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색은 재물뿐 아니라 자신의 재능이나 덕을 베풀지 않는 것도 해당된다.)
어떤사람이 지혜를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이 가진 지혜로써 남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줄 수 있을 것이고,
덕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으로 남들을 선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처방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으로 남들의 병을 치료해 줄 수 있을 것이고,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남들들 근심에서 건져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사용하기를 아끼는 것은 모두 재능을 아끼기 때문이다.
재능은 흩어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것은 베풀어야 아름다운 것이지,
베풀지 않으면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재물은 흩어버릴수록 더욱더 없어진다.
그리고 눈으로 볼 수가 있다.
그래서 그것을 아끼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재능은 베풀어 줄수록 더욱더 늘어나게 되는데,
무엇 때문에, 아껴야 하겠는가?
재물에 인색한 이는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죽을 때에 남겨두어 다른 사람이 쓸 수있게 해 준다.
그러나 재능이란 쓰지 않으면,
죽을 때에 그와 함께 죽어버린다.
따라서 남들도 쓸 수가 없으니 이로울 것이 조금도 없다.
그런데 베풀어 주기를 아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람들은 덕이 커지면 커질수록 다른 사람들도 바르고 착하며 덕을 갖춘이가 되기를 바라고,
모든 사물도 각자 그들의 자리를 얻기를 더욱더 절실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바란다. 하느님의 仁과 義는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으며 끝이 없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호칭을 특이하게 인자한 아버지라고 하였다.
하느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는 것은 자애롭고 어진 본성에서 나오므로,
하느님이 베풀어주는 은혜는 언제나 인간의 공을 넘어선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잘못을 꾸짖거나 벌을 내리는 것은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참된 덕을 가진 이는 무엇보다도 사람을 사랑한다.
그래서 (자신의) 노력으로 남의 근심을 도와 줄 수 있다면,
사양하지 않고 남을 가난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러니 만약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 한다면 마음이 비루한 사람이며,
동시에 덕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것이다.
성 예로니모는 "나는 아직까지 남에게 베풀어 주기를 좋아하면서,
죽음을 근심하는 이는 보지 못하였다." 하였다.
(칠극, 자선으로 탐욕을 풀다 7,184-186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