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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6일–11월 1일
노래 62 새 노래
‘두려움 없이 신성한 봉사를 드리는 특권’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그분은 우리를 위해 ··· 구원의 뿔을 일으키셨습니다. [우리가] 두려움 없이 그분에게 신성한 봉사를 드리는 특권을 누리게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누가 1:69, 75.
성구해설: 누가복음 1장 75절은 스가랴의 찬가 가운데서, 하느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신 목적을 기자인 누가의 입장으로 설명하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문맥에 따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종신토록".
그리스어는 "우리의 모든 날 동안"이다. 이는 단순히 오래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평생, 삶 전체,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인 삶을 뜻한다. 즉 하느님께서는 백성을 잠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하느님을 섬기도록 구원하신다는 의미다.
2. "주의 앞에서".
이는 하느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구약에서는 하느님 앞에서 행하다. 하느님 앞에서 살다. 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하느님이 늘 보고 계심을 의식하며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느님께 인정받는 삶을 뜻한다. 즉 단순히 특정 시간에만 하느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하느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3. "성결".
그리스어의 뜻은 거룩함, 하느님께 대한 경건, 하느님께 구별된 삶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단어는 특히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거룩함을 강조한다.
4. "의".
원어인 그리스어의 뜻은 올바름, 의로움, 정의를 의미한다. 성결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한다면, 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공정하고 올바르게 사는 삶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많은 주석가들은 성결은 하느님께 대한 삶으로, 의는 이웃을 향한 삶으로 이해한다.
5. "두려움이 없이".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은 원수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한 공포 등을 포함한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목적은 두려움 속에 사는 백성이 아니라 담대하게 하느님을 예배하는 백성을 만드는 것이다.
6. "섬기게 하리라".
그리스어 동사는 구약의 제사장이 성전에서 하느님을 섬길 때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모든 하느님의 백성이 삶 전체를 통해 하느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배는 성전 안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하느님께 드려지는 예배라는 뜻이다.
문맥 속 의미.
사가랴는 메시아가 오시는 목적을 정치적 독립으로만 보지 않는다. 많은 유대인은 로마에서의 해방을 기대했지만, 사가랴는 더 깊은 목적을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원수에게서 건지시며 하느님을 평생 자유롭게 예배하도록 메시아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즉 구원의 목적은 단순히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삶으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요약하면, 누가복음 1장 75절은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여, 평생 하느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두려움 없이 예배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선언하는 말씀이다.
| 요점 이 기사는 구원이라는 선물과 그에 따르는 영예와 책임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1. 스가랴는 어떤 예언을 했습니까?
의사 누가는 이사야의 예언을 예수께 적용하였다. 따라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요한을 언급한다. 요한은 당대의 선지자이지만 예수의 길을 예비하는 역할 만을 언급함으로써 예수를 출중한 구원자로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누가 1장 67절의 주는 예수를 가리키지 여호와로 번역한 것은 터무니 없는 독단이다.
제사장 스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주 나이가 많았을 때 여호와께서는 기적으로 그들이 아들 요한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까?” (누가 1:57-66) 여호와께서는 스가랴를 통해 그 답을 알려 주셨습니다. 스가랴는 메시아가 곧 올 것인데, 사람들이 회개하고 메시아를 따르도록 돕는 역할을 아들 요한이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모스 3:7; 누가 1:67-79) 그런데 스가랴의 말은 단지 요한이 할 일과만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a 이 기사에서 살펴보겠지만 그 말은 오늘날 우리와도 관련이 있는 예언이었습니다. 이제 그의 말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하는 세 가지 즉 (1) 구원이라는 선물, (2) 신성한 봉사를 드리는 영예, (3) 전파할 책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구원이라는 선물
2. (ㄱ)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어떤 선물을 약속하셨습니까? (누가복음 1:67-73) (ㄴ) 누가복음 1:69에 언급된 “강력한 구원자”는 누구입니까?
구원의 뿔이라는 묘사는 은유적이다. 짐승은 적을 공격할 때, 뿔을 사용하므로 힘 또는 권세를 상징한다. 따라서 구원의 뿔이란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강력한 힘 또는 권세를 의미하며, 그 권세를 가진 자가 예수임을 증언하려는 것이다.
