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에 중대선거구 자리는 없다
소선거구제 유지하되 비례대표 확대해야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힘들면 병립형으로라도 100석까지 늘려야
비례대표를 중대선거구처럼 뽑으면 어떨까
민주주의는 다수(plurality)가 아니라 과반(majority)의 지배다. 대통령부터 과반 득표자여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 같은 연방제 국가가 아닌 이상 프랑스처럼 결선 투표를 하는 수밖에 없다. 만약 딱 한 가지만 개헌을 한다면 의원내각제냐 대통령 중임제냐의 선택이 아니라 대통령 결선 투표 도입부터 해야 한다. 대통령 중임제도 그 위에서라면 더 쉽게 논의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개혁은 의회에서 과반 지배의 확립이다. 의회에서는 정당 의석수 과반과 정당 지지율 과반이 괴리될 수 있어 그것이 문제다. 미국과 영국같이 양당제의 전통이 긴 국가에서는 100% 소선거구제에 대한 의문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 의석수의 과반이 대체로 지지율의 과반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이 괴리를 없애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100% 비례대표제의 실시다. 지역구를 아예 없애고 정당 지지만 밝혀서 그 지지율대로 의석을 나눠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정치는 어느 정당이 하느냐 못지않게 어느 정당의 누가 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양당제가 아닌 국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두 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프랑스는 대선과 마찬가지로 총선에서도 결선 투표를 실시한다. 다만 1, 2위 후보만 결선에 나서는 것은 아니고 일정한 득표율을 넘는 모든 후보가 결선 투표에 나서는 완화된 방식을 취한다. 결선 투표를 통해 당선된 사람은 지역구에서는 과반 지배를 관철했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다 모였을 때 국가 전체로는 어느 정당이 과반이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엄격한 결선 투표의 필요성이 대선보다 덜하다. 다만 대체로는 완화된 결선 투표로도 의석수에 상응하게 지지율을 모아주는 효과가 있다.
독일은 100% 비례대표제에 현실적으로 가장 근접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한다. 지역구별 소선거구제로 당선자를 뽑는 투표와 함께 정당 지지를 표시하는 투표를 한 다음에 당선자 수가 지지율에 미치지 못하는 정당에는 지지율에 비례하는 의석수만큼 의석을 나눠주는 것이다. 이 제도는 어느 정당의 당선자 수가 지지율에 따른 의석수를 넘어서는 만큼 의원 수가 늘어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의석수를 가변적으로 늘릴 수만 있다면 의석수와 지지율의 괴리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대선 결선 투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과반의 지배를 위해 정치의 양극화를 지양하고 협력을 모색하게 하는 제도다. 특히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대선 결선 투표와 달리 개헌 없이도 도입할 수 있다. 다만 지난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실패한 것은 의석수를 늘릴 방법을 마련해 놓지 않고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당선자 수가 지지율에 따른 의석수를 넘는 정당은 위성정당을 창당할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정치 개혁에 중대선거구제를 위한 자리는 없다. 일본이 선진국 중에서는 유일하게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해 오다가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의 조합으로 바꿨다. 우리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전진하지는 못할망정 일본마저 버린 중대선거구제로 퇴행해서야 되겠는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장 제대로 실시하기 어렵다면 일단 이전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야 한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의석수와 지지율의 괴리를 좁히는 데 기여하는 바가 크지 못하지만 제3, 제4 정당에는 의미가 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되 총선 때마다 지역구 의석을 10석씩이라도 줄여서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까지 늘려야 한다. 사라지는 지역구 후보들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것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한꺼번에 하지 않고 조금씩 하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충분한 수의 비례대표 의석을 마련하는 것이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다만 우리는 정당 공천에 대한 불신이 크다. 특히 비례대표 공천에 대한 불신이 크다.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는 권역별로 비례대표를 뽑되 지지 정당의 후보들 중 누구를 선호하는지 투표한다. 비례대표 당선의 우선순위를 유권자 투표로 정하면 중대선거구제와 비슷해진다. 발상을 전환해 비례대표를 중대선거구제식으로 뽑는다면 사라지는 지역구의 후보를 출마시켜 기회를 주는 것과 동시에 공천에 대한 불신도 어느 정도 불식시킬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