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서재는 ‘치외법권 지대’… 다시 살라면 못살거 같아^^ ”
강인숙 영인문학관장, ‘이어령 1주기’ 앞 에세이 ‘글로 지은 집’ 펴내
문학평론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남편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쓰던 서재에 섰다(왼쪽 사진). 강 관장은 “이어령 선생은 평생 글을 쓰느라 누워 쉰 적이 없었다”며 “그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해 허덕허덕 바쁘게 살았다”고 말했다. 오른쪽 사진은 이 전 장관의 생전 모습. 신원건 기자 ·동아일보DB
《“노상 글을 썼던 이 선생(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에게는 서재가 필요했어요. 난 그의 서재를 치외법권 지대처럼 일상 세계와 격리시켜 주려고 기를 썼지요.”
강인숙 영인문학관장(90·건국대 명예교수)이 최근 자전적 에세이 ‘글로 지은 집’(열림원·사진)을 펴냈다.
다음 달 26일은 남편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1934∼2022)의 1주기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도 ‘치외법권 지대’였던 서재에서 16일 만난 강 관장은 “(국립중앙도서관 측이) 1년 가까이 서재를 정리했지만 아직도 정리할 자료가 많이 남았다”며“올가을쯤엔 (이 전 장관의 바람대로) 서재를 일반에 공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서재는 이 전 장관이 생전 쓰던 모습 그대로였다. 책장에는 책 6400여 권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책상에는 자료 여러 개를 동시에 보기 위해 사용하던 컴퓨터 7대가 마지막까지 그의 삶을 기록한 카메라와 함께 놓여 있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동기로 만나 해로한 동갑내기 부부의 숙원은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서재를 갖는 것이었다. 문학 평론을 쓰면서 여러 대학에 강의를 다녔던 두 사람에게 서재는 ‘창작의 자궁’이자, 세 자녀를 길러낼 수 있게 해준 생업의 현장이었다.
이 전 장관은 2015년 대장암이 발병했고, 수술을 받은 뒤 항암치료 대신 집필을 택했다.
“이 양반이 병이 나니까 그때부터 쓸 게 많다고 새벽 2시까지 서재에서 매일 글을 썼어요. 빨리빨리 다 쓰고 가야 한다고. 나는 글을 쓰고 있다가 2시간에 한 번씩 올라가 상태를 살폈죠.”
그렇게 부부가 각자 쓴 책이 이 전 장관 사후 발간된 유작 ‘한국인 이야기’ 남은 시리즈와 강 관장의 이번 책 ‘글로 지은 집’이다.
‘글로 지은 집’은 부제 ‘구순 동갑내기 이어령·강인숙의 주택 연대기’처럼 부부가 안정된 보금자리를 마련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부부는 셋집을 전전하다가 결혼 4년 만에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에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했다. 피란민이던 강 관장과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이 컸던 이 전 장관에게 내 집 마련은 “‘간장 종지만 한 자유’(박완서 단편소설 ‘조그만 체험기’에서 인용)가 우리를 정신적으로 해방시켜 준” 의미였다.
1963년 서울 중구 신당동의 적산가옥을 구입해 이사하자 문단에서는 ‘이어령이 베스트셀러를 내 대궐 같은 집을 샀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강 관장은 “건평 24평에 불과했다”며 “모로 봐도 호화 주택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총 일곱 번의 이사를 거쳐 1974년 산골짜기 외딴섬이던 평창동에 지은 집은 부부의 영원한 보금자리가 됐다. “바위산에 백설이 쌓여 천지가 거룩한 신선계” 같았던 평창동의 자연을 품은 집은 자녀들의 출가 후 2008년 이어령의 ‘영’, 강인숙의 ‘인’을 딴 문학관으로 새로 태어났다. 부부의 자택 역할도 이어갔다.
강 관장은 집을 연결고리로 책을 쓴 이유에 대해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선 집이 제일 중요하다. 인간과 정착공간의 관계를 생각해 본 것”이라며 “아이들의 탄생, 이어령 씨와 나의 사회생활 진척도, 평론적 글쓰기, 서재의 함수관계 등 모든 게 집에 담겨 있지 않나 한다”고 했다.
강 관장이 그간 책에 담기를 꺼려 왔던 이 전 장관과의 일화가 이번 책에는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 전 장관은 이 책 원고를 읽고는 아무 말씀 없으셨다”고 한다.
“원래 서로의 글에 관해 얘기하지 않아요. 집에만 오면 애 셋이 달려들어 ‘내 얘기 좀 들어 달라’고 아우성치고 잠들면 이 선생은 또 작업을 하셔야 하니까. 나는 리얼리즘, 이어령 씨는 수사학·기호학 전공이니까 영역도 다르죠.”
생전 책 130여 권을 쓴 ‘시대의 지성’ 이 전 장관과 64년을 함께한 삶은 어땠을까.
“내 작업이 이 사람(남편)을 해쳐선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평론을 쓰려면 큰 방에 책을 줄 세워 놓고 뽑아 쓰는 방식으로 주석을 달았는데, 저는 유독 남편이나 애들이 오면 하던 일을 숨기느라 급급했죠. 가족들이 부담을 느낄까 봐서요.”
강 관장은 “그럴 만한 분이었으니까 이 선생 (원고 교정 등) 심부름한 것도 후회는 안 한다”면서도 “(같은) 인생을 다시 살라면 못 살 것 같다”고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글로 지은 집’은 평창동 집에서 생을 마감한 이 전 장관과 같은 마지막 바람으로 책을 끝맺는다. “이 집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 이왕이면 송홧가루가 시폰 숄처럼 공중에서 하느작거리는 계절이면 좋겠다.”
최훈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