 차화로님 댁을 방문했다.
두 번째 방문이지만 차화로님과 노을님이
마치 오래 전부터 아는 사람처럼 다정하게 맞이해주셨다.
아파트 아래층에 사시는 친척 분도 올라오시고
다실에서 차화로님이 정성스럽게 대접해주시는 차를 마셨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나를 감싸주는 편안한 분위기.
차를 우려내고 따라주시는 부드러운 손놀림을 지켜보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 점점 느려지고 바쁜 일상 속에서 곤두서 있던 신경이
천천히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녹차를 마시고 그 다음에는 귀한 보이차를 마셨다.
사실 보이차를 마시는 건 처음이었는데
차에 관한 흥미로운 설명과 함께 마시니 맛도 각별하다.
오룡차와 향이 비슷한 것 같다는 내 말에
이번에는 오룡차를 끓여주셔서 비교해 보라고 하셨는데
음.. 이렇게 비교를 하니 전혀 맛도 향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나서 일본 차 이야기가 나왔는데..
일본에 가는 사람에게 말차를 사달라고 부탁했더니 이런 것을 사왔다면서
작은 통을 꺼내시고 이것이 뭐냐고 물어보셨다.
통의 앞쪽을 보니 일본 글씨로 [우메고부차]라고 써져 있었다.
우메는 매실, 고부는 다시마다.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말린 다시마를 가늘게 잘라 뜨거운 물을 부어서
다시마 성분이 우러나면 차로 마시는 습관이 있었는데
다시마가 몸에 좋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본어에서 다시마=[고부]
[고부]라는 발음이 [요로고부(기뻐하다, 경사스럽다)]에 통하기 때문에
설날이나 혼례식 같은 경사스러운 자리에서는 이 고부차(다시마차)를 마셨다고 한다.
그 통에 들어 있던 것은 그 다시마차를 즉석에서도 마실 수 있게
(딱딱한 다시마가 뜨거운 물 속에서 연해지고
그 향과 맛이 우러날 때까지 좀 시간이 걸림.)
분말로 만들고, 거기에 매실짱아찌(일본의 우메보시)를 건조시켜서
작게 부순 것을 넣은 차였다.
한 잔 마시겠냐고 물어보셨지만
소금간이 되어 있어서 그 짠 맛과 매실의 신 맛 때문에
다른 차의 은은한 맛이 입 속에서 날아가 버릴까봐 사양했다.
“그런데 이쪽은 무슨 차일까요?”
노을님이 또 다른 봉지를 꺼내서 물으셨다.
그 봉지에서 나온 것은 정체불명의 검은 덩어리.
덩어리만 봐서는 저도 무슨 차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 봉지가 들어 있던 통도 치워버리셨다고 하니, 우선은 마셔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꽃차인가..? 라고도 생각했는데
검은 덩어리를 약간 뜯어서 잔에 넣어 물을 부으니,
꽃잎이 떠오르기는커녕 완전히 다 녹아버려서
새까만 물이 되어버렸다.
음.. 이건 뭘까.. ? 솔직히 나도 그런 차는 처음 봤다.
혹시 ‘오징어 먹물차’..??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조심스럽게 한 입 마셔봤다.
다시마 향이 나면서 혀에는 아주 익숙한 어떤 맛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맛이었지..? 하면서 맛에 관한 기억을 더듬으니까 생각났다.
이건 분명 간장..이다.
“이게.. 간장 맛이 나는데요.. ㅡㅡ;;;”
“네? 간장이요..?”
모두가 주시하는 가운데서 더 한 모금.
분명 어릴 때 많이 먹던 맛이다..
그리고 기억이 났다.
일본에서는 말린 다시마를 대패질한 것처럼 생긴 [오보로공부]라는 것을 파는데
급할 때 이것을 다시마 섬유 방향으로 찢어서 그릇에 넣어
적당량의 간장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즉석의 국이 된다.
밥상을 차릴 때 국이 없어 허전하면 이런 즉석국을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바로 그 맛이었다.
“이건.. 차가 아니고 국인 것 같은데요..”
“네? 국이요?”
“네.. 다시마 간장 국...”
그 자리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렇구나.. 국이었구나..”
