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여러 곳에 나오는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는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루카 8,2)로 소개되어 있다.
그는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 아래와,
예수님의 무덤 곁에 있던 여인이며(마태 27,56.61 참조),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첫 번째 사람으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 주었다(요한 20,11-18 참조).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시신이나마 모셔 가려 하였던(요한 20,15 참조)
그의 모습에서 주님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에 대한 공경은 12세기부터 서방 교회에 두루 퍼져 나갔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사랑이 넘치는 봉사’, ‘변함없는 사랑’의 여인으로
묘사될 만큼 주님을 향한 사랑이 간절했다.
어둠이 아직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에 막달레나는
주님의 무덤으로 달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제자들에게 전한 여인이다(복음).
예수님께서는 일곱 마귀에 사로잡혔던 죄 많은 마리아 막달레나를
온갖 죄의 사슬에서 풀어 주시고, 당신의 제자로 받아들이십니다.
그렇지만 그 기쁨도 잠시뿐.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십니다.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십자가 곁을 떠날 수가 없었고,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예수님의 무덤으로 갑니다.
그런데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고, 무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놀라서 제자들에게 알립니다.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아가>에서 사랑하는 이를 찾아 나선 여인의 안타까운 모습과
닮아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입니다.
울고 있는 그녀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정하게 “마리아야!” 하고 부르십니다.
사랑은 이렇게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부활은 이렇게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사도들의 모습이 있고, 마리아 막달레나와 같은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느냐, 하지 않느냐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님을 철저하게 사랑했고,
언제나 그분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주님 부활의 첫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만나 삶이 바뀐 여인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죽음을 더욱 가슴 아파합니다.
그녀는 그분께서 묻히신 장소를 눈여겨봐 두었습니다.
보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이제 무덤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무덤이 비어 있습니다.
‘누가 그분을 꺼내 갔는지,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막달레나는 빈 무덤의 천사에게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말씀하십니다.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그녀의 눈물은 슬픔의 눈물만이 아닙니다.
영원히 기댈 분을 잃어버린 ‘상실의 눈물’이기도 합니다.
그때 마리아 막달레나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음성을 듣습니다.
지난날 ‘어두운 인생’ 속에 헤맬 때 자신을 붙잡아 주셨던 분의 음성입니다.
그러자 눈이 열리며 그분을 알아보게 됩니다.
“마리아야!” 다정스러운 이 한마디가
그녀의 온몸을 ‘한곳’으로 향하게 했던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러기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부르시자 곧바로 알아봅니다.
‘돌아가셨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신을 부르시는 목소리를 듣자
즉시 ‘살아 계심’을 알아챈 것입니다.
온몸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는 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무게를 견디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삶의 십자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이 믿음에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라뿌니!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이 자기 이름을 부르시자
즉시 예수님임을 알아본다.
그리고 슬픔과 비탄, 절망으로 죽어있던 그녀의 마음이
순식간에 기쁨과 환의와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된다.
부활을 체험한 것이다.
그러고는 아람어로 "라뿌니!" 하고 외친다.
라뿌니는 '나의 사랑하는 선생님'이란 뜻이다.
안셀무스 성인에 따르면 그녀가 "라뿌니" 하고 외칠 때
이미 그녀의 눈에서는 조금 전까지 흐르던 눈물과는 완전히 다른 눈물,
횐의와 기쁨이 쏟아져 내렸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요한 20,1)
우리가
새벽미사 갈 때, 가끔은
주님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던
마리아 막달레나의
가뿐 숨소리를 듣네.
돌이 치워진
빈 무덤을 바라보던
제자들의 놀라움으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우리와 함께 계실
주님의 현존을 생각하며
올리는 미사.
아직 떠오지 않은
해를 기다리며 드리는
새벽미사는
그래서 언제나 싱그럽다네.
- 김혜선 아녜스 -