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은 일제 식민치하인 1931년 경남 합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전두환이 8살 되던 1939년 가을, 아버지가 구장(동네 대표)을 맡아 일하면서 공출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던 일본 순사를 강둑 아래로 밀어 던지고는 그날 밤 만주로 떠났다. 얼마 뒤 아버지의 연락을 받은 가족들이 모두 만주로 떠나기로 한 날, 어머니가 사내 아이를 낳았다. 막내 동생 경환이었다. 어머니는 혼자 남아 친척 집에서 몸조리를 하고 다음 해 봄 만주로 합류했다. 그해 가을 전두환이 살던 조선인 마을에 불이 나 집이 다 타버렸다. 어머니가 영양실조로 시력을 잃어갔다.
다음 해인 1941년 전두환 가족은 귀국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구에 정착했다. 그 당시 살던 집이 움막이었다. 어린 전두환은 품팔이 나가는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일을 챙기고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바로 밑 동생은 어린 형(전두환)의 품에서 숨졌고, 막내 경환은 살아남았다. 전두환의 첫째 형과 둘째 형도 오래전 어린 나이에 숨졌다. 아들 여섯 가운데 형 기환과 동생 경환, 그리고 전두환 셋만 살아남은 것이다.
그래서 전두환의 진학이 늦어졌고 학업도 떨어졌다. 1944년 희도국민학교(초등학교) 4학년에 편입했다. 우연히도 그로부터 7년 뒤, 전쟁 중 피란길에 대구에 내려왔던 이순자도 희도국민학교에 다녔다. 1952년 희도국민학교 동창회에 참석한 여중생 이순자는 육사생도였던 선배 전두환을 처음 보았다.
긴 이야기, 짧게 요약함. 필요에 의해...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지난해 국정감사장에 가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뜻밖에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다. 국감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딥페이크(Deepfake) 영상이었다. 고 김광석의 영상에 유 장관의 얼굴과 음성을 입혀 만든 것이다.
‘딥페이크’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안타깝게도 디지털 범죄 우려는 현실의 악몽으로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