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2022년 9월 17일
날씨: 맑음(아침 한때 차량이동중 비)
산행루트: 인제 용대리(박달나무 쉼터)-새이령(대간령)-마산봉-알프스리조트(당초 목적지 진부령 가는 중간지점)
참석자(10명): 알대장, 희망과용기, 산바람, 아톰, 달라무, 감자바우, 아브믈, 왕눈이, 뜬구름, 지리산
오전 7시무렵 서울에서 각각 세대의 차(알, 달라무, 아톰)로 나눠타고 집결지 용바위식당에 도착, 가볍게 황태국 한그릇씩 비우고 인근의 출발지점 박달나무쉼터에서 산행 시작. 시간은 오전 10시 30분경.
십우도十友图
1.달라무
깊고 깊은 강원도 두메산골 골짜기입구 허름한 주막앞에 열명의 사내들이 부스스 마차에서 내린다. 채 펴지지 않는 관절들을 풀어가며 각자 등짐을 챙기고, 늙은 주모는 기다렸다는 듯이 마차대기비를 챙긴다. 그 와중에 무리 가운데 백발의 인상 좋은 사내가 주막 입구에 걸린 간판을 바라보고 씩 입가에 미소를 날린다. ‘박달나무 주막’
오늘 모인 이 조직은 무슨 결사체 마냥 서로의 이름을 숨긴채 각자의 별명으로 통한다. 사내가 조직에서 불리우는 ‘달라무’란 별명은 몇몇 추측으로 연상되어 왔지만 아직 정확히들 파악하지 못한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박달나무가 부드럽고 순한 성품의 이 사내 별명의 유래일거라고는 아무도 모른다.
2.알대장
주막에서 출발하여 골짜기에 접어든다. 설악의 맑고 찬물이 습한 막바지 여름날을 달랜다. 달포전 이곳을 미리 다녀온 알자지라는 이 조직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알대장’으로 불리운다.
골짜기를 오르며 군데군데 시냇물을 만나게 되는데 다른 사내들은 넘어질세라 징검다리를 폴짝이며 소심하게 건널 때 그는 과감하게 첨벙대며 물속에 들어서 등반용샌달의 위용을 과시한다. 이미 알대장으로부터 사전고지를 통해 준비하라는 샌달과 방한패드를 등짐마다 가득 채워 넣은 구성원들은 현장에서 그닥 필요가 없어 보이는 물길을 보고 궁시렁 댄다.
그러나 알대장의 생각은 다르다. 중늙은이들로 구성된 조직원들이 평소 허술한 괴나리봇짐 수준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이번 등반에서는 봇짐이나마 빵빵하게 꾸려 겉모습이라도 전문 등반조직으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3.산바람
골짜기 시냇물을 몇차례 건너면서 큰힘 들이지 않고 언덕길을 오른다. 그 옛날 이 산골에 말시장이 섰던가 마장터라 이름 붙여진 고갯마루에서 잠깐 숨고르는 사이 한 사내가 훌훌 바지를 벗어던지고 반바지로 갈아입는다. 마치 고승이 초탈하여 여신도 앞에서도 편히 옷을 갈아입듯. 왠간한 남들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늘 자신의 소신을 고집하는 ‘산바람’이다. 젊은 날 즐기던 음주가무의 낙을 살짝 내려놓고 요즘들어 부쩍 자주 산행길에 나서며 산바람을 타고 있다.
4.뜬구름
정상으로 가는가싶게 편안한 산길이 이어진다. 냇물은 더욱 넓어져 편안하고 쭉쭉뻗은 갈참나무(?)는 여름날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를 사내들에게 안긴다.
백두대간 정상 이쪽으로 흐르는 저 냇물은 내린천을 거쳐 소양댐에 잠시 머물다가 북한강으로 굽이 흘러 남한강과 합류, 저멀리 서해로 내닫는다. 고개너머 저쪽에 떨어진 빗방울은 동쪽 계곡을 급행하여 곧바로 동해로 내닫는다. 운명지어지는 위치에 따라 세상은 갈린다.
조직의 막내이자 부지런한 보급책 ‘뜬구름’. 문득 걸음을 멈추고 흐르는 강물에 시선을 던진다. 강물은 여전히 서쪽으로 흐르고 그는 거슬러 다시 동쪽으로 걸음한다. 오늘 바람은 서풍이다.
그사이 몇걸음 더하니 대간령에 이른다. 미시령과 진부령 사이 백두대간 줄기의 나즈막한 고갯길로 동서의 통로로 삼아 오르내리던 언덕마루, 사내들은 그가 챙겨온 보급품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다.
5.아브믈
지금까지와 달리 제법 가파른 언덕길이 이어진다.
이제 멀리 동해의 수평선이 보인다. 높은 고지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는 여전히 눈높이다. 세상의 가장 아래에 위치 하지만 가장 높은 하늘에 맞닿아 있다.