차화로님도 그 시까만 물을 한잔 만들어 드시면서
“음.. 괜찮은데요.” 하신다.
노을님도
“인스턴트 국을 차인 줄 알고.. 다실에 고이 모셔놨군요.”
라고 하면서 함께 웃으신다.
그런데..
다시마 간장국도 국그릇이 아닌 작은 찻잔(그것도 송사리들이 찻잔 안쪽에서
시원하게 헤엄치는 아주 예쁜 그림이 있는 찻잔)으로 마시니
운치도 잇고.. 맛이 각별한 것 같았다.
그 날, 집에 돌아와서 우리 신랑한테
오늘은 참 귀하고 희한한 체험을 한 이야기를 했다.
앙증맞은 예~쁜 찻잔에 시까만 다시마 간장국을 만들어서 공손이 받들어 마셔본 경험..
그 이야기를 하는 중 문득 의구심이 생겼다.
그 검은 덩어리가 들어 있던 작은 봉지가 생각나서다.
인스턴트 국이라면 좀 더 대중적인 포장이 되어 있어도 좋을 텐데..
너무나 존중하게 작은 봉지에 들어 있던 이유가 무얼까..??
혹시.. 그건 진짜 알려지지 않는 다시마차의 분파(分派)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일본 사이트에 들어가서
다시마차에 관해서 쭈우~욱 검색을 했다.(난 궁금하면 못 참아..)
다시마차의 역사, 영양, 다시마차를 이용한 요리 및 인터넷쇼핑에 나오는 제품까지..
그런데..
그 묘~한 다시마차에 관한 이야기나 광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금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
그 검은 물은 과연 차였을까..??
아니면 진짜 국이었을까..?? ㅎㅎ
- 귀한 시간을 주신 차화로님, 노을님께 감사드리면서..
첫댓글 오랫만에 달땡이님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나두 묘~한 맛을 내는 국차 한번 맛 보고싶네요.ㅎㅎ
네~ 다비다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 댓글을 달아주시니 너무 반갑습니다..
차 생활 26년째 하며 여러가지 茶(지금도 100여가지?)를 두고 있지요. 말차는 우리나라 고려시대 성행했던 가루차 이지만 현대엔 일본말차가 아주 우수합니다.
지인들이 일본을 다녀오면서 말차라고 선물한 것이 달땡이님이 말한 2가지 입니다.
지금도 웃음이 나옵니다. 다시마+매화차는 그래도 일본의 풍취를 느낄만 했는데, 까만색은 많이 짜서 혹시 조미료인가? 한번 맛을보고 모셔두고 있었지요.
(일본 글씨를 모르니 무식의 소치랄수 밖에...) 달땡이님 덕분에 '국'임을 알았습니다. 우동국수에 뜨거운 물에 풀어서 파 마늘 송송 썰어 넣으면 딱입니다.
그런데요..이번에 일본 사이트를 검색해서 알았는데 실체로 얼마 전부터 다시마차를 은은한 맛을 내는 조미료로 사용하는 음식점이 많아졌다면서 [업소용 다시마차]라면서 몇킬로짜리 포장으로 팔더라고요. 덩따라서 일반사람들도 흉내를 내기 시작하여 검색을 해보면 다시마차를 이용한 요리 레시피가 참 많이 나옵니다. 그 신기한 [차]인지 [국]인지 알 수 없는 물체를 [조미료]로 분류하신 것도 정답인 듯합니다.. ^^
오랜만에 달땡이님 글을 보고 갑니다.
부럽네요. 여러가지로..
차화로님 차 맛도 보고싶고, 파전에 막걸리도 먹고 싶고, ..
언제나 가능 할른지...^^
아.. 파전에 말걱리는 저도 안 먹어봤는데요.. ㅎㅎ 저도 몸이 안 좋아서(실은 갑자기 살이 많이 쩌서 관절과 허리가 많이 아파요~) 등산도 못하고 이렇게 평지에서만 놀고 있습니다.. ^^* 반갑습니다..
아유! 하비님 정말 오랬만인것 같네요. 올해는 우리 카페 자주 들러 주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날 차화로님 차 맛 자연스럽게 볼 날이 있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역시 달땡이님글은 생생합니다..몇년간 궁금했었던 검은색 차(?)의 본질도 알려주셨고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