2 누가복음 1:67-73 낭독.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구원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구를 통해 구원을 주실 것이었습니까? 스가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 우리를 위해 ··· 다윗의 집에서 강력한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누가 1:69; 연구 노트 참조) 그 “강력한 구원자”는 바로 메시아였습니다. 스가랴 시대의 유대인들은 약속된 메시아가 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고, 그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 왕가에서 나올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창세 22:17, 18; 마태 22:42) 그러면 여호와께서는 왜 스가랴에게 영감을 주셔서 이 “강력한 구원자”가 올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까? 메시아가 올 때가 매우 가까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6개월 뒤에 마리아라는 젊은 여자가 예수를 낳았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며, “그의 조상 다윗의 왕좌”에 앉아 왕으로 다스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가 1:30-35) 예수께서는 30살에 침례를 받으셨을 때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심으로 약속된 메시아가 되셨습니다. (마태 3:16, 17) 그토록 기다려 온 “강력한 구원자”가 드디어 나타난 것입니다!
3. 1세기 유대인들은 왜 구원을 받을 필요가 있었습니까?
구원이 실제적이 되기 위해서는 선행적으로, 영적이고 정신적인 계몽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예수는 그러한 면에서 영적 지도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유대인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한 것은 그러한 영적 계몽이 아니며, 또한 영적 계몽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였고, 모세 율법을 중심으로 그들이 단합하여 그들이 로마의 식민지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다.
3 당시 유대인들은 무엇 때문에 구원을 받을 필요가 있었습니까? 스가랴는 하느님께서 구원자를 주신 이유가 “우리의 적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가 1:71) 이 말은 예수께서 로마의 압제에서 유대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뜻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겪는 고통의 주된 근원인 사탄에게서 구출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히브리 2:14, 15) 사탄 때문에 당시 유대인들을 포함한 모든 인류는 죄와 죽음의 종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또 다른 것에서도 구출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모세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었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그들이 율법의 저주 아래 있게 되었다고 알려 줍니다. (로마 3:20; 갈라디아 3:10, 13)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들에게는 여호와께서 스가랴를 통해 약속하신 “죄의 용서를 통해 얻는 구원”이 필요했습니다.—누가 1:77.
4. 오늘날 우리는 어떤 적들에게서 구원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까?
1세기 당시나 현재나 인간이 구원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모든 일은 순식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구원에 필요한 요소들이 질서 있게 종합되어야 가능하다. 시계탑이 주장하는 것처럼, 초월적 힘에 의존하려는 생각은 허황된 꿈이며, 뜬 구름을 잡아보겠다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생각처럼 구원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자연의 질서와 법칙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자연이 필요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4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적들에게서 구출될 필요가 있습니까? 예수 시대의 유대인들처럼 우리도 죄와 죽음의 종입니다. (로마 5:12) 그에 더해 사탄과 악귀들은 이 세상에 많은 문제들을 일으켜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속임수를 사용해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지 않게 만들려고 합니다. 또한 개인이나 집단을 부추겨 우리의 숭배를 반대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처럼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로부터도 구출될 필요가 있습니다.
5. 예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죄에서 구출해 주십니까?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은 자연의 물리적 법칙이 아니라, 인문 사회에 흐르는 영원한 원리를 가르치신 것이다. 전자나 후자가 모두 어렵지만 후자가 더 어려운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아인쉬타인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사람들이 핵폭탄은 잘 만들면서 그것을 이롭게 사용하는 방법은 왜모르는가? 그러자 아인쉬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자연의 물리적 법칙을 이해하는 것보다 사회의 인문학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은 인문학이 더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인문학을 실행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원리를 실행함으로써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누가 인위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문 법칙 또한 자연의 방식에 속하는 것이므로 오직 자연의 방식으로 구원이 올 수 있다는 확실한 깨달음이 필요하다.
5 우리의 구원자 예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죄에서 구출해 주십니까? 그분은 땅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어떻게 여호와의 표준에 따라 살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숭배를 드릴 수 있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로 바치셨습니다. (요한 3:16; 마태 20:28) 오늘날 우리는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숭배를 드리기 위해 예수의 가르침을 최선을 다해 따릅니다. 하지만 불완전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때가 많고 그래서 여호와께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는 대속을 근거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숭배를 받아들여 주십니다. (요한 1서 2:1, 2)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의 구원자 예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출해 주십니다.
