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블레스 오블리주(humbless oblige) - 조선시대 여성 CEO
"김만덕의 생애"에 관한 소개를 해 봅니다.
잘 살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하는가?
"험블레스 오블리주(humbless oblige)" 즉 "미천한 사람이 실천한 도덕적 책무"
김만덕은 조선 영조 15년(1739년)에 태어나,순조12년(1812년)까지 살다간 제주 여성이다.
만덕은 어린 시절 전염병으로 부모님을 여의고,
평소 어여삐 여기던 퇴기 월중선에게 의탁하여 살게 된다.
잠시 관기로 생활하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적에 올랐던 것이라 그 생활을 청산하고 장사를 시작한다.
만덕은 장사에 소질이 있어, 큰 돈을 모으게 된다.
정조 때 제주에는 심한 기근이 들어 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관에서는 조정에 도움을 청하나,곡식을 수송하던 배가 오다가 침몰하는 등 제때 도착하지 못해 굶주리는 자가 많았다.
이를 보다 못한 김만덕은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육지의 양곡을 사들였다.
10분의 1은 친족과 친지들에게 나누어주고,나머지는 관청에 가져가 백성들에게 나눠주도록 하자,
제주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당시 제주목사는 김만덕의 자선사업을 조정에 보고하였는데, 정조가 만덕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만덕이 말하길
"임금님 계신 대궐과 영산 금강산을 한 번 구경하고 싶을 뿐입니다."
하여 당시 제주여성은 섬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법에도 불구하고,만덕은 서울로 향하게 된다.
김만덕은 궁에 들기 전 의녀반수를 제수 받고 임금님을 알현한다.
정조는 친히 만덕의 손을 잡아주며 칭찬하고, 후한 상을 내렸다.
만덕은 서울에 머물며 궁을 구경하고, 금강산 유람을 마친 후 다시 제주도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 병조 판서 이가환은 만덕에게 시를 적어 주고,
좌의정 채제공은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란 글을 지어 주었으며
옥지환과 김만덕의 사적을 엮은 책「만덕전」을 선사했다.
사후에는 대정현에 귀양왔던 김정희가 김만덕의 진휼 행장에
감동하여 손수 은광연세(恩光衍世:은혜로운 빛이 여러 세대로
이어진다)라는 큰 글씨를 써 주었다.
김만덕의 묘는 현재「구휼의녀 김만덕 기념탑」
과 함께 사라봉 모충사에 있으며, 제주특별자치도는
매년 제주여성 중 모범이 되는 여성 1명을 선정,
탐라문화(구 한라문화제) 만덕제 때 '만덕봉사상'을 시상하고 있다.
병조판서 이가환(李家煥)의 시
만덕은 제주의 기특한 여인인데
육십의 얼굴이지만 사십쯤으로 보이네
천금으로 쌀을 사들여 백성을 구제하였으니
한번 바다 건너 궁궐을 찾아 뵈었구려
다만 한번 금강산을 유람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산은 동북녘에 연기와 안개로 싸여있네
임금님이 끄덕이며 날쌘 역마를 내리셨으니
천리의 광휘가 강관을 떠들썩하게 하네
높이 올라 멀리 바라보는 마음과 눈은 장한데
표연히 손을 흔들면서 바다 구비 돌아가네
탐라는 먼 예로부터 고량부가 살던 곳인데
여자로서 이제 비로소 임금 계신 서울 구경하였네
돌아오니 찬양하는 소리가 따옥새 떠나갈 듯하고
높은 기풍은 오래 머물러 세상을 맑게 하겠지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름을 세움이 이와 같으니
여회청대(女懷淸臺)로 이름은 어찌 족히 몇이나 있으리
<제주도『구원의 여성 김만덕』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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