행렬의 맨끝에 처진 사내 ‘아브믈’의 숨소리가 거칠다. 한갑자 돌아온 나이탓인가. 최근 몇달간 아들녀석 대입준비 챙기느라 동분서주 몸이 말이 아니다. 녀석 덕분에 파워사커 심판자격까지 따는 등 새로운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비록 뒷처져 몸은 무겁지만 분명한건 오늘 이들과 함께 끝지점에 도달할것이다. 저멀리 아득하던 수평선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앞선 일행들은 너덜바위 언덕위 바람을 등지고 앉아 점심을 때우며 그를 맞이한다.
6.희망과용기
오늘 산행길 최고점인 마산봉을 앞두고 점차 언덕길은 가팔라지고 일행들은 조금씩 지쳐간다.
이때 늘 유머를 곁들여 해박한 문화해설과 지명 역사를 내리꿰며 입담을 자랑하는 무리들의 두목 ‘희망과용기’가 분위기를 반전시킬 묘수를 제안한다.
오늘 목표 도착지점인 진부령이 앞으로 십오리. 그런데 불과 오리밖에 알프스리조트가 있음을 알린다. 순간 일행은 와우하는 탄성과 더불어 희망과 용기를 갖는 신비를 맛본다.
두목의 자리를 유지하려는 ‘희망과용기’의 준비된 시나리오를 눈치챈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7.지리산
잠시 들떠 있던 무리들은 의견이 둘로 나뉘어진다. 마산봉 코밑지점인 병풍바위에 들렀다 가자는 팀과 우회해서 가자는 팀. 마치 성벽을 쌓아올린듯 동서지풍을 막아주는 병풍바위는 우회팀이 못보고 떠나간 뒤에도 그자리 그대로 지키고 서있다고 들른팀이 전한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오늘의 최고점 마산봉 정상.
한 사내가 흐뭇한 모습으로 멀리 산맥끝 진부령을 내다본다. 4년간의 공백을 딛고 오늘 다시 합류한 ‘지리산’.
모처럼 오르는 산행길에 대한 초장의 걱정과 염려는 엄살이었음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아마 오랜 공무생활의 습성이리라. 그는 출발부터 이곳 마산봉까지 줄곧 선두에 서서 걸었다.
8.왕눈이
하산길은 가팔랐다. 마침내 알프스리조트 옆 차로에 내려선 무리는 한발 앞서 내려간 마차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6시. 땀에 절은 초췌한 행색의 무리들은 원점에 돌아가 잽싸게 몰고온 석대의 마차에 나눠 타고 한양길 길목 ‘가리산막국수’ 주막집에 들른다.
세명의 마차꾼들의 원망스런 눈길을 모르는채 일곱명의 사내들은 막걸리 사발에 떠들썩 코를 박는다.
이때 보급책 뜬구름이 왕눈이 여식이 곧 초례를 치를 예정이라는 공지를 한다.
한동안 무리들 모임에 안나오다 지난번 수락산 모임에 이어 오늘 다시 참석한 속셈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질책이 쏟아진다. 왕눈이 그 특유의 큰눈을 부라리며 절대 아님을 강변한다. 그 진실성은 이후 참석여부가 알려줄 것이라는 다짐속에 모두들 여식의 혼사를 축하해 주었다.
9.아톰
가볍고 기분좋은 저녁을 함께하고 이제 모두 집으로 향한다.
오늘 세명의 마차꾼들(알대장, 달라무,아톰)이 헌신하여 무리들의 여정을 편하게 해준다.
그중 한명 ‘아톰’, 점잖고 능숙한 마차몰이로 일행을 안심시킨다. 그는 그동안의 수십번의 이 무리 모임을 하면서 맨정신으로 집에 돌아가는게 오늘 처음이라며 마나님의 칭찬을 기대하며 시종 즐겁다. 거듭되는 뜬구름의 뒷풀이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며 맨정신 귀가를 고집한다.
오늘밤 아톰의 사랑방에는 밤새도록 호롱불이 켜져 있으리라.
10.감자바우
되구말구 어줍잖게 산행기라고 지껄여 놓은 이 글은 감자바우가 적었다고 한다.
가장 최근 무리들 틈에 끼어든 그의 정체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강원도 촌놈이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첫댓글 하느님은 어찌하여 감자바우에게 동시에 2개를 다 주셨나이까? 훌륭한 인품과 대단한 글재주를....
산행기 자주 대하기를 고대합니다~~~
재미난 산행기, 즐겁습니다^^
진짜 재미나게 잘 읽었네~~ 감자바우의 첫 산행기 강한 인상 오래 남을 듯. 아무래도 박사학위를 문학으로 딴듯. 강원도 촌놈의 성장기를 기대해볼까나??~~ ㅎㅎ
글 쓰느라 수고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