6. 예수께서는 “다윗의 왕좌”에 앉아 통치하는 왕으로서 어떤 일을 하실 것입니까? (또한 삽화 참조)
의로운 왕이 정의와 공의로써 통치한다면 그만큼 사회는 더 보람된 사회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이다. 사회 구성원인 개인들이 영적 계몽이 되어, 실행적이 되어야만 구원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 통치만 잘한다고 저절로 구성원들이 의롭게 되는 것은 아니다.
6 예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죄와 죽음, 사탄과 악귀들, 그리고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구원해 주실 것입니까? 1914년 이래로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조상 다윗의 왕좌”에 앉아 하느님의 왕국의 왕으로 통치하고 계십니다. (누가 1:32, 33) 곧 있을 아마겟돈에서 예수와 14만 4000명의 공동 통치자들은 천사들과 함께 이 땅에 있는 하느님의 적들을 모두 없애 버릴 것입니다. 천년 통치 중에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시고, 공동 통치자들과 함께 인류가 점진적으로 완전성을 회복하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요한 5:28; 계시록 22:1, 2) 천년 통치 끝에 인류는 유전받은 죄와 죽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을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5:26, 55-57) 천년 통치 이후에 예수와 공동 통치자들은 사탄과 악귀들 그리고 최종 시험 때 그들의 편에 선 모든 사람들을 완전히 멸망시킬 것입니다. (계시록 20:7-10) 그때가 되면 여호와께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죄와 죽음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으며 마음껏 여호와를 섬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신 여호와께 영원히 찬양과 감사를 드릴 것입니다.—고린도 후서 9:15.
여호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십니다 (6항 참조)
신성한 봉사를 드리는 영예
7.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어떤 영예를 누리게 해 주십니까? (누가복음 1:74, 75)
대속이란 가상의 교리이며 새 출발을 하게 하는 촉매제로 사용될 수는 있다. 그러나 결국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 데에 달려 있으며, 사람(사물) 간의 관계적인 문제인 것이다. 죄를 짓지 않으므로 오게 되는 보상은 첫째로 떳떳한 마음이며 행동에 자유를 준다는 것이다. 이것을 종교적 교리화 시켜 하느님께 신성한 봉사를 드려야 한다는 말로 바꾸어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신에게 무언가를 바쳐야 우리가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은 원시숭배의 방식이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그들의 조직확장에 이용하려는 것이다.
7 누가복음 1:74, 75 낭독. 여호와께서 주신 대속이라는 선물 덕분에 우리는 특별한 영예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스가랴가 말한 “두려움 없이 신성한 봉사를 드리는 특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신성한 봉사”란 우리가 여호와를 숭배하기 위해 하는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전파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고, 집회와 대회에서 숭배를 드림으로 여호와께 신성한 봉사를 드립니다. 그에 더해 베델에서 봉사하거나, 왕국회관이나 대회 회관을 건축하고 유지·보수하는 것과 같은 일에 참여하는 것도 신성한 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8.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죽음을 두려워 하지말고 수혈을 거부해야 되지만 우리에게 책임을 돌리지 마라는 것이 시계탑의 입장이며, 목숨을 잃더라도 당원증을 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시계탑의 입장이지만, 우리는 지시한 일이 없다는 것이 또한 그들의 입장이다. 즉, 그들은 교리를 지켜서 시계탑을 우뚝 서게 만들어야 하지만 의무나 책임은 결코 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그들은 모든 책임을 여호와에게 돌림으로써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8 우리가 여호와께 “두려움 없이” 신성한 봉사를 드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첫째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희망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짧은 인생을 살면서 최대한 많은 것을 누리려고 하기보다는 여호와를 섬기는 것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둡니다. 또한 우리는 박해자들이 생명을 위협할 때에도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설령 우리가 죽는다 하더라도 예수께서 부활시켜 주실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충절을 굳게 지킵니다. (요한 6:39, 40) 둘째로, 우리는 우리에게 죄와 잘못이 많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받아 주지 않으실까 봐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드리는 숭배를 받아들이고, 대속을 근거로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요한 1서 4:9, 10.
9. 일부 형제자매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습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시계탑 성원들은 그들의 숭배가 참숭배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든 교리들이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추측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성경이 하늘에서 떨어진 책이라고 빡빡 우기는 것이며, 둘째는 그 내용을 해석할 권리가 시계탑 이사회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두가지에 대해 근거가 많이 빈약하기 때문에 비록 시계탑 성원이 되었더라도 그들 교리의 정확성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상대적 정확성을 주장한다. 다른 종파에 비해서 우리가 보다 정확하고 보다 더 도덕적이라는 우월감이 작용하게 하여 종교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9 하지만 일부 형제자매들은 여호와께서 자신이 드리는 숭배를 받아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기 어려워합니다. 자신이 여호와의 사랑을 받기에는 너무 부족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어쩌면 과거의 좋지 않은 경험 때문에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래전에 지은 죄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미 여호와께 기도로 용서를 구하고 장로들의 도움을 받았는데도 계속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도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10-11. 과거의 잘못 때문에 여호와께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낀다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보십시오.
시계탑은 그들의 사업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개나 소나 가리지 않고 사용한다. 그렇게 해야만 무료로 참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교리에 어긋나더라도 회개했다는 안정감을 주어 그들의 사업에 참여시키려는 것이다. 개인이 진정으로 회개 했는 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이지 시계탑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10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다리가 부러져서 의사를 찾아갔다고 해 보겠습니다. 먼저 의사는 부러진 뼈를 맞춰 줄 것입니다. 그런 다음, 환자의 다리에 힘이 생기고 다시 원래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물리 치료를 받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환자가 ‘내가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다시 걸을 수 있을까?’ 하고 불안해한다면 어떠합니까? 그렇더라도 그는 의사를 신뢰하면서 처방을 받은 대로 꾸준히 물리 치료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다리가 나아 예전처럼 걷고, 심지어 뛸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11 혹시 과거의 잘못 때문에 자신이 여호와께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까? 그렇다면 마치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듯, 우리도 여호와를 신뢰해야 합니다. 그분이 과분한 친절과 자비가 풍부하신 분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대속을 근거로 우리의 잘못을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요한 1:16, 17; 로마 3:23, 24; 요한 1서 3:19, 20) 그리고 그분이 ‘처방해 주시는 치료법’을 따르십시오. 다시 말해, 꾸준히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고 영적인 활동을 계속해 나가십시오. (시 1:2; 데살로니가 전서 5:17; 히브리 10:25) 부러진 다리가 낫는 것과 비슷하게 영적인 치료 과정에도 시간이 걸립니다. 처음에는 더디게 느껴지더라도 차차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계속 여호와를 신뢰하십시오. 포기하지 말고 좋은 영적 습관을 유지하십시오. (빌립보 3:16) 그리고 여호와께서 하루하루 그분을 충실히 섬길 힘을 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여호와와 예수께서 이처럼 우리 모두에게 두려움 없이 신성한 봉사를 드리는 영예를 주신 것에 정말 감사하지 않습니까!
전파할 책임
12. 침례자 요한은 어떻게 여호와의 길을 준비했습니까? (누가복음 1:76-79)
문맥상 이사야의 예언을 적용시킨 것은 예수를 메시야로 옹립하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주라는 단어를 예수에게 적용시키는 것이 합당함에도 불구하고 무턱대고 주를 여호와로 번역한 것은 독단을 넘어 무식함을 드러낸 것이다. 차라리 원문 그대로 주로 표현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12 누가복음 1:76-79 낭독. 스가랴는 갓난아기인 요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여호와보다 앞서 가서 그분의 길을 준비할 것이다.” 이 말은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요한은 성인이 되어서 열심 있는 전파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죄를 회개하고, 침례를 받고, 곧 오실 메시아를 받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은 예수에게 침례를 주고 나서, 나중에 그분이 여호와의 대표자이심을 공개적으로 알렸습니다. 그는 예수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세상의 죄를 없애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십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메시아이신 예수를 따르도록 권했습니다.—요한 1:29, 34-36, 40, 41.
13. 스가랴는 왜 메시아가 오는 것을 “새벽”에 빗대었습니까?
스가랴의 예언은 인류의 메시아에 관한 것이 아니고 유대를 주위의 적들부터 보호하고 이스라엘을 강력한 국가로 부상하게 할 수 있는 지도자를 의미한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세월이 흘러 유다가 멸망이 가까워지자 이 예언을 유다 백성 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적용시키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13 요한은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최선을 다해 알렸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스가랴가 말한 것처럼 메시아가 오는 것은 “새벽” 즉 새로운 시대가 밝았음을 알리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분명 이 좋은 소식은 가능한 한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한 혼자서는 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또 누가 이 중요한 구원의 소식을 알릴 것이었습니까?
14. 예수와 제자들은 어떤 중요한 일을 했습니까? (이사야 61:1, 2)
시계탑은 전파의 의미를 주로 교리 전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들의 사업 확장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의 전파 사업은 새로운 교리를 전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영적으로 계몽시켜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시키는 데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활동에 병고치는 일과 군중을 먹이는 일이 포함된 것이다. 이것은 공동체 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사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떻게 경제를 이끌어 나가느냐 하는 문제이다.
14 바로 예수께서 이 좋은 소식을 널리 전파하셨습니다. 스가랴가 예언한 대로, 그분은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시 압제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깊은 동정심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선의의 해”에 대해 알려 주심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빛”을 비추셨습니다. (이사야 61:1, 2 낭독. 누가 4:16-21) 예수께서는 “하늘 왕국이 다가왔다”고 열심히 전파하셨습니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은 전파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 좋은 소식을 전하도록 제자들을 훈련하셨습니다.—마태 4:16, 17; 10:7; 28:19, 20.
15.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이 이전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좋은 소식을 전하려면 좋은 소식임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좋은 소식이라 하면서 시계탑 교리에 불응하면 모두 죽는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라 겁박인 것이다. 좋은 소식은 인간에게 평화와 자유를 주며 생명과 행복을 주는 소식이다. 그런데 입증하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믿으면 마법의 상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도박에 운을 맡기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좋은 소식이 되려면 먼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가운데서 더 크게 번영한다는 것을 입증한다면 그 소식은 일부러 전하지 않아도 1세기 처럼 급속도로 전파될 것이다.
15 오늘날 우리는 예수의 제자로서 여호와의 구원의 소식을 전파할 책임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사실 예수의 대속 희생과 하느님의 왕국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 안 있어 인류는 “세상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일어난 적이 없는” “큰 환난”을 겪게 될 것입니다. (마태 24:21) 일부 사람들은 우리가 전했던 소식을 기억하고 그 기간에 여호와의 편에 서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신의 공동 통치자들과 천사들과 함께 오셔서, 모든 인간 반대자들을 멸망시키고 참숭배자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 후에 그들을 신세계에서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 (마태 25:34; 계시록 16:16; 19:19) 이러한 점들을 생각해 보면, 지금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마태 24:14; 마가 13:10.
16. 당신은 어떻게 하기로 결심했습니까? (또한 삽화 참조)
우리는 누가복음 1장 말미의 내용을 살펴 봄으로써 시계탑이 어떻게 번역을 엉터리로 했는지, 그 의미를 어떻게 왜곡시켜 시계탑 영업 활동에 이용해 먹는 지를 살펴 보았다. 그들은 대속을 내세우며, 시계탑에 충성하라고 독려하며, 입으로 교리 전달만 하면 마법의 힘에 의해 세상이 바뀌어진다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사실 그들은 그들 자신도 이 주장이 터무니 없다는 것을 알면서 그들 조직의 생존성을 위하여 어쩔수 없이 벌이는 짓일 거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16 지금까지 우리는 누가복음 1:68-79에 나오는 스가랴의 말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세 가지 즉, 구원이라는 여호와의 놀라운 선물, 그분을 두려움 없이 섬기는 영예, 좋은 소식을 전할 책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대속에 믿음을 두었으며 여호와를 영원히 섬기겠다고 그분께 약속했습니까? 그분을 섬기는 영예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호와의 선의의 해”에 대해 전파할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느님의 왕국이 악한 사람들을 모두 멸망시키고 곧 이 땅이 낙원이 될 것이라는 좋은 소식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알리십시오. 그렇게 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우리와 함께 “일생 동안 충성과 의로 두려움 없이 그분에게 신성한 봉사를 드리게” 되기를 바랍니다.—누가 1:74, 75.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선물에 감사하고 신성한 봉사를 드리는 영예를 소중히 여긴다면, 전파할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16항 참조)b
누가복음 1:68-79의 예언에 따르면 ···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소중한 선물을 주셨습니까?
예수의 대속 희생 덕분에 우리는 어떤 영예를 누리게 되었습니까?
우리에게는 어떤 책임이 있습니까?
노래 159 여호와께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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